가시가 주는 교훈 / 겔 2:1-5, 고후 12:7-10
사도 바울은 사도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도라고 말할 수 있다. 학문과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고 하나님의 계시를 많이 받은 사도이다. 그래서 신약성서 27권 중 13권이나 기록했다. 그만큼 영력이 풍성한 사도였다. 세 차례에 걸친 선교여행을 통해 소아시아와 유럽에 많은 교회를 세워 초대교회 부흥에 큰 역할을 했다. 바울은 다른 어떤 사도보다 신령한 사도였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많이 받은 사도였고 실제로 많은 업적을 남긴 사도였다. 이러한 바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육체의 가시가 있어서 말할 수 없는 고민과 심한 고통과 시련을 겪고 있었다. 육체의 가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탄의 사자’라고 한 점을 미루어보아 무척 심한 고통이었던 것 같다. 박해로 인한 고통일 수도 있고, 생활고로 인한 고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육체의 가시에서 육체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아 불치의 병, 심한 고통을 주는 어떤 질병인 것 같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8절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세번 기도하였다는 것은 단순히 한번, 두번, 세번이라는 뜻이 아니다.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이 한번 기도하였다는 것은 어떤 문제를 놓고 40일 동안 계속 기도한 것을 말한다. 바울도 마치 예수님께서 복음전파를 앞두고 광야에 나가서 40일 금식기도를 하신 것처럼, 금식은 안했다 하더라도 40일 연속기도를 세번이나 했다는 말이다.
9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의 응답은 바울에게서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가시가 주는 교훈을 깨닫고 살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와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두고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떠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세번이나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단순히 고난으로부터 벗어나는데 있지 않고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능력과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아버지의 뜻때로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처음에는 육체의 가시를 제거하기 위하여 기도했지만, 가시의 의미를 깨달은 다음에는 오히려 기뻐하면서 가시가 주는 교훈을 마음에 새겨두었다. 9절하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터득한 ‘가시가 주는 교훈’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몇가지 교훈을 찾아보겠다.
1. 가시는 누구에게나 있다.
죄지은 악한 사람에게만 고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선한 사람에게도 고통이 있다. 때때로 저 가정에 무슨 고민이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모든 면에 행복하게 보이는 가정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남에게 차마 말못할 고민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들 가운데도 가시에 찔려 괴로워하는 분들이 있다. 하는 일마다 제대로 안되는 분, 가정의 불화가 그치지 않는 분, 병마와 더불어 고생하는 분, 자녀들의 신앙문제로 고민하는 분, 자녀들의 진로문제, 결혼문제 등이 있다. 이런저런 문제로 슬픔과 고통의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다. 때때로 친구가 가시처럼 아픔을 주고, 남편이, 자식이, 아내가, 형제가 가시처럼 우리 마음에 상처를 입히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숱한 가시에 찔리고 상처를 입게 된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라. 가시는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약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다 있으므로 보편적인 일로 생각해야 한다. 믿음이 강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도 바울에게도 상처를 주는 가시가 있었다. 아 2:2절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주님은 우리의 신랑이시고 우리 모든 성도는 주님의 신부의 위치에 있다. 주님의 신부된 성도는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한송이의 백합화 같다. 백홥화는 가시 가운데서 자라면서 가시에 이리 찔리고 저리 찔리면서 숱한 상처를 입지만, 그럴수록 백합화는 향기를 사방으로 진동시킨다. 인생은 시련을 겪으면서 성장하고 인생의 맛을 드러낸다. 롬 5:3-4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종종 가시의 아픔이 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라.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어떤 의미에서는 일생을 두고 가시의 찔림을 받아가며 사는 존재이다.
2. 가시는 교만을 꺽는 도구이다.
7절상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여기 ’자만‘이라는 말은 자기 스스로 높인다는 교만을 나타내는 말이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이 은혜와 능력을 많이 받은 사도로서 많은 선교 업적을 남긴 분이다. 남보다 더 많은 계시와 환상을 본 분이다. 수제자인 베드로보다 더 많은 능력과 업적을 가진 사람으로서 많은 교회를 세웠다. 자랑할 만한 일들이다. 바울도 인간인지라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면서 남들에게 자랑할만 하다고 자기 과시를 할 만하다. 교만할 수 있다. 그러나 육체의 가시가 있어서 자기 몸을 찌르고 상처를 입히고 괴로움을 당하다 보니까 ‘아! 나는 부족한 사람이구나, 나는 약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낮아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살아왔지만, 가시가 자기를 찌르니까 다른 것은 다 해결하고 능히 극복해 왔는데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나도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기 부족을 깨닫는다. 자기 연약함을 깨닫는다. 이때 스스로 낮아질 수 있다.
지식이 많은 학자도, 성공적인 사업가도, 세도를 부리는 권력자도, 뭇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지도자도 때때로 가시가 필요하다. 교회에도 때때로 가시가 필요하고, 목회자도 가시가 필요하다. 가시를 통해서 자기 부족을, 약함을 깨닫게 된다. 사람은 아픔을 느낄 때 비로소 겸손해 진다. 자기 분야에서 좀 성공했다고 목에 힘을 주던 사람도 실패나 질병이나 어떤 시련을 겪게 될 때 겸손해 지는 것을 많이 보았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벌하시고, 겸손한 자를 가까이 하신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이만하면 됐다, 성공했다’라고 생각될 때 일수록 겸손해져야 한다. 겸손해지지 않고 자기를 내세우려고 어떤 자랑, 자기과시, 목에 힘을 주려고 하면 그 사람의 교만을 꺽기 위해서 아픈 가시를 준다. 시련을 준다. 그때 눈물을 흘린다. 그때는 눈물을 흘려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5년전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였던 헨리 누엔 박사가 갑자기 교수직을 사임하고 정신박약아 수용시설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허드렛일을 하는 대이브레이크 복지원 직원으로 들어가 화제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신학자 중 하나이며,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던 학자이다. 그의 저서 20여권은 모두 베스트셀러였다. 그가 높은 보수와 명예를 보장하는 하버드대 교수직을 버리고, 정신박약아 시설에 가서 정박아들의 용변을 치우고 목욕을 시키고 식사를 돕고, 행동교정지도를 하는 등 구질구질한 일을 하는 고생은 물론이지만, 생계유지도 어려울 정도의 낮은 보수에 만족했다. 모두들 ‘왜 그러느냐’라고 물었을 때, 그는 몇 개월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책을 써서 대답을 대신했다. 누엔 박사는 그 책에서 말하기를 ‘나는 그동안 올라가는 길만 추구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해 천재신동이라 추앙되고 하버드 교수에까지 올라왔다. 나의 저서 20여권은 뭇사람의 인기를 얻었다. 나는 지금까지 모직 성공을 향해 곧 꼭대기를 향해 오르막길만 추구해 왔다. 그러나 어느날 정신박약아 아담 군을 만났을 때, 이런 인간의 고통에 동참하는 내리막길을 통해서 예수를 바로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르막길에서 예수는 안보였지만, 내리막길에서 복음서에 나타난 진정한 예수를 만날 수 있었다.’ 누엔 박사처럼 사람은 성공을 했을 때 남을 섬기는 자리로 낮아질 수 있어야 예수님의 참제자가 될 수 있다.
3. 가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계기가 된다.
9절하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절하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데서 온전하여 진다. 사람은 여러 가지 가시로 인하여 고통이나 아픔을 겪게 될 때 스스로 약함을 깨닫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바로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토기장이의 능력과 기술은 흙이 부드럽고 연약할 때 온전히 나타날 수 있다. 흙이 굳어 있을 때는 토기장이의 기술이나 예술성이 나타나기 어렵다. 탕자가 자기 몫의 재산이 있을 땐 아버지를 떠나 멀리 외국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생활했다. 자기 중심으로 살았다. 그러나 돈이 떨어지고 친구도 다 떨어져 나가고 극도로 궁핍했을 때, 아버지의 집이 생각난 것처럼 인간의 심령도 그러하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생활로나 극도로 약하게 되었을 때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싶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고 싶어 한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외면하지 않는다. 따스하게 품어주시고 새능력을 주신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족장들 대다수가 약할 때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더 강한 자가 될 수 있었다. 요셉을 보라. 아버지 집에서 총애를 받고 있을 때보다 형들의 가시에 찔려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을 때, 보디발의 아내의 가시에 찔려 감옥에 갇혔을 때 하나님의 권능이 더 나타나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다. 모세를 보라. 애굽 공주의 아들로 있으면서 권력과 부귀와 명예를 가지고 있을 때보다, 거기서 물러나 저 시내 광야에 가서 양치는 목동으로 있을 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다. 야곱을 보라. 하란에서 부자가 되어 많은 재산과 가족을 이끌고 고향 땅이 가까운 얍복강 가에 이르렀을 때, 자기를 원수시 하던 형 에서가 군대 4백명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야곱이 마음은 약할대로 약해졌다. 야곱은 가족과 종들을 먼저 강을 건너가도록 한 후, 홀로 얍복강 가에서 기도하였다. 그때 하나님께서 ‘승리자’라는 뜻의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고 얍복강을 건너가도록 했다. 얍복강 가의 기도가 있은 후 야곱이 강을 건넜을 때 형 에서는 야곱을 죽이기는커녕 오히려 따뜻하게 영접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거시가 있는가? 가시로 인해 어떤 아픔을 겪고 있는가? 낙심하지 마라. 고통이 있을수록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구하라. 그러할 때 여러분의 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을 머물게 할 계기가 된다. 그러므로 기도는 중요하다. 기도는 유한한 우리를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연결시키는 힘이 있다. 우리가 새해를 시작할 때는 여러 가지 계획과 꿈을 가졌다. 그런데 벌써 여섯달이 지나고 일곱째 달도 다 지나가고 있다. 이제라도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어려운 일이 있을수록 혼자 해결하려고 발버둥치지 마라.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라.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라. 사 40:31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아마 15년은 된 것 같다. 일본에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인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가스관을 물고 자살하였다. 자살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문학으로 명성을 얻었으나 늙고 병들고 보니 무엇하나 생각대로 되지 않았으므로 인생의 허무를 되씹으면서 자살하였다. 그가 약해졌을 때에 만약 하나님을 발견했더라면 그는 결코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다. 헤밍웨이도 엽총으로 자살하였다. 가시의 아픔, 고통을 겪을수록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발든 비치의 시 중에 이런 기도시가 있다.
슬픔과 고통 중에 쓰러져 있느냐? 기도할 것밖에 없다.
박해를 당하고 욕을 먹고 미움을 받느냐? 기도할 것밖에 없다.
근심과 걱정이 너를 괴롭히고 있느냐? 기도할 것밖에 없다.
죽음과 파멸이 너의 앞에 놓여 있는가? 기도할 것밖에 없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힘이 되어 주신다. (1995-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