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公募展)과 백일장(白日場)에 대한 소고(小考)
공석진/ 시인, 평론가, 칼럼니스트
1. 들어가는 말
공모전과 백일장은 엄연히 다르다. 공모전이 사전에 공개 모집하여 평가하는 것과는 달리 백일장은 백일장이 열리는 현장 즉석에서 글을 지어 겨루는 대회를 말하는데, 조선시대 유생들의 시문 시험에서 유래하였다. 명칭이 백일장(白日場)인 이유는 환히 밝은 날을 의미하는 백일 즉 대낮에 시재(詩才)를 겨운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전 공모전으로 진행되는 문학상의 경우, 매년 봄에 신문사 주최로 신춘문예라는 이름으로 열리는데 반하여, 각 문학 단체에서는 가을에 개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문학의 특성상 가을이란 계절이 글을 짓는데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만큼 문학 특히 시는 계절에 상당히 민감한 문학이다. 무더운 여름이나 척박한 겨울에 시적 감성을 기대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필자는 백일장의 심사 위원을 두 차례, 문학상 심사 위원으로 한 차례 참여한 경력이 있다. 그 기억에 비추어 필자의 심사 기준은 이미 '추암문학 아카데미'에서의 시창작 강의를 통하여 그리고 필자의 시 창작론 저서인 '글이 시가 되는 길'에서 명확히 전달하고 있다.
2. 심사에서 가장 먼저 걸러야 할 중점 요소
필자는 시인으로서 심사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걸러야 할 시를 가려내는 일이다. 시 필터링(Filtering) 작업은 선택적으로 통과시키거나 차단하는 일이다.
첫째는 맞춤법이다. 글을 짓는데 맞춤법 조차 몰라서 사전이나 스마트 폰에 의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글을 짓는 사람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소양 부족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덧붙여 공모 기준에 맞지 않는 참가자는 심사 자체를 제한한다.
두 번째는 관형어의 남발이다. 명사 앞에서 그 명사를 꾸미는 일을 남발한다면 독자로 하여금 상상을 하고 판단하는 기능을 빼앗는 것과 같다. 굳이 장식하려 하지 말고 침묵하고 절제해야 시로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관형구나 관형절 모두 관형어가 될 수 있다. 체언은 그대로 남겨 두고 다른 방식으로 변화를 주어야 하는 것이 좋은 시를 쓰는 비결이다.
세 번째는 설명하는 시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런 시는 시가 운문(韻文)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쓸데없이 길어질 뿐만 아니라 시의 본질에 역행하는 행위 그 자체다. 시는 산문(散文)의 산(散)의 의미처럼 한가한 문학이 아니다. 가장 정제되고 함축적이며, 작은 여백 하나로도 온갖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을 제공하는 문학인 것이다.
네 번째는 같은 시어나 동의어를 무한 반복하는 시다. 이럴 경우 시는 산만해지며 가벼워진다. 다른 시어를 통해 상징해야 하며 비유법을 적용해야 한다. 평상시에 습작을 많이 창작한 사람은 동의어 제한에 능숙하다. 어쩌다 시를 쓰는 사람의 경우 문장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이다 보니 동의어 제한이나 혹은 다 쓰고 나서의 동의어 색출에도 큰 어려움을 겪는다.
다섯 번째는 멋을 부리려고 하고, 흉내를 내는 시이다. 필자는 'Copy Poem'이라고 기술하였는데 이런 시의 경우 짜집기 형태가 대부분이다. 물론 문장의 근육이 처음부터 발달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남에게 자신의 능력을 포장하고 과시하려는 욕구로 인해 창작에 따른 자신의 고통을 피하거나 능력 부족을 시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철저히 제한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섯 번째는 억지로 만든 시다. 이런 시는 쥐어짠 느낌을 줄 수 밖에 없는데 필자는 'Squeeze Poem'이라고 부른다. 애초에 문장력 부족이 그 원인인데 길지 않은 시의 특성으로 인하여 문맥의 흐름이나 시상의 전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는 시를 만만하게 생각하고 "어떻게든 짧은 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시각이 자신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는 감정의 과잉이다. 날시(Row Poem)의 경우 불필요한 감정을 극대화시켜 나열한다. 물론 이런 시를 쓸 때가 있다. 조시(弔詩)나 축시(祝詩)의 경우인데 그런 시들도 감정을 절제할 때 더 큰 감정이입이 가능하다. 시를 쓰는 사람의 감정이 이런 상태이니 그 시를 읽는 사람들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강요는 심리적인 불편만을 줄 뿐이다.
마지막으로 함량 미달의 낯선 시어를 반복하는 시다. 필자가 평소에 'Minefield Poem'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그런 시를 경험한다는 것은 마치 지뢰밭을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여기에서 함량은 주체와 객체 상호 간 본질적 소통의 함량을 말하는 것으로 둘 간에 의미 공감이 없다 보니 독자들은 미궁에 빠질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이 만약 의도적이라면 그 시를 쓰는 사람의 저의를 살필 필요가 있다.
이상 위에서 수준 미달의 작품을 필터링하는 기준 여덟 가지를 기술하였지만 거꾸로 평가를 받아야 할 시를 선택하는 과정은 더욱 중요하며, 문학상이 주는 상징성을 감안하면 매우 신중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2차 평가와 상을 결정하는 최종 평가는 구분되어야 한다. 이는 상의 권위와도 연결이 되기 때문에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3. 좋은 시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
첫째 좋은 시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에서 가장 먼저 고려할 사항은 과연 그 시가 '자신의 이야기이며 자신의 시상인가?'에 대한 점검이다. 솔직한 자기 고백이 우선적인 판단 기준인 것이다. 시를 쓰는 사람의 진솔함은 이야기 구성에서 알 수 있다. 철저히 자신의 이야기어야 공감을 줄 수 있으며 설득력이 있다. 이는 'Story Poem'이라고 하는데 시창작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스토리를 이길 순 없다.
두 번째는 첫 줄과 첫 연의 진입과 종장의 깔끔한 종결이다. 첫 줄의 힘은 시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첫 문장은 다음 행 다음 연과 연결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하여 계속 시를 읽게 되는 마력이 숨어 있다. 또한 종장에서는 시 전반에 흐르는 감동을 더욱 극대화시키면서 시를 다 읽고 나서도 시적인 여운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시제와 시상의 자연스러운 접목이다. 물론 시는 예측을 불허해야 하는 것이 정론이다. 따라서 낯선 시상이나 난해한 시어를 동원한 난해시의 형태도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의도적인 비틀기는 시의 감상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심적 고통만을 줄 뿐이다. 이는 시의 치유적 성향을 망각한 이유다. 시는 그 시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대리 상상을 통한 체험이며, 작가의 체험을 자신과 동일시 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상징에 자유로운 시어 구사 능력이다. 상징은 은유(metaphor)라고 할 수 있으며, 숱한 의미를 중첩시키고 응축시키는 것을 말한다. 행동이나 개념 그리고 성향에 있어서 주체와 객체 간 성분의 차이가 50%를 기준으로 점점 줄어갈 때 더욱 완성도 높은 시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게 자유로운 시어 구사 능력은 간접적이며 암시적인 시어를 얼마나 구사하는 것에 달려 있다.
다섯 번째는 '간결하며 운율에 충실하는가?'이다. '시 쓰려거든 염소를 봐 / 수염도 쪼끔 / 꼬리도 딸랑 / 길게 늘어뜨리지 않지 / (하략)' 필자는 시 '염소'를 통해 시의 함축성에 관해 정확히 짚고 있다. 이처럼 시 창작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데 시를 쓰다 보면 간과하기 마련이다. 산문시가 성행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시는 '시절가조(時節歌調)’를 줄인 시조(時調)처럼 근본적으로 음악이다. 시를 짓고 난 후 소리내어 낭송할 때 무리가 없어야 한다.
여섯 번째는 감동과 여운을 주는 시여야 한다. 시는 정서적 교감과 그로 인한 감동의 문학이다. 아무리 시를 잘 쓴다고 해도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자신의 신세 한탄이나 개인적인 인생 철학으로 시를 짓는다면 굳이 시를 쓸 필요없이 일기나 회고문을 써야 하는 것이다.
일곱 번째는 '중첩된 이미지를 연상시키느냐'이다. 이런 시는 은밀한 복선에 능하다. 시 창작 능력에서 고급 단계에 속한다. 시는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며 또한 상황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중첩의 기법은 수상 여부에 관한 완성도 평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마지막으로 문장력이다. 백일장은 기본적으로 뛰어난 글짓기 능력 평가이다. 시가 아무리 짧다고 해도 문장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살면서 독서에 등한시 하거나 남의 시를 읽지 않는 사람이 갑자기 문장을 짓고 더 나아가 시를 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4. 맺음 말
만약 문학상을 마치 상금 사냥하듯 이곳저곳 공모전에 응모해 가면서 상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시를 쓰는 목적을 금전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불순하다. 결론적으로 시 창작은 비우는 작업이다. 여백의 진동을 느껴야 하며, 시를 쓰는 시람의 마음도 비워야 하고 또 시 자체도 덜어내고 비워낸 시가 좋은 시다. 그렇지 않으면 기술자에 불과할 뿐이다.
'몸을 비우려고 물만 마시는 날이 벌써 여남은째 / 비워야 채워지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 마음을 비우기까지 또 얼마나 천겁(千劫)을 기다려야 하는지 / 비우는 연습을 가선지게 하면서 / 오늘도 물 두어 잔에 담구어 색 바랜 나를 버린다' 필자의 시 '비우기'이다. 이 시는 시를 짓는 사람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하는 셈이다.
시 쓰려거든 염소를 봐
수염도 쪼끔
꼬리도 딸랑
길게 늘어뜨리지 않지
사랑하려거든 염소를 봐
슬픔 자르듯
울음도 뚝뚝
등뼈가 보이도록 삐쩍 마르지
염주알 같은 똥조차
눈물방울처럼
새까만 그리움
톡톡 굴리지
<염소/공석진>
나의 시는
고독을 잉태한 고아
요람은 적요
언어는 침묵
<나의 시는/공석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