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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rd. Mar(목)
Mr.육대식. 가쯔시마에서 VHF로 연락, 내일 휴일이니 놀러 나오란다. 神德丸 대리점을 통해 무사히 海圖 받았고 곧 출항한다고 타전해오다. 역시 대아에서도 재차 3개월 연기 그리고 일본 교대 확인전보 오다. 대세는 이미 기울어진가 보다. Owner측에 한 번 더 확인. 작년처럼 다소 얼마간이 항공요금이라도 지불할 것인가를 문의하고 대책을 강구할 일이다. 우선 Las 경유 일본행이 변경 없는가를 확인해두자. 3개월 정도 참고 일본까지 한 번 가보는 걸로 하자. 스스로 가보고 싶기도 하던 항로여정도 있으니 -.
이미 편지를 받았으리라 생각은 된다만 분명한 예정은 아직 접하지 못했으니 궁금도 하거니와 공연히 3월을 맞추다가 일의 차질을 빚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원망도 짜증도 날거고 -. 여름이 들기 전 망미동 가옥 건축건은 아무래도 가을로 미루어야 하지 않을까. 새로 짜야지. 6월 중순에 귀국한다고 보면 곧 바로 여름이다. 내게는 좋지 않은 기후다. 그러나 그런대로 단련이 됐으니 보낼만 하겠지. 작년처럼 곧 아내의 방학이 겹쳐 함께 있는 시간도 많아질 것이고, 모처럼 가족을 데리고 냇가에 텐트를 치고 2-3일 캠핑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삼년 동안 맛도 못 본 풍성한 여름 과일도 구미를 돋우어 줄거다. 한동안 쌓였던 열기들을 식히기엔 너무나 덥고 개방되기 쉬운 계절이지만 땀이 끈적거리는 체액을 시원히 씻어줄 샤워장이 있지 않는가. 어쩌면 짙은 녹음 속을 찾아서 며칠간 푸근한 여행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작년 경주갔던 재미로 얘들이 졸라도 거뜬히 ‘좋다’하고 둘러메고 나설 수도 있다. 그간 틈틈이 설계도도 그리고 운전도 배우고 공부도 해야 한다. 다소 체력소모가 염려스럽지만 무리를 하지 않으면 지장을 없을 것이다. 뜨거운 지열이 한풀 꺾일 때는 가역(家役)을 시작해봄직도 하다. 경우에 따라선 한 번 더 나오게 될는지 모르지만 우선은 굳이 계획 속에 넣지 않기로 하자. 아무튼 체력도 돈도 소비가 심할 것만은 분명한 계절이다. 오직 내 자신의 의지와 행동만이 요구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새로운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는 무엇인가 분명한 향상을 잡을 수 있고 보다 더 안정된 속에서 맞을 수 있도록 갖추어야 한다. 아무래도 여름철이 무성하고 진력을 다한, 그래서 어느 정도는 지저분해도 한더위 보담은 막 시작하는 생기에 찬 익는 봄철, 군더더기가 없이 나오는 새싹들과 잎 속에 묻히지 않은 꽃들의 싱그러움을 볼 수 있는 初夏를 내 집에서 보고 맞을 수 없는 것이 서운한 일이기도 하다. 꼭 금년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의외로 잔뜩 부풀었던 기다림이 늦어져 버린탓이리라. 뼈골이 빠지도록 애써 산 집인데. 내가 내 마음을 다 못 푸듯이 집 또한 내게 그 가치를 다 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도 정상은 아니다. 빨간 줄장미가 피어있는 앞에서 세 놈이 제게 맞는 물그릇을 들고 웃고 있는 사진이 한층 마음을 그곳으로 달리게 한다. 저속에 나도 입을 한끗 벌리고 으하하 하고 웃으면서 목에다 수건을 두른 체 서 있는 환상이 자꾸만 눈앞에 어린다. 어서 가자. 그것뿐이다.
24th Mar. (금)
Blue Nagoya에 사람 보내다. 부족한 담배, 그리고 식료품이 있을 거라고-. 직접 가야 하는 게 도리고 성과도 좋을 텐데. 오전중 어제 육대식씨와의 약속도 있었다. 의외로 많은 협조를 해준다. 沈仁燮선장. VHF에서 듣던 음성과는 달리 자세하고 좋은 분이라고 한다. 직접 내가 가지 못한 것이 더욱 송구스럽지만 우선 전화로나마 인사를 나누었다. 이국의 하늘아래 그래도 내 민족이 함께 살고 있다는 뜨거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8월 Peace Rose의 한진우(해군 대령출신) 선장의 그 어려움과 주위의 협조들이 결국 오늘의 보답으로 나타났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 살벌한 곳에서 어느 누구라고 이 어려움을 겪고 당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오후 늦게 상륙. 우연히 전 FAO 김계오 소장님을 만나 그 집에 가다. 정말 뜻밖이다. 유엔의 FAO 직원으로 수산관계일로 Lagos주재중이며 6개월이 됐단다. 그나마 자주 가는 Federal Place호텔부근이다. Canpex의 Mr.육과 강에게 Kortra 나 소개시켜 줄까해서 그 호텔에 갔다가 만난 것이다. 부인과 그의 26살 난 큰 아들과 셋이서 이곳 정부에서 제공하는 집에서 지낸다. 그는 약 16-7년 전 형님이 처음 수산진흥원에 재직시 어로과장을 하고 있을 때 처음 인사드린 적이 있으며, 제2대 FAO 소장으로 취임, 우리가 수료당시 재직하셨던 분이다. 그 후 모종의 사실로 그만둔 후 전연 소식을 잊고 있었다. 실력은 차지하고 우선 그 용모나 언행 등에 있어서는 존경은커녕 볼 모양도 없는 사람이다. 역시 성격도 그런 모양. 한국사회에 적응하고 사업을 경영해 나가는 데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은 듯도 해 보인다. 벌써 해외를 4년이랬다. 가는 곳마다 1년씩 3-4개국을 거쳤다. 어느 곳이 지상의 낙원이며 외국생활이 무척 대견스러워 하는 그의 부인에 대해 그의 토로하는 듯한 자신의 과거 또한 극히 내성적인 그를 닮은 아들, 군을 마치고 여기 온지 4개월, 갈 곳도 할 일도, 정붙일 곳을 찾지 못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요즘이란 얘기들이 무엇인가 보헤미안 처럼 밝지 못해 내 스스로도 울적해지는 듯 하다. 가장 안정된 삶을 누려야 할 세대의 그가 정착하지 못한 체 인종과 언어가 생판인 여러 나라를 1년씩 방황해야 하는 것도 정녕 왜곡된 것이다. 육과 강은 그의 후배(수산대) 그리고 나는 그의 제자격이다. 더욱이 형님을 그의 내외분이 너무나 잘 하는 처지다.
우선 만난 그 자체는 서로 반갑고 더욱이 앞으로 여기 주재하게 될는지 모르는 두 사람에게는 다시없는 협력자요 이웃이 될 것이다. ‘성실하게 번 돈은 성실한 곳에, 그리고 불성실하게 번 돈은 역시 그런 곳에 투자하라’는 그의 이론이 짐작은 간다만 과연 그의 언행이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정직과 성실만으로서는 사업이 영위되질 않는다만 그 일면도 얼마만큼은 이해가 되는 반면 어찌 생각하면 그만큼 무능하다는 결론도 된다. UN의 한 직원으로서 그곳 정부의 협조하에 일하고 생활하는 사람들로서 그 사회의 정수를 납득하긴 어려운 일. 그럴수록 우리의 사회가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음을 대부분 느끼고 있다.
Las의 각 회사 주재원들이 쉬이 뜨지 않으려는 그 저변도 먼 장래를 볼 땐 분명히 옳은 길은 아니다. 육대식과 강의 고민이 바로 그 점에서 합의점을 찾고 있는 듯하다. 밤11시 Phoenesia Bar에서 한 잔 나누다. 아버지를 닮아 너무 내성적이라 보기 딱할 지경이니 데리고 가서 좀 Wild하게 가르쳐 달라고 그의 부인이 귀띰하며 맡겨 주던 그 아들과 넷이서 마셨고 징그럽다고 육 선장도, 꽁하던 김 군도 용케 검은 아가씨와 고고판에 어울린다.
“그것보라고, 좀 더 있으면 저 검은 색이 차츰 옅어 보이고 그 냄새가 구수해진다구.” 마빡을 치며 웃는 강 선장, 그도 Las에서는 여자에 도통한 자라드군. 별로 취하지도 않았는데도 입이 너무 가벼워 진다. 다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너무나 말을 잊고 살아서 그런가? 횡설수설, 그것만큼 사람을 실없이 만드는 것도 없는데-. 결국 술이다. 그놈이 자율신경을 그토록 마비시켜버리는 탓이리라.
25th. Mar(토)
동서남북을 헤아릴 수 없는 Apapa시의 한쪽, 아직 주위가 정리되지 않은 채 지어진 2층 아파트의 한 세대분. 그저 침대뿐인 술렁한 느낌이다. 2개의 방중에 한 개는 Mr. Junior Ashok가 쓰고 한 개는 육과 강 두 사람이 쓴단다. 뜨끈한 차 한잔으로 아침을 떼운다. “진짜 이러기요? 밥 굶어 가며 뭐 할거요?” 정작 인도놈들 한테 속앗다는 기분이 앞선단다. 자기네들이 할 일도 정작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보내고 또 온 사람들 같기도 하다. 간밤의 술이 속만 쓰리게 한다.
Agent들러 Gas 수배, 그리고 Sierra Aranzazu호에서 Empty Box와 pallet 12개 전재하란 Order받고 귀선하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덥고 볕도 따갑다. 온 얼굴이 익고 푹 삶겼다. 어제가 휴일, 모래 월요일이 다시 휴일이란다. 아마도 4월1일이 돼야 입항 될까 말까다. 날짜를 받으면 쉬이 가려나 했더니 오히려 더 지겹다.
Las경유 일본행 변경 없다는 Owner의 확인받다. ‘Sierra Aranzazu’에 접선 예정된 화물 전재마치다. 모처럼 갑판부가 시원스럽게 땀 한번 흘렸다. 데려온 김 군이 오랜만에 같은 말이 통하는 젊은 또래들과 접하고 보니 마음부터 신나는 모양이다. “그래 밑에서 2-3일 놀다 가거라.” 부모덕을 너무 잘 타고 나도 고민이고 우리 같이 너무 못타고 나도 고생이다. 先代에서 맨주먹으로 구축해 놓은 그 ‘財閥’을 능력이 있건 없건 2세들에게 맡겨야 하는 우리나라의 기업풍토에서 그 2세들이 짊어져야 하고 받아야 하는 무거운 짐은 차라리 형벌이다. 과연 30대의 젊은 회장들이 자신의 땀이 섞이지 않은 부를 어떻게 생각하고 또 그것을 지켜나가고 더욱 부풀려 나가 겪어야할 수많은 일들을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나마 자기의 뜻이 조금이라도 담겨져 있지 않다면 -. 과연 그 삶이 자기가 원하고 바라는 바는 아닐 것이다. 환경이, 타의가 그렇게 강요하고 만들어져 버린 체 그냥 쫒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삼성의 후계자 총수 지명(?)이나 호남전기의 20대 회장의 10억 증발사건, 또한 한때 시끄러웠던 박동명인가 하는 작자들의 행각은 분명히 그 처음부터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아무래도 부모 잘 만난 덕분이라고 부러워하고 나도 저런 부모가 - 하며 쳐다보기만 하는 것이 또한 솔직한 우리의 심정이다.
반면 쥐뿔도 받지 못한 체 자기의 생을 자기가 꾸려가기에 등골이 빠지는, 그래서 부모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다. 그 어느 쪽도 옳지는 않다. 능력을 키워주고 자기의 뜻을 펴주는 부모가 되고 자식이면 된다. 어느 한쪽도 강요해서 될 일은 아니다. 숱한 재수생의 탈선행위 뒤에는 지나친 부모들의 욕심이 도사리고 있고 자신들을 닮아 세상에 태어난 자식들의 천성을 무작정 맞춰보려고 하는 것도 억지다. 개개인의 가치기준을 어디에서 두느냐에 따라 각각 다른 삶이 되겠지만 누구든 자기의 이상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그것을 행할 수 있는 건강한 신체와 판단하는 지혜와 용기를 넣어주고 북돋아 주는 것이 곧 부모의 도리이다. 전혀 자신의 의사와는 별개의 오늘을 사는 김 군, 그래서 자신도 열심히 오늘에 적응하려고 애써보지만 더욱 거리감을 느낄 뿐이라는 그의 얘기가 누구의 탓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26th. Mar(일)
Blue Nagoya, 전번의 후의에 대한 인사차 갈려다 그만두다. 야릇한 피로감, 자꾸만 땡기고 따가운 얼굴과 콧잔등, 한결 주름살도 늘어난 느낌이다. 주어진 시간을 주체 못하는 연속된 요즘인 것이다. 종일 시원한 바람만이 통하는 길목에 죽치고 앉아 시끌한 유행가, 묽은 주간 잡지만 뒤적여도 어느 틈엔가 시간은 저만큼 갔고 없는 놈 제사 닥치듯 밥 때는 닥친다. 꼬박 꼬박 정한 시간에 하루 3끼 삶아내는 주방 친구들이 욕을 본다. 한때는 Radio를 베게삼고 유행가 Pro만 들은 적도 있었다. 대구시내에서 상영 중인 쇼프로도 부지런히 찾아다닌 적도 있었다. 아득한 옛날일 같기도 한다만 -. 그런 노래들이 차츰 싫어진다. 그 노래들 자체가 싫어지는 게 아닐 것이다. 언제부턴가 잡지에, 신문에 실리기 시작한 소위 연예인들의 무질서하고 아더메치한 생활상들을 느끼고 부터는 모든 예술이란 허울 쓴 ‘모순’ ‘허위’ 쌍말로 ‘개똥차반’이고 구역질을 연상하게 한다. 멋있다고 은근히 기대했던 남자 배우가 깜찍하고 귀엽던 여가수와 모종의 스캔들로 그의 속 삶을 들여야 보았을 때 가져지던 그 배신감 같은 것. 개인의 생활이 건전하고 화목한 연예인들의 것이 얼마나 진실성이 있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연애인이라서 대마초를 피워야 하고 잡혼을 멋대로 하고, 뜻이 맞다고 해서 당장 동거를 하며 -. 그 속에서 나오는 것은 한갖 기교요 속임수가 아닌가. 그래서 그런지 더욱 흘러간 노래가 구수하고 흥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눈물젖은 두만강’과 ‘나그네 설음’에서 느껴지는 애환,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찾을 수 있는 간절한 소망 등은 그 시대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당시 그네들의 깊숙한 생활내면을 알지 못하고 있는 탓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건 인간 그 자체를 숨기고 있을 때가 가장 기만스럽다. 술꾼한테는 천사보다 더 상냥하던 술집 아가씨들의 그 숭악한 욕지꺼리, 없는 놈이 더 생색을 내고, 모르는 자슥이 더 아는 체 하는 그 열띤 성의는 곧 위장술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이 각박해져 갈수록 자극이 그만큼 강해져야 어필한다는 사실도 하나의 시대적 흐름 탓이리라.
27th. Mar(월)
블루 나고야에 가다. 일부러 인사도 면도 없는데 술 한병, 담배까지 보낸 심인섭 선장을 하루라도 빨리 찾아보는 것이 예의다. 50이 가까운 사람 좋은 분이다. 마치 어릴 때 고향 시장 씨름판에서 명성을 떨치던 자인면 육고간 아들 ‘고별식’이를 닮은 분이고 기관장도 호감이 간다. 역시 웃 사람들이 좋으면 자연히 그 배의 전체 분위기가 원만해 지는 것을 또 보는 기분이다. 무엇보다 그 점을 염려해주고 다행이라고 위로까지 해주는 심 선장이 경험 많은 선배같이 느껴진다. 마침 손병욱이가 그 배 3/O로 있다. 그 역시 반갑고 놀라운가 보다. 출국전 12월인가 시내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고 승선 때문에 염려를 하더니 다행스런 일이다. 아직 그도 면허장을 바꾸지 못해 큰 걱정(?)인 듯 그 이야기 뿐이다. 그는 형님이 있던 남광학원에서 안 친구다. 고향이 경남 밀양이라는 것 이외는 아는 것이 없는 그다. 사회에서 하다못해 마구로선 그리고 용길이형 밑에서도 승선한 적이 있단다. 약한 체질에 듬직하지 못한 성격에 베겨나기가 힘든 일이었던 모양이다. 겨우 수산에서 해운계로 바꿔 탓으나 어디든지 길이 쉽게 열리고 있지 않음은 당연한 일. 우선은 자기성실과 경력을 위해 참고 열심히 일하면서 실력을 길러야 하는 수 뿐임을 이야기했다. 함께 입항하면 좀 더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또 한사람 안면이 있는 사람이 있다. 기관부다. 어디선가 많이 보고 인사를 나눈 듯 한데-. 이놈의 돌대가리. 2/E 홍두표다. 작년에 TungHo에서 함께 했었다. 반갑다.
이제 어느 배에 가도 한 두 사람 안면이 있고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만큼 뱃 생활의 경륜이 쌓였다는 증거가 되는가 보다. 이곳 Lagos에서 만난 사람들만 해도 그렇다. Minostar 기관장 김중오. Byron 김 선장. 동방의 정남기 기관장, 홍두표, 손병욱, Sun Flower의 김기태씨와 1기사. Kano/R의 C/O, KOHO MARU의 김수만 갑판장 등등이다. 어쩌면 그처럼 우리의 해운계가 아직은 너무 좁다는 이유도 된다. 그러나 제마다 진전이 있었으나 아직도 여전히 배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내 자신의 일이 되어 되돌아오게 한다. 사람이 자기의 현실에 만족이 없듯이 여기서도 그렇다. 년간 항해가 25%밖에 안 되는 우리에 비해 그들은 너무 정박이 없다. 입항해서 이틀 밤을 자기가 힘들다는 형편이다. 그것이 육상 기업인들의 기발한 착상에 의한 것이다. ‘정박시간을 줄이는 것이 버는 길이다.’ 그래서 온갖 전용선이 등장했고 다목적선이 판일 치게 됐다. 거기엔 인간의 기본적인 모든 욕망과 조건은 처음부터 제외된 것이다. 그래서 이젠 뱃놈들도 배와 항로를 알고 택하는 요령을 터득하게 됐다. ‘좀 바꾸었으면 좋겠다.’하던 심 선장의 말과 그의 얼굴에 깊게 패인 굵직한 주름의 골에서 그 고충을 짐작 할만도하다. 바쁘면 바쁜대로 시간을 쪼개고 나눠서 술 먹고 오입하고 살 것 사고 그나마 교대로-.
급하면 y샤스는 입고 넥타이와 윗도리는 손에 들고 뛰어 나가든 그 젊은 친구들의 활달한 움직임이 있었던 방콕항로의 지난날 그 젊음이 이제는 시들었단 말인가? 올 때 봉지에 넣어주던 담배 그리고 잡지 몇 권, 손 군의 성의가 고맙다. MDO가 좀 더 있어야 겠다는 타전을 하다. 뭣인가 한 가지도 풍성하게 마련해 두지 못하는 것이 불안한 기분을 갖게 하는 원인이 된다. 베라묵을 새끼들!
28th. Mar (화)
이것도 무슨 인연인가? 보통날은 그래도 구름이 좀 끼고 햇살도 얼마간 꺾이는 듯 하더니 내가 나가야 하는 날은 꼭 기승을 부린다. Agent, Trans-con들렀다. Mr.Kishinani가 발을 다쳐 기브스를 했군. 가쯔시마마루 다음 입항을 한 번 더 확인했으나 그래도 막상 Pilot가 타야지 안심할 수 있다. 4월 1-2일은 돼야겠다.
오늘 가져오기로 약속한 조리용 가스도 역시 불발. 아예 입항하면 가져오도록 수배하다. 김 군 귀가. 내심 더 놀다 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 보이나 마냥 둘 수는 없다. 2/O 병원에 보내다. 신경통이란다. 별일이 다 생긴다. 오나가나 아는 척 하는 검둥이마다 ‘술 한병 아니면 담배...’다. ‘오냐 오냐’ 당장 내먹을 것도 없는데 너 줄게 있냐마는. 가쯔시마 若生 선장과 오랜 잡담을 나누다. 그래도 격의 없이 서로를 이해하는 게 고맙다.
펀지 찾다. 의외다. 1월 달 것이 어디 잘못되었나 이제 도착했다. 봉투도 헐었다. 아마 Lansal에서 Assaf로 바뀌고 난후 첫 번째로 보낸 것인가 본데-. 두툼한 게 묵직한 만큼의 마음도 든든하다. 근 20여일에 걸쳐 써 모은 20여장이 마치 그간의 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후에 먼저 받은 편지 속에서 뭣인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쉽게 풀렸다. 철지난 것이긴 해도 반갑고 흐뭇하다. 정초에 있었던 경산의 얘기는 눈에 선한다. 내가 있었으면 좀 더 시끄러웠을 거고 흥분들은 했을테지만 보다 깊이 시원스레 터놓을 수는 있었을 거다.
‘뭘 해 줬다고 큰소리냐’고도 대들었을 게고, 그래도 연만하시고 보니 뭔가 좀 더 잘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하기도 했을런지도 모른다. 할마씨에 대한 그간의 불평도 따끔하게 터뜨려 곪은 종기를 수술하고 새살이 돋듯 했을 것이다. 아니 한 번은 그러고도 싶은 일이다. 내 아버지란 것만 빼면 위신과 권위 그리고 심술만 남았을 영감님 아닌가. 그 숱한 자식들한테 말 한마디, 자질구레한 정하나 주지도 않았다. 며느리가 남이라고 했다니 그것도 망발이다. “애비에게 관심있나?” 고 묻기 전에 자식들에게 얼마만큼 관심을 가졌었느냐고 물음을 당했어야 순서가 맞다. 그 앞에서 당당히 입장을 밝히고 사리를 분명히 한 아내가 대견스럽고 고맙기도 하다. 많이도 참았고 하고 싶은 얘기는 실상 절반도 못했으리라. 이왕 터진 김에 시원시원히 쏟아놔 버리지 않고- . ‘내가 애빈데’ 하는 쉬어빠진 자존심만 갖고 군림하셨던 지금까지의 생각이 일단 제동이 걸렸다고 해도 결코 고쳐지거나 바꿔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뭣인가 조금은 달라져야 할거다. 싫건 좋건 밉든 곱든 날 낳고 기른 부모인 이상 그 천륜은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다. 한편 생각하면 얼마남지 않으신 여생인데 자식된 도리로서 좀 더 효도를 하고 싶기도 하고 그게 마땅한 도리다. 그것을 알면서도 언뜻 마음같이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고 영감님 문자처름 ‘정신’ 문제일지도 모르나 좌우지간 사시기는 오래 사셔야지.
‘새로운 가족계획’을 스크랩 해 보냈다. 역시 아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가보다. 어쩌면 가면서부터 꽤나 신경을 쓰이게 할 것 같기도 하다. 가는 즉시 얼마동안은 아마도 내 스스로부터가 정신없이 그 속에 빠져들텐데-. 언제 날짜 찾고 뭣 찾고 하겠나. 그렇다고 처음부터 장화(?)를 신거나 피임을 의식적으로 한다는 것도 지나친 일이다. 1년을 죽자고 참고 온 터에-. 또한 이것도 저것도 생각 말고 마음끝 뛰는 사이에 성사가 되지 않는다고 장담은 못할 일이다. 그 놈의 아들이 생기기도 전에 골치를 썩이는군. 어쩐다? 이왕 그러면 갈 날 맞춰 뭐 산성음식이랬던가 그걸 골라 잔뜩 먹고 그에게도 또 그기에 맞춰 먹으라고 미리 얘기해 둘까보다. 또 그리한다고 해도 날짜 짚어가며 ‘오늘은 안돼요’ 하면 그것도 고얀 일이 아닌가. 안 그래도 요즘 곧 가게 되고 가서는 어떻게 할까 생각만 해도 그놈의 작숭이가 먼저 고개를 쳐드는 판이다. 그 어떤 놈의 의사가 그런 걸 신문에다 써 가지고 골치를 썩인담. 그놈들의 아들딸 현황은 써놓지 않았으니 알 수야 없다만 궁금한 일이다. 내 체질 자체가 산성을 싫어하는 것도 원인이라면 원인일수도 있을까? 그런 것 하고는 전연 관계가 없는지도 모르지만 위산과다라든지 해서 산성의 습취가 많으면 목구멍이서 쓴 물이 올라오니 자연 싫어질 수밖에 없다.
콧등이 따끔거리더니 기이어 또 한 번 껍질이 벗겨진다. 그저 익어버린 모양이다. 이제 입항할 할 때까지는 나가야 할 일어 없어야 할텐데. 고역이다.
29th. Mar.(수)
마누라와 내가 서로 성격이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많다. 활동적이고 외부지향적인 그에 비해서 내 자신은 너무 내부지향적이 아닌가도 싶다. 물론 거기에 선천적이기 보다 후천적인 변화가 작용했기 때문도 있다. 국민학교 시절부터 중, 고까지 계속 남녀공학을 하므로 처음부터 어물쩍하든 것이 더욱 중성화 돼버렸고, 그나마 사회에서 가장 어두운 교직에서 것 늙듯이 하다가 그대로 사회와는 격리된 해상으로 나왔으니 더욱 현실과는 멀어져만 온 터다. 반면에 아내는 그렇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용감해졌다. 그 새침하던 사람이 -. 그 말처럼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그것이 곧 지금처럼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집을 비우는 횟수가 늘어 갈수록 집과 얘들 그리고 마누라에 대한 애착이나 그리움, 또한 가정이라는 그 자체에 대한 동경이 짙어간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내 스스로를 안정하게 지킬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곧 주위에서 보면 의욕도 용기도 없어 보이는 것 같은가 보다. 잠시도 주체하지 못해 입항하면 극장이다 술집이다 하면 돌아다니던 2-3년 전 보다 작년 한 해가 훨씬 쉽게 자신을 컨트럴 할 수 있었고 조용히 책을 읽게 한 것이다. 한 해 동안 용케 잘 참아온 그놈의 공부도 실상은 주위의 환경탓이라기보다 내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지켜나온 것이다. 人之常情이랄까 도리라고 해야 마땅하다만 내가 뿌리를 가진 내 집이 안정을 가지면 세상 어디가든 내 자신을 지키고 안정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역시 출국당시 ‘이 1년은 쉬이 갈거다.’ 하던 그 생각이 곧 이런 것이 아닐까 느껴진다. 이 자신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고,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정착하고 싶은 욕망이 물질적 욕망을 이겨낼 때는 거뜬히 지게라도 질망정 땅을 뜨지 않게 할런지도 모른다. 며칠씩 밤에 잠을 설치고 있을 당신의 모습이 선하다. 잠을 못 이루는 밤이 가겨오는 심적 고충과 변화는 다양하다. 원래부터 밉쌀스럽게 잠에 떨어지는 성격이 아니었으니 더욱 환경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찌 보면 그 자체를 너무도 혼자 있다는 사실과 내가 곁에 없다는 그 자체와 밀착시키고 있는 듯도 하다. 어차피 1년이란 기간은 서로의 마음을 둔 체 함께 있지 못함을 사실로 받아드린다면 그걸로서 현실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거기 집착할수록 더욱 불면의 중세는 가속화할 뿐이다. 또 팽팽한, 막히는 숨통을 꼭히 외부에서 틔우는 길을 찾으려고 하는데도 내심 문제가 있다. 자신 속에서 아니면 집안에서 찾을 수도 있고 그것이 실상 효과적이고 참된 것일 것이다.
이것이 예가 된다고 해서 마누라가 알면 반론을 펴오겠지만 그는 금년 몇번 그랬다고 얘길해 왔다. 혼자서 여행을 했고 집에 와서 먹은 것을 토해 낼만큼 긴장을 하면서까지 행해 보려고 했다면 그것이 비록 한 과정이라 할 망정 그 비중은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다. 한 단계를 넘어선, 그래서 그 다음까지 올라갈 동안 현 단계에서는 또 다른 것을 해 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벌써 30대 중반이다. 가장 가정에 집착해야 할 시기다. 그런데도 그 팽팽함을 안에서 찾고 스스로 방향을 잡고 길을 뚫지 않는데 불안의 요소를 찾는다. 아마 내년 다시 나온다고 한다면 지난 한해보다 더욱 차원 높은 공박(?)을 해올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그만큼 우리들의 삶 자체가 성숙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얼마만큼 잘 소화시키고 배설해낼 수 있는냐 하는 것이다. 매사에 너무나 자신을 갖는 그. 그러면서도 한 발짝씩 자신에게 져가고 있는 그를 깨우쳐 줘야한다. 헤어져 있을 때마다 많은 사연을 담아 주고받는 이 편지들이 어떤 시기에 가서는 잘 정리하면 좋은 우리들의 역사가 될 것이다. 좀 더 솜씨 좋은 사람 같으면 멋진 작품 몇 개쯤은 거뜬히 엮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宝幸(호오코)수산의 Las 주재원인 富田(도미타)씨의 의뢰로 商船三井 Las주재원 鶴崎(쯔루사키)씨가 본선 동정 및 요목을 물어왔다. 무슨 용선관계인지 매선 관계인지는 모르나 대답을 해주기는 게름직한 예감이 든다.
30th. Mar(목) 1978
Canpex에서 용선료를 송금하지 않으니 입항전 Owner의 지시에 따르라는 전보가 날아들었다. 내일 12시까지는 연락이 있겠단다. 역시 짐작은 했으나 막상 입항직전에 이럴게 뭐냐. 저네들 싸움에 그저 죽어나는 것은 우리 선원들 뿐이다. 식량, 식수, 가스 등 부족한 것은 뭘로 해결해야 하나. 그렇다고 우리만 그네들의 제물이 되고 희생될순 없다. 내일의 결과가 주목된다. 오늘 13:00시 현재로는 가쯔시마가 내일 오후쯤 마칠거고 그 뒤 접안하게 되어 있으니 늦어도 4월1일까지는 될거다. 구서증서도 가스 공병 4개도 육상에 가 있고 청수도 50톤뿐이니 알아서 하라고 답신을 띄우지만 씁슬하다. 어쩌면 더욱 문제가 심각하게 진행될런지도 모른다. 光洋丸(코요마루)가 전번 그랬듯이 -. 그렇게 되면 또다시 얼마를 더 지체해야 할런지는 미지수다. 장장 70여일을 기다려 왔는데 -. 정작 배를 타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Mr.육의 내용과 Mr. Assaf의 얘기도 다르다. 어느 놈이 진짜고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Mr. Assaf의 어감에서 시원찮은 낌새도 있다. 아마 가쯔시마마루 다음에 우리 차례라는 것이 잘 안 되는가 보군.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이놈의 실정! 光洋丸 전보 중계해주다 역시 F.O가 부족, 제대로 운행이 안 되는 모양이다. 월간중앙 1월호의 ‘과외수업’과 선거를 앞둔 Report가 많은 느낌을 준다. 자유경제체제하에서 자녀들의 교육을 능력에 맞게 과외를 시키든가 소질의 개발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은 인증해야 하지만 이건 분명히 병적이고 무언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정말 교육의 참뜻이나 애들의 장래를 위해서 염려스러운 일이다. 자녀를 가진 부모들 자체가 깊은 반성을 해야 하고 일부 고약한 교육관을 가진 교육자들의 맹성이 절실히 요구되기 전에 특히 쪼금 있는 집 부모들이 뭘 좀 알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한 두 사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그들 때문에 사회전체가 붙들고 중병을 앓게 되며 그러한 사회적 풍조를 한 번 형성해 놓으면 치유하기에 몇십 배의 노력과 시일이 걸리게 된다. 근본적인 원인은 금전만능사상과 과욕이다. 재수생의 문제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대부분의 원인이 배후 부모들의 욕심 때문임도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환경과 여건이 변해가는 이상 편승하거나 적응하지 않을 수 없으니 애들의 교육마져도 부모들이나 애들 자신의 뜻대로 하기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불과 몇 년 앞인데 과연 어떤 방향으로 다시 흘러갈 것인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부모에 대한 효의 척도도 돈으로 계산된다는 아내의 말이 곧 현실로 받아드려지며 제자에 대한 사랑과 지도이념도 그처럼 변해가는군.
선거가 벌써 닥쳐온 느낌. 72년 처음 수출선 출국 때 하곤 다시 맞는가 보다. 새삼 내 자신의 나이를 느끼게 한다. 인생의 중반. 대부분의 사회중견을 이루고 있는 세대라고 볼 수 있다. 해외에 두뇌활동을 하는 과학자들도 의외로 40세 전인 사람이 많은데 놀라듯이 의정활동에 참가하려는 젊은 층이 두드러지는 데는 내 스스로가 너무 발전이 없는 듯해 서글퍼지기도 한다. 제각기 인생의 방향이란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하고 밀고 나가는 사람에겐 열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크건 작건 자신의 소신에 맞게 뜻을 펴나가는 것. 그것이 정치이던 돈을 버는 일이던 학문을 하는 것이던 현시점 자체에는 만족을 느끼지 않은 망정 그 과정은 보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명사들이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써온 발자취들에게서 더욱 그러한 것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게 뭔가? 오직 돈을 벌기 위한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 뛰어 들긴 했어도 크게 벌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이 방면의 베테랑도 전문가도 되지 못한 체 엉거주춤 밀려가도 있을 뿐이다. 이미 지나온 시간보다도 남은 내일이 더욱 소중하고 어렵고 값있다고 할지언정 그간의 사정이 너무도 사회와 동떨어져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손실이다. 새로 시작해야 하는 이중구조적인 생활이다. 그러면서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알면서도 쉬이 박차고 나가지고 못하고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안일무사를 위한 소극적이고 약한 마음의 탓인가. 70여일간 창살없는 감옥생활 속에서 가진 놈들의 온갖 횡포와 조롱을 겪고 있어야 하는 지금이 뭔가 말이다.
우선 ‘오늘’에서부터 헤어나고 봐야 한다. 어서 입항을 해야 하고 어서 떠나 뜻하는 곳으로 쿵쿵하고 심장의 고동을 울리며 달려가야 한다. 그래서 씨팔놈의 Mr.Tikam도 만나고 왜놈 Owner도 만나서 줄 것 주고 따질 것은 따지고 수 틀리면 욕이라도 해주고 또 대아에도 엄살을 좀 부리고 술도 사게 하고 그리곤 또 무슨 수가 없는가도 찾아도 보아야 하는데 -. 세월을 사는 게 아니고 그냥 썩는다. 오뉴월 똥물 퍼부어 놓은 거름덤이 썩어 나듯이-.
저녁 황혼과 더불어 시원히 답답한 마음을 풀어라도 주듯이 줄기차게 내리는 소나기 속에 Port Harcourt에 갔던 Kano Reefer가 왔다. “왜 왔오?” “아직도 못 풀고 기다리다 여기서 푼다고 가라해서 안왔능교” 그기도 알만하군. 그놈의 물고기와 소고기가 금덩이 값이 돼가는가 보다만 어느 놈이 죽던지 녹아나는 놈들이 있겠지. 썩는 우리들처럼.
31st. Mar. (금)
3월도 마지막 날을 보낸다. 지난 한 달이 그냥 아득하기만 하다. 오히려 1년 전의 3월이 더욱 선명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용선료 해결됐으니 어서 입항하여 양하하고 차항을 위해 매일 현황을 보고하란다. Canpex에서는 가쯔시마와 Frio Dolpin에 보유 수배했으니 알아보란다. 한결 쉽게 해결되었으니 한시름 놓긴 했다만 역시 입항 순서에 변경이 생겼단다. “어이 Toni 너도 못 믿겠군.” “지미카터 미대통령 방문으로 Tincan부두를 쓸 일이 생겨 부득이 계획이 변경됐으나 늦어도 4-5일안으로는 가능하다”고 코먹은 소리다. 재수 옴은 계속 붙어 다니느만. 빌어묵을 대통령이 오는데 내가 영향을 받다니. 내가 그리 겁나기도 하는가? 접안중인 미국적선 Delta Line의 한 선박을 카터가 방문한다고 어제부터 통제가 심하다고 Mr.육한테 듣긴했다만.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더니 세상에 믿을 놈이 없군. 4-5일 이랬지만 또 얼마가 더 걸릴는지. 우선 식수부터 통제하라고 지시.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 이제부터는 나와 너가 아닌 ‘나와 나’의 싸움이다. 코요마루 Lome로 출항. 어제 중계해준 전보가 잘 된 모양. 그저 오가는 배들이, 꿈틀 꿈틀 움직이는 배들이 부러울뿐이다. 가쯔시마마루도 전보 중계를 해준다. 보유에 대한 Las의 연락이 있을까 했으나 헛사. 길이 있겠지. 며칠간 못 참으랴. 입항일정 변경을 본사에 타전하다. 미치고 환장할 거구만, 그놈들도. 혹시 선장이 멍청하다고 할지 모르겠군. 그러나 천만이다. 지금 그들도 당하고 있잖나. 나야 사실대로 알려줄 뿐이다.
아내에게 답신 쓰다. 언제 띄우고 언제 받을지는 몰라도 그저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탈출구를 밖에서 찾으려는 그 변화를 얘기하고 싶고 내가 바라고 당신이 원하는 당신 본연의 위치를 찾아주고 싶다고-. 또한 세월이 갈수록 당신을 향한 사랑이 깊고 짙어간다. 그래서 더욱 당신에게 염려가 커져감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고. 어서 가서 으스러지도록 껴안고 싶다. 무슨 얘기가 필요할 것인가. 서로 얼굴이, 몸이 마음이 마주하고 함께 있는데-. 그러나 서로의 입장은 이해를 해야 한다. 오늘날의 사회가 혼란해져 가는 것도 급속히 발전을 거듭해 가는 물질문명과 그처럼 빠른 속도로 따라가지 못하는 전통적인 윤리와의 Gap 때문이라고 정의하더라만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성격적인 Gap에서부터 주위의 여건에 의해서 매년 벌어져 오기만 하는 그 사이를 우선 이해함으로서 차츰 메꾸어 나가고 없애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그 갭이 결국 그가 원망, 실망을 가져오게 했다. 그를 조금 내려오게 하고 내 자신이 애써 동화할 수 있도록 발돋움하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분수보다 조금 높은 적정선에 합치되면 뭣인가 하나의 결실을 가져올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를 안지 15년. 벌써 그렇게 됐나? 9년을 빼면 6년간을 예비기간으로 연애를 한 셈이다. 짧은 시간이 아닌데도 그때의 정경들이 떠오를 때마다 짜릿함을 느낀다. 이 짜릿함과 정경들은 영영 지워지거나 잊혀지질 않을 것이다.
1st. Apr.(토)
4월이다. 이처럼 썩고 있는 동안에도 세월은 어김없이 찾아와 짖이겨 놓고는 가버린다. 德丸에서의 전보 두건. 어제 타전한 입항예정 변경을 못 본 모양이다. 어쩌면 그놈들도 똥줄이 타긴 타는가 보다. Las 간다고 해놓고 Cape는 또 뭐냐?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사람 죽이느만. 그저 쌍시읏에 쌍지읏 발음이 섞인 욕밖에 나오는 게 없다. 가쯔시마마루 드디어 출항하다 보유 때문에 몇 번 더 얘기했으나 역시 어려운 일. 자꾸만 그의 Owner측 전문을 방패용으로하는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뿐아니고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랫동안 수고 많았고 신세끼쳤오. 잘 가소” 그렇게 헤어지면 그만이다. Blue Nagoya 입항하다. 그저 속에 천불나는 것 뿐이다. Frio Dolpin 교신, 역시 Bunkering관계. Position이 바로 부근이라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아무턴 내일은 직접 찾아가서 의논하기로 우선 VHF로 합의하다. Blue Nagoya의 손병욱군이 꼭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어렵군. 내일이 미 카터대통령이 Tinkan에 온다고 구경 나오랜다. 씨부럴 그 때문에 입항도 못하고 있는 판인데 그 구경할 기분이 나것다. 짙은 구름이 날린다. 찐득한 해풍에 왼몸이 눅눅하다. 시원스레 목욕조차 못하고 있으니 진짜 영창사는 기분이다. 직접 가본적은 없으니 그게 별게 있을라고 꼼짝 못하고 죽치고 있는 것이라면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고 체념하긴 너무 아깝다. 월급이야 꼬박꼬박 받는다고 하지만 그기에 정신이 닿지 않는다. 주지 않아도 좋으니 이것 좀 벗어났으면 싶다. 씨팔놈의 것, 고기를 한 번 팍 썩혀버려 볼까? 어느 놈이 죽더래도 야단이아 한 번 나겠지.
2nd. Apr. (일)
Frio dolpin을 찾아 1시간을 헤메다. 개놈의 새끼들 선미에는 희랍어로 선명을 썼으니 뒤에서 아무리 찾아도 소용없는 것은 뻔한일. “주는 것은 가능하나 배가 손상을 입으면 누가 책임질거냐?” 다. “맞다 네 말이 맞다. 나도 동감이니 그만두자” 목마른 참에 시원한 사이다 한 모금을 얻어 마시고 오다. 연료 떨어지면 무슨 수로든지 해주겠지. Mr.Tikam에게 즉시 타전하다. 도저히 Alongside 못한다고. 대신 Lagos항내에서 수배하라고 -. Minostar에 식품구입차 R/O등 몇몇 보냈더니 밤 9시가 넘어서 왔다. R/O는 야무지게 한 잔 걸쳤다. 그 주제에 기어드니 영 속이 환장할 일. 다 집어치우고 박살낼가도 싶다만 먹고사는 일 때문이라 겨우 참는다.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고 낮에 듣긴 했다만 배마다 협조해달라고 하기도 사실 뭣한 일이다. 8월달에 떠나는 Peace Rose 韓선장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그러나 저러나 먹고 견뎌야 할 판. 할 수 있는데 까진 버텨야지. 돈 안 드는 VHF로 인사하는 거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확실한 착안 예정 없음. 금주 내 될 것 같기도 함. 보유도 못하고 다시 수배중. 이젠 선용금도 주부식도 떨어지고 한시바삐 나도 가야겠음. 예정 나오면 즉시 연락할 것임’ Owner에게 타전하다. 개쌔끼들 까만 인도놈들한테 쥑혀가지고 이 고생을 시키나. 제 놈들이 못한 일, 내가 한다고 될 수가 있을 거로 보고 전보로 지랄들인가.
오소백씨의 인간순례기 ‘빨리 벌어 坑속은 벗어나야죠!’를 읽다. 그 내용이 어쩌면 우리와 비슷해 공감이 간다. 지구 속을 뚫고 있는 막장의 두더지들이나 바다 한쪽 귀퉁이에 몰려있는 우리나, 땅굴 속에서 햇빛과 공기를 잃은 거나 흔들리는 철판위에서 땅을 잃고 인정을 잃은 우리나 매한가지 아닌가. 역시 풍진세상을 등진 것도 같다. 빨리 벌어 땅 딛고 살아야 한다는 뱃놈들의 욕심이나 별로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그렇다. 이 세상을 한 번 살지 두 번 살지는 못한다. 그리고 어차피 인간이 해야 할 일이면 누가해도 하긴 해야 한다. 버텨보자. 이왕든 길. 무슨 끝이 있겠지. 오소백씨가 풍진세상 어찌 살아가십니까? 하고 내게 묻는다면 “이렇게 놀고 욕만하고 살아도 50만원 웃돌게 받소. 그렇게 주는 놈이 미친놈들인가 받고 이렇듯 죽치고 있는 놈들이 바보들인가 하여간 여긴 풍진세상이 아니고 해풍세상이요” 거기나 여기나 극히 정상적으로 구멍 아홉 개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생들이 있음은 분명한 일이다.
3rd. Apr.(월)
節水 때문에 세탁, 목욕 등 많은 제한을 받는다. 차츰 불편이 더해간다. 사람이든 짐승이던 길들이기에 따라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렇듯이 하는데도 세상일에 뒤지지 않고 사람이 약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꼭 70일째, 사철이 있는 곳이면 분명히 한 철이 바뀌었을 기간이다. 작년에 1년 8개월을 기다린 예가 있었고 보통 6개월이 평균이라니 거기 비하면 아직도 새발에 뭣이다만 사정이 다르다. 처음부터 그리 알고 준비를 했다면 아예 마음부터 푸근해 질거다. Mino Star 같은 배는 이곳 대기시간이 유일한 휴식시간이다. 고기도 낚으며 맘끗 즐기고 내일을 위한 휴양의 기간이다. 바쁜 일정속에서 오히려 황금 같은 기회이리라. 아무것도 생각없다. 그저 어서 빨리 움직이고 싶을 뿐이다. Mr. Kishinani VHF로 연락. 발 좀 나았냐? 염려해줘서 고맙다고. 네 발이 문제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언제 입항? 내일이란다. 입만 벙긋하면 내일이다. 그러나 내일 오전 Mov.에도 없고 Assaf도 두문불출이다. Blue Nagoya 출항하다. 손병욱이 벌써 몇번째의 인사를 나누었다. 미안하다. 아무튼 승선 중 건강과 안항을 빈다.
4th. Apr. (화)
이 배를 타고는 가장 재수 없는 날인상 싶다. 잠간 동안의 돌풍과 소나기 속에 옆에 정박중이던 Universal New Jersey호가 닻이 끌리면서 본선에 접촉. 본선 선미 우현부분에 큰 Damage를 입었다. 아마 갑자기 선회하면서 탱탱하게 뻗친 닻줄이 본선의 선미에 닿아 그 힘으로 선체가 끌려온 것이다. 억수같은 비와 바람 그리고 암흑 속의 40여분! 왼통 젖은 체 날뛰었으나 결국 남은 것은 둥그런 몇 군데의 상처뿐이다. 정말 왜 이러는 걸까? 이런 걸 불가항력이라는 것인가. 그 놈의 배가 조금은 근접상태라고 느끼긴 했으나 선회하기에는 충분한 여유가 있는 듯 했고 사실상 아무 일 없었다. 불과 수십초간의 판단과 실행이 빨랐으면 예방이 됐을 지도 모르겠다. 검둥이 녀석들의 돌대가리가 조그만 더 빨리 돌았으면 닻줄을 늦추었어도 접촉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 사고는 너무나 어처구니없이 나고 마는 것이다. 1년간의 부단한 노력과 주의가 일시에 사그리 무너진 느낌이다. 아무리 인증서를 받고 Sea Protest를 갖춘다고 해도 역시 없었던 것이 상책이지 않는가. 지금까지의 모든 애씀이 이와 같이 어처구니 없는 일로 수포화 된다는 것은 너무 억울하기도 하고 역시 내 水運이란 것이 함께 해주지 않은 것도 같다.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더니 꼭 그 꼴이다. 제놈들도 선수가 묵사발이 됐으니 골치께나 아프겠지만 입맛이 쓰고 주체하기 힘든 기분이다.
5th. Apr(수)
4월 5일 식목일이군. 완연한 봄이란 소리다. U. V. Jersey호 가다. Capt는 없다. 새끼들 적반하장이다. 전부가 우리 책임이라고 볼펜으로 몇 자 글적그려 놓고 agree하면 Typing해서 Sign하잔다. 역시 유명한 Greece놈들이다.
“난 이것 Sign 받으러 왔다” 엉터리란다. “그래 나 바쁘니 선장 언제오냐? 다시 오마” 모르겠단다. 기똥찬 일이다. 現認證에 사인받기는 싹수가 노랗군. 상육하다. Cooking Gas가 또 품절. Agent 가는 도중 키다리 Ship chandler 만났고 내일 정오를 약속. 일단 Filling은 했으나 사입 전에 확인해야 한다는 얘기가 우선은 공감이 가고 당연한 일이기에 믿음성이 있어 그러기로 했다. 왼통 거리가 푹푹 삶는다. 복잡한 교통, 택시 잡는데 40분에 택시를 타고도 1시간을 기다렸다. 지긋지긋하다. Mr. Toni가 8일 입항예정이란다. “Are you kidding me?' 이번엔 진짜라며 노랑종이에 Type된 것을 보인다. ‘Cristiper. K 다음에 Tinkan No.10 Apr. 8 Hiroshimamaru'하고 분명히 적혀는 있다만 이놈의 것을 믿어야하나. 간장만 태운다. 3-4일간의 여유를 둔다 해도 4월 10일 전후다. Trans-con에도 가다. A油 수배. “너의 고기 썩어도 내 책임은 없다”는 소리에 정신이 드는 모양이다. Frio Dolpin. Anastashios호 모두 거절하니 별수 없고 Berthing하면 바로 하도록 하다. 4월 10일까지 접안하지 않으면 더 이상 Lagos Road에는 기다릴 수 없다는 최후통첩을 보낸 셈이다. 2월 20일 德丸에서 송부했다던 서류가 오늘에야 도착한다. 더우기 등기우편인데 -. 등기는 더 늦게 온다나 -.
대아에 다시 타전. 너무 늦고 환자들도 생기고 아직도 대기 중이니 내일 전화할테니 대기해달라고-. 교대 희망자에 대한 개개인의 의향 타진을 위한 의견을 듣다. 의외로 문제가 있다. 꼭히 그럴 만한 객관성이 있는 자도 있고 쥐뿔도 말이 안 되면서도 큰소리치는 자도 있다. 그게 문제다. 항상 사회적인 말썽의 원인이 이런데서 싹튼다. 막상 회사에 가면 벌겋게 되어 말도 한마디 못하는 녀석들이 여기서 잘난 체 하면서 제가 최고라는 자들. 아첨과 배신을 쉽사리 해치우는 이율배반적인 요소가 다분한 사람들이다. 내 자신이 전라도 사람들을 싫어하는 이유도 바로 그기에 있다. C/O가 항의를 해온다. 내가 한 발짝 늦었다. 찾던 중이었는데-. 일의 처리란 성질에 따라서 치밀하게 해야 하는 것도 있고 그때그때 해치우는 것도 있다. 가급적이면 불필요한 일은 피하고 확실한 결론을 얻은 후에 실수 없이 하려는 내 자신의 성격적인 것이 오히려 이런 땐 결함이 될 수도 있음을 느낀다. 이제 어느 정도 윤곽이 들어 났으니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할 시기다. 입항 예정이 그만큼 늦어진 이상 부득이한 일이다. 내일은 부산에다 전화를 하자. 그기도 이놈의 사정을 좀 알리고나 보자. Owner측에서도 이제는 억장이 무너지는가 소식이 없다. 그럴만도 할거다. 한두 번 당했나?(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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