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운우 최정숙
시 쓰려고
엎드렸는데
깜짝 놀라 살피니
환한 전깃불 켜진 채
아침 밝았다
날마다 땅 파고
돌 고르고
하느님과 동업하며
씨앗 뿌리는 서툰 농사
시 쓰는 건
살짝 미뤄진다
그래도
날이면 날마다
밭에 시 쓰는 거
하느님은 알아보실 거야
망중한
운우 최정숙
늘 건너던 징검다리
갈대 포기 사이
미나리 보인다
미나리 전 생각하며
한 포기씩 뜯었다
못 듣던 물소리 돌돌돌
유순하게 들린다
비가 와서
밭에서 일하다 말고
집에 가는 길
미나리도 만나고
물소리도 듣고
여유롭고 행복하다
밭에서
운우 최정숙
잠도 없는
부지런한 잡초
성큼 자라서
싱싱함을 뽐내며
예쁜 척 달려든다
어느새 습관 되어
부르는 듯 밭에 가는 일상
포근하고 정직한 흙
너와 종일 놀다가
무례한 뱀이
들깨 어깨에 벗어놓은
속옷을 치우며
가족들을 위하여
평생토록
새벽부터 밤까지
별별 것을 치우셨을
아버지를 생각했다
집
운우 최정숙
손자 등 하교 시킨답시고
서울 가서
비워놓고
홀대한 집
애타게 기다리다
속 썩어서
퀴퀴한 냄새 난다
주말마다
집에 가서
창문마다 열어
맛난바람 쐬어주고
걸레질로 아양 떨며 달랜다
너무 방치하면
여기 저기 병 나서
쓰러진다
집 살피듯
가족 보살피기를
숨 쉬듯 해야한다
바람
운우 최정숙
처서도 지났다
조석으로 선선한 바람
기분좋다
갑자기 아련한 마음
문득 엄마 생각 난다
여유가 생긴걸까
이 나이에
말 타면 종 두고 싶다던
옛말 떠오른다
밤하늘에 달도 보인다
시원한 바람이
바쁜 와중에도
순간이나마 행복한 생각
여유로움을 데리고 왔다
프로필
이름 최정숙
아호 운우
2009년 7월 문예사조 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보령지부 회원, 계간문예중앙위원, 시울림 회원, 문예사조 부회장역임, 현재 시섬문협 부회장,
시집《문패를 달면서》,
2023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창작지원금 수혜,
시 낭송가, 시낭송 지도자,
동인지(시울림)《허공의 춤》,
(시섬문협)《모자이크》외 다수
첫댓글 접수했어요 선생님 ^^
사진도 좀 수정했어요
김순진 고문님, 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