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장
希言自然. 故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孰爲此者. 天地. 天地尙不能久, 而况於人乎. 故從事於道者, 道者同於道, 德者同於德, 失者同於失. 同於道者, 道亦樂得之, 同於德者, 德亦樂得之, 同於失者, 失亦樂得之. 信不足, 有不信.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는) 말을 귀하게 여기는 임금은 (자기) 멋대로 모나게 외따로 하지 않고, 천하를 좇고 따른다. 따라서 세찬 바람은 아침나절을 마치지 못하고, 거친 비는 하루를 마치지 못한다. (그런데) 무엇이 (세찬 바람과 거친 비) 이것을 일삼는가? 하늘과 땅이다. (이렇듯) 하늘과 땅도 (만물을 좇지 않고, 따르지 않은 채, 자기 멋대로 모나게 외따로 하게 되면) 오래 갈 수 없는 바를 받들게 된다. 하물며,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는 말을 많아지게 하는) 임금에게 있어서야! 따라서 (자기 멋대로 모나게 외따로 하지 않고, 만물을 좇고 따르는) 도道를 따르고 섬기는 임금이 되어야 하는데, 도道를 따르고 섬기는 임금은 도道를 좇고 따르며 어기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되고, 덕스러움德을 따르고 섬기는 임금은 덕스러움德을 좇고 따르며 어기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되며, (도道와 덕스러움德을 따르고 섬기는 바를) 잃어버리는 임금은 그 (자기 멋대로 모나게 외따로 한 채, 만물을 좇고 따르지 않는) 티끌된 바를 좇고 따르며 어기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된다. 도道를 좇고 따르며 어기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 임금은 도道 또한 그를 얻기를 즐거워하게 되고, 덕스러움德을 좇고 따르며 어기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 임금은 덕스러움德 또한 그를 얻기를 즐거워하게 되며, (도道와 덕스러움德을) 잃어버리는 바를 좇고 따르며 어기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 임금은 (도道와 덕스러움德을) 잃어버리는 바 또한 그를 얻기를 즐거워하게 된다. (따라서 천하에 대한 임금의) 믿음이 부족하게 되면, (천하는 임금에 대한) 믿지 못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게 되는 것이다.
希言, 簡淡之言也. 所謂貴言者是也. 自然, 不苟崖異, 而隨順於物也.
희언希言은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無爲이) 곧고 맑게 말하는 임금을 뜻한다.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는) 말을 귀하게 여기는 임금을 뜻한다. 자연自然은 (자기) 멋대로 모나게 외따로 하지 않고, 천하를 좇고 따른다는 말이다.
風雨, 天地之所爲. 而飄驟, 則失於自然. 故尙不能久.
바람과 비는 하늘과 땅이 일삼는 바이다. 그러나 거친 바람과 세찬 비는 (자기) 멋대로 모나게 외따로 하지 않고, 만물을 좇고 따르는 바를 잃어버린 바이다. 따라서 (하늘과 땅도) 오래 갈 수 없는 바들 받들게 된다.
人之多言, 能無窮乎.
(따라서) 임금이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는) 말을 많아지게 하는데, (어찌) 궁색해지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을 수 있겠는가?
故從事於道者, 與道者, 居而同於道. 與德者, 居而同於德. 與失者, 居而同於失. 同者, 隨順無違之意. 同於失, 則同其塵矣.
따라서 도(道; 自然)를 따르고 섬기는 사람, 도(道; 自然)와 더불어 하는 사람은 도(道; 自然)에 자리하게 되고, 도(道; 自然)를 좇고 따르며 어기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된다. (덕스러움德·無爲을 따르고 섬기는 사람) 덕스러움(德; 無爲)과 더불어 하는 사람은 덕스러움(德; 無爲)에 자리하게 되고, 덕스러움(德; 無爲)을 좇고 따르며 어기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된다. (도道·自然와 덕스러움德을) 잃어버리는 바와 더불어 같이 하는 사람은 (도道·自然와 덕스러움德·無爲을) 잃어버리는 바에 자리하게 되고, (도道·自然와 덕스러움德·無爲을) 잃어버리는 바와 (더불어) 같이 하게 된다. 동同은 좇고 따르며 어기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된다는 뜻이다. 동어실同於失은 그 티끌된 바(塵; 有爲)를 좇고 따르며 어기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된다는 뜻이다.
我, 旣同於彼, 則彼, 皆樂得我. 是, 我, 信, 而彼, 信之也. 若夫多言者, 則喜立異. 而物, 與之, 爲敵. 故曰信, 不足, 有不信.
(임금인) 내가 천하를 좇고 따르며 어기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으면, 천하가 모두 나를 얻기를 즐겁게 여기게 된다. 이것은 (임금인) 내가 (천하를) 믿어야, 천하가 나를 믿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는) 말을 많아지게 하는 임금은 (자기 멋대로 모나게) 외따로 하는 바를 세우는 바를 즐겁게 여기게 된다. 따라서 천하가 그와 더불어 하는 바가 (그를) 원수로 일삼는 바가 되게 된다. 따라서 (노자는) 일컬었다. “(천하에 대한 임금의) 믿음이 부족하게 되면, (천하는 임금에 대해) 믿지 못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게 된다.”
蘇氏曰, 言, 出乎自然, 則簡, 而中. 非其, 自然, 而强言, 之, 則煩, 而難信矣. 故曰, 道之出言, 淡乎. 其, 無味. 視, 之, 不足見. 聽, 之, 不足聞. 用, 之, 不可旣. 此, 所謂希言矣.
(송宋나라 문인文人) 소철(蘇轍, 1039~1112)은 일컬었다. “(임금의) 말이 저절로 그러한 바(自然; 道)에서 나오게 되면, (그것은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無爲이) 곧게 되고, 따라서 (천하가 그것을 믿는 바의) 가운데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임금의 말) 그것이 저절로 그러한 바(自然; 道)에서가 아니라, 일부러 일삼아 일컫는 데에서 나오게 되면, 그것은 (천하를) 번거롭게 하게 되고, 따라서 (그것에 대한 천하의) 믿음을 어렵게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노자는 제35장에서) 일컬었다. ‘도道가 뱉는 말은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無爲이) 맑다! (따라서 그것은 일부러 일삼은) 맛을 가지는 바가 없다. (따라서) 살피더라도 (또렷하게) 살펴지는 바가 없게 되고, 듣더라도 (뚜렷하게) 들리는 바가 없게 되며, 쓰더라도 다하는 바가 없게 된다.’ (이러한 바) 그것이 희언希言이다.”
첫댓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모두 저의 부족함 탓입니다.
오늘은 날이 참 좋습니다. 바람도 없고, 따뜻합니다.
봄을 넘어 여름이 오는 것 같습니다.
평안하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