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5 주일설교
절망적 상황에서도 뜻을 정하라
다니엘 1:1~10
9월 26일에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의결되었습니다. 검찰청과 방송통신위원회가 폐지되고 이름이 비슷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신설되었습니다. 이진숙 위원장은 자동적으로 해임되었습니다.
여성가족부는, 우리가 그렇게도 반대했는데도, 성평등가족부로 확대 개편되었습니다. 이제 이 정부는 성혁명을 실현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국방부는 방위병 출신이 장관으로 앉았고 사성장군 7명이 전역함으로 별 28개가 한꺼번에 떨어졌습니다. 군부대는 60%가 지휘관이 공석이어서 대행 체제입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국가의 중요한 정보가 불탔고 공무원 75만 명의 정보도 사라졌습니다. 중국인 관광객은 개인정보와 신원 확인이 안 되어 치안이 매우 불안합니다.
140년 된 한국교회 내부도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교회의 양대 문제는 합리주의와 신비주의입니다. 인간의 이성을 앞세운 자유주의 신학은 믿음이 병들게 해서 교인이 교회를 떠나게 합니다. 신비주의 사상과 신사도 이단은 막아도 막아도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일부 교인에게는 성경적 가치 실현보다 개인의 이익이 더 중요합니다. 권력에 야합한 종교인이 참된 신자를 조롱하고 핍박한 일은 교회 역사상 늘 있었습니다.
1564년에 영국의 매튜 파커 대주교는 엘리자베스 1세에 빌붙어 성경적으로 신앙생활 하려는 자들을 향해 자기들만 깨끗한 척하는 놈들(puritans)이라고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청교도들은 조롱받는 그 이름(퓨리탄)을 자기들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청교도들은 국교도들의 박해를 견디다 못해 전 세계로 흩어졌고 특히 신대륙으로 가서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 미국은 청교도 정신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1938년에 한국교회는 신사참배를 가결했습니다. 신사참배 찬성파들은 주기철목사, 한상동목사, 주남선목사 등 신사참배 반대파를 조롱하고 괴롭혔습니다.
2025년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사법부는 동성커플 건보료 피부양자 자격과 수술없는 성전환을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행정부는 성평등가족부를 신설하였습니다. 입법부에서는 끝도 없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고 있으며, 이번에 무제한 낙태법을 발의한 국회의원은 어이없게도 거여제일교회의 집사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쳐 죽였듯이, 대제사장+사두개인+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죽였듯이 항상 가짜가 진짜를 박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절망적인 시대에 저는 둥근 세상 둥글둥글 살 것인지, 주기철처럼 나서서 손해를 보면서도 바른말을 할 것인지 고민입니다. 나 하나가 진리를 외쳐봐야 나만 고생이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절망적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한 사람을 모델로 보여주십니다.
성경에는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 적도 없으면서 누구보다 선지자답게 산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살던 시대를 진단했을 뿐만 아니라 수백 년 후의 일을 정확히 예언했고 심지어 역사의 종말까지 예언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정말로 의롭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니엘을 노아와 욥과 함께 삼대 의인으로 부르십니다.
(겔 14:14)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은 이 다니엘을 모델로 앞세우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절망적 상황에서도 뜻을 정하라.” 이것이 오늘 설교 말씀의 제목입니다.
다니엘의 상황은 너무나 절망적이었습니다. 다니엘이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네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다니엘은 왕족이었으나 졸지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3절에서 느부갓네살은 왕족과 귀족을 끌어오라고 했는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다니엘이 왕족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다니엘은 10대 소년 시절에 바벨로니아까지 포로로 끌려갔으니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요? 내가 스무 살에 서울에 왔을 때 너무 외로워서 거리를 걸으며 울었습니다. 22살에 군에 갔을 때도 외로워서 많이 울었습니다. 다니엘은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2)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은 내시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환관(내시)장에게 맡겨져 3년간 바벨론식으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왕궁에서 섬기도록 환관장이 양육했다면 다니엘도 내시가 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사 39:7) 또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이사야는 일찌기 히스기야의 교만을 책망하면서 왕의 후손 중에서 바벨론 내시가 나올 것이라고 했는데 다니엘과 친구들은 그 예언의 성취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후손이 포로가 되고 심지어 거세되어 내시가 되는 것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절망입니다.
(신 23:1) 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신명기의 이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종교적으로 심각한 결격사유가 되는 것은 확실합니다.
3)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이름이 고쳐졌습니다(7절).
개명은 단순한 호칭 변경이 아니라 정체성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관련된 경건한 이름이 우상과 관련된 더러운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다니엘: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시다.
→ 벨드사살: 벨(마르둑)이 그의 생명을 보호할 것이다.
*하나냐: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 사드락: 월신(月神)을 경배하는 자.
*미사엘: 누가 하나님과 같으냐?
→ 메삭: 포도주의 여신에게 몸 바친 자.
*아사랴: 여호와께서 도우셨다.
→ 아벳느고: 나부(主神 마르둑의 아들)의 종.
4) 다니엘과 친구들에게는 부정한 음식이 제공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레위기 11장의 규례대로만 짐승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코셔는 ‘합당한’, ‘허용된’ 그런 뜻입니다. 돼지고기, 우상 제물, 피 있는 고기 등은 코셔가 아닙니다. 그런데 5절을 보면, 왕이 다니엘이 먹을 고기와 술을 지정해 주었습니다.
포로로 끌려와서 내시가 되고 이름이 바뀌고 부정한 음식을 제공받은 이것보다 더 절망적인 일은 없습니다. 자, 이제 다니엘과 포로 소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죽지 않으려면 주는 대로 먹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니엘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다니엘에게 어떻게 하라고 조언하시겠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다니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다니엘은 어떻게 했을까요?
8절을 보면 다니엘은 뜻을 정하였습니다.
뜻이란 히브리어로 레브(심장)입니다. 히브리인이 생각하는 신체의 중요한 세 부분이 있습니다. 1) 생각하는 기관은 눈과 심장입니다. 2) 언어와 관련된 기관은 귀와 입이고 3) 행동하는 기관은 손과 발입니다. 신명기에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라”라고 할 때 마음이 바로 레브(심장)입니다. 정리하면, 다니엘은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에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잠언은 그 사람의 생각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잠 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래서 잠언은 마음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여기 산이 있습니다. 산은 언제 험할까요? 산을 오를 생각이 없고 멀리서 구경하는 사람에게는 산은 아름다운 경치입니다. 하지만 그 산에 오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산일수록 더 험하고 힘이 듭니다.
다니엘의 상황도 그렇습니다. 포로 주제에 매일 고기와 술이 나오니까 이게 웬 횡재냐 하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그 산이 험하기는커녕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다니엘과 세 친구는 그 상황이 매우 험한 산이었습니다. 정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와 대한민국 상황도 그렇습니다. 팔짱 끼고 구경하는 사람에게 한국교회는 평화롭습니다. 남이야 어찌하든 나만 조용히 신앙생활 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는 험한 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은 이 산을 구경하실래요? 정복하실래요? 이 질문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보세요.
(딤후 2: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행 14:22)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이 말씀에 의하면 믿음 때문에 고난이 없는 것은 경건하게 살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신자의 고민은 당장 내 입에 밥이 들어가느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느냐, 교회가 세상을 바르게 개혁하느냐 이것이 신자의 진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다니엘을 모델로 내세우면서 저와 여러분에게도 뜻을 정하라고 하십니다. 마음을 굳게 정하라고 하십니다. 속담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은 어떤 절망적 상황에서도 정신을 차리고 이겨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은 그 절망적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요? 포로로 끌려오는 것, 내시가 되는 것, 이름을 바꾸는 것은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노력할 길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극복하기로 마음에 결심했습니다. 사실 그것도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니엘이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입게 해 주셨습니다. 10절을 보면, 환관장은 다니엘에게 그게 말이 되느냐고 나무라는 대신에 협조하지 못하는 사정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환관장도 도와줄 수 없다는 말에 다니엘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으니, 그쯤에서 그만두었을까요? 아닙니다. 다니엘은 끝까지 믿음을 지킬 방법을 찾았습니다. 다니엘이 찾아낸 방법이 무엇이었는지는 다음 주일에 자세히 살펴봅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2600년 전에 살았던 다니엘에게도, 2000년 전에 살았던 사도들에게도, 400년 전에 살았던 청교도들에게도, 90년 전에 살았던 주기철목사에게도, 2025년에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성경적 가치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유혹과 압박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지키고 세상을 개혁할 사명이 있지만 우리에게 힘이 없습니다. 우리의 상황은 너무 나빠서 절망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심과 전능하심을 믿는 우리는 마음을 놓아버리면 안 됩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다가 손해 보거나 죽는 한이 있어도 마음을 내려놓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반드시 뜻을 정하세요.
이 세상에 가장 강한 사람은 목숨을 거는 사람입니다. 박조준목사 심방 경험담: 목숨을 걸면 이깁니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사탄이 오히려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세상 최고 권력도 목숨 걸고 진리를 위해 싸우는 사람을 무서워합니다. 메리 스튜어트 여왕은 유럽 연합군보다 기도하는 존 녹스가 무섭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존 녹스의 장례식장에서 제임스 더글러스 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에 인간의 얼굴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던 한 사람이 잠들었도다.”
하나님도 세상 사람들도 뜻을 정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당신이 바로 2025년의 다니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