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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3일 오늘의 역사
2024년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령 선포 후 6시간 만에 해제
2023년 홍해에서 미국 군함 및 상선 여러척 피격
홍해상에서 미 해군 구축함 카니호와 상선 여러 척이 공격받았다
누가 공격했는지 밝혀지진 않았다만 미국은 "공격은 3일 오전 10시께 시작돼 약 5시간 동안 지속됐다"고 말했다. 다른 관리는 "카니호가 공격받으면서 드론을 최소 1대 격추했다"고 전했다.공교롭게 이날 예멘 반군 후티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홍해와 아덴만을 연결하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에서 이스라엘 선박 2척을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공격의 표적이 '유나이티 익스플로러'호와 '넘버 나인'호라면서 이들 선박이 자신들의 경고를 무시해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유나이티 익스플로러호는 바하마 선적의 벌크선이며, 넘버 나인호는 파나마 선적의 컨테이너선이다.
2023년 인도네시아 서부 수마트라 섬의 므라피 화산 폭발, 등산객 12명 사망
2021년 여수 남쪽 바다에서 중국 어선이 암초에 부딪혀 침몰 22명의 중국인 선원구조
2018년 퇴계 이황 친필 만장 대거 출토
경북 안동시 풍산읍의 한 무덤에서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년)의 친필 만장 등 문화재급 유물이 대거 출토됐다.
3일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출토된 만장은 임진왜란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며, 퇴계 선생을 비롯해 서애 류성룡의 부친인 류중령이 지은 것 등 모두 14점이다.
한지를 두께로 3장, 길이로 2장을 붙여 만든 이 만장은 출토 당시 떡처럼 달라붙어 있었지만 크게 훼손되지는 않았다.
이 중 40자의 5언 율시로 지어진 만장은 퇴계 이황 선생의 것으로, 대형 친필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만장은 상례가 끝나면 대부분 태우는데다 임진왜란 이전의 것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은 극히 드물다.
출토된 만장은 퇴계 선생을 비롯해 당대 대학자 선비들이 남긴 만사라는 점, 친필이라는 점, 내용 자체가 문집이나 다른 문헌에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만장이 출토된 무덤은 퇴계 선생의 처삼촌인 안동권씨 가일문중 권굉의 것이며, 무덤을 만든지 453년 만인 지난해 이장 과정에 발견됐다.
2017년 인천 영흥도에서 급유선과 낚싯배 충돌 15명 사망
2016년 미국, 미군의 모든 전투병과 여성에게 개방
2014년 유도탄고속함 이병철함(PKG-733)취역
2014년 영국 런던 한국전 참전기념비 준공
2010년 미국요구로 시작된 한미FTA 재협상 미국에 일방적으로 양보한 채 타결
2010년 '창고극장' 설립, 원로 연극인 이원경씨 별세
예술원 회원인 원로 연극인 이원경(94)씨가 2010년 12월 3일 별세했다. 이씨는 1938년 일본미술학교 양화과를 졸업했고 서라벌예대 교수, 예그린극단 기획실장 등을 거쳐 1976년 삼일로 창고극장을 만들었다. 삼일로 창고극장은 추송웅의 '빠알간 피터의 고백' 등이 공연된 현존 최고(最古)의 소극장이다.
이씨는 연출가인 고(故) 이해랑·이진순씨와 활동하면서 '수선화' '김대건 신부' '시라노 드 벨쥬락' '세자매' 등 연극 70여편을 연출했고, '수선화' '불멸의 처' 같은 희곡을 남겼다.
대한민국예술원상, 동랑연극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저서는 '이원경 희곡집' '연극연출론', 창극대본 '춘향전' 등이 있다
2010년 생태학 연구의 선구자 김준민 교수 별세
국내 생태학 연구의 선구자인 김준민(96) 서울대 명예교수가 2010년 12월 3일 별세했다. 경기도 개풍 출생으로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호쿠대(東北大)에서 식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46년부터 33년간 서울대 사대 생물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며 우리나라 토종 생태학의 기반을 마련했다. 한국식물학회장(1966년)과 한국생태학회장(1976년)을 역임했으며, 1986년에 학술원 회원으로 추대됐다.
교직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활발한 저술활동을 벌였고, 2006년 펴낸 책 ‘들풀에서 줍는 과학’으로 이듬해 대한민국 과학문화상을 역대 최고령 기록으로 받았다.
2009년 포천 국방과학연구소 폭발 사고
2009년 12월 3일 오전 11시 32분쯤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에 있는 국방과학연구소(ADD) 총포탄약시험장에서 민간 포탄 개발업체의 의뢰를 받아 국산 KH-179 견인 곡사포의 구경 155㎜ 고폭탄에 신관을 넣고 오작동 시험을 하던 중 폭발사고가 일어나 1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다. 신관은 포탄이 목표지점에 도달했을 때 또는 미리 정해진 시간에 탄두 또는 폭약을 폭발시키는 장치다. 사고 현장은 다락대사격장 안에 있어 일명 '다락대시험장'이라 불리는 곳이다.
시험에는 ADD 관계자 8명, 포탄 개발업체 관계자 6명, 국방기술품질원 관계자 1명 등 총 15명이 참가했다. 해당 포탄은 전부터 우리 군이 사용해온 제품으로, 참가자들은 최근 추가로 생산된 1만6000발 중 16발을 골라 사격하고 있었다.
폭발은 5발을 쏜 뒤 6번째 포탄 발사를 준비할 때 일어났으며 6번째 포탄을 장전한 뒤 폐쇄기를 닫고 발사를 준비하던 중 격발도 하지 않았는데 포강(砲腔) 안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 위력은 포신을 두동강 냈을 만큼 셌으며 견인포 주변에 있던 정기창(40)씨가 즉사하고 공병찬(32)·김면웅(35)씨가 중상을 입고 권상욱(27)·황종호(42)·임창길(48)씨 등 3명이 경상을 입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20여m 떨어진 콘크리트 방호벽 뒤에 있었던 덕분에 화를 면했다.
2009년 케이블TV 컴캐스트, NBC 인수
케이블TV인 컴캐스트(Comcast)가 NBC유니버셜의 최대 주주 제너럴일렉트릭(GE)과 인수 협상을 벌여, GE에 현금 65억달러(약 7조4900억원) 지불하고 NBC유니버셜에 현물 72억5000만달러(약 8조3600억원)를 출자하는 조건으로 NBC유니버셜의 지분 51%를 인수했다.
이로써 컴캐스트(Comcast)는 미국 3대 지상파 가운데 하나인 NBC를 인수했다.
NBC 매각은 수십년간 미국 방송을 장악해온 3대 지상파(NBC·ABC· CBS) 시대의 종언을 뜻한다.
2008년 태국 시위대, 농성 해제
태국 정부청사와 공항을 점거했던 반정부 시위대가 2008년 12월 3일 오전 10시를 기해 모든 농성을 해산하고 일상으로 복귀하기로 했다.
반정부 단체인 국민민주주의연대(PAD) 시위대는 정부청사에서 8월26일부터 100일째, 수완나품 국제공항과 돈므엉 국내공항에서는 각각 9일과 8일째 점거농성을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경찰 및 친정부 단체와 충돌, 폭탄 공격 등이 빚어지면서 6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부상하는 인명피해를 냈다. 또 공항 점거농성으로 국내외 승객 35만명의 발이 묶였다.
PAD가 이끄는 시위대는 전날 연립정부 구성에 참여한 집권 3당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정당해체와 함께 당간부의 정치활동 금지명령을 내리자 이를 ’PAD의 승리’로 규정하며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2003년 4400톤급 한국형 구축함 ‘충무공 이순신함’ 취역
2000년 한국 천주교, 과거사 반성 문건 `쇄신과 화해` 발표
한국 천주교회가 200년 역사에서 저지른 잘못을 민족 앞에 고백하고 참회하며 용서를 구하는 공식문건을 2000년 12월 3일 발표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이름으로 발표된 `쇄신과 화해`라는 문건을 통해 천주교회는 구체적인 개별사건을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조상제사 금지, 병인양요, 안중근의사 의거의 `살인` 규정, 권위주의와 외적 성장에의 지나친 관심 등의 내용이 사실상 함축된 일련의 잘못을 포괄적으로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다.
이같은 참회는 2000년 3월 교황 요한 바로오2세가 지나간 2000년 역사를 통해 가톨릭 교회가 저지른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 `교황청의 역사적 과오에 대한 참회`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이같은 참회 문건은 비록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고 일부 마땅히 언급해야 할 내용이 빠져있다`는 종교학계 등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교회사적으로나 민족사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지닌 중대 결단이었다.
1998년 국내, B형간염 치료제 `헤파가드` 개발
1998년 12월 3일 B형감염 치료제 `헤파가드`를 경북대 의대 정태호 박사가 개발했다. 정 박사는 B형간염 바이러스 발견으로 노벨상을 탄 미국 불룸버그 박사로부터 필란투스속 식물을 이용해 간염 치료를 시도한 이야기를 듣고 1988년부터 원료식물인 진주초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정 박사는 한국에도 분명히 이 야생의 생명초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 전국 야산을 조사했다. 1년여 만에 대구 지역 산간에 집단 서식하는 진주초를 찾아내 각종 방식으로 생약성분 추출실험을 거듭한 결과, 진추초에서 수성추출한 진액이 특히 실험결과가 좋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정 박사팀은 1990년 미국 코넬대에 보내 동물실험을 의뢰했다. 필란투스속의 다른 풀과 헤파가드를 우드척에 각각 투입해 비교 실험한 결과, 헤파가드쪽은 B형 간염바이러스 DNA 감소율이 하강곡선을 그린 반면, 다른 풀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정 박사팀은 본격 임상실험에 착수했다. 만성 활동성 B형간염 환자 30명을 표본으로 택해 하루에 60mg씩 헤파가드를 투입해 12개월간 실험을 계속했다. 9개월째 이중 7명(23%)에서 B형간염 항체(hbeab+)가 형성됐으며 12개월째에 28명이 hbv-dna의 혈중농도가 제로가 됐다. 그후 인터페론 등 다른 약으로 효험을 보지못한 간염환자 4명을 상대로 임상실험을 계속했다. 여기서도 3개월여 만에 간염바이러스 DNA의 감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1997년 북한탈출 주민 7가족 13명 중 7명 중국 베트남 국경서 실종보도
1997년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 총550억달러의 긴급자금지원에 합의
1997년 대인지뢰 금지협약 서명
1995년 전두환 전대통령 구속
전두환 전대통령이 1995년 12월 3일 군형법상 반란수괴, 불법진퇴, 지휘관 계엄지역수소이탈, 상관살해 및 미수, 초병살해 등 6개 혐의로 고향인 합천에서 검거돼 안양교도소에 수감됐다.
12·12 및 5·18특별수사본부는 전날인 12월 2일 전두환 전대통령이 검찰 소환에 불응하며 연희동 골목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후 고향 합천으로 내려간 전 전대통령을 검거하기 위해 사전구속영장을 받았다.
검거반은 주민들과 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이다 전대통령이 묵고 있는 내실로 들어가 영장을 집행했다. 결국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집행은 3일 오전 6시34분 검-경 합동으로 작전이 개시된지 37분 만에 전격적으로 끝났다.
1992년 유엔안보리, 소말리아 군사개입결의안 채택
기아에 허덕이는 소말리아에 미군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이 투입됐다. 1991년 1월 바레 독재정권이 무너진 후 시작된 내전속에서 지금까지 35만명이 기아와 질병, 전쟁으로 죽어갔고 2백만명이 아사직전에 놓여있었다.
유엔 안보리가 1992년 12월 3일 소말리아에 대한 병력파견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이어 9일 미 해병대가 수도 모가디슈에 상륙하면서 ‘희망회복’ 작전이 시작됐다.
다국적군의 주 임무는 구호물자의 안전한 수송, 구호반원 및 민간인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로, 인도적 차원에서의 군사개입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군사개입과는 차별성을 두었다.
1991년 광주시 유덕동 상공서 F5A전투기 2대 충돌 추락
1991년 일본 중의원, 자위대의 유엔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안 가결
1990년 방글라데시 대통령 에르샤드 사임
1989년 몰타 미,소정상회담 역사적 냉전 종식
1987년 중부고속도로 개통
중부고속도로가 1987년 12월 3일 개통됐다.
이에 따라 춘천, 양평 등 수도권 동북부지역차량들은 복잡한 서울시내를 거치지 않고 바로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중부고속도로에는 15개 인터체인지가 설치돼 경부 및 영동고속도로를 비롯해 주요 국도와 연결됐다.
중부고속도로의 준공으로 경기 이천 및 장호원 일대는 물론, 충북 음성지역이 서울로부터 1시간이내의 거리에 위치 하게돼 주말농장이나 전원주택지 등으로 개발되었다.
또, 중부고속도로가 지나는 광주-이천지역에는 수많은 도요지가 자리잡고 있다. 이밖에 경기 안성군의 일죽인터체인지를 지나면 김대건신부의 묘역이 있는 미리내 성지에 닿을 수 있고, 국내최대의 담수호수인 충주호까지의 주행시간도 훨씬 단축됐다.
중부고속도로는 시멘트콘크리트 포장방식으로는 호남ㆍ88올림픽고속도로에 이어 국내 3번째로 건설됐다. 그러나 포장두께가 호남고속도로 등보다 10cm이상 두꺼워 내구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1985년 10차 남북적십자본회담 서울개최
1984년 인도 보팔시 유독가스 유출 대참사 발생
1984년 12월 3일 새벽 0시반, 보팔市에 소재한 미국의 다국적기업 유니언 카바이드社 에서 농약제조 원료인 유독가스 메틸이소시안이 누출되기 시작, 불과 2시간 만에 36만톤이나 되는 엄청난 양이 도시전체를 뒤엎었다.
조용히 잠자다 변을 당한 사람이 이날 하루에만도 2천800여명에 이르렀고, 시간이 흘러 숨진 사람까지 포함하면 사망자가 무려 7천명∼1만명에 달했다. 60여만명의 부상자 가운데 약 5만명은 치유 불가능한 불구상태라고 한 보고서는 전한다.
환경재난 중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난 이 사고는 높은 압력과 저온 상태를 항상 유지해야 하는 저장탱크의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기경보체제도 작동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인구가 밀집된 도시 한가운데에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공장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1983년 부산 다대포 앞바다 무장공비 생포
1983년 10월9일 버마의 수도 랭군의 아웅산묘소에서 북한 공작원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폭탄테러를 자행하여 국내에서는 희생자 추모와 함께 대북 규탄대회 및 응징여론이 팽배했었다
아웅산묘소 폭탄테러사건 약 두 달 후 인 12월3일 북한은 또 다시 무장간첩을 부산 다대포 해안으로 침투 시켰다
이날 22시40분경 침투한 간첩 전충남과 이상규 등 2명을 생포하고 이들을 싣고 침투했던 바잠수정을 영도 남쪽 9km 해상에서 격침 시켰다
이 사건은 사전 북한의 침투정보를 인지하고 있던 정보기관이 재북공작작전팀과 특전사 유원을 사전에 훈련, 대비시킨 끝에 완벽하게 성공한 작전이였다
1983년 백악관 콘크리트방벽 설치
1981년 시스케이국 독립
1981년 교대와 국립사대 통합발표
1980년 부산대. 동래서 가야시대의 금동관 발굴
1978년 경기 가평에서 철기시대 주거지 발굴
1978년 캄보디아의 반(反) 폴 포트세력이 캄보디아 구국민족통일전선을 결성
1975년 라오스 공산정권 수립
1973년 파이오니어 10호 최초로 목성 탐사
1972년 스페인 전세기 카나리아군도서 이륙도중 추락 155명 사망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면전 돌입
1970년 북한 박성구 소좌. 미그15기 몰고 귀순
1967년 남아공 버나드 박사. 세계최초로 심장이식수술 성공
남아공(南阿共) 수도 케이프타운의 한 병원에서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25세 여성의 심장을 55세 남성에게 이식하는 수술이었다. 집도의는 크리스천 버나드 교수와 30여명의 수술팀이었고, 이식 수혜자는 심장병을 선고받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루이스 워쉬칸스키였다.
심장을 환자에게 이식하는 데 걸린 시간은 5시간. 봉합까지 마쳤지만 심장이 뛰질 않았다. 심장박동을 촉진하기 위해 전기충격을 주고나서야 새 심장이 꿈틀거리며 혈액을 펌프질하기 시작하자 수술팀은 그제서야 안도했다.
인류사상 최초의 심장이식수술 성공이였다
워쉬칸스키는 12일 후 병상에서 일어나 걸을 정도로 회복했지만 6일 뒤인 12월 21일 아침, 이식 거부반응으로 돌연 사망했다.
1966년 이만희 감독, 영화 ‘만추’ 개봉
이만희를 당대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끌어올린 것은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성공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전쟁영화로는 최초로 20만 관객 동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예고편이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던 ‘7인의 여포로’가북한군이 국군보다 더 종은 옷차림을 하고 있고 국군이 바보스럽게 묘사되어 북한이 더 우월한 체제로 보이게 했다고 반공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3일 동안의 특별휴가를 얻어 어머니 성묘를 가는 살인 복역수 문정숙과 위폐범으로 지명수배 되어 쫓기는 신성일 두 사람이 펼치는 인생의 불안과 고독 그리고 사랑을 그린 ‘만추’는 촬영과 녹음이 보름만에 완성되고 출연진이라야 신성일과 문정숙 두 사람이 사실상 전부였는데도 20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여 이만희 영화의 정점을 찍었다.
‘만추’는 각종 영화상을 휩쓸었다. 베를린 영화제에도 출품되고 몇 편의 영화로도 리메이크되었다. 1975년 김기영 감독의 ‘육체의 약속’(김지미 주연), 1982년 김수용 감독의 ‘만추’(김혜자 주연), 2011년 김태용 감독의 ‘만추’(현빈·탕웨이 주연)로 국내에서 세 차례에 걸쳐 리메이크되었으며 일본에서도 1972년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어 그해 일본영화 베스트5에 올랐다.
1964년 남산 자유센터 개관
1962년 쿠바의 소련폭격기들 철수 개시
1961년 미국 네바다 사막서 지하 핵실험
1960년 일본-영국 문화협정 조인
1959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유럽-아시아 방문 등정
1956년 영국-프랑스, 이집트로 부터 즉시 철수 발표
1952년 유엔총회. 한국전포로 중립지대 인도안 가결
1948년 상해부근에서 피난민들이 탄 배가 폭발침몰. 3천9백20명 사망
1946년 미국-영국 군사동맹 체결
1943년 미국-영국-소련 3거두 테헤란선언
1937년 헝가리 시인 요제프 사망
1931년 스페인 부르봉왕조 멸망
1929년 서울학생독립운동 사건 발발
1921년 조선어연구회 조직(후에 한글학회로 개칭)
1921년 12월 3일 오후 2시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의 제자인 최두선, 권덕규, 장지영, 이승규 등이 서울 휘문고보에 모여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한다. 나라를 빼앗긴 지식인들에게 모국어는 민족 얼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였다. 휘문학교는 주시경이 한때 한글을 가르쳤던 곳이기도 했다. 12월 2일자 조선일보는 ‘회원들이 우리말과 글에 기준이 될 통일성이 없어 유감’이라는 설립 이유를 싣고 있다.
한글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기관지 ‘한글’(1927년 2월 10일)이 창간되고, 훈민정음 반포 480년을 기념해 지금의 한글날인 ‘가갸날’이 1926년 9월 29일(음력)에 정해진 것도 이들의 공로다. 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1930년 12월)하고 조선어사전편찬회(1929년 10월)도 조직했다. 조선어연구회는 이후 조선어학회(1931년)로 이름을 바꾸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 벌인 문맹퇴치운동에 발맞춰 우리글과 우리말 보급에 진력했다.
1942년 10월 1일, 조선문화 말살정책에 혈안이 된 일제가 '눈엣가시'와도 같은 조선어학회에 칼을 들이댄다. 일명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는 고문으로 받아낸 허위자백을 근거로 최현배, 이극로, 이희승 등 33명을 내란죄로 연행하고 이 가운데 10명에게는 각각 2년에서 6년까지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윤재와 한징은 재판 도중 고문으로 옥사했다.
조선어학회는 한글학회(1949년 9월 5일)로 발전하며 지금까지 우리말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1920년 청록파 시인 조지훈 출생
1919년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 사망
반짝이는 색채와 빛으로 가득 차 있는 그림, 우아하고 부드러운 필치... 근대최대의 색채 화가이자 인상파의 대가였던 르누아르, 죽는 그 순간에도 그의 손은 평생 지병으로 앓아오던 만성 류머티즘으로 오그라질대로 오그라져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신체의 장애도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을 식힐 수는 없었다. 그는 끈으로 붓을 손에 묶어 죽는 순간까지 그림을 그렸다.
일찍이 그의 예술적 재능을 알아챈 부모는 그가 13살 되던 해 그를 도자기 공장에 보내 회화 훈련을 시켰다. 그러던 1862년, 본격적인 회화 훈련을 위해 에콜 데 보자르의 야간부에서 소묘 및 해부학 강의를 듣던 중 시슬레와 모네 및 바지유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르누아르는 사물의 윤곽이나 얼굴 등이 희미해지는 ‘인상주의’ 기법에 의문을 갖기 시작, 1880년대 중엽부터는 인상파와 결별하고 초상화와 인물 등 좀더 엄격하고 형식적인 기법을 적용한 여인상에 관심을 갖고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 ‘물렝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피아노 앞의 아가씨들’ 등을 비롯해 ‘목욕 하는 여인들’ ‘우산’ ‘테라스에서’ 등이 있다.
1912년 발칸제국과 터어키 휴전(터어키 불가리아 세르비아 3국간 휴전조약 승인)
1908년 기독교청년회관(YMCA) 개관식 거행
1904년 이준 나유석 윤효정 등 공진회 설립
1894년 영국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사망
1884년 인도의 초대 대통령 프라사드 출생
1879년 에디슨 전등 발명
에디슨은 좀더 밝고 안전한 빛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열심히 연구하였으나 그러나 전구 안에서 빛을 내는 재료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였다 에디슨은 1600종류의 여러 가지 재료들을 사용하여 실험해 보았지만 모두 실패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에디슨이 턱을 괴고 생각하고 있을 때, 소매 끝의 무명실이 램프불에 타서 숯처럼 까맣게 된 것을 보았다. “이가늘고 긴 실을 연결해서 유리 안에 넣으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작은 전구 안에 실을 넣고 불을 켰다. 전등은 2~3일이 지나도 계속 빛났다. 그리고 연구소 정원에 있는 모든 나무에 수백 개의 전등을 설치하고, 스위치를 올리자 수백 개의 전등이 대낮같이 환하게 정원을 비추었다.
1869년 초대 부통령 이시영 출생
1779년 독일 작가 브라이팅거 사망
1753년 영국의 발명가 크럼프턴 출생. 뮬 정방기(精紡機) 발명
1522년 1622년 3월 12일 성인으로 추증된 근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선교자 하비에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