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민탈출, 면천이란?
조선시대에 노비나 천민으로 태어났다면 생각만해도 살기 싫어질만큼 암울해질 것같다.
특히 사람대접을 못받아 명이 아닌 구(입 구)로 세며 폭행과 온갖 착취에도 보호를 받지 못하고 그저 울며 삭혀야 했기에 또한 그러한 굴례가 세습되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천민을 벋어나 자유를 얻은 이들도 있었다.
인물들은 가공이지만 면천에 성공한 10명의 사례를 들어 면천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의병되어 나라구해 면천
외거노비 담사리와 언분의 아들인 돌출이는 주인인 조대감을 모셨다.
조대감은 왜란이 터지자 재산을 들고 가족과 북쪽으로 도망갔다.
돌출이는 동료 노비들과 마침 봉기한 지역 의병부대에 들어갔고 전장을 누볐다.
막일로 다져진 건장한 체격과 용맹으로 왜적을 물리친 공로로 의병부대의 든든한 선봉장이 되었고 이는 조정에도 보고된다.
조정은 더 많은 이들이 의병에 가담시키고 나아가 왜적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돌출이를 면천시키고 상을 내렸다.
심지어 성씨와 그럴듯한 이름인 김응수라는 이름도 하사했다.
이런 식으로 전쟁에서 공을 세우면 면천될 수 있었다.
이시애의 난, 이괄의 난때도 공을 세운 노비들이 면천되어 관직에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 군공면천이라 했다.
도둑잡아 면천
천민인 덕용은 평소보다 깊은 산 속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가 은밀한 골짜기에 들어가게 되었고 우연히 산적들의 은신처를 발견하게 되었다.
굴러내려가듯 산 길을 내달려 이를 관아에 알렸고 관군에게 길을 안내해 산적일당을 잡는 공로로 면천되었다.
이같이 도둑을 잡아 면천시키는 것을 포도면천이라 했다.
세종당시 법률로 제정됬지만 이후 제대로 지켜지진 않아서 그냥 면포 몇필을 주는 것으로 퉁쳤다.
효자라서 면천
효를 중시하던 조선에선 효자,효녀를 발굴하고 미담을 널리 알리려 했다.
마침 용인 땅에 천민인 호식은 소문난 효자였고 병든 어머니를 위해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이고 설산에 올라 2달 만에 밤낮으로 헤매어 산삼을 캐어 어머니를 고친 미담이 조정에 까지 알려졌다.
예조에서 호식이의 미담을 선정했고 곧 큰 상이 내려졌다.
그의 집 앞에 효자문이 세워지고, 세금과 부역이 면제되었으며 쌀과 옷감이 내려지고 면천되었다.
재주가 빼어나서 면천
부산진 관아의 통인 (심부름꾼)인 수복이는 어려서부터 눈썰미가 좋아 뭐든 똑같이 그려내고 또한 한번 본 동작을 그대로 따라해 기술을 오직 눈썰미로만 완벽히 익혔다.
수복이의 명성은 조정에도 들리게 되어 수복이를 한양으로 불러들인다.
공조판서의 입하 아래 능력검정 시험이 이루어졌고 과연 모든 과제를 완벽하게 해결했다.
수복이는 곧 면천되었고 벼슬길에 올라 공조에서 크게 활약했다.
이는 예술 분야에도 적용되어 그림,서예에 뛰어나도 면천되었다.
오래 살아서 면천
개성의 전대감 댁엔 나이많은 노비 갑돌이 있었다.
갑돌은 나이가 너무 들어 일에서 물러난 뒷방 늙은이였는데 80세가 되는 해에 면천되어 양민이 되었다.
80이 되면 천수를 누리기 힘든 나이라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사가면 면천?
종구는 전라도 남원 땅에 사는 천민으로 이집 저집에서 품삯을 받고 일을 해주는 머슴이었다.
그러던 중 사민면천이란 걸 알게된다.
춥고 거친 북쪽 지역으로 이주하면 땅도 주고 면천도 시켜준다는 내용이었다.
종구는 바로 이주를 신청했고 함경도 회령 지역으로 가 자신의 농지를 얻고 천민에서 양인이 되었다.
비록 날씨가 거칠고 추웠지만 더 나은 삶을 꾸려나갔다.
돈을주면 면천 시켜 준다고?
금쇠는 고기를 파는 천민이었으나 수완이 좋고 성실하여 가게를 크게 키웠고 부업으로 가죽용품을 만들어 크게 성공했다.
금쇠는 곧 지역에 실력자가 되었다.
금쇠는 아예 납속을 통해 값을 치루고 면천되었다.
몇 해후엔 공명첩을 사서 아예 양반이 되었다.
조선후기로 갈수록 신분제에 동요가 생기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실력있는 양민,천민들이 부를 축적하였고 납속을 치루어 자유를 얻었고 공명첩을 사면 양반의 지위까지 살 수 있었다.
노비문서를 불태워라
함이는 역참에서 말을 돌보며 역졸들의 잔심부름을 하는 젊은 공노비였다.
말똥이나 치우며 사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중 나라에 큰 변란이 일어났다.
역졸들은 진작에 도망쳤고 역참엔 갈 곳없던 함이 혼자 남았는데 다른 노비들이 횃불과 몽둥이를 들고 어디론가 몰려가는 것을 보고 물으니 관아에 노비문서를 불태우러 간다했다.
함이도 이들을 따라가 노비문서를 태우고 멀리 도망쳐 살았다.
정식적인 방법은 아니었지만 노비문서를 불태우면 당시로선 노비였다는 기록이 소실되는거라 멀리 도망가서 적당히 숨어지내면 자유를 얻을 수있었다.
조상님이 알고보니 양반?
범식은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형에 의해 키워졌으나 형마저 사고로 요절하여 절에 들어가 머리를 밀고 승적에 이름을 올렸다.
조선시대 당시 승려는 천민이었기에 범식도 천민이 되었다.
떠돌이 승려가 되어 시주를 받으려 마을을 돌아다니던 중 누군가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범식을 왠 양반 무리에게 데려갔고 양반들은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자초지총을 설명했다.
알고보니 범식의 조부와 부친은 본래 벼슬아치였으나 운명의 장난으로 역적으로 몰렸고 형제들과 목숨을 잃었다.
난리 가운데 그의 어머니가 필사의 탈출로 먼 산골 오두막에 숨어들었고 어린 형제들에게 가문의 비밀을 숨켰던 것이었다.
진실이 밝혀져 조부와 부친의 명예가 회복되었고 문중은 수십 년 동안 범식 일족의 생사를 찾아헤맸다.
범식은 그렇게 신원을 회복하고 면천되었다.
남편 잘 만나 면천
숙이는 백정의 딸이었다.
어느 날 물을 긷고 있는데 왠 꾀재재한 떠돌이 사내가 와서는 물을 청하니 물을 준 인연으로 집까지 오게되었고 과객에서 아예 숙이의 남편이 되었다.
일을 해본적 없는지 봉숙의 남편은 밥만 축낸다고 장인,장모에게 구박을 당했지만 숙이는 남편을 감쌌다.
어느 날 남편이 관아에 가서 납품을 하러갔다 소식이 끓겼다.
숙이는 목이 빠지게 기다렸는데 하인들을 이끌고 비단 옷을 입은 채 남편이 돌아왔다.
알고보니 남편은 귀양 중 목숨에 위험을 느껴 도망친 양반이었고 반정이 성공하여 신원을 회복하였다.
숙이는 행여 남편이 자신을 버리지 않을까 슬퍼했으나 남편은 왕께 조강지처를 버릴 수없음을 탄원하였고 왕의 은혜로 숙이는 물론 장인, 장모까지 모두 면천되어 양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