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은 95세 청년
이 재 곤
형님이 혼자 되신 지 10여 년이 흘렀다 어떻게 지내시는지 항상 걱정이고 신경이 쓰인다. 안부를 묻는 전화는 자주 통화하고 한 달에 한두 번은 찾아뵙는데 이번은 약 2달 만에 고령군 대가야읍에 살고 계시는 형님댁을 방문하려고 미리 약속한 날 대구 서부 시외버스 주차장으로 나가서 버스에 올랐다.
아침나절이라 햇볕이 반쯤 비추고 기온도 높지 않아 날씨로 인한 불편한 점은 없었으며 대가야읍으로 나가는 도로변은 완연한 여름 풍경인데 산은 녹음이 짙어질 대로 짙어졌으며 들판은 모내기가 끝나 벼가 잘 자라고 있어서 마음속으로 풍요로운 가을을 기대하게 한다. 도로변에 조경사업으로 심어 놓은 배롱나무(백일홍)는 꽃을 한창 피우기 시작해 자연의 빛을 발산하고 산기슭의 자귀나무꽃도 만발해 마치 공작새 여러 마리가 깃털을 세우고 있는 형상이라 모처럼 만에 도시 외곽의 여름 풍경을 느긋이 감상하며 평온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갔다.
대구 서부 시외버스 주차장을 출발하고 1시간쯤 지나 형님댁에 도착해서 인사를 드렸다. 형님은 아파트에 사시는데 집 안을 언제나 깨끗하게 정리해 놓으시고 사셨다. 누가 보더라도 95세 남자 노인이 혼자 생활하는 집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잘 정돈해 놓고 계셔서 한편으로는 보기가 좋고 안심이 되며 한편으로는 혼자서 살아가시는데 모든 일에 익숙한 모습이 안타깝고 애잔하기도 하다.
잠시 거실에 앉아서 지난 몇 달 동안의 여러 소식을 이야기 주제로 대화하는 사이 점심시간이 되어서 외식을 할까 하다가 밖이 더워서 간단히 배달 음식을 시켜 먹기로 했다. 전화로 중국 요리 식당에 잡채밥 2인분을 주문했는데 잠시 후에 배달되어 식탁에 차려서 식사를 같이하며 지켜보니 형님은 식사를 나보다도 먼저 맛있게 다 드셔서 한결 마음이 놓였지만 한 편으로는 가족이 정성 들여 조리한 따뜻한 음식이 그리울 것 같았다.
식사 후에 TV를 잠시 시청하다가 즉석커피를 타서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 가셨다. 형님은 평상시에 이야기할 상대가 없으니 모처럼 만에 나를 만나 여러 가지 내용을 줄줄이 이야기하시는데 큰조카 내외가 반찬과 음식을 장만하여 자주 방문하는 이야기와 현재의 건강 상태와 건강 관리에 관한 이야기부터 하셨다. 몸이 불편할 때 병원 치료를 받으시는 이야기와 복용하는 약 종류를 설명하시고 자가 치료하시는 약과 재료를 보여 주시며 열심히 경험담을 말씀하시는데 몇 가지 내용은 여러 번째 반복해서 하시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야기 중에 가슴을 저며오는 말은 만약에 앞으로 많이 아프거나 부자유스러우면 이제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가는 수밖에 없다고 단정하시는 말씀이었다.
형님은 대구에 사시다가 이사하시면서 고향 본가로 안 가시고 대가야 읍내 아파트에 거주하시니 의원방문 진료 및 치료나 약을 사 먹을 수 있고 간단한 음식이나 생활필수품을 쉽게 살 수 있는 점 등이 편리하다고 하셨다.
만날 때마다 빠지지 않고 하시는 걱정은 문중사(門中事)에 대한 이야기다. 형님은 수십 년을 문중의 유사(有司)와 회장을 맡아 대소사(大小事)를 집안일보다 우선하여 처리하여 오셨으니 연세가 많으셔서 현재는 맡으신 직책이 없으셔도 걱정하며 변함없이 마음에 두고 계신다.
문중의 일을 잊지 못하시는 이유는 과거에는 고향에 일가가 많이 살고 있어서 문중 일 챙기기가 나름 용이(容易)하였으나 지금은 세대(世代)가 바뀌어 웃어른들이 세상을 뜨시고 아래 항렬(行列) 젊은이들은 직장 따라 멀리 타향으로 이주하였기 때문에 선산(先山) 관리나 시제(時祭) 모시기가 어려운 여건에 처하게 되었기 때문으로 여겨지지만 신통한 대책은 마련하기가 어렵다.
형님은 책꽂이에 족보(族譜)와 선조님의 문집(文集)과 실기(實記)를 가까이 꽂아두고 조상님 모시듯 하시며 수시로 펴서 보시면서 나에게나 자손들에게 조상에 대하여 일러주시는 등 남다른 숭조돈목(崇祖敦睦)과 애족심(愛族心)을 가지신 분이신데 갈수록 후손들은 관심이 없으니 안타깝게 여기시고 종이에다 손자들의 이름을 써서 책상 앞 벽에다 붙여 두셨다. 손자가 많다고 하지만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어서 얼굴을 마주하는 기회가 없어 못 보시니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외우며 마음속으로는 손자들이 잘되기를 기원(祈願)하시는 것이 아니실까 생각되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연세가 많아지고 조용한 시간이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자손들 생각이 아닐까? 형님도 자손들이 모두 생활이 바쁘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항상 염려되시고 은근히 전화라도 자주 통했으면 하는 눈치가 보였다.
겨우 몇 시간을 형님을 만나서 한자리에서 식사를 같이하고 이야기를 듣고 나누며 많은 것을 느꼈다.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연세에도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시므로 아직은 병원 입원할 일이 없고 거동에 수발을 안 들어도 되니 자손들과 친척들의 마음에 부담을 덜어 주심은 모두가 본받아서 우리도 앞으로 겪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누가 예견했으랴! 형님이 세는나이로 95세인데 청년같이 사실 줄을! 버스 시간에 맞추어 귀가 해야 하므로 아쉬운 마음을 다독이며 또 시간을 내어 방문하겠다고 인사를 드리고 형님댁을 나왔다. 버스를 타고 귀가 하는 동안 형님의 여러 가지 외로운 일상생활의 이야기가 생생히 맴도니 마음이 아려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