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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강 성령의 영분별의 은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세계가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가 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다.
영적인 것을 인정하지 않는 유물론(唯物論, Materialism)은 세상의 근본은 물질이며, 심지어 정신이나 의식까지도 물질적 존재와 과정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다 물질적인 것으로면 해석 할 수는 없다.
모세처럼 일본의 마코 공주는 일반인과 결혼하면서 왕족의 지위와 모든 물질을 포기해야만 했다.
물질보다 사랑을 택한 것이다.
또한 유물론은 도덕이나 선악의 문제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힘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사회에 이익을 가져온다면 그것은 도덕적으로 옳은 일일까? 다수가 동의한다면 부당한 행동도 선한 행동이 될 수 있는가?
아말렉을 몰살하고 그들의 재물을 챙긴 사울처럼,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단순히 물질의 많고 적음으로 판가름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반면에 기독교는 선과 악의 궁극적 기준을 하나님의 성품과 뜻에서 찾는다.
(미가 6장 8절)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분명히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인 것이 존재하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역시 보이지 아니하는 것으로 지어졌다.
(히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그래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보이지 아니하는 세계인 것이다.
(고후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보이지 않는 것 다시 말해 영적인 것이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영적인 세계에는 선한 것만 있으면 좋은 데 악한 것도 함께 공존한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성령님께서는 이것들을 분별하러 성도들에게 영분별의 은사를 주셨다.
본과에서는 성령님의 은사 중 영분별의 은사에 대하여 보다 자세히 알아 보기로 한다.
1. 영분별의 은사란 무엇인가?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많이 보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보는 것이며, 많이 듣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분별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조건 믿으라고만 말씀하지 않는다.
(요일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세상의 훌륭한 가르침이나 교훈들이 많지만, 하나님께 속하지아니 한 것들은 다 비진리이고 그것들을 옳다고 가르치는 자들은 거짓 선생들인 것이다.
그럴싸 하다고 다 믿지 말고 그 교훈이 참된 지 성도들이 영적 분별해서 받아 들이라는 말이다.
성령님께서는 그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 지 분별하도록 영분별의 은사를 주셨다.
(고전 12: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영분별의 은사(恩賜)란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로, 어떤 영적 현상이나 가르침, 예언, 말과 행동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사람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악한 영의 역사와 관련된 것인지 분별하도록 돕는 은사이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성경 말씀으로 시험하였다.
(마 4: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마 4: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이때 무턱대고 성경에 그런 말씀이 있었지 하면서 뛰어 내렸다면 어떻게 되셨을까?
성경구절로 장난을 쳐서 십자가의 대속으로 죽으셔야 하는 구원자를 헛되게 죽게 하려는 의도까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답변하셨다.
(마 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성경구절이라고 무턱대고 ‘아멘’해서는 안된다.
이단들은 성경 구절가지고 장난을 쳤고 성도들의 영혼을 도둑질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 지 아니면 마귀로부터 왔는지 분별해야 한다.
우리는 살리려는 말씀인지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말인지 분별해야 하는 것이다.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으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이를 이미 간파하시고 물리치신 것이다.
영분별의 은사는 단순히 사람의 속마음을 알아맞히거나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아내는 능력이 아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영적인 것들을 바르게 판단하고, 교회와 성도를 진리 안에서 보호하도록 주시는 은사라는 사실이다.
2. 영분별의 은사가 필요한 이유
①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기 위함이다.
성경은 모든 영을 무조건 믿지 말고 분별하라고 가르칩니다.
(요일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교회 안에는 성경을 인용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가르침을 전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골방에 가서 은밀하게 기도하라는 성경구절을 내세워, 통성기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목사가 있다.
심지어 부흥회 때 통성기도 하는 성도를 옆에 가서 뜯어 말리는 자들도 있다.
간절하게 부르짖음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집에 불이나 내 자식이 죽게 생겼는 데 얌전하게 앉아 있으라???”
어떨때는 간절히 부르짖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성경은 절대로 이 구절에서 대조법을 사용하지 아니하였다.
(마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말씀을 자세히 보면 은밀히 기도해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고 결론 짓고 있다.
그러나 거짓 선생들은
“골방에서 조용히 기도하면 되니까 통성기도 하지 말라.”
잘 나가다가 결론을 이상하게 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성경 말씀들이댔다고 해서 일차원적으로만 볼게 아니라, 영적으로 성도를 살리는 말씀인지 아니면 죽이는 독인지 분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가르침이든 성경의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비추어 살펴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신비한 현상이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역사라고 단정해서도 않된다.
바로의 술사들이나 말세의 거짓 선지자가 표적을 행하였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계 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복지를 많이 한다고 해서 그의 가르침이 다 참인 것도 아니다.
테레사 수녀는 버려진 고아들을 살리는 아동복지 시설을 했지만, 그의 고백은 하나님이 과연 살아 계신지 모르겠다고 했다.
예수님으로 옷 입고 예수님으로 등불을 비추어야 하건만, 세상에서 자신을 잘 꾸미기 위하여 복지로 옷을 입고 있는 경우가 많다.
② 성령의 역사와 인간의 감정을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기도 중에 특정한 생각이 떠올랐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성령의 계시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당하고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다르게 생각하였다.
(마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말씀과 일치하는지, 그 나중 열매가 어떠할지, 교회 공동체와 하나님 나라에 득이 될지
영분별을 통해 지혜롭게 살펴야 한다.
③ 악한 영의 미혹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영분별이 있어야 함.
사도행전 16장 16~18절에는 바울이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을 만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 여종은 바울 일행에 관해 사실을 말을 했지만,
바울은 ‘예 데려다 쓰면 교회 금방 부흥하겠네’ 한 것이 아니다.
그 배후의 영적 문제를 분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영을 쫓아냈다.
이 사건은 겉으로 드러나는 사실만 보고 무조건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 배후와 이후에 교회가 맺을 열매를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영분별의 은사를 통해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을 위한 일이 될 것인지, 아니면
마귀로부터와서 세상으로 타락시킬 것인지 똑바로 분별해야만 한다.
(살전 5: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살전 5: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영분별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기도하며, 진리를 확인하는 태도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경우에는 그것이 좋은 모양을 가졌다 할지라도 취해서는 안된다.
대표적인 게 전도한다고 마술하는 경우라든지,
교회에서 연말연시에 예언의 종을 불러서 토정비결을 봐준다든지,
지역의 발전과 화합을 위하여 사찰 콘서트에 귀빈으로 참석한다 든지,
신천지는 포교를 위하여 성까지 이용하라고 하고 있다고 한다.
3. 성경에 나타난 영분별의 사례
① 사도 요한의 영분별 가르침
사도 요한은 요한 일서 4장에서 영이라고 다 믿지 말고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분별 하라고 가르친다
(요일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요일 4: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이것은 영분별의 은사를 통해 영지주의를 대적하라는 말씀이다.
계속해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라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율법주의를 분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속한 것인지 분별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요일 4: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영분별은 영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생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잘 분별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영적인 주장이라고 한들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고, 성경의 진리들과 구원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바른 신앙으로 인도하는 지 잘 분별해서 받아 들어야 하는 것이다.
② 모세ㅡ 놀라운 표적을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믿지 말라
모세는 어떤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표적과 기사를 보이더라도, 그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거나 다른 신들을 따르도록 유혹한다면 그를 죽이라고 경고한다.
(신 13: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신 13:2)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신 13:3)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신 13:4)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며 그를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며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를 의지하며
(신 13:5) 그런 선지자나 꿈 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에게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게 하려 하며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령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어떠한 표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다.
표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도록하는 도구일 뿐 하나님의 말씀을 누르고 그 위에 설 수는 없다.
이 사실은 영분별 은사를 활용할 때 매우 중요부분이기도 하다.
성경은 그 어디에도 놀라운 표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의 가르침이 무조건 참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먼저이고 복음이 먼저라는 사실이다.
설령 박태선에게 치유의 은사들이 많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의 피갈음 복음이 참일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는 구원에 실패 했으니 나의 피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
그렇다면 자신의 온 몸의 피를 뽑아 5천명에서 수혈을 해야지, 왜 성행위를 하는가?
예수 사랑인지 태선(마니,명석) 사랑인지 우리 마음 가운데 계신 성령님을 통해 분별해야만 한다.
③ 베드로 — 위선으로 포장된 거짓 헌신을 분별함.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땅을 판 돈의 일부를 감추고도 전부를 바친 것처럼 행동했지만, 베드로는 영분별의 역사를 통해 아나니아가 성령을 속였다고 꾸짖었다.
(행 5: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행 5: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행 5: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행 5: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베드로는 성령으로 한 부부의 헌신의 겉모양 뒤에 감추어진 거짓을 분별했다.
교회 안에서 겉으로 헌신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그 행동이 반드시 진실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까지 들여다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초대교회에 큰 두려움을 주었다.
(행 5: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교회의 외적인 성장이나 헌신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는 진실과 거룩함 위에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
영분별의 목적도 여기에 있다.
거짓을 찾아내어 사람을 망신 주는 것보다,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가도록 해야 하며, 거짓 없는 순결한 교회를 지키내는 것이 영분별의 목적인 것이다.
4.영 분별 은사의 차별성
성령으로부터 온 은사들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영분별의 은사만이 가진 독특한 특징들이 있다.
① 영분별의 은사와 능력행함의 차이
영분별의 은사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보다 영적 근원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 놀라운 일을 행하거나 특별한 체험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의 역사라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마태복음 7장 22~23절에서 예수님은 예언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능력을 행했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경고하셨다.
(마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능력 행함도 성령의 은사이다.
(고전 12: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천국에 들어옴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영분별의 은사는 그 현상을 무조건 하나님의 역사라고 받아들이지 않고 성경의 진리 안에서 성도들의 구원을 위하여 행하여 졌는 지를 분별하도록 돕는다.
성령의 은사는 교회가 기적과 표적의 놀라움을 주기보다는 말씀과 성령으로 교회가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도록 은사들이 잘 활용 되고 있는 지가 중요하다.
② 예언의 은사와 영분별의 은사의 차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그 메시지를 분별하는 것은 다르다.
고린도전서 14장 29절은 예언하는 사람의 말을 다른 사람들이 분별하라고 말하고 있다.
(고전 14: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예언의 은사는 교회에 덕을 세우고 말씀으로 권면하고 고난당하는 자를 위로하기 위함이다.
(고전 14: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영분별의 은사는 그 예언이 과연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을 높이는 것인지, 그 메시지가 성경에 어긋나지 않는지, 공동체를 세우고 위하는 것인지 분별해야 한다.
또한 영분별을 통해 그 예언이 거짓이나 가스라이팅의 요소가 없는지 살피고 분별해야 한다.
③ 영분별의 은사와 투시의 은사의 차이
투시는 보이지 않는 장면을 본다거나 어떤 사람의 숨겨진 상황을 보는 것을 말한다.
엘리사는 게하시가 한 일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왕하 5:26) 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
투시가 무엇인가를 보는 것이라면, 영분별의 은사는 나타난 그 현상의 영적으로 이것이 진리인지 분별하는 것이다.
우리가 항상 염두해 두어야 하는 것은 성령의 은사는 사람을 두려움에 빠뜨리거나 정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고 진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더욱 명심해야 할 것은 투시를 성도를 조정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사용해서는 결코 안된다.
내가 본 장면을 말함으로 이게 성도를 살리는 길인지 아니면 죽이는 길인지 범사에 헤아려 판단하고 말해서 득될 것이 없다면 침묵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수 있다.
영분별의 은사는 사람을 의심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여 하나님께 속한 것을 따르고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은사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