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의 유혹과 십자가
2024. 8. 4(주일낮예배) 요한복음 8:1-11
유대인이 기차를 타고 유럽을 여행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유대인은 청어 5마리와 약간의 빵을 꺼내어서 먹었다. 빵을 맛있게 먹으면서 간간이 청어를 먹었는데, 유대인은 청어의 몸통과 꼬리만 먹고 머리는 남겼다. 그리고 그 머리를 버리기 위하여 종이쌌다. 그런데 이 모습을 지켜보던 폴란드 사람이 왜 청어 머리를 종이에 싸고 있는가?를 물었다. 그때 유대인은 청어 머리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지기 때문에 아이주려고 싸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폴란드 사람은 그 청어 머리를 팔아라고 말한다. 그런데 유대인은 아이를 주기 위하여 남긴 것이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대답하자 안달이 난 폴란드 사람은 얼마를 주면 청어 머리를 팔 수 있느냐? 하고 물었다. 그때 유대인은 그러면 머리 하나에 10유로씩 50유로를 주면 팔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청어 머리를 50유로 주고 산 폴란드 사람은 그 자리에서 2개를 먹었다. 그렇게 청어 머리 2개를 먹은 폴란드 사람은 딱딱하고 맛도 없는 청어 머리를 50유로 주고 산 것은 너무 비싼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유대인에게 청어 머리가 50유로는 너무 비싼 것같소? 하고 말했다. 그 말에 유대인은 폴란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청어 머리 2개 밖에 먹지 않았는데 벌써 머리가 좋아지고 있군요.
청어 머리를 2개 먹은 폴란드 사람은 자기가 속았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지만, 유대인은 청어 머리를 먹었기 때문에 머리가 좋아진 것이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청어 머리를 팔아먹는 유대인이 똑똑해 보이는가? 마태복음 4장을 보면 공생애를 시작하는 에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한다. 그렇게 예수님이 금식하였을 때 마귀는 예수님에게 와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을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3)고 말한다. 그리고 두번째 질문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마 4:6)고 말한다. 마귀는 광야에서 40일동안 기도한 예수님을 찾아와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라는 말을 거듭하면서 돌이 떡덩이가 되게하고,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지금 마귀가 예수님께 요구하는 것은 증명해 보라는 것이다. 마귀는 네가 엄청나게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그 능력을 보여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천사가 와서 받아주므로 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누려보라는 것이다.
이것이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내용이다. 마귀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예수님을 향하여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능력을 너를 위하여 쓰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누려라 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귀는 세번째 질문으로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9절)고 말한다. 그래서 마귀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영애를 누리고 싶으면 나에게 절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 마귀의 시험에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 뭐가 그리 잘못되었는가? 하는 생각을 가질 것이다. 그런데 마귀는 내가 가진 능력으로 나를 위하여 사용하게 함으로 더 이상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걷지 못하도록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귀의 시험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여러분은 마귀의 이 시험을 이기고 있는가? 1971년 스탠퍼드 대학의 필립 짐바르도 (Philip Zimbardo) 교수는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을 한다. 이 실험은 2주 동안 진행할 것을 계획하고 일당 15달러를 주는 조건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남자 대학생 24명을 뽑았다. 그리고 무작위로 교도관과 수감자 역할을 맡겼다. 그래서 교도관은 교도관 옷과 무기, 그리고 선글라스를 지급하여서 수감자의 집에서부터 스탠퍼드 대학 지하에 모의 감옥으로 끌고 왔다. 그리고 실제 죄수처럼 알몸검사, 분말소독을 하고, 발목엔 쇠사슬을 달았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교도소 실험은 어떻게 되었겠는가? 첫째날의 사건만 읽어드리겠다.
교도관들은 자기들의 권위를 세우지 않으면 교도소 질서가 무너질 것이다고 생각하여 수감자를 압박한다. 그리고 반항하는 수감자 1명을 독방에 가두어 버린다. 그랬더니 1번방의 수감자들이 교도관들이 방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침대로 문을 막자, 교도관들은 2번방의 수감자들의 옷과 침대를 빼앗고 발가벗고 지내기 싫으면 1번방 죄수를 설득하라고 한다. 그러자 수감자들이 폭동을 일으키려 하자 소화기로 진압하고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3번방을 빼고 다른 방 수감자들의 침대를 다 빼앗아 버렸다. 그러자 죄수들은 3번방의 수감자들은 배신자라고 비난했고, 3번방의 수감자들은 결백을 주장하기 위하여 식사를 거부한다. 그리고 그날 밤 한명의 수감자가 탈옥을 시도하다 잡혀서 더욱 큰 압박을 하고, 이 탈옥범을 잡는데 도움을 준 수감자에게는 보상을 내린다. 그 내용을 영상으로 보기 바란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
교도관은 수감자들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일을 돕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교도관은 자신이 해야 하는 일보다 자신이 가진 교도관이라는 권리로 수감자들을 괴롭히는 일을 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스탠퍼드 감옥은 사람이 교화되는 곳이 아니라, 지옥이 된 것이다.
그런데 교도소를 지옥으로 만드는 교도관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없는가? 리어커를 끌고 가던 할아버지가 한 연예인의 고급 차를 긁는 사고가 있었다. 이것을 본 연예인은 자신의 돈과 명성으로 할아버지를 괴롭힐 수 있었지만, 그냥 가셔도 된다고 아주 친절하게 말한다. 자신이 가진 돈과 명성으로 할아버지를 섬기는 그 모습이 우리 사회에 감동을 주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돈이 조금 있다고 그것을 권력으로 삼아서 아파트 관리 아저씨를 무시하는 꼴사나운 일도 일어난다.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 그런데 마귀는 우리에게 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줄 아니?라고 하면서 그 대단한 권위와 능력을 자신을 위하여 쓰고, 또 누리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유혹에 넘어가서 권위를 자기를 위하여 쓰는 것을 똑똑한 삶이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도 그러한 삶을 똑똑한 삶이다고 인정해 주시겠는가?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8장은 초막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초막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왔을 때 예수님은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때 종교지도자였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온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이렇게 질문한다.
(요 8:4-5)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이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용서하라고 말하면 이들은 모세의 율법을 어긴다고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그 여인을 향하여 돌을 던지라고 하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당당신의 가르침과 다르다고 조롱할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지금 예수님이 처한 상황에 있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7절)고 말씀하신다. 그때 사람들은 양심에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다 떠나가 버렸다.
놀랍지 않는가?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토요일이면 학생들이 모여서 함께 성경을 읽고 나눔을 하였다. 그때는 성경이 세로글이었기 때문에 읽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집어가며 성경을 읽고, 그 후에는 나눔을 하였다. 그때 한 형님이 예수님 시대 사람들은 착하여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떠나갔다. 그런데 오늘날에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돌을 버리고 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시대가 더 악해졌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그래 요즘 세대는 악해서 자기 죄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아! 하면서 그 시대를 비판하였다.
그런데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게 아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제가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했다면 사람들은 네가 뭔데 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신 분이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지으시고, 또 말씀으로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그 능력의 예수님이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하였을 때 그 권위 앞에 자신의 죄가 드러나서 아무도 저항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예수님은 권위를 어디에 쓰고 있는가?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다 떠나가고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과 단 둘이 남았을 때 예수님은 여인과 이런 대화를 나눈다. 그 부분을 함께 읽기 바란다.
(요 8:10-11)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정죄하고 예수님을 시험하려 한 사람들을 예수님은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권능의 말씀으로 흩어지게 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권능으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권능의 예수님은 여인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또 그 여인이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심으로 바른 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을 주신 것이다.
이것이 초막절에 있었던 사건이다. 예수님은 6개월 전인 유월절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켰다. 그래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먹이고 남음이 있는 풍성함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초막절에는 절망과 두려움과 수치심에 가득한 한 여인을 구원하여 주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라고 말씀하심으로 그 여인이 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여 주신 것이다.
무슨 말인가? 예수님은 유월절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배고픈 사람의 배를 채우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내 보이셨다. 그랬던 능력의 예수님은 초막절에 절망과 수치에 가득한 여인을 구원하심으로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권능의 예수님은 그 능력으로 예수님의 힘을 과시하고 누리는 삶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먹이고, 또 구원하시는 일에 사용하셨던 것이다.
이것이 십자가의 길인 것이다. 십자가의 길은 나에게 주어진 힘과 능력으로 많은 사람을 긍휼히 여김으로 섬기는 길이고, 또 죄인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구원하는 일에 수고하는 것이 십자가의 길인 것이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그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는가? 피츠버그 제일장로교회에서 사역하는 브루스 틸만(Bruce Thielman) 목사님에게 한 여집사님이 찾아왔다. 그리고 목사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여집사님은 현대교회는 희생하거나 섬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러낼 때가 되면 늘 대야신학에 빠지고 맙니다 는 말을 하였다. 그 말을 들은 틸만 목사님은 고개를 꺄웃했다. 왜냐하면 목사님도 신학을 공부하고, 또 신학서적을 많이 읽었지만 대야신학이란 말을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집사님에게 대야신학이 뭡니까? 하고 물었다.
그때 여집사님은 대야신학을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날 밤에 대야를 가지고 오라 하였다. 그리고 그 대야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었다. 다음 날이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할 그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또 다른 대야가 나온다. 예수님이 재판을 받을 때 빌라도는 예수님의 죄없으심을 알았다. 그런데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군중의 소리를 듣고 빌라도는 대야를 가지고 오라 한 후 그 대야에 손을 씻는다. 그렇게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마 27:24) 고 말한다.
그러면 지금 여러분 앞에 대야가 있다면 그 대야는 어떤 용도로 쓰이고 있는가? 내게 주어진 책임을 회피하는 대야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허물을 덮고 용서하는 대야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준 지혜와 힘과 능력을 바르게 사용하는 복된 삶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