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35장 삼지三止
무릇 도를 닦고자 하면 먼저 지止를 수행해야 한다.
지란 편안하고 조용히 하며 그치고 고요히 하여 선정에 드는 것이다.
첫째는 계연지繫緣止,
둘째는 제심지制心止,
셋째는 체진지體眞止이다.
대개 모든 선문의 공덕은 다 안으로 안정된 데서 생기는데,
지는 마음을 제어하고 산란함을 그침으로써 안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경에서 “제어하여 한곳에 모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34)고 하였다.
이런 까닭에 지는 선을 닦는 첫 번째 문이다.
33)『佛垂般涅槃略說敎誡經』(T12, 1111a).
34)『佛垂般涅槃略說敎誡經』(T12, 1111a).
사람들의 스승이 된 자가 만일 도안道眼을 얻은 뒤 근기를 관찰하고 법을 가르쳐 준다면 반드시 본습本習을 북돋우고 대치하는 법을 잘 알 것이다.
본습이란 숙세에 익힌 것이다.
그가 익혔던 것을 바탕으로 법을 가르쳐 주면 공부가 쉽게 이루어진다.
사리불은 근기와 인연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금사자金師子35)에게 부정관不淨觀을 가르치고, 완의자浣衣子36)에게 수식관數識觀을 가르쳐, 오랫동안 익혀도 아무런 효과가 없고, 도리어 사견만 생기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래께서는 한번 보시고 서로 바꾸어서 수행하도록 가르쳐, 곧 도를 이루게 하셨다.37)
이것을 본습을 북돋우는 것이라 한다.
35)금사자金師子 : 쇠를 다루는 일을 하는 종족이나 그런 집안 출신을 가리킨다.
36)완의자浣衣子 : 세탁 일을 하는 종족이나 그런 집안 출신을 가리킨다.
37)『大莊嚴論經』 권7(T4, 293b)에 비슷한 내용이 있긴 하나 등장인물이 다르다. 『대장엄론경』에는 사리불이 목련으로 여래가 사리불로 표현되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존자 목련에게 두 제자가 있었는데, 오로지 선을 배웠지만 증득하는 바가 없었다. 한번은 존자 사리불이 목련에게 물었다. ‘저 두 제자는 수승한 법을 얻었습니까?’ 목련이 대답했다. ‘얻지 못했습니다.’ 사리불이 다시 물었다. ‘당신은 어떤 법을 가르쳤습니까?’ 목련이 대답했다. ‘한 사람에겐 부정관을 가르치고, 다른 한 사람에겐 수식관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이 꽉 막혀 깨닫지를 못합니다.’ 이때 사리불이 목련에게 물었다. ‘저 두 제자는 어느 종족에서 출가했습니까?’ ‘한사람은 세탁 일을 하던 사람이고, 한 사람은 대장장이 출신입니다.’ 그때 사리불이 목련에게 말했다. ‘대장장이였던 사람에겐 수식관을 가르쳐 주어야 하고, 세탁 일을 하던 사람에겐 부정관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목련이 그 법대로 제자를 가르치자 그 두 제자는 곧 부지런히 닦고 익혀 아라한과를 얻었다.”
나머지 사람들, 즉 도의 안목이 없고 근기를 알지 못하는 스승일 경우엔 모름지기 먼저 지止의 문부터 가르쳐야 한다.
그리하여 번뇌의 생각들이 점차 잦아들고 도의 마음이 점차 늘어나면 곧 홀연히 선정 가운데에서 선과 악의 근성이 일어나게 된다.
선근이 일어날 때에는 그 나타난 근성에 따라 본습을 북돋워서 닦고, 악의 경계가 나타날 때에는 많은 것부터 대치해 없앤다.
이러한 까닭에 지의 문은 후세 사람들에게 법을 가르쳐 주는 바른 뜻이 된다.
진실로 그렇지 못할 경우 선과 악의 근기를 분별하기가 어려워 인연에서 벗어나는 실수를 저지를까 걱정된다.
첫째는 계연지繫緣止이다.
‘계繫’란 마음을 한곳에 붙들어 두어 이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마음을 매어 두는 곳에 대략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마음을 정수리에 매어 두는 것이고,
둘째는 마음을 이마 끝단에 매어 두는 것이며,
셋째는 마음을 콧등에 매어 두는 것이고,
넷째는 마음을 배꼽 사이에 매어 두는 것이며,
다섯째는 마음을 발바닥에 매어 두는 것이다.
(첫째) 마음을 정수리에 매어 두는 것은 다음과 같다.
마음이 어둡고 가라앉으면 잠이 많아지므로 머리 위쪽에다 마음을 안치한다.
그러나 오래 하면 사람의 기운을 들뜨게 해 갑자기 중풍이 든 것처럼 되기도 하고, 신통을 얻어 날 것만 같기도 하니 항상 사용해서는 안 된다.
(둘째) 마음을 이마 끝단에 매어 두는 것은 다음과 같다.
여기는 머리털은 검은색이고, 살은 흰색이어서 마음이 머물기 쉬우며 숙세에 익힌 백골관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래 하면 눈이 위쪽으로 쏠리기 쉽고, 혹은 꽃이나 구름 같은 노란색, 빨간색 등이 보여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전도시키니, 또한 항상 사용해선 안 된다.
(셋째) 마음을 콧등에 매어 두는 것은 다음과 같다.
코는 바람이 드나드는 곳이다.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이 찰나찰나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지각하면 무상을 깨닫기 쉽다.
또한 숙세에 안반安般을 익혔던 것을 북돋워안安은 생生이고 반般은 멸滅이다.
안반이란 수의삼매守意三昧로서 호흡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마음이 고요해져 능히 선정을 일으킬 수 있다.
(넷째) 마음을 배꼽 아래에 매어 두는 것은 다음과 같다.
배꼽은 기의 바다(氣海)이며, 또한 중궁中宮이라고도 한다.
마음을 배꼽에 매어 두면 여러 가지 병을 없앨 수 있고, 혹은 안으로 서른여섯 가지 물질을 볼 수 있어 십육특승 등의 선정이 생긴다.
(다섯째) 마음을 발바닥에 매어 두는 것은 다음과 같다.
발은 가장 아래에 있어서 기운이 마음을 따라 내려가면 사대가 조화로워지고, 또 숙세에 익힌 부정관을 북돋우게 된다.
이 다섯 곳을 대상으로 삼아 마음을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
비유하면 원숭이는 뛰어오르고 건너뛰고 집어 던지며 잠시도 조용히 있을 때가 없지만, 만약 기둥에 매어 두어 오래 지나면 저절로 길드는 것과 같다.
마음 또한 이와 같다.
마음이 멈추어 머무르긴 했으나 아직 선정에 들어가기 전인 때에, 다시 하나의 지가 있으니
이것을 응심지凝心止라고 한다.
만약 선정에 들어가 몸과 마음이 모두 사라진 듯 자유자재하고 저절로 고요해지면 이것이 곧 선정에 들어간 지이다.
둘째는 제심지制心止이다.
마음은 형체와 색깔이 없고 일정하게 머무는 곳도 없는데 어찌 경계에 매어 둘 수 있겠는가. 이것은 허망한 생각으로 대상을 반연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반드시 그것을 억제해야 한다.
만약 마음이 고요하게 머무른다면 다시 억제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그저 그 마음을 집중하여 여러 어지러운 생각을 그치기만 하면 곧 이것이 지를 닦는 것이다.
만약 마음이 들뜨고 요동치면 의지로써 마음을 아래에 두어 그치게 하고,
마음이 가라앉으면 위에 두어 그치게 해야 한다.
여기서 아래에 두어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이익이 많으니,
첫째 마음이 쉽게 안정되고,
둘째 온갖 병이 생기지 않는다.
셋째는 체진지體眞止이다.
바른 지혜로써 음陰·입入·계界·삼독三毒·구십팔사九十八使·십이인연十二因緣·삼계인과三界因果 등 모든 법이 다 공적하다고 체득한다.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에 설한 것처럼,38) 색이 그대로 공이요, 색을 멸하여 공한 것이 아니다.
색의 성품이 스스로 공하니 공이 곧 색이고, 색이 곧 공이며, 색을 떠나서 공이 없고, 공을 떠나서 색이 없다.
수·상·행·식 등 일체 모든 법이 또한 이와 같다.
왜냐하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음·입·계 등의 모든 법은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아我·인人·중생衆生·수명壽命39) 등 일체의 전도된 생각을 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공이라는 것을 아는가?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모든 법은 다만 무명으로 전도되어 허망하게 헤아린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만약 허망하게 헤아려 생긴 법은 일체가 헛되고 거짓된 것이라 꿈이나 허깨비와 같고 이름만 있는 것인데, 이름이라는 법 또한 얻을 수 없음을 깨달으면 곧 말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의 작용 또한 없어지며 마침내는 텅 비고 고요하여 허공과 같아진다.
만일 수행자가 일체법이 허공과 같다고 체득하여 안다면 취하거나 버리는 것이 없고, 머무는 것도 집착하는 것도 없게 된다.
마음에 취하고 버리는 것이 없고 머물고 집착하는 것이 없으면, 곧 일체의 전도망상과 생사에 묶어 두는 업을 짓는 일이 모두 다 그친다.
하는 것도 하고자 함도 없고, 생각이나 행위도 없으며, 만들거나 짓는 것도 없고, 보여주거나 말함도 없으며, 논쟁이나 다툼도 없어서 텅 빈 듯이 청정해지니 마치 대열반과 같다.
이를 ‘참된 지(眞止)’라고 한다.
이는 그칠 바 없는 것을 그치는 것이요, 그침 없이 그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체진지이다.
38)내용을 요약 발췌한 것으로 『大品般若經』에 이와 정확히 일치하는 문장은 없다. 다만 『摩訶般若波羅蜜經』 권3 「相行品」 제10(T8, 237b)에 이와 비슷한 문장이 실려 있으므로 이러한 내용을 축약하여 인용한 듯하다.
39)아我·인人·중생衆生·수명壽命 : 흔히 아인사상我人四相이라 한다. 아상我相은 오온五蘊이 화합하여 생긴 몸과 마음에 실재의 아我가 있다고 여기거나 또는 아의 소유라고 집착하는 소견이다. 인상人相은 나는 인간으로서 축생 등과는 다르다고 집착하는 소견이다. 중생상衆生相은 내가 오온법에 의지하여 실재로 생겨났다고 집착하는 소견이다. 수자상壽者相은 생명체에게 일정 기간 유지되는 목숨이 있다고 집착하는 소견이다.
다음으로 지를 닦으면 오륜五輪이 발생하는 것을 증득한다.
오륜이란
첫째 지륜地輪, 둘째 수륜水輪, 셋째 풍륜風輪, 넷째 금사륜金沙輪, 다섯째 금강륜金剛輪이다.
‘윤輪’이란
구른다는 뜻으로 이곳을 떠나 저곳에 도착하는 작용이 있다.
예를 들면 지륜의 경우 낮은 곳을 떠나 굴러서 더 높은 곳에 이르고, 내지 금강륜은 굴러서 가장 높은 무학과無學果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윤이라고 한다.
지륜地輪이란 다음과 같다.
땅에는 머물고 지탱하여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 있고, 또한 만물을 생겨나게 하는 이치가 있다.
수행자가 지止로 인하여 미도지정을 증득하면 홀연히 마음이 맑아지고 몸과 마음의 상이 공한 것을 자각하여 텅 빈 듯이 선정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선정법이 마음에 유지되어 움직이지 않으므로 ‘머물고 지탱한다’고 한다.
미도지정으로 인해 초선의 여러 가지 공덕이 생겨나는 것이 땅에서 만물이 생겨나는 것과 같으므로
지륜이라고 한다.
수륜水輪이란 다음과 같다.
물은 윤택하게 적시어 생장시킨다는 뜻이 있고, 또한 체성이 유연하다.
수행자가 지륜의 단계에 있다가 수륜삼매를 증득하면 선정의 물이 마음을 적셔 주어 마음 가운데 선근이 늘어나고, 몸과 마음이 유연해지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만심을 꺾고 선법을 잘 따르기 때문에 수륜이라고 한다.
풍륜風輪이란 다음과 같다.
바람에는 허공을 돌아다녀도 걸림이 없다는 뜻이 있고, 또한 만물을 움직이게 하며 능히 파괴하는 이치가 있다.
수행자가 풍륜삼매風輪三昧를 얻으면 궁극의 깨달음과 비슷한 지혜(相似智慧)와 걸림 없는 방편(無礙方便)이 발생해 바람이 허공을 돌아다니듯 어디에도 걸림이 없게 된다.
이런 방편의 도로 세간을 벗어나는 여러 가지 선근을 일으키고, 또한 지혜의 방편으로 온갖 견해와 번뇌를 타파하므로 풍륜이라고 한다.
금사륜金沙輪이란 다음과 같다.
‘금金’은 참된 마음을 비유하고, 모래(沙)는 집착이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수행자가 견혜見慧40)와 사혜思慧41)의 참된 지혜를 일으키면 물들지도 집착하지도 않게 된다.
그리하여 삼도三道의 과果42)를 얻어 일체의 티끌과 같은 번뇌를 타파하므로 금사륜이라고 한다.
40)견혜見慧 : 삼혜三慧의 하나로 교법을 보고 들어서 얻는 지혜며, 문혜聞慧라 한다.
41)사혜思慧 : 깊이 고찰한 뒤에 얻는 지혜이다.
42)삼도三道의 과果 : 삼도는 성문과 보살의 수행 과정인 견도·수도·무학도의 세 단계이고, 과는 예류·일래·불환·아라한의 네 가지 과를 말한다. 이를 흔히 삼도사과三道四果라 한다.
금강륜金剛輪이란 다음과 같다.
금강은 체성이 굳고 작용이 예리하여 모든 물건을 부술 수 있다.
금강삼매金剛三昧도 이와 같아 망상과 미혹이 침범하지 못하고 모든 번뇌를 끊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이루게 한다.
만일 보살의 마음을 가졌다면 곧 이 금강과 같은 반야로 무명의 미세한 미혹을 타파하고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증득할 것이다.
또한 청정선淸淨禪이라고도 한다.
三止第三十五章
夫欲修道。先須修止。止者。安靜止寂
而入定也。一曰繫緣止。二曰制心止。
三曰軆眞止。蓋一切禪門功德。皆內定
中發生。止者。制心息亂。定而不動。經
云。制之一處。無事不辦。是故止爲修
禪之初門也。凡爲人師者。若已得道眼。
觀機授法。則必扶本習。善識對治。本習者。
宿世所習也。因其習而授法。則功夫易成也。 如舍利弗。不知機緣
故。敎金師子以不淨觀。敎浣衣子以數
息。久習無功。欲生邪見。如來一見。敎
令相換。即得成道。是謂扶本也。至如
餘人。旣無道眼。不識根機。則唯當先
敎止門。塵想稍歇。道心稍長。則忽於
定中。發善惡根性。善根發時。隨其所
現。扶本而修。惡境現時。隨其多者。對
治而除 是故止門。爲後世授法之正意
苟或不然。善惡根機。難可分別。恐致
差緣之失也。
第一繫緣止者。繫即住著於此。不使移
動也。略有五處。一者繫心頂上。二者
繫心髮際。三者繫心鼻柱。四者繫心臍
間。五者繫心在地輪。
繫心頂上者。爲心惛沈多睡故。在上安
心。然久則令人氣浮。乍如風病。或似
得通欲飛。不可恒用也。
繫心髮際者。此處髮黑肉白。心則易住。
或發本骨觀。然久則眼好上瞻。或見黃
赤等色。如華如雲。令人情想顚倒。亦
不可恒用也。
繫心鼻柱者。鼻是風門。覺出息入息。
念念不住。易悟無常。亦以扶本安般之
習。安者。生也。般者。滅也。安般者。守意三昧。觀息生滅也。 心靜能發禪
定也。
繫心臍下者。臍是氣海。亦曰中宮。繫
心在臍。能除衆病。或能內見三十六物。
發特勝等禪也。
繫心地輪者。此最在下。氣隨心下。則
四大調和。亦以扶本不淨觀也。
約此五處爲緣。令心不散。譬如猨猴。
騰躍跳擲。無時暫靜。若繫之於柱。久
久自調。心亦如是。若心停住。未入定
前。復有一止。名凝心止。若得入定。身
心泯然。任運自寂。即是入定止也。
第二制心止者。心非形色。亦無處所。
豈可繫之在境。但是妄想緣慮。故須制
之。若心靜住。何須更制。但凝其心。息
諸亂想。即是修止。若心浮動。可作意
下著止之。若心沈沒。可上著止之。而
下著安心。利益爲多。一者心易得定。
二者衆病不生也。
第三體眞止者。以正智慧。軆一切陰入
界。三毒。九十八使。十二因緣。及三界
因果。諸法悉皆空寂。如大品經中說。
即色是空。非色滅空。色性自空。空即
是色。色即是空。離色無空。離空無色。
受想行識等。一切諸法。亦皆如是。所以
者何。今現見陰入界等諸法。自性不有。
何能生我人衆生壽命等。一切諸顚倒
事。云何知空。過去心不可得。現在心
不可得。未來心不可得。當知諸法。但
是無明顚倒妄計。若了知妄計之法。一
切虛誑。猶如夢幻。但有名字。名字之
法。亦不可得。則言語道斷。心行處滅。
畢竟空寂。猶如虛空。若行者。軆知一
切法如虛空者。無取無捨。無住無著。
若心無取捨住著。則一切妄想顚倒。生
死業行。悉皆止息。無爲無欲。無念無
行。無造無作。無示無說。無諍無競。泯
然淸淨。如大涅槃。是名眞止。此則止
無所止。無止之止。名軆眞止也。
復次修止。證發五輪。一曰地輪。二曰
水輪。三曰風輪。四曰金沙輪。五曰金
剛輪。輪者。轉也。有離此至彼之功。如
地輪。因離下地。轉至上地。乃至金剛。
轉至無學極果。故名爲輪也。
所謂地輪者。地有住持不動義。亦有出
生萬物義。行者因止。若證未到地定。
忽然湛心。自覺身心相空。泯然入定
定法持心不動。故名住持。因未到地。
出生初禪。種種功德。事同出生萬物。
故名地輪也。
所謂水輪者。水有潤漬生長義。亦有軆
性柔輭義。行者於地輪中。若證水輪三
昧。則定水潤心。自覺心中。善根增長。
身心柔輭。折伏高心。隨順善法。故名
水輪也。
所謂風輪者。風有遊空無礙義。亦有鼓
動萬物義。亦能破壞。行者。得風輪三昧。
則發相似智慧。無礙方便。如風遊空。
一切無礙。以方便道。鼓發種種出世善
根。又以智慧方便。摧破一切諸見煩惱。
故名風輪也。
所謂金沙輪者。金譬眞心。沙喩無著。
行者。若發見思眞慧。無染無著。得三
道果。能破一切塵沙煩惱。故名金沙輪
也。
所謂金剛輪者。金剛。体堅用利。能摧
碎諸物。金剛三昧。亦復如是。不爲妄
惑所侵。能斷一切結使。成阿羅漢。若
在菩薩心。即是金剛般若。破無明細惑。
證一切種智。亦名淸淨禪也。
『선학입문』 禪學入門下卷(ABC, H0254 v10, p.917c01-919b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