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적 죽음
창3:9-19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한 번은 죽는 것입니다. 죽음이 캄캄한 밤중에 갑자기 도둑처럼 찾아올지(돌연사, 심장마비, 교통사고) 아니면 사전에 충분한 경고 끝에 서서히 찾아올지(시한부 인생, 불치의 질병) 모릅니다.
즉, 인생의 아침인 10, 20대 꽃다운 나이에 안타깝게도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생의 정오인 30, 40대 한참 일할 정년의 나이에 그만 애석하게도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인생의 석양인 60대 혹은 평균수명을 살고 나서 70, 80대에 자연사하거나 노환이나 지병으로 별세하는 경우 또한 허다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죽음은 기어코 찾아오고야 만다는 점입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 유·무식,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 바로 죽음입니다.
사망은 어느 날 갑자기 “멈추라!”는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이니 그 누가 감히 그 명령을 거역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히9:27).
1. 육체적 죽음의 정의
하나님이 처음 사람을 만드실 때 흙으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그 결과 흙으로 빚어진 사람은 생령이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2:7).
사람은 영과 혼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육체적 죽음이란 사람의 영혼이 그 신체로부터 분리되는 것입니다. 육체는 죽는 순간부터 부패하기 시작하여 상당한 시간이 경과하면 한 줌의 흙으로 변하고 맙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은 그 창조자이신 하나님 앞으로 가게 됩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12:7).
죽음은 나의 존재가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고 사랑스러운 가족이나 다정한 친구를 잠시 떠난 상태이며 그들과 일시적으로 헤어진 상황뿐입니다.
2. 죽음의 원인
죽음은 보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로 주어졌음이 분명합니다. 그 이유는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자마자 그 즉시 하나님의 공의로써 죽음의 징벌이 부과되었기 때문입니다(창3:19).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롬5:12).
이처럼 죽음은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이요(시90:7,11). 심판이며(롬1:32), 정죄요(롬5:16), 저주이며(갈3:13), 인간의 마음속에 무서운 공포와 두려움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육체적 죽음은 신체와 영혼이 서로 분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육체적 죽음은 근본적으로 영적 죽음의 결과로 주어집니다.
영적 죽음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상실되고 그 동안 누렸던 온갖 행복이 즉각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영원한 죽음이란 영육간에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육체적 죽음은 누구나 모면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영적 죽음이나 영원한 죽음을 겪지 않습니다.
3. 신자의 죽음의 의의
구원 받은 신자는 그의 모든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이 용서되었으므로 형벌 받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신자가 불신자처럼 죽어야 합니까? 어째서 아직도 죽음의 형벌이 집행되고 있는 것입니까?
이상의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먼저 신자의 죽음이 그들의 죄에 대한 형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죽음은 자신의 지은 죄에 대한 결과이며 하나님의 엄격한 공의에 근거한 심판의 형벌입니다. 반면에 신자의 죽음, 곧 의인의 죽음은 하나님이 정하신 영적 훈련과 징계의 절정으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징계는 공의를 만족시키려는 형벌과는 달리 죄인을 개선하시려는 동기를 가진 사랑의 매질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품게 하려는 일종의 교정 훈련인 셈입니다. 그러한 징계의 절정이 바로 신자의 죽음인 것입니다.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시116:15).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히12:6)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평소에 품던 안일한 생각과는 판이하게 다른 비장한 생각을 하게 마련이고, 죽음으로 인해 느끼는 그 외의 기타 감정 등과 그로 인한 모든 변화는 하늘나라에 합당하도록 신속히 영적으로 성숙시키려고 사용하시는 성령님의 강력한 성화의 방편들입니다.
4. 죽음에 대한 올바른 태도
참된 성도들은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2:14-15).
성도가 죽는 날은 영광스러운 천국으로 당당하게 들어가는 날입니다. 즉 죽음과 무덤은 인생의 앞길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를 은연중에 더 좋은 세계로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구원받은 신자가 죽음이나 무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죽음을 하나님의 섭리로 알고 순순히 응할 뿐만 아니라 그 같은 죽음을 적극적으로 갈망해야만 합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 우리는 천국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고 은혜 안에서 꾸준히 성장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직무에 충실하고 미래의 소망을 품고 장래의 활기찬 계획을 설계해 나가며 인생을 보다 보람되고 알차게 살아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후5:8).
5. 적용 및 교훈
하나님 앞에서 우리 각 사람의 일생 특히 수명과 죽는 날짜와 정확한 시간까지도 이미 작정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 누구도 자신이 죽는 날이 정확히 언제인지 모를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인생은 너나 할 것 없이 집행이 잠시 유예된 대기 중인 사형수와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죽음은 우리 각 사람의 신체적인 체험으로 조만간에 기어코 다가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때 가장 현명한 태도는 그 죽음을 회피하려고 발악하지 말고 당당히 정면으로 맞이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이 확실한 습격자 죽음에 대해서 항상 준비된 생활을 영위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언제나 경건한 신앙생활에 힘쓰고 범사에 오직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굳게 신뢰하며 거룩한 성화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벧후4:19;벧후3:11).
바로 그러한 사람만이 죽음 앞에서 사제나 마음이 조금도 흐트러지거나 동요하지 않고 평소와 다름없이 의연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