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 과부 그리고 나그네. 구약성경에서부터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된 성도들에게 꼭 잊지 말고 돌봐야 한다고 말씀하신 사람들입니다. 신명기 27장 19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외국 사람과 고아와 과부의 재판을 공정하게 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라고 말하며 아멘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신약에서도 이어져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 때부터 그들은 교회 공동체 안의 과부들을 돕는 일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왔으며 교회 역사를 놓고 보더라도 교회 공동체는 비그리스도인들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던 고아들을 공동체 내에서 거둬들여 양육하고 로마제국 사람들이 큰 질병으로 인하여 쓰러지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그들을 버리고 떠났을 때 공동체는 다가가 그들을 정성으로 돌보고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이렇게 고아, 과부 그리고 외국인을 향하여 그들을 돌아봐야 한다는 것은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신약의 성도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럼 왜 고아, 과부 그리고 외국인을 돌아봐야 한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던 것일까요? 신명기 10장 19-20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공정하게 재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셔서 그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당신들이(이스라엘이) 나그네를 사랑해야 하는 것은 당신들도 한때 이집트에서 나그네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들을 돌봐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은혜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첫 번째 자녀가 되는 복을 얻지 못했을 당시 그들도 하나님 앞에서 나그네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에는 이스라엘이 고아와 과부와 같았다고 묘사합니다. 호세아 14장 3절, “고아를 가엾게 여기시는 분은 주님밖에 없습니다”의 고아는 이스라엘을 가리키며 이사야 54장 4절에서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가(이스라엘이) 이제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 젊은 시절의 수치를 잊으며, 과부 시절의 치욕을 네가 다시는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나오는 과부는 역시 이스라엘입니다. 고아, 과부, 외국인 모두 삶의 안정된 기반이 없습니다. 그래서 삶이 쉽게 곤핍해지며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게 몹쓸 짓을 했을 때 그들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었던 이스라엘과 또한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언약관계 가운데 있지 못하고 자녀되지 못했을 때 고아, 과부 그리고 외국인들처럼 삶이 곤핍하고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고아, 과부, 그리고 외국인과 같았던 이스라엘과 또한 교회 공동체를 건져주셔서 더 이상 수치나 곤욕도 당하지 않게 되었다고 하나님은 선언하시면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과거의 너희 모습을 잊지 말고 주변에 어려움을 겪는 고아, 과부 그리고 외국인을 돌아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말씀을 기억하지 않고 고아, 과부 그리고 외국인들을 차별하며 나쁘게 대했다면 하나님은 그 일이 잘못되었다고 서슴없이 자녀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인 아모스 5장 21-25절에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아모스가 예언하던 당시는 여로보암2세가 다스리던 북이스라엘 왕국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모세를 통해서 주어진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성회에 모이고 예배 드리는 일들을 열심히 하였으며 이 때가 솔로몬 시절 이후 북이스라엘이 가장 잘 살았던 시대였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해서 그들의 예배나 성회 모든 것이 역겹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예배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며 오직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라고, 공의가 흐르지 않으면 안된다고 그들을 강하게 질책하셨습니다. 아모스가 말한 북이스라엘에 정의가 없다는 것은 고아, 과부 그리고 외국인을 괴롭히고 어렵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이 하나님이 주신 더 중요한 말씀은 무시하면서 다른 예배하는 구절은 열심히 지키려고 한다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이율배반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25절에서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헤매고 있을 때에도 예배를 받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 조상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지내던 시기는 하나님의 자녀로 빚어지는 힘든 고난과 훈련의 시기였기 때문이었습니다.그 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않아도 하나님은 아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고아, 과부 그리고 외국인을 돌보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은 여러 차례에 걸쳐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께 예배 잘 드리며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긍휼과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흘러보내는 것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기만적인 이스라엘인들의 삶을 강하게 질책하시며 심판하셨던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성도들에게도 이건 중요한 문제입니다. 혹시 우리는 지금 겉만 번지르르하게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면서 진실로 우리가 해야하는 일을 등한시 하는 기만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언제 어디서든 주님 안에서 진실하게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