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문학: 나는 너를 기억한다-조해진, ‘빛의 호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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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기억한다. 집에 오던 길 위에서 나누던 이야기들의 자분자분함, 좀 더 커서 접선하듯이 만나 미금역 까페에서 나누던 이야기들의 차근차근함. 병영에서 공중전화너머로 나누던 이야기들의 조곤조곤함. 그 말의 알맹이들은 다 잊혔지만, 비단 그때의 너만 아니라 그때의 나 자신도 이러한 말의 가락들로 남아있으니, 그 말들은 이미 역할을 다 한 것이다. 뒤가 없는지 몰랐던 내 잘못된 생각 탓에, 나를 버렸던 네 매정함 탓에, 지금은 간데없이 사라진 너를 추억하면서, 동시에 나는 너를-추억하고-있는-나를 본다. 추억함 속에서 너는 나타났다가, 내 옹색한 절절함안 사라졌다가, 잠시 내가 멍하니 있고 난 뒤에 다시 찾아온다. 아아! 너는 산ㅅ새처럼 날아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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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추억한다는 것은 이중의 작업이다. 나는 타자를 추억하면서, 동시에 나는 타자를 추억하는 자신을 추억한다. 이는 단순히 반복 어법이 아니다. 내가 누군가를 떠올린다는 것은, 누구도 정의할 수 없는 그의 온존재성이 갑자기 떠오른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들었던 어떤 내 감각이 미각으로든, 청각으로든, 시각으로든 윤곽 잡혀 그려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이 소묘가 최초의 지각이 아니라, 떠올리는 과정에서 팽창되거나 축소된 소묘라는 생각이 번뜩 스쳐갈 때, 타자의 정체는 오리무중에 빠지게 된다.
이에 맞서서 추억하는 자들은 두 가지로 응답하는 것인데, 조해진의 「빛의 호위」는 이 두 물음을 푸는 방식을 두 사람을 통해서 잘 드러내고 있다.
상기의 방식이 있다. 베르그송이 추억함이란 서랍에서 사물을 꺼내듯이 머리 안에서 지각했던 바를 꺼내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을 때, 반대하였던 바로 그 방식을 우리가 써먹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다. 상기의 방식은 마치 반성을 제어봉처럼 사용하여서 끓어오르는 최초의 지각에 대한 내 정념을 가라앉히는 방식으로, 추억함을 냉정하게 전개하면서, 믿을만한 사실의 이미지를 채집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상기는 구구단을 외우듯 즉각적인 표상작용은 결코 아니고, 힘써 숙고하는 구성작용이다. 아마도 이 방식 속에서는 최초의 지각에 마땅히 있던 풍성함들도 의심 속에서 과감히 내쳐지는 경우도 흔할 것이다. 나는 너 자체가 그리우므로, 상기의 그러한 훼손을 감수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관념이 가능한 가셔진, 이 사실 앞에서 우리의 지각이 환각이 아니라는 증명서를 확보한다. 무엇인가가가, 너가 틀림없이 있었다는 사실! 우리의 사물들은 내면성 속에서 감각이 구성한 관념적 허상 같은 것들이 아니라, 우리 손끝의 눈앞의 어떤 감각도 녹아들지 않은 극점으로서 엄연히 있는 실재들이다. 더군다나 상기한 지각은 현전으로서만 순간 있는 일의적인 것도 아니고, 우리 안에 사라지지 않고 자료로서 끝없이 삽입되는 실재라는 것을 이 추적자는 알아낸다. 짧고 간단히 말해, 너는 내게 있다.
「빛의 호위」에서 화자는 권은을 이렇게 상기해내려하고 있다. ‘하나의 기호’로 있는 최초의 모습들을 추적해내려 하고 있다.“돌이켜보면 그 만남에서 그녀가 내게 한 이야기들, 가령 사진에 빠져들게 된 계기며 태엽과 멜로디에 대한 언급은 일종의 힌트이기도 했다. 심지어 차가운 눈 속에서 꿈쩍도 않고 서 있던 그 모습도 나에게는 하나의 기호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날 그녀가 내게 건네고 싶었던 것이 잊고 있던 지나간 시절을 열어줄 열쇠와도 같은 것이었음을, 그때 나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10)
화자는 마침내 분쟁지역 전문 사진작가 권은이 자신이 집에서 훔쳐서 가져다준 카메라로 사진을 처음 찍기 시작했다는 것을 상기해내면서, 결국 권은과 자신을 묶는 필연은 사진과 같은 부동의 빛-이미지라는 생각에 빠져든다. 부동의 추억, 부동의 빛으로서 사진이 있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이야기’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최종적으로 재현해낸 장면이다.“뭐해? 그건, 학교로 돌아온 권은에게 내가 처음 건넨 말이었다. (중간 생략)권은은 대답 대신 손짓으로 자기 옆에 앉아보라는 표시를 해보였다. 내가 주춤하며 옆에 앉자, 테두리가 흐릿해지고 있는 발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권은이 말했다. 발자국 안에 빛이 들어 있어. 빛을 가득 실은 작은 조각배 같지 않아? 어, 그런가... 여기에도 숨어 있었다니... 뭐가? 셔터를 누를 때 카메라 안에서 휙지나가는 빛이 있거든. 그런게 있어? 어디에서 온 빛인데? 내가 관심을 드러내자 권은은 그때까지 내가 한번도 본 적 없는, 한껏 신이 난 얼굴로 날 바라봤다./ 그녀의 이야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평소에는 장롱 뒤나 책상 서랍 속, 아니면 빈 병 속처럼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얄팍하게 접혀 있던 빛 무더기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일제히 퍼져나와 피사체를 감싸주는 그 짧은 순간에 대해서라면, 사진을 찍을 때마다 다른 세계를 잠시 다녀오는 것 같은 황홀함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권은이 내가 알고 있는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악기상점의 쇼위도우에 반사되는 햇빛이 오직 그녀만을 비추고 있다.”(32)
그리고 실행의 방식이 있다. 베르그송은 이 방식을 옹호했다. 그는 마치 성운 속에 빛을 반짝이는 것처럼 추억은 팽창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별이 반짝이는 것은 별 자체가 스스로를 생성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이 우리 안에서 우리의 내면을 바탕으로 기꺼이 부풀어오르게 하면서, 우리 정념으로 타인이 번져오는 것, 그리고 타인으로 우리 정념이 아무렇지도 않게 번져가는 것, 요컨대 타인과 우리의 삼투압을 즐길 수 있다. 나는 네가 이런 경우라면 어떻게 할지 추억해본다. 그런데 이 추억함은 상기와는 다르게 그 끝에서 모종의 실행함에 가까워지기에 실행의 방식이다. 실행하는 자는 징후로서 타인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하면서 이 타인이라는 징후를 삶으로 자기 삶의 징후로 삼는 것, 달리 말해 실현하는 것 자체가 이 타인의 진동을 확장하는 것이다. 거창한 말이 아니라, 내가 조곤조곤함을 언제가 드러날 징후로 여기다가 급기야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너와 그때의 조곤조곤함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속으로 선언할 때, 그 감성들은 아예 다른 어떤 작품으로 더 잘 묘사된다고 믿을 때가 그렇다.
우리는 이 실행에서 순수지각으로서 타인의 실존을 확립할 수 없지만, 우리 저변의 기억이 우리 첨단의 지각으로 운동하는 한 회로도를 비로소 감지할 수 있다. 여기에 타인은 레비나스가 말한 것처럼, 무한의 축소판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라는 유한성 ‘안에서’(dedans) 우리가 아직은 실행하지 못한 회로로 뜻밖에 떠오를 수도 얼마든지 있는 우연의 다양체일 뿐이다.
먼저 권은은 우선 헬게 한센을 실행한다. 특히 이장면은 권은이 자기 안에서 어떻게 헬게 한센을 어떻게 추억하고 실행해가는지 가장 직접 드러나있는 대사이다. 권은은 헬게 한센이 자신 안에서 생성할 수 있게 허용한다. “그래서 어떤 사진을 찍을 계획인데요? 나는 괜히 맥주나 거푸 비우며 건성으로 그런 질문밖에 할 수 없었다. 사람을 찍어야죠. 그녀가 대답했다. 전쟁의 비극은 철로 된 무기나 무너진 건물이 아니라 죽은 연인을 떠올리며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는 젊은 여성의 젖은 눈동자 같은 데서 발견되어야 한다, 전쟁이 없었다면 당신이나 나만큼만 울었을 평범한 사람들이 전쟁 그 자체니까. 마치 준비라도 한 듯 유려한 문어체로 덧붙여 설명하는 그녀를 나는 어리둥절하게 건너다봤다. 내 표정이 너무 진지했는지 그녀는 이내 웃음을 터뜨리며 누군가의 말을 인용해서 대답한 것뿐이라고 이어 말했다. 헬게 한센이 한말이죠. 헬게 한센? 그 사람이 누군데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기자예요. 분쟁지역을 다네게 된 것도 그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고요.”(13)
그리고 권은은 이 사람이 찍은 「사람, 사람들」의 삶 또한 실행한다. 실행의 방식은 삼투압하는 본질상 상기의 방식보다 복잡할 수밖에 없다. 정확히 말해 훨씬 더 암시적이다. 「사람, 사람들」은 권은의 징후로서 있다. 권은은 좋아하는 이 분쟁지역 전문 사진작가의 「사람, 사람들」이란 다큐에 매료되어있다. 이 다큐에는 분쟁지역 전문가인 노먼과 그의 어머니 알마 마이어 그리고 장이 등장한다. 이미 죽은 알마 마이어에게 편지를 쓸 정도로 권은은 이들을 동경한다. “처음엔 헬게 한센에 대한 관심으로 보게 된 그 다큐멘터리에서, 그리고 그녀는 알마 마이어라는 여성을 알게되었다. 이상해요. 권은이 말했다. 권은의 표현에 따른다면, 각기 다른 시대와 역사에서 출항한 배에 탑승한 승객들처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알마 마이어와 그녀는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마치 두사람을 태운 전혀 다른 두 척의 배가 똑같은 섬에서 똑같은 풍랑을 견디며 잠시 표류한 적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그때부터 시간이 날 때 마다 알마 마이어에게 편지를 쓰곤 한다고.”(13~14)
더 자세한 실행과 징후의 이야기들이 있다. 알마 마이어가 유대인으로서 장의 보호를 받고 있을 때 장은 그이에게 악보 한장씩을 넣어주는데, 이는 화자가 사진기를 권은에게 준 것과 공명한다. 이 소설에서 ‘빛’은 위에서도 보았듯이 사진의 상징이다. 다큐 멘터리 속 대사: “장이 자곡한 그 악보들은 식료품점 지하 창고에서 날마다 죽음만 생각하던 내게는 내일을 꿈꿀 수 있게 하는 빛이었어요. 그러니 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 악보들이 날 살렸다고 말이에요.”(23) 권은은 알마처럼 ‘꿈꿀 수 있게 하는 빛’으로서의 사진을 계속 실행해갔다.
권은의 징후로서의 이 다큐의 가장 극적인 실행은 이 소설에서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으나, 나중에 알마 마이어가 장과 헤어진 뒤에 장이 남몰래 알마 마이어의 소식을 ‘비인가 사무소’를 통해서 들어왔다는 암시일 것이다. 이는 권은도 남몰래 이 화자의 소식을 구해왔다는 인상을 남긴다. 이 뿐만 아니라, 노먼의 삶 또한 권은에게 ‘징후’처럼 실행된다. 노먼은 구호품을 싣고 분쟁지역으로 떠나다 폭탄을 맞고 사망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권은도 해외의 분쟁지역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서 한국 병원에 입원한다.
이렇게 상기와 실행은 추억의 두 가지 왕복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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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기억한다. 나는 너를, 이 글을 쓴다.
*조해진은 추억함의 여러 방식들을 묘사하는 데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이 소설집이 대개 추억함의 직관들에 대한 글들이다. 더 자세한 개인사와 관련한 사정은 인터뷰 같은 것들을 보면 알 수 있을 것.『물질과 기억』의 여러 개념들의 실례를 이 작가의 소설들에서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이 작가가 벩송의 글을 직접 읽으면 훨씬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글들을 보면 아직 안 읽었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다. 강추!
그리고 이글을 마감하면서 비로소 한해를 마감했다는 생각을 했다. 12편을 내가 쓴 것이다. 독려해준 ㄱㅈㅁ 군에게 감사하다. 그는 내 학인은 아니지만, 내 동무이다. 나는 너를 기억한다.
조해진
1976년 서울 출생.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용익소설문학상, 백신애문학상, 형평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줄거리 요약,
한기욱, 소설집 해설「떠도는 존재의 기억과 빛」
시사잡지가 기사로 일하던 화자는 어릴 때 같은 반 학생이자 지금은 분쟁지역 전문 사진자각가 된 권은을 이십여년 만에 만나 인터뷰하지만 그녀를 첫눈에 알아보지 못한다. 화자가 반장이었던 어린 시절 담임의 지시에 따라 권은의 집을 찾아갔을 때, ‘문손잡이를 돌리는 쇳소리’를 들으며 들여다본 방이 화자에겐 최초의 감각에 해당할 것이다.(252)
사실 화자가 어릴 적 권은과 각별한 관계였음을 발견하는 데는 둘만이 공유한 것의 의미를 ‘한조각씩’ 되찾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어린 권은은 부엌도 화장실도 없는 작고 추운 방에 홀로 버려진 채 악몸을 꾸고 싶지 않아 스노우볼의 눈 내리는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으니, 스노우볼은 홀로 버려진 악몽 같은 현실의 마지막 피난처 역할을 한 것이다. 권은을 위해 화자가 가져다준 카메라는 더 의미 심장하다.(253)
소설 서사는 화자가 헤겔 한센의 다큐멘터리 사람, 사람들을 보게 되는 현재와 권은과의 만남에 대한 회상이 번갈아 등장하면서 두 이야기, 화자와 권은의 이야기 그리고 알마 마이어와 장, 노먼 마이어의 이야기, 의 교직으로 구성된다.
액자 속 이야기는 이렇다. 유대인 바이올리니스트 알마 마이어는 나치의 유대인 박해가 시작되자 같은 오케스트라의 호르니스트인 장의 도움으로 지하 창고에 숨어 살게 되었다. 장은 음식과 함께 자신이 작곡한 악보 한장씩을 바구니에 넣어주었는데, 날마다 죽음만 생각하던 알마에게 장의 악보들은 “내일을 꿈꿀 수 잇게 하는 빛”이었다. (253~254)
이달의 문학 나는 너를 기억한다 조해진 빛의 호위.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