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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봄호의 수필들
정진권
좋은 수필은 독자에게 정서적 만족을 수여한다. 가령 감동을 주거나 공감을 불러일으키거나 미소를 선사하거나 하는 등-. 독자는 그런 만족을 통하여 가르침도 얻고 즐거움(재미, 쾌락)도 누린다. 수필은 물론 지식을 전달하고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부수적인 것이 아닌가 한다.
문학미디어 금년 봄호엔 9편의 수필이 실려 있다. 독자에게 정서적 만족을 수여한다는 점에서 이 수필들은 그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할 것이다. 게재 순을 따라 한 편씩 살펴보기로 한다.
이태기(존칭 생략), 천상에서 다시 만나 행복하시길
이 글은 어머니의 봉분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 드러난 어머니의 삶은 결코 평탄치 않다. 일찍이 남편을 잃고 딸 하나 두고 상처한 아버지와 재혼을 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는다. 그 아들이 곧 이태기다.
어머니는 그 아들이 6살 때 장티푸스로 세상을 떴다. 그랬으므로 정상적인 매장 절차를 밟지 못했을 것이다. 세월이 흘렀다, 어느덧 30년. 이태기는 비로소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 나선다. 마침 그 무덤을 안다는 노인이 있어서 쉽게 찾는다. 그리고 해마다 가을이면 그 무덤에 벌초를 다녔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 봉분이 사라졌다. 이태기는 잠을 못 이룬다. 그러다 어머니의 유골을 수습, 화장을 해서 아버지 묻힌 곳에 뿌리리라 한다. 그러나 유골은 나오지 않았다. 아니, 그건 무덤이 아니었다.
이태기는 장의사가 창호지에 정성스레 싸 준 그 무덤자리의 흙을 안고 아버지 묻힌 곳을 향한다. 천상에서 두 분 다시 만나 행복하소서, 수 없이 이렇게 빌며 갔을 것이다. 나는 이태기의 이런 짠한 사모(思母)의 정에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이태기는 그날, 평소에 여기가 정말 우리 어머니 무덤일까 했던 의심도 풀리고(아니라는 것이 판명되었으니까) 또 두 분을 한 자리에 모셨으니 홀가분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또 우리 어머닌 어디 묻히셨을까, 안타깝기도 했을 것이다.
김갑훈, 의취意趣가 평온해야 삶이 즐겁다
사람은 각자 원하는 바(생활)가 있다. 김갑훈은 이 글의 서두에 그 예를 일여덟 가지 들었다. 그러나 김갑훈이 이런 사례들을 예시한 것은 그 하나하나에 대하여 논의하려는 것이 아니고 다음 한마디를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욕망을 충족시키며 즐겁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겠지 하는 기대 속에 살아가지만 인생살이는 하루하루가 힘겹지 않은 날이 없다.
그러니까 욕망하는 바, 기대하는 바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까치 이야기도 그렇다. 까치가 울어서 희소식을 기다렸으나 종무소식이었다는 것. 김갑훈은 이제 서서히 ‘의취가 평온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 환경을 분석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끈다.
혼란 속에서는 초조와 불안과 긴박감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와 취향이 평온을 찾을 수가 없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편향에 빠져 있는 고착된 생각을 뒤집어야 한다. 흐린 것은 버려야 맑음이 절로 나타나고 괴로움도 버려야 즐거움이 저절로 생길 것 아닌가?
이 글은 사람의 삶을 성찰한 것이다. ‘깊은 밤 만상이 잠들 때에 묵상하는 자세로 홀로 앉아 자연과 하나 되는’ 김갑훈의 태도가 진지하게 다가온다.
홍성열, 쌀 하면 이천
이 글은 참 수월히도 읽힌다. 문장이 정확하고 어려운 데가 없고 문체가 유머러스해서 그럴 것이다. 아무 데서나 몇 줄 인용해 보자.
자채쌀. 오직 이천 지방에서만 일찍 생산되는 전설적인 쌀이다. 자채쌀 농사를 짓는 집은 참새와의 일대 전쟁을 치뤘다. 벼가 패기도 전에 논두렁에 새막을 지어놓고 참새를 물리칠 임전태세를 갖췄다.
필자 소개란을 보니 ‘똑똑한 손자와 팔불출 할아버지’라는 저서가 눈에 띈다. 부독가지(不讀可知)다. 나도 첫 손자를 보고 팔불출 할아버지가 되었던 때가 있었다.
이 글의 배면엔 짙은 향토애(鄕土愛)가 흐른다.
전국에서 제일 좋은 쌀이 나는 내 고향, 뭐니 뭐니 해도 쌀 하면 이천, 이천 하면 쌀,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천고의 진실이 아닌가?
참 대단한 자랑이다. 그 자랑이 귀엽기까지 하다(실례).
이 글에는 상당 양의 참새 이야기가 등장한다. 참새 쫓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그놈들 이야기를 읽으며 깊은 향수에 젖은 바 있다.
배명란, 어머니의 망향가
이 글은 작고한 어머니의 말년 이야기다.
제목부터 읽는 사람을 짠하게 한다. 어머니는 오빠가 있는 미국엘 가 거기서 요양원엘 들어간다. 무릎 통증 때문이다. 배명란은 방학 때마다 건너가 그 어머니를 보살핀다. 다음은 그때의 한 장면. 어머니는-
정신세계가 헐거워져 집에 가자고 졸랐다. 걷지 못하여 집에 갈 수 없다고 하니 하루 동안 말씀을 잃었다. ‘이 요양원에서 나만큼 자녀가 매일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더라.’ 하면서도 ‘살아서 나간 사람도 없단다.’ 하더니 다음 날부터는 고향에 가자고 하였다.
이국 요양원의 여든다섯 노인, 살아서 나간 사람도 없단다, 아무리 정신이 헐거워졌어도 이 말을 할 때 그 심경이 어땠을까? 배명란은 그런 어머니 곁에서 그 어머니의 옛이야기도 들어 드리고 함께 노래도 부르고 하다가 남의 집에 아이 맡기고 나오는 심정으로 돌아온다.
이젠 세상에 안 계신 어머니, 그 어머니가 그리우면 배명란은 가슴에 통증을 느낀다. 그럴 때 그는 우리 어머니는 ‘좋은 일만 생각하셨지요. 노래도 하시고요. 그러면서 행복하셨지요, 엄마.’, 이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 위로를 받는다.
읽는 내내 짠한 글, 어머니의 망향가-.
안광석, 소나무와 나
안광석의 고향 선산에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수령(樹齡) 백 년은 넘지 않았나 싶다. 안광석은-.
올 차례 때는 소나무 수령 100년 제례를 지내줬다.
땅을 파고 사과도 깎아 넣어주고 막걸리도 부어주며 더욱 푸르게 살라고 큰절을 했다.
소나무를 보고 큰절을 하는 안광석, 요즈음 젊은이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나이 든 나는 그의 그런 제례가 퍽 진지하게 다가온다. 안광석이 그렇게 한 것은 소나무의 노가청운(老加淸韻),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삶을 닮고 싶은 마음에서도 그랬겠지만 그보다는 소나무한테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우선 이 글의 서두로 돌아가 보자. 다음은 그 요약-.
안광석이 산우들과 함께 가야산 등반길에 오른다. 밧줄을 타고 암릉 바위를 오를 때다. 갑자기 발에 힘이 빠져 미끄러지고 밧줄이 그네처럼 휘돌면서 몸이 바위에 부딪친다. 안광석은 의식을 잃었다가 겨우 깨어난다. 깨어나 보니 밧줄을 놓치고 바위 위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에 걸쳐 있었다. 그래서 살았다.
안광석은 선산의 그 소나무에 절을 하면서 가야산의 그 자기 생명을 구해 준 소나무를 생각했을 것이다. 정말 소나무와의 인연이 각별하다. 글이 퍽 진지하다.
김외남, 콘서트
어느 겨울날 김외남이 가족 여행을 한다. 1박2일 대명리조트-.
운전은 딸이 한다. 남편이 편하다. 나도 운전대 놓은 지 10여 년, 아이들 차 얻어 타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차창 밖을 본다. 나목(裸木)들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목적지-.
저녁 준비를 한다. 찹쌀 섞은 밥을 짓고 야채를 씻는다. 씍 쒹 압력밥솥 돌아가는 소리. 우당탕 뛰어나오는 아이들, 삼겹살 2kg을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애들을 보며 잘 왔다는 생각을 한다.
삼겹살 2kg을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손자들을 보며 이 김외남 할머니는 얼마나 흐뭇했을까? 마른 논에 물 들어가듯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밥 먹여 놓으니 아이들은 제각각 자기 폰 들여다보기에 여념이 없다. 애써 밥 짓고 삼겹살 구워 준 할머니하고는 말 한마디 나누려 하지 않는다. 교사인 딸은 또 학교의 어두운 현실을 이야기 한다. 나는 선생님들에게 매 맞으며 학교를 다녔는데 참 이상한 ‘인권’ 세상이다.
이 글은 행복한 삶의 기록이다. 그러면서 슬쩍 세태도 비판한다.
이수자, 자 한잔 드시오
지금 상여가 나간다. 앞서 가는 만장, 요령잡이와 상두꾼들의 메기고 받는 소리, 곡하며 뒤따르는 상주들, 그리고 문상객들-. 잠시 상여가 멈칫거린다. 그러면서
요령잡이 ; 어디 갔나, 큰아들아! 너를 두고 가려니 내 발길이 무겁구나.
상두꾼들 ; 어야 어허야 어허야디야 어허야
큰아들 보고 노잣돈 내라는 소리다. 나도 어려서 많이 보았다. 상여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다음은 작은아들을 불러내고 장조카를 불러내고 맏사위를 불러내고 또 누구를 불러내고 했다. 상여가 장지에 이르기까지의 상황 묘사가 퍽 선명하다.
죽음에 관한 이수자의 상념도 독창적인 데가 있다.
죽음은 참 너그럽다. 망자가 전 생애를 통해 알았던 이들을 불러들이고 음식과 술로써 회포를 풀어주는 여유가 그렇다. 산 자는 망자에게 노잣돈으로 살아서 못 다한 화해를 청하기도 한다.
공감이 간다. 그럴 것 같다.
이 글의 결론 두 줄도 좋다. 죽음은 단절(斷切)이 아니라는 것.
새봄이 오고 있다.
새로운 후손들이 오고 있다.
김정태, 빨래터가 있는 풍경
이 글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고(忍苦)의 여인으로서의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의 한 벌뿐인 교복에 비누를 문질러 치대며 한 벌 더 사주지 못하는 궁핍함에 아쉬워했다.읍내에 다녀온 남편의 분 냄새 나는 옷을 방망이로 두들기며 눈을 흘겼다.
자식들은 어머니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교복 한 벌을 더 사주지 못했다. 그 궁핍이 얼마나 서러웠을까? 남편은 한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도 그 빨래하던 방망이로 남편의 해장국을 끓이려 북어를 두들겼다. 고대소설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여인-.
빨래터는 공중목욕탕이었다. 저녁이면 누이들(마을 처녀들)이 목욕을 하고 누이들이 썰물처럼 빠지면 남자들이 모여들었다. 개구쟁이들은 어둑한 논둑에 숨어 누이들의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보고 털 덥수룩한 어른들의 성기와 민숭민숭한 제 것을 비교도 하며 나도 빨리 자랐으면 했다. 개구쟁이들의 성장기의 모습이 참 약여하다.
이 글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한 인고의 여인, 개구쟁이들의 성장기를 그린 것만으로도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임도순, 바쁘게 산다
임도순은 서울 사는 친구의 아들 혼사를 보려고 버스를 탄다. 드디어 서울. 예식장엘 가려고 지하철을 탔는데-.
주위를 살펴보니 약속이나 한 듯 핸드폰을 보고 있다. 게임을 하고 정보 이용도 하고 문자로 소통을 하면서 계속 무엇인가 하는 모습이다.서로가 대화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기계만 바라보는 것이 삭막한 인생을 그려보게 한다.
그렇다. 요즈음 서울 지하철엔 대화가 없다. 아니, 집에서도 그렇다.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만 대할 뿐. 말을 걸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
드디어 예식장에 도착했는데-.
많은 하객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접수대에서 통상 이루어지는 형식을 갖추고 예식장으로 가는 발길보다 피로연 자리로의 이동이 더 많다.
사실이다. 흔히는 방명록에 이름 쓰고 돈 내고 식권 받아 피로연장으로 직행한다. 주종(主從)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임도순의 이 글은 사람들이 쫓기듯 바쁘게 살며 대화를 잃었으며 주종이 전도된 세태를 잘 드러내 준다.
김미화, 비 오는 날의 잡상雜想
김미화는 어느 비 오는 날 아침 산책을 나간다.
“다다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정답다.
이 글엔 ‘다다다’ 같은 말이 10개 등장한다. 마치 시나리오의 장면부호 같다. 대단히 기교적이다.
나는 이 글의 다음 세 장면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A. 정확히 몇 시간 일했느냐로 주급이 결정된다. 하루는 옆집 사는 주인내외가 외출한다고 애들 좀 봐 달라고 부탁했다. 돌아와서는 baby-sitting비費라고 시간 따져서 돈을 준다.
B. 첫 직장은 세탁업이었다.시간제로 돈을 받았다. 얼마 후 일손이 빨라지자 가게 하나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시간제로 몇 가게를 돌아가며 일했다. 역시 시간은 돈이었다.
C. 머릿속에서의 생각은 ‘호랑이’인데 백지에 옮겨놓고 보면 늦가을 비 맞은 ‘야생고양이’다. 두서도 없고 글결도 거칠고-.
A는 그래도 우리나라는 아직 괜찮구나 하는 안도감 때문에, B는 치열한 삶에 대한 감동 때문에, C는 빛나는 비유 때문에 그럴 것이다.
나는 이 아홉 편의 글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기도 하고 공감을 하기도 하고 혼자 실실 웃기도 했다. 그러나 내 마음에 흡족하지 못한 부분도 없지 않았다.
우선 이태기의 수필. 해군중사가 왜 동행했는가, 공산당과 연계가 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좀 분명했으면 싶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도 그 자리에 꼭 맞는지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다음은 김갑훈의 글은 좀 사변적(思辨的)이다. 가령 까치 이야기처럼 정서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였으면 싶다. 그러지 않으면 논설문으로 흐를 수 있다.
홍성열의 글 중 “천고의 진실 아닌가!”는 “천고의 사실 아닌가!”로 했으면 어떨까 싶다. “참새들이 자채논으로 슬금슬금 모여들기 시작했다.”는 말의 ‘슬금슬금’은 날짐승의 움직임을 묘사하는 데 적절한지 모르겠다. 글이 유머러스하다. 좀 더 과장법을 써도 좋지 않을까 싶다.
배명란의 첫 줄, “엄마의 노래는 아주 부족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아는 노래가 적다는 뜻인가? 뜻이 분명했으면 싶다. 그리고 “우리도 엄마 뒤를 따라갑니다.”, “잘 있거라 내 아들, 정든 사람들. 나는 이제 이 세상을 물러갑니다.” 왜 이런 가사를 글에 썼는가? 아직 어머니는 살아 계신데-.
안광석의 ‘대문처럼 큰 소나무’는 적절한 비유로 보이지 않는다. “소나무처럼 닮고 싶다.”는 “소나무처럼 되고 싶다.”거나 “소나무를 닮고 싶다.”로 고쳐야 할 것 같다.
김외남의 글은 출발부터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의 과정이 좀 지루하게 느껴졌다. 특히 출발 부분-. 계모임, 7인승 한 대, 계란 삶고 고구마 찌고 과일 사고 쌀 한 봉지, 김치, 컵라면 챙기고, 굳이 이런 걸 다 밝혀야 할까?
이수자는 “십여 명의 상두꾼이 상여를 메고 요령잡이의 노래에 따라 상두꾼들도 소리를 메긴다.”고 했는데 ‘메기는’ 이는 상두꾼이 아니고 요령잡이다. 그리고 요령잡이의 메기는 소리를 ‘노래’라고 한 것도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김정태의 글은 지난날에 대한 회상이다. 그런데 ‘어머니’ 이야기와 ‘아낙’ 이야기가 뒤섞여 있어서 좀 혼란스럽다. 어머니(특수한 존재로서의 내 어머니) 이야기로든 아낙(일반적인 존재로서의 우리 여인) 이야기로든 한 이야기로 통일시켰으면 싶다.
임도순은 예식장에 가려고 ‘전차’를 탔다고 했는데 이는 ‘지하철’ 또는 ‘전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전차’는 사라진 지 오래다. ‘접수대에서 통상 이루어지는 형식을 갖추고’라는 말도 가령 ‘방명록에 이름 쓰고 축의금 내고 식권 받고’처럼 구체적인 표현이었으면 싶다.
시나리오의 장면 부호 같은 김미화의 10개의 짧은 말 중 ‘글글글’, ‘길길길’은 작가가 만든 말이다. 다른 말에 비하여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리고 ‘타당 탕(오스왈드)’은 케네디의 죽음 이야기가 아니고 그해에 내가 미국에 왔다는 이야기여서 장면부호와 장면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 ‘기어코 호랑이 얼굴에 두 눈을 그려 주리라 다짐하면서’의 ‘호랑이’는 혹 용(龍)이 아닌지 모르겠다(화룡점정畵龍點睛의 고사 참조).
이렇게 쓰고 보니 공연한 트집을 잡은 것 같아 미안하다.
문학미디어를 사랑하는 모든 수필가들의 건필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