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4일(월) 광주일보
복잡하고 바쁜 세상을 살아가면서 슬럼프를 겪지 않는 이들은 없다. 아무리 훌륭한 야구 선수도 시즌 내내 완벽한 모습을 유지할 수 없듯 세상 모든 이들은 작든 크든 항상 슬럼프를 겪으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정말이지 지독한 슬럼프가 당신에게 찾아온다면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완벽한 파트너>는 슬럼프 극복의 대안을 새로운 파트너 찾기에서 발견하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다.
잘나가던 영화감독 준석(김영호)은 새로 기획한 작품마다 퇴짜를 맞고 학원 강의 등을 하며 근근히 버텨가는 중이다. 이런 영호에게 데뷔작을 만들지 못해 고민하고 있는 시나리오 스쿨 제자 연희(윤채이)가 애정 파트너가 된다.
요리연구가가 꿈인 준석의 아들 민수는 성공한 요리연구가 희숙(김혜선)의 제자에서 연인이 되면서 이야기는 복잡하게 진행되기 시작한다. 슬럼프에 빠진 두 선생과 짜릿한 영감을 주는 두 제자의 나이를 초월한 만남, 그리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애정행각을 담은 이 영화는 두 커플의 속고 속이는 아슬아슬한 이야기를 통해 일종의 교묘한 심리극을 펼치고자 한다.
영화에는 두 곡의 클래식 음원이 사용되고 있다. 비제의 ‘하바네라’와 파헬벨의 ‘캐논’. 특히 파헬벨의 ‘캐논’은 두 커플의 갈등이 봉합되고 화합하는 장면 등에 활용되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감독이 원하든 원치 않든 ‘캐논’이라는 곡 자체가 갖고 있는 악곡의 형식 덕분에 클래식 음악을 아는 이들은 삽입곡이 무언가 영화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의 여백을 갖게 된다.
'캐논(canon)'은 바로크 시대에 가장 많이 쓰였던 다성 음악 양식으로 대위법 모방 기법 중의 하나다. 쉽게 말해 주제 선율을 다른 성부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충실히 모방하는 형태를 말하는데, 이와 비슷한 가장 단순한 형태로 돌림 노래를 생각하면 편하다.
파헬벨의 ‘캐논 D장조’는 1678년에서 1690년경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며 곡의 원 제목은 ‘3대의 바이올린과 통주 저음을 위한 캐논과 지그’이다. 오늘날에는 관현악과 현악 합주곡 말고도 다양한 버전으로 편곡되고 연주 되고 있다.
아마도 가장 많은 이들이 사랑했던 캐논 연주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조지 윈스턴의 <December>앨범에 수록된 피아노 독주버전이 아닐까 싶다. 북구의 잔잔한 호수를 연상시키는 깨끗하고 영롱한 사운드로 십수년이 지난 지금 다시 들어도 싱싱함이 살아있는 연주다.
가장 추천하고 싶은 앨범은 지휘자 리차드 캅이 내놓은 <Greatest Hits Of 1720>이다. 1720년대의 빌보드 차트라는 재밌는 컨셉으로 만든 바로크 음악 모음집으로 대망의 1위가 바로 파헬벨의 ‘캐논’이다.
이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주제 선율의 계속적인 반복은 하루하루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과도 같고, 그 위에 각양각색 변형되어 얹어지는 아름다운 화음들은 같은 하루지만 새롭게 채워질지도 모르는 다가올 순간의 설레임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 캐논은 결국 단순한 첫 주제 선율로 되돌아 와야만 곡이 끝난다. 마치 우리네 인생 또한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와 끝난다는 진실을 가르쳐주려는 것처럼.
<독립영화감독/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