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비를 통해서
고양이나 개를구하려고
119대원이나 주민들의 의사까지 동원대기도하는 장면을볼때마다
내심정은 속으로 표현으로 부족한 내심경을 어떠한표현으로도 부족한
내 남편의 억울한죽음을 그패거리들은 그의사놈은
그렇게 유도한 남편의 상관놈은
아직까지 버젓이 어떠한 법적인죄도 가하지않은채
서울마포 상암군인아파트서
19년 6개월이란세월 젊은청춘을 오롯이 군복속에
6개월만 더 복무하면 군인연금을 받을수있는
그즈음 소령진급에 확실시 다 되었을때
가족에게 온갖누명을씌워 남편이 급히 수사를의뢰해 사실이밝혀지니
또 내가 하사관부인을때려 기절시켰다는 누명을씌워
얼굴도처음본여잔대 왜 내옆에서서 내가 집으로올려고 몸을돌릴때 내어깨를치며
내가 왜그러느냐고 다시몸을돌릴때 푹 꼬꾸라지는지
같은전라도 옆집에사는 보안대소령부인년이 거대한몸집에 뚱뚱한년이업어 병원으로 업고가
서울상암 마포군인아파트서
계흭적인진 모르지만
부산에서도 맞은편소령부인은 전라도가 고향인
예기를못낫는 예들이없었고 나이도 꽤많은 사십대중반쯤 되었고 남자가
남편이 쉬는날이면 다 우리집으로 몆몆이 고스톱치러왔는데
그때마다 큰머그잔에 코코아에꿀을넣어 타 대접했고 윤대위부인이란 내게친절을베풀었던 전직간호사라했다
고향이 충남이라했다
앞집여자와 다투었다며 예도 못낫는다고 흉을봤는데 그속을알수가없다
군인아파트 또 앞집여자도 고향이 전라도 2군덴 다 여자가 예기를못났는다고 예가없었다
그렇게아르켜준여자가 충남여자라는거
집에놀러오기도 또 전기후라이팬을 빌려달라해 빌려주었더니
다 바닥이 벗겨저 버리고말았다 산지알마되지도않은
딱 한번 시어머님오셨을때 한번만 고기를 구운것같은데
온부대에 소문이나고 윗선에선 소령심사에 들어갔는데 합의보라고 압력이들어오고
모래네시댁친척게 남편이부탁해 병원에갔더니
죽어도 합의못해준다고
고향성주작천에 소문을 다 내고
차마 남편의얼굴을 두고볼수없어 병원에가서 의사게
내얼굴을 보라고 나이로보나 체격으로보나 뭘보더라도
내가때려 기절시킬수있갰냐고
병원에서 건강검진만 받았다고 건강검진비 30만원
억울하고도 억울했지만 병원에주고
또다시 해결이되니
막바지 소령심사때
또 그패거리들이 군인아파트 전체에 집집마다 최대위부인이 장교품위를 떨어트렸다고
군인아파트서 쫒아내야한다고
도장을받으러 다닌다고 군부대에 제출한다고 두번이나
그패거리들외엔 아무도 도장찍지않았을꺼다
또 해결되니 어찌 차마 두려워서 그년놈들도 자녀가있을탠데
하늘에 머리을두고사는사람으로선 할수없는
그패거리들게 시켰을꺼다
아직도 티비서 우물을보면 나는 속으로 치를떤다
온갖스트레스에 얼굴에핏기하나없어
밖에나갈때 겷혼전에 산 루즈가 한개있어 그걸로 볼에발라 손으로부벼 핏기가있게해 외출했고
남편월급은 불광동 한국주택은행에서 한번에찾아 차멀미가심해
또 애들 둘데리고 차를타면 기절직전이라
지갑에 넣어두면 한달도안되 지갑이텅비고
남편과겷혼해 외식이라곤 십년동안 2번인가 3번인가 그게다였고
남편과 아들과딸 시어머님과 시동생과 창경원에 놀러갔을때도
입을옺이없어 시장에서 산 만원짜리 원피스 운동화가없어 슬립퍼를신고갔었다
그때 찍은 사진을 언젠가봤을때도 서러웠다
군인봉급이 또 남편근무년도가많아 꽤 많았는데 남편도 뭔가이상한지
계속 가게부를사다주며 가게부를 적어보라고
나는 내 글씨가 챙피해 적지않았고
어찌 상상이나 할수있었으리
집에들어와 돈을훔쳐가는지
내가 조금만 깊이생각했다면 부산있을때 독일제시계가 없어진지도모르게
명품에속하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올때 대구백화점에서 사준 가방도
대구포정동 시내오스카양잠점에서 맞춘밍크코트라던가 체크무니원피스 그만은 맞춤구두들
다 열거할수도없는 다 후지고 다 입을수없고 그많은구두는 다 발에들어가지도 버려야했고 후지고
한복도 구두도 다 어찌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일들땜에 내 정신이 내정신이 아니었던것같다
요즘생각해보면
다 내 어리석음때문에 세상사를 내마음같이 생각한
남편에겐 적을조차없는 미안함과 내세에도 다 갚지못할 심적 경제적
몆회를거듣해 환생해야 다 갚을수있을지
겨우 6개월만 더 복무하면 군인연금받을수있는
그때 군인법이 바뀌었다고 퇴직해야한다고
다 어찌 있었던일을 적을수있으리
내가 여기 적었던건 까폐에올렸던건
다 마포상암군인아파트 살았던 군인가족들이 증인일태니
걷으로 드러난 사실들만 간추러 적었을뿐인데
고향 성주작천에선
생각하면 남편에게누님도두분 동생도 친척분들도 많이계시지만
남편가시고난후에야 남편의 외로움을 느끼고느낄수있었다
내 철이 늦게들어 세상사 세상인심에 빠르지못하고
결혼할때까지 부엌에 설걷이 한번한적없고
내옺빨래한번 한적없고 속옺한번도 빨아본적없이 결혼해서
시어머님과 방학철이라 시동생까지 한달계시면서 친척들까지 들리시고
뭐가뭔지 저녁에눕기만하면 내일 반찬은 어떻게무얼해야하나
그걱정뿐이고 밤새 듸척이며 아침이면 새벽4시도안되 깨서는 또
친정에서 먹었던반찬을 생각하며 부엌에서 온갖방법으로 반찬을하니
시어머님은 맛있다하시며
며칠간격으로 친정에서 가저간돈으로 시어머님과 동래시장을 가 장을봐서
하루종일 반찬걱정뿐이었다
한달뒤 시어머님과 시동생이 가셨을때
곧바로 남편의 거의죽음까지 갔었던 병원의사가 오지않으려하는걸
멱살을잡고 끌디싶이 데리고왔을때 말라리아라고 아찌 겨울에
아파트가 남편의감독하에지은 막지은 처음으로 입주한 아파트여서
방범창도 철저히되있는 겨우살아났을때
군인아파트바로옆에 조병창이있어 자전거로 출퇴근하셨는데
퇴근할때 뒤에서 군인큰차가 지나가며 연달아 오토바이사고
그때쯤 딸을 임신해 유산시키려 호미질을시켰던
나중에 안사실이지만 그밭은 군인아파트밭이아니고 그 모였던 여자들 알굴도 구경할수없었다
또는 출산할때 죽을수도있었던 끔찍한 출산후에도
다 인위적인
요즘 티비를보면서 또 내가 시어머님이 되고보니
부처님같은 만인에평등하다고 생각한 시어머님이
단 한번도 부엌에들어오셔서 반찬어떻게하라고 가르켜주신적없지만
장미꽂흐드러지게핀 그집에서 유일하게 재례식으로 고추장만드는법을 가르켜주셔서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몆년전까지도 가르켜주신방식대로 담구어먹었었다
몆달전까지만해도 내가 시어머님게 잘해주지못한것만 뉘우치며 속으로 운적도있는데
겷혼하자말자 휘몰아쳤던 온갖 일들을 누구에게도 말한적없고
시어머님이 담구신 김치한번 먹은적없고 겷혼해서 반찬한번가저오신적없고 부엌에한번 들어오신적도 없다
아들딸 출산해서도 부엌에들어가신적없고 친정어머니게서 남편의빨레까지도 다 하셨고
시댁에서 오시거나 친정에서오시면
또 어쩌다 시댁에갈때나 친정갈때는 만사걱정없는척 부유한척 맘껏꾸미고 허세를부렸다
어느해 그때도 파라한얼굴에 부유한척 평소에하지않던 금목거리를 하고 고향에갔는데
친척누군가가 금목거리를 팔아서 빚을갚지 하며 비아냥거렸다
시동생학비며 하숙비며 빚을 6부로내고 또 7부로도내고있다고 누군가에게들었다
그러면 시어머님이 서울에오셔서 남편을데리고 고향에가셨다
어느핸가 남편이시어머님과 고향에갔다오시더니
처음으로 생전처음으로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이젠 종손논도 밭도 하나도없다고
달달이 시어머님게 돈보내는게 얼만지도모르지만 알고있었고 또 당연하다생각했다
어느땐 남편게서 그 과수원도 다시찾아야한다고 과수원도있었고
내겷혼당시만해도 앞에 방앗간도있었다 삼촌땜에 방앗간도 다 팔았을꺼다
겷혼십년동안 고향에서 곡식한번 가저온적 받은적없고
그 허세가 아직도 남아있다는걸 느낄때가있는데 느낄땐 왠지 서러워서운다
내 자존심이었을까
결혼때 받은 패물들 친구들에비해 많이 받은것같았지만 한복도 6벌이나
대구시내 황금당에서 산 백금쌍반지며 없어진지도 모른채 없어진
결혼후 몆년에걸쳐 시골 재환삼촌어머님이신 잔어머님게 다 빛낸걸알곤 6부로
내게 남편은 말씀은 안하셨지만 매달 이자와 함게 원금을 몆년에걸쳐 다 갚은걸로알고있다
잔어머님이 말씀하셔서 알았고 내가 물으니 맘껏 해주고싶은데 여의치않아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가슴이 찡했던걸 기억한다
남편이가신 그 계단많은 높은지대에 있는집에
시어머님이 몸도 편찮을때였던것같은데
간장을 손수담으신간장을 한말쯤인가 무거운 지금생각해도 시어머님 보통분은 넘으신것같다는 생각이든다
그연세에 고행에서 한참멀고도먼 또 대구에오셔서 또 서울로 또 수색동까지 그 가파른계단을통해 들고올라오셨을
나도 그때 몸이안좋아 계단도 겨우 오르내리락할땐데
시어머님이 빨리 장독에 간장을부으라고 말씀하시는걸
한번 끓여서 장독에붓겠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이튿날보니 간장이없어 간장이없어졌다하니
시장에 갔다팔았다고 말씀하셨다
얼마전 시동생게 그 예기를했더니 뭐라한것같은데 내가 버리는줄알고 생각하셨는것같다
시어머님 그 연세에도 글도 잘써시고 한글도 다깨우치시고 생각도 혁신적이시다
지금도 죄송한 그렇게힘들게오셨는데 마루에누우시는걸
내가 기어코 요를깔아드릴태니 잠깐 자리를비키라고 한게 이렇게 후회되리라곤 생각도 그당시엔 못했다
내가 나이가들고보니 누웠다 일어날려연 손가락도 까딱하기싫은때가있는데 힘에부쳐
돌이켜생각해보면 남편도 생각하면 하루종일근무하고 그 계단을 오르내릴 집에왓을땐 등이 온통땀투성이었다
나는 내생각만해 등을따스한물로 등을씻어주곤 마지막엔 찬물로 끼없었는데 그게 왜그리후회가되는지
녹초가되서 집에왔는데 그냥눕고싶을건데 내가 이나이가되니 외출했다오면 만사가귀찮은데
거리에나가도 집에서 티비를봐도 뭘해도 남편이 가여워 못견딜때가많다
지금 내겯에있는
바꿔진환경에서도 잘 자라준 말썽한번부리지않고 묵묵히 잘 커준 내자녀들
감사한마음으로 잘해야지 마음에부담주지말아야지
내 살아있을때 맘껏 잘해주어야지 생각하면서도
내힘이부치고 내가 할수있는일아라곤 나로인해 스트레스받는일이 없도록하는게
내가 할수있는 일이라곤 생각하면서도
어느땐 내가 참 한심하다는생각이든다
내 자녀들게 미안한게 참 많다
내딴엔 잘한다고한게 다른결과로 나타날때 지나간후에에 후회막급이고
아직까지도 세상사에 서툴다
내집에 내일상을 일거수일투족 다 염탐하고 엿듣는 절도범들으라고
나혼자 정치예기든 사회돌아가는일들을 축구예기도
저들이 끔찍히 듣기싫어하는예기들을 퍼붓는다
일본예기까지도
내 진심이 가미된 예기긴하지만 그렇게절실히 예기안해도 되는예기를
저들이 듣지않는담 혼잣말하기도 힘에벅찬 입밖에내지않아도 될말들을
있는힘 다 내어 막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다시 사람몸받으면 당연히 의식수준이 선진국인 국가에 태어날태니
대한민국으론 고개도 들리지않을것 같다
또 적고보니 두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