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빕니다!
서울교구 주낙현 요셉 신부님께서 성공회신문에 연재하신 시리즈 [성찬례 해설]을 공유합니다.
주낙현 신부님께 감사합니다.
원문 출처: [성찬례 해설 18] 신경의 신앙고백 2 - 신경의 발전과 전례 - 성공회신문 (skhnews.or.kr)
[성찬례 해설 18] 신경의 신앙고백 2 - 신경의 발전과 전례
주낙현 요셉 신부
이미 살폈듯이, <신경>(信經 Credo)의 내용과 형식은 성서 전통 안에서 나왔으며,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교회의 신앙과 일치, 그 정체성을 다지는 행동과 문서로 정착했다. 세례의 준비와 문답으로 시작하여 신앙을 전수하는 기능으로 발전했고, 이를 여러 예식과 예배에서 반복하여 신앙의 뜻을 되새겼다. 또한, 교회가 여러 교리 논쟁을 겪으며 혼란스러울 때마다 좀 더 면밀하게 신앙을 설명하는 신학 작업의 기본과 뼈대가 되었다.
교회 역사에서는 초기부터 현재까지 두 개의 신경이 가장 널리 쓰였다. 그 구조와 내용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을 향한 고백, 하나인 교회에 관한 이해, 신앙의 출발인 세례의 의미, 그리고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향한 희망이 잘 정돈됐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그리스도교가 신앙의 정통성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
사도신경(Symbolum apostolicum)의 정확한 역사적 기원과 출처는 분명하지 않다. 2~3세기에는 세례 문답을 위한 신앙고백의 내용이 여럿 있었다. 이 자료를 정돈하여 4세기에 들어서 지금과 같은 하나의 선언으로 된 문서가 나왔다고 추정한다. 이 신경은 9세기 들어 성무일도에 정기적으로 사용되면서 예배의 중요한 순서로 자리 잡았다. 그 때문인지, 16세기 종교개혁 때부터는 성무일도 <아침기도>를 바탕으로 개신교회의 주일 예배가 만들어지면서 사도신경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니케아 신경(원래 명칭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은 교회가 신앙과 신학을 정립하는 시기에 극심한 논쟁을 겪으면서 나왔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의 초안에서 시작하여,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좀 더 세심하게 개정하여 확정했다. 사도신경이 세례성사와 깊이 연결되어 서서히 발전된 과정과는 조금 달랐다. 그렇지만, 세례성사에 관한 가르침에서 니케아 공의회 초안이 기초로 자주 언급되기도 했다(예루살렘의 성 키릴).
세례성사와 더불어,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의 핵심에 성찬례가 있으므로, 신경은 5세기부터 성찬례의 일부가 되었다. 특히, 말씀의 전례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설교와 강론으로 그 풀이를 들은 다음, 예배에 참여한 모든 신자가 이를 받아들이고 종합하는 표시로 함께 니케아 신경을 외웠다. 이 전통은 동방교회에서 시작되어 서서히 서방교회로 퍼졌고, 11세기에 이르러, 니케아 신경은 서방교회에서도 '주일의 신앙고백'(Symbolum dominicale)으로 전례의 위치를 잡았다.
신경은 이제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성무일도, 주일 예배, 성찬례의 중요한 순서가 되어,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신앙의 내용과 정체성의 근간이 되고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문서이기에, 어렵고 낯선 표현과 언어가 많지만, 함께 배우며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교회의 오랜 신앙은 살아남아 그 힘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캔터베리 대주교 로완 윌리암스의 <신뢰하는 삶>(비아, 2015년 우리말 번역)은 쉽고도 탁월한 신경 해설서다.
우리 기도서(2004년)는 주일 성찬례에서도 니케아 신경을 사도신경으로 대체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편의로만 그렇게 할 일은 아니다. 전통을 깊이 헤아리고, 전례력에 따른 주제를 헤아리며 적용하면 좋겠다. 니케아 신경은 모든 주일 성찬례에서 사용하도록 하되, 사순절과 대림절에는 사도신경을 쓸 수 있다. 두 절기에 담긴 절제와 단순성의 영성을 되새기는 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니케아 신경은 노래 미사에서는 되도록 노래로 암송하는 것이 좋다. 실제로 노래하면, 생경한 문서가 신앙의 고백과 찬양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경험할 수 있다.
한 가지 더. 신경을 외우거나 노래할 때,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나시고" 부분에서는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이도록 한다. 하느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성육신 사건을 되새기며, 우리 마음을 겸손히 하고, 감사의 마음을 깊이 새기는 아름다운 전례 동작이기 때문이다.
출처 : 성공회신문(http://www.skhnew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