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 (코로나 2봉 등정)
알람 소리에 눈을 떴는데 머리가 지끈대는 통에 잠을 잘 못 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중화형인 가 확실하진 않지만 발끝을 흔들었다. 억지스레 몸을 일으켜 세워 침낭을 구겨 넣고 출발할 장비와 옷가지들을 챙겼다. 아침밥은 숭늉에 건조 된장국이었다. 먹히지 않지만 주유한다는 심정으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우리 팀원들은 대부분 잘 먹는다. 특히 중화형은 신기할 정도로 잘 먹었다. ‘아 중화형은 정상까지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식성이 부럽기까지 했다.
밖은 아직 어두웠다. 헤드랜턴이 없어 걸이등을 슬링에 감아 목에 걸었다. 또 후회를 했다. 무슨 생각으로 그걸 줬는지 걸이등은 또 왜 이렇게 무겁던지. 그런데 영훈형이 자신의 헤드랜턴을 나에게 주며 등반대장이 이런 걸 쓰면 되나 하며 걸이등을 가져가셨다. 난 죄송하긴 하지만 영훈형의 랜턴을 받아 헬멧에 걸었다.
출발 전 동규형님은 몸 상태가 안 좋으셨는지 등반을 포기하고 산장에 머물겠다고 하셨다. 겉으로 보기엔 괜찮아 보였는데 아닌가 보다. 그래도 등반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동규형님이 대단하시고 고맙기도 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영훈형은 동규형님 헤드랜턴을, 나는 워킹스틱을 건네받았다.
출발 시각은 4시 40분 정도였다. 좀 늦긴 했지만 산장 안에서는 가장 빠른 팀이었다. 40여 분을 너덜지대를 오른 후 설원에 들어섰다. 우린 두 팀으로 나누어 안자일랜을 했다. 나와 중화형이 한 팀이고 경옥형과 강선배 영훈형이 한 팀을 이루었다. 각자 15m 여유를 두고 키위코일 감기를 하고 마무리 매듭을 하는데 연습을 많이 안 한 티가 났다. 한두 번 연습할 땐 잘할 것 같았는데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다른 나라 클라이머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올라오는 그들의 등반 속도는 우리를 앞질렀다. 코일 매듭도 깔끔해 보이고 너저분한 내 모습에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들은 우리를 앞질러 올라가다 모두 다시 내려와 크레바스를 따라 오른편으로 사라졌다. 이 방향이 아닌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나와 중화형은 왼쪽 가장자리를 따라 오르는 것이 맞다 판단하고 나아갔다. 그들은 벌써 4봉 아래 설원까지 도착해 있었다. 그러더니 다시 돌아와 우리가 오르는 루트로 따라 오르는 것이었다. ‘아 이 녀석들도 우리와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친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등반 속도는 역시나 빨랐다.
뒤에 따라오는 형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이젠 보이지 조차 않았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계속 나아갔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호흡이 힘겹고 허벅지는 터질 것 같았다. 그 많은 훈련기간 동안 스커트 훈련을 안 했던 것이 이런 결과를 낳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르크슈른트에 도착했을 때 점심을 먹었는데 너무 지치고 힘들어 행동식을 먹어 보지만 넘어가지 않는다. 중화형이 콘스프를 끓여줘 마셔보지만 떨어진 체력은 그대로였다. 그때부턴가 갈수 있을지 의심이 들었다. 차마 말은 못 하고 속으로만 삭히고 있었다. 행동식을 다 먹어갈 즈음 중화형에게 1봉을 가자고 제안했다. 중화형도 긍정적으로 응답해 안도했지만 힘겹기는 마찬가지다.
베르그슈른트에서 한참을 쉬는데 경옥형에게서 무전이 날아왔다. “우리는 여기서 하산한다. 너희들이라도 등정에 성공하고 무리하지 마라. 꼭 등정이 중요한건 아니다.” 라는 무전을 하고 하산하셨다. 한편으론 안도했고 무슨 일인가 걱정했다. 조심히 잘 내려가시란 무전을 날리고 나와 중화형은 출발했다. 먼저 앞선 것은 나였다. 온 힘을 다해 올랐다. 제법 경사도가 있어 스크류를 쳐야 했다. 길게 한 피치를 끊고 나니 체력의 한계에 다다랐다. 가지 말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는 걸 억지로 참았다. 피치를 끊고 후등 빌레이를 보고 다시 올랐다. 이러다 죽을 것 같은 심정이 들었다. 체력의 30퍼센트는 남겨 놓아야 한다는 말이 머리에 맴돈다. 안 되겠다 싶어 중화형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도저히 못 가겠다. 죽을 것 같다. 그만 내려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되돌아온 말은 무슨 소리냐 여기까지 왔는데 정상은 가야되지 않겠냐 했다. 난 도저히 못 가겠다 하니 자신이 선등을 서겠으니 올라가자 한다. 그 고집을 도저히 꺾을 수가 없어 스크류를 넘겨주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울 것 같은 심정으로 뒤따라 올랐다. 그런데 방향이 1봉 끌루와르 쪽이 아닌 2봉 쪽으로 향하고 있다. 1봉을 생각했는데 이상하다 생각하고 1봉 가는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건 뒤에 팀이 올라왔을 경우를 말한 것이고 지금은 본래 목표였던 3봉이라는 것이다. 당황스럽고 헛웃음이 났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을 놓아 버리게 되고 짜증이 살짝 나며 갑자기 어디에 숨어있던 기운이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이 맑아지고 없던 힘이 생겨났다.
2봉 바로 앞에 확보하고 우린 최종 목표를 2봉으로 정했다. 중화형도 3봉까지는 힘겨웠던 모양이다. 2봉으로 오르는 루트 중간 확보지점에 앞섰던 팀들이 정상을 등정하고 하강 준비 중이다. 잠시 기다리다 지체할 수 없어 자일을 가지고 바위를 올랐다. 손으로 잡기 좋은 홀드들과 피크를 넣을 크랙들 드문드문 하켄이 박혀있고 슬링도 걸려있었다. 그리 어렵진 않았다. 1피치를 조금 올라가는데 애매한 구간에 봉착했다. 어떻게 돌파할까 고민하는데 중화형이 내려와서 왼쪽으로 돌라고 소리쳤다. 그 말대로 내려와 왼쪽으로 살짝 돌아가니 한편 수월하게 올랐다. 그렇게 1피치를 끊고 2피치를 올랐다. 2피치는 혼합 구간으로 얼음과 암벽을 잘 활용해 무리없이 올랐다. 마지막 한 피치를 더 올라서니 정상이었다.
우리는 오후 2시 35분 코로나2봉 정상에 도착했다. 서로를 축하하고 가지고 있는 연맹기를 들고 기념 촬영을 했다. 우리 산악회 기는 건네받지 못해 촬영은 할 수 없었다.
더 지체할 수 없어 하강을 시작했다. 정상에서 하강은 30미터 두 번을 하면 바닥에 닿을 수 있는데 설벽 구간이 문제였다. 설벽을 30미터를 하강하고 스크류를 쳤다. 아발라코프 갈고리를 준비 안 해 중화형과 고민하다 클라이밍 다운을 했다. 얼마 내려가니 암벽에 하강 포인트를 발견해 로프를 걸고 30미터씩 힘겨운 하강을 몇 번을 더 했다.
베르그슈른트에 도착하고 완경사 설사면은 글리세이딩으로 내려왔다. 처음 망설이던 중화형은 내가 신나게 내려가는 모습을 보더니 뒤따라 환호하며 내려왔다. 뒤돌아 내려온 거리를 바라보니 적어도 100여 미터는 되는 것 같았다. 미친 짓이라고 볼 수 있지만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루한 하산길은 계속되었다. 한참을 내려가 멀리 산장이 보이고 우리를 기다리는 형들의 모습이 보였지만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겨우 코로나무인산장에 도착하고 대충 식사를 마친 후 바로 침낭 안으로 들어갔다.
첫댓글 아 정말 글리세이딩은 신의 한 수 였음.( 넘 편하게 내려옴) 물론 미끄러져 내려올땐 나름 심각했지만..ㅎㅎ
두분 덕분에 정상 부근의 자세한 사진 감상했네요
고생 하셨고 고산 증세로 식사를 제대로 못해 더욱 힘들 었을테고
우리가 먹을 만한 행동식을 제대로 준비 못한 탓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일찍 발길을 돌린 저도 엄청 배가 고팠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