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식사 후 제천으로 달려 우리나라 3대 저수지인 '의림지'의 박물관과 저수지를 돌아보았습니다.
조선시대 3대 저수지는 제천의 의림지를 비롯 김제의 벽골제,밀양의 수산제 입니다.
삼한시대 때부터 벼농사를 위해 만들었다는 저수지인데 밀양의 수산제는 임진왜란 후 황폐화 되어
지금은 논으로 변하였고 당시 1km가 넘엇던 황토 제방의 수문만 남아있답니다.
의림지는 박물관도 학구파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저수지 경치가 좋았으며
특이하게도 본 저수지 옆 작은 저수지가 있고 그 곳의 수문을 통해 아래 농경지로 물이
공급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저수지 제방쪽 아름드리 노송들이 풍광을 더해줘 볼거리를 재공하고 있었습니다.
의림지 역사박물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3대 저수지 중 하나인 제천 의림지
의림지의 가치는 다른 오래된 저수지들과 달리 현재까지 살아 있는 유구함과,
오랜시간 제천사람들의 삶의 터전으로써 이용되어 온 역사성에 그 특별함이 있습니다.
의림지 역사박물관은 의림지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담은 ‘함’으로써
의림지의 역사와 가치를 재조명하고 제천의 역사와 문화를 교육하는 문화학습공간이자 랜드마크로써 기능하고자 합니다.
아직은 핵볕이 강합니다.산에 가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이런 여행도 생활의 활력소가 됩니다.
의림지 역사 박물관 내부 모습입니다.
저수지는 행태에 따라 아래와 같이 세 중류로 나눕니다.
위락용으로 물을 가두는 원지형,
하천의 범람과 바닷물의 역류를 막는 개전형,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막아 가두는 관개형 입니다.
논에 물을 대는 기구들
물은 생존의 필수요소 - 물지게와 논두렁을 뚫어 물을 대는 농기구들
의림지의 관개수로
우리 나라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저수지로 손꼽힙니다.
제천의 옛 이름인 내토(奈吐)·대제(大堤)·내제(奈堤)가 모두 큰 둑이나 제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 이 제방의 역사가 서력기원 전후의 시기까지 오르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세종실록》에는 의림제(義臨堤)라고 표기하였습니다.
낮은 산줄기 사이를 흐르는 작은 계곡을 막은 제방은 길이가 530척(尺)이며, 수위는 제방 밖의
농경지보다 매우 높아서 관개면적이 400결(結)이나 되었습니다.
못의 둘레는 5,805척이나 되고 수심은 너무 깊어서 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상주의 공검지(恭儉池)나 밀양의 수산제(守山堤), 김제의 벽골제(碧骨堤)와 같은 시기의 것이지만
제방의 크기에 비해 몽리면적이 큰 것은 제방을 쌓은 위치의 수위가 높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물의 주입부에서부터 토사(土沙)가 쌓여 작아진 것입니다.
제방은 산줄기 사이의 낮은 위치에 자갈과 흙과 모래·벌흙을 섞어서 층층으로 다지되 제방
외면이 크게 단(段)을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단면이 이중의 사다리꼴을 이루고 외면은 석재로
보강하였습니다.
출수구는 본래의 자리가 원토인 석비레층으로 그 위에 축조되었던 것이나 지금은 원형(原形)이
사태로 말미암아 없어지고 패어나간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이 제방은 신라 진흥왕 때 우륵(于勒)이 처음 쌓았다고 하고 그 뒤 약 700여 년 뒤에
박의림(朴義林)이 쌓았다고 합니다.
문헌에 기록된 바로는 세종 때 충청도관찰사였던 정인지(鄭麟趾)가 수축하고
다시 1457년(세조 3) 체찰사가 된 정인지가 금성대군(錦城大君)과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의
단종복위운동에 대비하여 군사를 모으면서 호서·영남·관동지방의 병사 1,500명을 동원해서
크게 보수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뒤 1910년부터 5년 동안 3만여 명의 부역에 의해 보수하였던 것이 1972년의 큰 장마 때 둑이
무너지자 1973년에 다시 복구한 것이 오늘날의 모습입니다.
현재의 의림지는 호반둘레가 약 2㎞, 호수면적은 15만 1,470㎡, 저수량은 661만 1,891㎥,
수심은 8∼13m입니다.
현재의 몽리면적은 약 300정보에 이릅니다.
수리관개뿐만 아니라 유서깊은 경승지로 이름이 있으며, 충청도지방에 대한 별칭인
‘호서(湖西)’라는 말이 바로 이 저수지의 서쪽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제방과 호수주변에는 노송과 수양버들이 늘어섰고 1807년(순조 7)에 세워진 영호정(映湖亭)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鏡湖樓)가 있으며, 이곳 특산물로는 빙어가 유명합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고대 저수지는 제천 의림지와 영천 창제, 밀양 수산제, 부여 궁남지,
경주 서출지 등이 있다고 합니다.
고대부터 있던 저수지인 터라 그만큼 그 주변엔 발굴을 통해 축조 방식이나 주변의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기록들이 많이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중 제천 의림지는 용두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막아 저수지로 만들었지만 바닥에서도
물이 솟아나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 곳은 제방쪽입니다.소나무가 끝내줍니다.
제방쪽 "경호루" 정자
2012년~2012년 중원문화재연구소에서 의림지 제방의 일부와 남쪽 평탄지에 학술발굴을 실시해
'점토'와 '서절토'를 교대로 성토한 축조방식을 확인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제방 하부에서 신라 토기파편이 출토되기도 했습니다.
발굴조사가 불가한 곳은 훨씬 이전에 지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합니다.
충주 중원문화재연구소에서 봤던 의림지 관련 내용들이 훨씬 자세히 소개돼 이해하기 좋습니다.
의림지와 관련된 장자못 설화 등 이야기를 만나볼 수도 있고 아이들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내용도 게임으로 구성해 쉽게 설명해뒀습니다.
실로 오랫만인 망중한
동문이라지만 외간남자,외간여자끼리는 익숙치 않은듯 합니다.
그렇게 웃으니 참 좋습니다.
동문 끼리는 금방 익숙해 집니다.
잘 좀 찍어 주세요~선배님
"잠깐, 안경을 써야돼요,"
"워뗘? 안경이 캄프랏찌 해 주지요?"영어도 사투리 같아요 ^^
맹인협회 사람들이요? 안경협회 간부들이요?
수문 아래는 절벽? 이 물은 농경지로 흘러들어 갑니다.
본 저수지 옆에는 보조 저수지가 있습니다.
작은 저류지 쪽 산길로 돌아 버스로 가려고~~
산에서 내려온 돌이 바위굴을 만들었습니다.인공폭포를 위한 터널입니다.
이 안은 떨어지는 폭포 뒷면입니다.
수문이 있는 작은 저수지로 가는 수문위 다리--본 저수지쪽 끝의 거대 소나무가 멋집니다.
제천은 이미 조선 시대 때부터 약령시(藥令市)가 개설될 정도로 한약재로 유명하였으며,
약초의 유통이 활발하였습니다.
전형적인 산악 지형으로 질 좋은 약재를 생산해 내는 것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중부 지방 물산의 집산지로서 유통에도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제천시 화산동에 있는 약초 시장은 일제 강점기부터 본격적인 약령시로 성장하였습니다.
1930년대 말 중일 전쟁과 중국의 공산화 후 약재 수입이 중단되어 수입 한약재에 의존하던 전국
대부분의 약령 시장은 쇠락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제천시는 태백산맥의 동서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인데다가 최적의 토산 약재가
자생하고 있는 강원도, 경상북도, 충청북도 지역 등을 배후 도시로 갖고 있어 약초 시장의
성장이 뚜렷하였습니다.
제천약초시장은 일제 강점기에는 제천시 중앙동에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점포 10개 정도로 시작되었는데, 물량이 많아지면서 점포 수가 25개 정도로
늘어난 적도 있었습니다.
제천시 중앙동 복개 공사 직전인 1933년에 지금의 제천시 화산동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당시 점포 수는 69개 정도였습니다.
1993년에 제천약초시장은 건물을 신축하여 현재 인정 시장으로 74개의 점포가 영업하고 있는
전국의 3대 약초 시장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2011년 현재 종업원을 포함하여 약 145명의 상인이 제천약초시장에서 영업하고 있습니다.
주요 취급 품목은 황기, 당귀, 황정, 더덕, 천궁, 홍화, 오가피, 만삼, 생강, 강활 질경, 두충,
목단, 방품, 사삼, 산수유, 시호, 율무, 인진쑥, 작약, 지황, 고본, 헛개나무 등 총 60여 가지입니다.
연간 매출액은 약 490억 원가량으로 시장 상인들의 소득 증대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답니다.
제천약초시장은 전국 약초 생산 물량의 80%를 취급하고 있으며, 약초의 주 생산지는
조선 시대부터 전통을 이어 오고 있는 충청북도 북부 권역입니다.
한방과 연계한 다양한 한방 프로그램을 접목하여 현대 의학에 맞는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도매 시장의 기능에 소매 기능을 추가하여 일반 소비자들이 많이 찾고 있습니다.
제천 지역의 약초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옛 청풍읍의 경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자단향, 복신, 승검초뿌리, 복령, 인삼 등이 등장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송이버섯, 대추, 자초(紫草), 인삼, 석이버섯, 복령 등
이, 『청풍부읍지(淸風府邑誌)』에 진상한 약재로 백급(白芨), 백출(白朮), 황기(黃芪),
시호(柴胡), 택사(澤瀉), 황백(黃栢), 건칠(乾漆), 당귀(當歸), 목통(木通), 오미자, 산삼(山蔘),
여로(藜蘆), 연교(蓮翹),생송이[生松茸], 석이[石茸], 산약(山藥) 등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옛 제천현의 경우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승검초뿌리, 복령, 복신, 자단향, 담쟁이, 대왐풀,
인삼, 느타리, 석이, 호도,지초, 신감초, 순채, 홍화(紅花) 등이 나오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순채, 대추, 송이버섯, 자초, 안식향, 신감채 등이,
『제천현지(堤川縣誌)』에 진상한 약재로 황기, 시호, 백출, 백급, 황백, 인삼, 백복령, 건칠, 당귀,
강활(羌活), 오미자, 금은화(金銀花), 백복신(白茯神), 적복령(赤茯苓), 산사육(山査肉), 여로,
연자(蓮子), 목단피(牧丹皮), 차전자(車前子), 백작약(白芍藥), 초룡담(草龍膽), 도라지,
세신(細莘), 오갈피(五葛皮), 위령선(威靈仙), 석이, 율무 등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금수산(錦繡山)은 뭇 봉우리가 수려함을 다투고 10여 리를
반거한 그 속에는 약초(藥草)가 많다.”라고 하였습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제천 지역은 산악 지대의 구릉지와 사경사지에 석회 지질층이 분포하고, 연평균 기온 10.1℃,
최고 평균 기온 16.5℃, 강우량은 1,100㎜로 약초의 생육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제천은 사계절이 뚜렷한 중산간 지대에 준고랭지의 분지형으로 일교차가 크고, 석회암과 사질
토양의 지질층으로 물 빠짐이 좋아 육질이 단단하고 약효가 월등한 약초 재배의 적지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제천약초는 황기 중심에서 당귀, 일천궁, 토천궁, 지황, 감초, 작약, 백출, 의이인, 황정, 오미자
등으로 다양하게 품목을 확대하여 약초 재배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제천시 백운면 모정리 일대의 오미자 집단 재배지로 변천하고, 국내에서 재배가 단절된 감초,
일천궁 등의 희귀 약초를 재배하면서 약초의 주산지로서의 입지를 넓혀 가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인삼공사에 우수 한약재를 계약 재배로 납품하여 안정적인 농가 소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2006년부터 우수 한약재 생산을 위한 GAP 매뉴얼의 시행으로 GAP 한약재를 계약 재배로 생산하여
고가에 판매하고, 약초 경매장의 집산지로 발전하면서 제천시 농업기술센터와
제천시청 한방경제과를 중심으로 약재를 응용한 약재 가공, 약재 음식, 약재 주류, 한방 화장품,
약초 요리, 약초 목욕용품 등을 개발하는 등 한방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첫댓글 의림지에도 베스가 많아 허가난 낚시꾼이 잡아내고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