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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물리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입자 물리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 현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 고등과학원KIAS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섭동론적/비섭동론적 강력, 유효이론, B-입자의 성질, 비입자unparticle의 성질 등을 연구하여 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2003년 이공계 위기, 2005년 황우석 사건 등을 계기로 ‘월간중앙’ ‘한겨례’ 등 여러 매체에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관한 글을 기고하며 2007년부터 1년간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편집위원으로 활동했고, 문지문화원 등에서 과학 관련 교양강의를 했다. 현재 인터넷 포털 네이버 오늘의 과학에 격주로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넘어]가 있고, 옮긴 책으로 스티븐 와인버그의 [최종이론의 꿈] 이 있다.
인문, 사회,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상상력
비과학적 요소가 횡행하는 한국사회를 벗기다
사회와 일상생활이 작동하는 것과는 약간 동떨어진 무엇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과학적인 사고는 실험실이나 강의실보다 오히려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더욱 '절실'하다. 합리적 논리와 일관된 사고가 결여된 한국사회의 갖가지 현상을 과학의 틀로 분석하며 사고의 확장과 전환을 꿈꾸는 이 책은, 과학서이자 사회비평서로서 제역할을 다한다. 소장 이론물리학자가 한국 사회에 내놓는 발칙한 정치학적 상상력!
1. 과학대중화에 대한 대담한 역발상
오늘날 역사나 철학도 비슷한 처지이지만, 과학만큼 대중에게 말을 걸면서 일종의 ‘강박관념’까지 느껴야 하는 분야도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좀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과학의 원리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과학 대중화 담론의 화두는 이것이 대세였다. 즉 어떻게 꼬드길 것인가였다.
혹시 그것은 착한 선생님 같은 생각은 아니었을까? 가르치려 드는 순간, 설명하려 드는 순간 오히려 대중은 과학과 더욱 멀어졌던 것은 아닐까? 일상생활의 용어와 사례로, 코믹한 상황 설정으로 과학의 원리를 알려줘봤자 그때만 반짝할 뿐이었다. 과학적 지식과 사유가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그 이유는 접근법이 너무 획일적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대중이 과학의 원리를 깨닫기만 하면 그 효용성은 알아서 느낄 것이라고 쉽게 생각한 면은 없었을까?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는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세상에 나온 책이다. 우리는 왜 과학을 ‘설명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여길까? 오히려 과학은 세상을 보는 렌즈로 우리에게 주어진 도구는 아닐까? 세상을 뒤집어보는 뒤집개로, 해부하는 메스로 써야하는 게 아닐까?
이 책 또한 과학을 몰라주는 세상에 대한 과학자의 조급증 위에 서 있다. 하지만 접근법이 다르다. 저자 이종필은 과학을 험한 정치판에, 복잡한 경제나 미묘한 문화판에 가져와서 마구 굴린다. 과학이 과연 실험실을 벗어나서도 의미를 가질 것인지, 물리학적 공간의 현상이 세상 속의 권력이나 사람들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대칭성을 띠게 될 것인지를 알아보고 있다. 반대로 세상의 현상들이 과학적으로 볼 때 어떤 운동인지, 끊어짐과 연속인지 등도 살펴보고 있다.
그 출발점은 입자물리학자인 저자가 보기에 세상에 불합리한 것, 합리성을 가장한 합리화가 너무나 많았다는 데 있다. 그래서 저자는 과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과학자가 생각하는 ‘합리성’의 잣대로 사회를 재기 시작했다. 결코 과학을 설명하고 알리는 데 목적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사회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이 하나의 비유로, 거울로 세워지고 야유와 풍자의 그물로 짜여진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책은 과학자의 사회비판서이면서 동시에 사회에 개입된 ‘정치화되고 관점화된 한 사람의 과학지식’에 대한 소개서의 성격도 띤다. 그 역발상이 가져다주는 역동성과 낯설음이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가 갖는 새로움이다.
2. 두 문화의 ‘결합’이 아닌 ‘융합’
80년대 학번의 막차에 올라탄 저자는 대학시절 운동권이었다. 앞에 나서서 대중을 이끄는 활동가는 아니었지만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했다. 물리학 전공은 뒷전이었다. 10여 년 뒤 지금 그는 이론물리학자가 되었다.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며 사회에 대해 고민한 것은 그에게 추억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물리학자의 시각에서 사회를 분석할 수 있는 원동력이 돼주었다.
따라서 이 책은 사회에 대한 과학자의 훈수두기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좀더 내밀하고 적극적인 ‘자아의 정체성’이 많이 반영된 글이다. 지금껏 과학자가 문과와 이과로 나뉜 두 문화 사이에서 고민하고 방황한 책을 내놓은 경우는 드물었다. 대개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짝사랑하거나 비난하는 일방향 담론이었지, 그것을 한 몸에 육화시켜 글로 뽑아낸 경우는 별로 없었다. 이 책이 과학과 사회의 기계적 결합이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저자는 정치, 문화, 사회, 인간의 네... 영역에서 때로는 현상학적인 분석을 때로는 철학적인 질문과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먼저 책의 목차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각 장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정치’에서는 -과학적 사고의 ‘불능’이 초래할 위험성을 예시하고 대통령에게 왜 ‘물리학적 사고’가 필수인지를 설파한다, -부패한 정치인이 한 방에 검증되지 않는 까닭을 과학에서의 이론과 실험의 관계를 통해 설명한다. -2007년 대선 당시 터진 BBK사건을 엔트로피 이론으로 설명한다. -나아가 정치에 대한 객관적 관찰이 불가능한 이유를 과학의 ‘이론의존성’ 문제로 해명한다. -마지막으로 진화론과 우주론을 통해 현대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제도인 ‘1인1표’ 원리를 들여다본다.
제2부 ‘문화’에서는 -물리학에서의 ‘위계 문제’를 해결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여성물리학자 랜덜에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러브콜을 하고 있는 이유 -물고기를 연구하는 생물학자가 참여해 대박 스펙타클을 만들어낸 외국 영화의 사례 -완벽한 과학이론과 웰-메이드 텔레비전 드라마의 시나리오가 갖고 있는 다섯가지 공통점을 살펴본다. -그리고 한국의 [태왕사신기] [주몽] [신기전] 등의 블록버스터 드라마 및 영화에서 2% 부족했던 점을 ‘과학적’으로 찾아낸다. 판타지와 실사의 부조화, ‘미세조정의 문제’, ‘인식’ 없는 ‘수식’으로만 존재하는 과학 등이 그것이다.
제3부 ‘사회’에서는 -최근 발견된 우주의 암흑물질이 왜 인류의 무지를 증명하는지, 나아가 이를 글로벌 경제 영역에 적용해서 하우스만과 스투제니거의 암흑물질 설이 미국경제 부활 프로젝트로 도입되었다가 실패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사주·풍수에 대해서 과학적인 설명을 시도한다. 무조건 비과학적으로 배격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된 것들을 ‘정량적’으로 모형화하고 실험하려는 시도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리고 최근 기업들의 신입사원 연수에 도입되는 등 유행하는 ‘과학화 전투훈련’을 통해 정치·외교에 과학이 필요한 이유, 게임으로 분석하는 쇠고기 협상 문제 등을 선보인다.
제4부 ‘인간’에서는 -과학에서의 인류원리가 세상을 다스리는 원칙과 닮은 점, -양자역학의 세계를 분석함으로써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확률’뿐이라는 점, -중력 이론이 없으면 우주연구도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통해서 한국의 기초과학 현황을 비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리학 방정식의 하나인 ‘우주상수’를 통해 미로에 빠진 현대사회의 미적 질서화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한다.
아래에 본문의 몇 대목을 통해 이러한 저자의 시도가 어떻게 구현되어 있는지를 살펴본다.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에는 ‘미래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이란 강좌가 있다. 버클리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이 강좌는 과학과 전혀 관계없는 전공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강의의 첫 번째 주제는 에너지와 폭발물에 관한 내용이었다. 저자는 이 내용을 소개하며 “세상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가장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의 첫 번째 시간으로는 매우 적합하다”라고 시니컬하게 말한다. 물론 그런 강의가 존재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부러움과 함께. 그런 부러움과 필요성에 대한 자각이 이 책의 제목을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로 만들었다.
대통령들의 비합리성이 국민들에게 주는 고통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오죽했으면 뉴욕타임즈가 2004년 대선에서 존 케리 민주당 후보를 가리켜 “우리는 그가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안도한다”라고 썼을까.
저자는 우리가 정치인들과 대통령으로부터 고통받는 이유는 이들의 과학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 두뇌’가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까운 일례로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거나, 2007년 합의 이혼으로 잠깐 국민들의 눈을 속인 예전의 통합신당도 합리나 이성보다는 야만에 훨씬 가까웠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암흑물질도 살리지 못한 미국 경제
분명히 존재하지만(존재한다는 증거가 10개도 넘음) 빛을 내지 않아 관측되지 않는 우주의 물질을 과학자들은 ‘암흑물질’로 부른다. 은하의 회전곡선을 관찰한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암흑물질은 우주가 계속 팽창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그 실체를 알 수는 없다. 이 암흑물질을 끌어들여 미국의 경제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버드 대학의 하우스만과 스투제니거는 2005년 「미국과 세계의 불균형」라는 논문을 발표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암흑물질)가 미국의 엄청난 적자를 메워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주장한 암흑물질은 바로 미국이 해외에 직접 투자할 때 지식과 기술, 브랜드 등에서 얻는 지식 서비스를 말한다. 또한 미국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세계 최강국이기 때문에 갖는 프리미엄, 즉 미국 자산의 안전성이 담보하는 보험 서비스나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발권력 등도 암흑물질로 보았다. 이들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의 누적된 경상수지 적자는 2조 5천억 달러이지만, 암흑물질을 고려해서 다시 계산하면 미국이 같은 기간 2조 8천억 달러를 더 수출한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과학자들이 관찰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암흑물질을 고안했다면, 경제학자들은 미국 경제의 안정성이라는 일종의 신념이나 희망 사항을 설명하기 위해 암흑물질을 끌어들인 것이라고 말한다. 두 저자는 암흑물질을 상정하지 않은 기존의 설명들은 매우 혼란스러운데, 그것은 톨레미의 천동설을 받아들여 행성궤도를 설명하려면 임의의 주전원을 여럿 도입해야 하는 것과도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3년여가 지난 현 시점에서 본다면 그들의 이론은 틀렸다. 암흑물질은 미국 경제를 구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보이지 않는 무엇이 전체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은 매혹적이라고 말한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처럼 말이다. 하우스만과 스투제니거의 암흑물질설도 그런 매력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보자. 과학자들은 생물체의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에서 눈에 보이는 유전자가 존재하는 영역에 전체 DNA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DNA의 이 어두운 부분을 ‘게놈의 암흑물질’이라고 부른다. 다행히 게놈의 암흑물질은 우주의 암흑물질보다 더 잘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심지어 이 게놈 암흑물질들을 떼어다가 다른 곳에 조립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게놈 암흑물질은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일종의 쓰레기다. 사람의 게놈 암흑물질에서 무언가 역할을 하는 영역은 2~3%에 불과하다.
그렇다. 과학자들도 우주의 암흑물질에 바라는 것이 많고, 경제학자들도 경제의 암흑물질에 바라는 것이 많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매력으로 보이는 것을 상쇄시키면 어떤 결과가 오는 지는 DNA 암흑물질과 현 미국경제의 위기가 잘 말해주고 있다고 저자는 환기시킨다.
과학화 전투훈련과 전작권 회수 문제
한국은 아직 디지털화(정량적 분석)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아날로그적인 경험치가 수치화된 근거보다 더 신뢰를 받는 경우가 있다. 한 국가의 국방과 외교에서는 정량화와 모형화가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떤 형태로 가능할까?
이와 관련한 좋은 예가 육군에서 운영 중인 육군 과학화 전투 훈련장Korea Combat Training Center, KCTC이다. 훈련을 받으러 온 부대에게는 ‘마일즈MILES, Multiple Integrated Laser Engagement System, 다중통합레이저 교전체계’라는 장비가 지급된다. 마일즈 장비는 레이저를 쏘거나 감지한다. 각 병사들은 자신의 몸 곳곳에 마일즈 장비를 부착한다. 이 장비는 자신의 몸으로 발사된 레이저를 감지해서 경상, 중상, 사망을 판정해 표시한다. 소총뿐만 아니라 지뢰나 포격, 전차 등도 레이저를 발사한다. KCTC에는 훈련부대에 맞서 대항군이 있다. 대항군은 전문적으로 양성된 부대로 훈련부대를 대상으로 한 일종의 스파링 파트너다. 2005년 KCTC가 문을 연 이후 대항군은 압도적인 전적으로 훈련군을 이겼다.
이 모든 전투 상황은 실시간으로 훈련통제 본부로 전해진다. 모든 전투 병력의 위치와 움직임은 물론 전투 행동 하나하나가 일일이 다 보고된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공격을 했고 누가 누구의 총에 맞아 어떤 부상을 입었는지 낱낱이 드러난다.
실전 같은 훈련의 결과와 그 성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병사들의 사망률은 물론 각급 지휘관의 사망률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한 자료에 의하면 지휘관의 사망률이 일반 사병의 사망률보다 크게 높아 전투 상황에서 지휘 체계의 혼란에서 생기는 피해가 막심했다. 반면 대항군은 지휘관이 사망하더라도 곧 그 권한의 승계가 비교적 순조롭다. 북한의 이른바 전군의 간부화가 실전에서도 큰 힘을 발휘하는 셈이다. 그 밖에 주야간별, 공격·방어 시의 희생률이나 아군 간 오인 사격 등에 대한 자료도 얻을 수 있다.
훈련이 거듭될수록 훈련군의 어이없는 사망률이 낮아지는 추세는 KCTC의 큰 성과 중 하나다. KCTC를 ‘과학화’ 전투 훈련장이라고 명명한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과연 KCTC의 무엇이 ‘과학’과 관련 있을까? 저자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정량화’를 꼽는다. KCTC가 성공한 중요 요소 가운데 첨단 장비의 역할도 크지만, 그 장비들과 전체 체계를 구성하는 근간에는 교전 때 각 병력이 입는 피해 정도에 대한 정량적 설계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적인 마인드는 “총에 맞았다”가 중요하지 그 정도가 얼마인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을 모사하기 위해 모형을 만들고 이를 통해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자료를 모아 새로운 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정량화는 피할 수 없다. 문제는 그 정량화의 과정이 얼마나 믿을 만한가, 현실과 얼마나 가까운가, 전반적인 체계가 논리적인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점들이다. 이는 과학적 분석의 과정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저자는 KCTC의 교훈을 좀 더 넓힐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은 중국-대만과 함께 거의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 할 수 있다. 남북한을 통틀어 200만의 군대가 휴전선 155마일에 대치하고 있다.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는 분명 남한에게 가장 큰 군사적 위협이다. 때문에 우리는 연간 20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국방비를 투자하고 있다. 정치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항상 친북이니 빨갱이니, 북한의 위협이니 하는 말들이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해왔다. 이 논리의 밑바탕에는 북한의 군대가 남한의 군대보다 우세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남한군만으로는 북한의 전쟁 기도를 억지하지 못한다는 논리는 주한미군의 가장 큰 존재 이유다. 그렇다면 한번 이렇게 질문해보자. “정말 그런지 어떻게 알지?”
국방부나 언론들은 지난 50년간 북한군이 우세한 이유를 병력과 군장비의 수적 우위에서 찾았다. 숫자놀음은 그 자체로 수치화나 정량화이니까 무척 과학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장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KCTC가 도대체 무슨 소용일까? 훈련군과 대항군의 병력 수와 확보한 무기만 비교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엄청난 돈을 들여 훈련장을 만들어서 병사들을 굴려보는 것일까?
우리 모두는 이 우스개 같은 질문의 답을 알고 있다. 숫자와 더불어 각자가 보유한 장비의 성능을 함께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남한군이 북한군에 밀린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국방력을 더 강화해야 하고 주한미군 또한 여전히 주둔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대로 또다른 이들은 남한군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전쟁 억지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원래 주둔 목적은 사라졌다고 말한다. 이런 논란은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환수할 일정을 정하면서 더욱 커졌다.
만약 국방부에서 정말로 믿을 만한 전쟁 시뮬레이션을 여러 차례 해보았다면, 그리고 그 결과를 솔직하게 공개했더라면 남북한의 군사력 차이에 대한 항간의 논란은 이미 가라앉았을 것이다. 저자는 아직까지 한국 정부가 신뢰성 높은 전쟁 시뮬레이션을 해볼 만한 역량이 부족하다고 본다. 그 때문에 남북한 군사력 격차나 전쟁 억지력은 항상 뜨거운 이슈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언론에서 공개된 한반도 전쟁 시뮬레이션은 미국의 작품이었다. 1994년 핵 위기가 발생했을 때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폭격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당시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하여 김일성 주석과 극적인 담판을 짓고 급기야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때 미국에서 영변 폭격을 검토하며 시행한 전쟁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개전 초기 3개월 내 미군 5만 명 사망, 한국 민간인 100만 명 사망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지금 이라크 전에서 겨우 3천 명 정도의 미군이 사망한 것으로 부시 행정부가 곤욕을 치르는 점을 감안한다면 미국으로서는 미군 5만 명 사망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가 국가 안보의 근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전쟁 시뮬레이션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국가안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따라 대처할 마인드가 없었던 것도 큰 이유이다.
선거의 이론의존성
과학에서 경험주의적 오해에 타격을 가한 뒤엠-콰인 명제라는 것이 있다. 즉 어떤 실험이 기존에 확고하게 위치를 점했던 이론과는 다른 결과를 도출시켰다 해도그 이론이 틀렸다고 말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가령 뉴턴 역학이 발표된 이후 그와 반하는 숱한 천문학적 관측들이 제기됐지만, 모두 기각됐다. 뉴턴 역학은 아인슈타인에 와서야 비로소 깨졌는데, 그것은 실험 결과 때문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뉴턴의 이론보다 더 완벽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과학에서의 이론과 실험의 이러한 관계를 환기시키면서 동시에 이런 이론에의 의존성은 대통령 선거 때 후보 검증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보통 유권자가 특정 후보를 지지할 때, 그 후보에 대한 흠결이 드러난다 해도 지지를 철회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오히려 그 검증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거나 후보가 적극적인 해명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이론을 가장 잘 갖춘 후보”였다. 그에 대해 수많은 의혹과 검증 공세가 있었지만, 그걸 다 뿌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이명박을 물리칠 ‘이론’이 부재했고, 한두 가지 반격으로는 휘청하지 않을 만큼 이명박이라는 ‘이론’이 강고했음을 입증한다. 저자는 이것이 바로 물리학의 용어로 ‘검증에 의한 후보의 과소결정’이라고 표현한다.
정치에서도 물리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론이 없는 관측이나 실험, 그리고 검증은 무의미할 뿐이다. 오히려 한두 가지 의혹으로 ‘이명박 이론’이 반증되지 않으면 그것은 그 이론이 옳은 것이라는 더욱 강력한 신뢰를 심어주게 된다. 다른 예로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 역시 훌륭한 이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회창 후보는 대통령이 되진 못했지만, 근소한 표차로 2위를 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그가 맞닥뜨렸던 상황변수들은 심각했다. 자기 아들의 병역 문제가 제기됐을 뿐만 아니라 IMF라는 환란, 이인제 후보의 출마, 김대중-김종필 연합 등 녹록치 않은 변수들이 계속 발생했다. 그럼에도 그가 그만큼의 표를 획득한 것은 당시 당선됐던 김대중 대통령보다 더 훌륭한 이론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자신이 맡은 주제들을 치밀하게, 논리적으로, 풍성하면서도 유려하게 펼쳐나간다. 과학과 인문학이 서로 보완하면서 현실을 ‘두껍게’ 묘사한다는 것이 이 책의 큰 매력이라고 할 것이다. 저자는 과학을 사회로, 사회를 과학으로 환원시켜서 생각하지만 자신이 환원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결코 망각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지적 모험에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머리말
제1부 정치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 1
- 대통령 지망생에게 ‘물리학’은 전공필수
과학적 사고의 ‘불능’이 초래할 위험성
정치와 종교의 분리만 알아도 훌륭한 대통령감?
최소한의 상식과 최소한의 원칙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 2
- 부패한 정치인이 한 방에 검증되지 않는 까닭
한두 가지 반격은 이론을 흔들지 못한다
이명박은 가장 ‘잘 갖추어진 이론’
정치에서의 뒤엠-콰인 명제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 3
- 터무니없이 낮은 엔트로피, BBK 사건
과학자들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믿는 이유
엔트로피 이론으로 이해할 수 없는 BBK 사건
엉터리 과학논문보다 솔직한 고백이 낫다
정치에 대한 객관적 관찰은 가능한가?
-관찰의 이론 의존성
실험이 이론을 이길 수 없는 이유
새로운 실험결과는 유예기간이 필요하다
무능한 좌파정권이 나라를 망친다?
1인 1표는 자연의 원리?
-진화론과 우주론
우주는 팽창한다
비균질성에서 불평등성으로
1인 1표가 갖는 의미
제2부 문화
스필버그를 매혹시킨 물리학자
- 랜덜과 선드럼, ‘위계 문제’의 돌파구를 찾다
다섯 번째 차원이 모습을 드러내다
스토리 생산에서 자연과학이 절실한 이유
“상상력이 지식...보다 중요하다”
- 생물학자가 만들어낸 영화
물고기 전문가의 강의로 만들어진 영화
인문학이 도와줘야 과학이 그럴듯해진다
과학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 과학 이론과 아름다운 스토리라인의 5가지 상관관계
과학과 TV 드라마의 공통점
과학의 아름다움을 떠받치는 다섯 가지
미세조정의 문제를 넘어선 한국 드라마
- [태왕사신기]와 [주몽]의 차이점
판타지와 실사의 부조화
‘위계 문제’ 혹은 ‘미세조정의 문제’
스토리 일관성 없는 [디 워]
가장 과학적인(?) 김수현의 드라마
한국 영화, 제작비 100억 원에 과학 자문료는?
- 고전역학이 부족했던 [신기전]
‘인식’ 없는 수식으로서만 존재하는 과학
‘과학적’이지 않고 ‘무협적’이었던 [신기전]
제3부 사회
인류의 무지를 증명한 물질
- 우주상수가 정말 암흑 에너지일까?
인류의 무지를 극명하게 입증하는 물질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정체
“왜 하필 지금 우주가 팽창할까?”
암흑물질도 살리지 못한 미국 경제
- 하우스만과 스투제니거의 암흑물질 설
해외투자가 바로 ‘암흑물질’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
과학자와 사주·풍수
- 과학적 원리로 설명한 배산임수
반증이 가능해야 ‘과학’
음양오행은 보편적 환경을 코드화한 것
사주에는 정량적 분석이 없다
과학이 말할 수 있는 풍수의 문제
정치·외교에도 과학이 필요하다
- 정량화와 모형화, 그리고 시뮬레이션
언론사는 왜 과학적이지 않은가
과학화 전투훈련이 이뤄낸 것
북한 군대가 정말 한국보다 뛰어날까?
국가 간 갈등은 과학적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게임이론으로 분석한 미국산 쇠고기 협상
- 수학 이론이 말하는 성공적인 위협
협상의 과학적 조건에 대한 고찰
한국은 합리적인 플레이어인가?
전문화해야 통합적 시야를 키울 수 있다
제4부 인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확률뿐이다
- 양자역학의 세계
에너지 덩어리로서의 빛의 성질 입증한 광자가설
양자역학의 정신을 실현하다
코펜하겐 해석의 탄생
중력 이론 없이 우주 연구가 가능할까?
- 한국의 첫 우주인
태곳적부터 짊어졌던 한국인의 ‘천형’
근본이 밑바닥인 한국 과학
“우주여행은 보여주기식 운동경기”
양자역학과 관찰자
- 관측자의 중요성과 고착되지 않는 고유 상태
관측의 결정적인 역할
“관측 없인 고양이도 어정쩡하게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리학 방정식
- 우주상수와 인류원리
질량이 있으면 시공간은 휘어진다
양자역학과 중력을 꿰뚫을 이론
미로에 빠지는 듯한 인류원리
‘인류원리’가 실종된 한국 정부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교훈
시스템으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 자율성
로마 천 년의 역사가 보여주는 ‘여백’
‘인류원리’가 빠져 있는 쇠고기 협상
전 세계 과학계의 이목이 9월 10일에 집중되고 있다. 지난 달 완공된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가 드디어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을 넘나들며 지하 100미터에 건설된 LHC는 둘레가 무려 27킬로미터에 달하는 지구에서 가장 큰 입자가속기이며, 그 안에 설치된 검출기 역시 단일 장치(device)로는 지구 최대의 규모이다. 역설적이게도 지상 최대의 구조물 가운데 하나인 LHC는 지구 아니 우주에서 가장 작은 물질을 발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류 최대의 물리학 실험을 앞두고 그 비중만큼이나 여러 가지 추측과 예상이 쏟아지고 있다. LHC의 가동을 둘러싼 논의와 관심은 이마 과학의 범주를 넘어선 것이다. 우주의 생성 원리를 밝혀냄으로써 신의 영역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에서, 지상에서 빅뱅을 재현함으로써 지구 전체를 삼켜버릴 블랙홀을 만들게 될 것이라는 종말론(인터넷에서 지구붕괴 시뮬레이션 동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에 이르기까지. 과학자들에 따르면 지구 붕괴는 전혀 근거가 없는 낭설일 뿐이지만, LHC의 실험 결과가 과학자들의 예상과 어긋난다면 적어도 물리학의 이론은 완전히 새로 씌어져야 한다. 전세계가 주목하는 것도, LHC가 21세기의 바벨탑이자 판도라의 상자로 불리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는 바로 이 바벨탑을 쌓기 위해 인류가 쏟은 열정의 기록이자 바벨탑에 오르기 위한 최소한의 안내서이다.
전 세계 과학계의 이목이 9월 10일에 집중되고 있다. 지난 달 완공된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가 드디어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을 넘나들며 지하 100미터에 건설된 LHC는 둘레가 무려 27킬로미터에 달하는 지구에서 가장 큰 입자가속기이며, 그 안에 설치된 검출기 역시 단일 장치(device)로는 지구 최대의 규모이다. 역설적이게도 지상 최대의 구조물 가운데 하나인 LHC는 지구 아니 우주에서 가장 작은 물질을 발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류 최대의 물리학 실험을 앞두고 그 비중만큼이나 여러 가지 추측과 예상이 쏟아지고 있다. LHC의 가동을 둘러싼 논의와 관심은 이마 과학의 범주를 넘어선 것이다. 우주의 생성 원리를 밝혀냄으로써 신의 영역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에서, 지상에서 빅뱅을 재현함으로써 지구 전체를 삼켜버릴 블랙홀을 만들게 될 것이라는 종말론(인터넷에서 지구붕괴 시뮬레이션 동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에 이르기까지. 과학자들에 따르면 지구 붕괴는 전혀 근거가 없는 낭설일 뿐이지만, LHC의 실험 결과가 과학자들의 예상과 어긋난다면 적어도 물리학의 이론은 완전히 새로 씌어져야 한다. 전세계가 주목하는 것도, LHC가 21세기의 바벨탑이자 판도라의 상자로 불리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는 바로 이 바벨탑을 쌓기 위해 인류가 쏟은 열정의 기록이자 바벨탑에 오르기 위한 최소한의 안내서이다.
속이 궁금하면 깨보아야 한다.
입자가속기는 잘 알려진 대로 입자를 충돌시켜 깨뜨려보는 것이다. 속이 궁금하면 깨보아야 하는 법,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입자도 예외는 아니다. 저자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크고 100미터 위를 지나가는 고속철도의 영향을 받을 만큼 예민한 호두까기인 LHC도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호기심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 이 호기심을 풀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과학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고 있는지를 강조한다. 이 공동의 노력, 정보의 공유를 위해 탄생한 서출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세상을 바꾼 인터넷이라는 것이다. 세계 최초의 웹사이트 주소는 다름 아닌 “info.cern.ch”였다.(23쪽)
아톰은 깨진다.
정규교과 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세상의 모든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이 원자는 전자와 원자핵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안다. 근대적인 원자론은 19세기 초 영국의 돌턴에 의해 확립되지만, 저자는 세상 만물이 몇 가지의 근원적인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환원주의)은 그리스 자연철학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한다.
말 뜻 그대로 깨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원자 안에 더 작은 입자들이 있음을 밝혀내는 과정(양자 역학에 이르고 입자 가속기로 나아가게 되는)을 저자는 당대의 실험들을 소개하면서 설명한다. 저자는 이 위대한 발견의 과정이 순전히 과학적 지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세기의 과학적 발견에는 언제나 인문학적·미학적 상상력 혹은 믿음이 함께 있었다. 전하량의 크기를 밝혀낸 밀리컨은 자신의 실험 결과를 통해 “자연계에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전하량이 존재한다”고 결론지은 것이 아니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전하량은 어떤 기본 전하량의 정수배로만 존재한다”는 밀리컨의 믿음이 자신의 실험에서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54쪽) 이어 “화장지를 튕겨나오는 포탄” 등의 예를 통해 원자가 전자와 핵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밝혀낸 과정을 설명한다.
미시세계의 혁명
원자가 쪼개진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미시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미시 세계는 양자역학으로 설명된다. 저자는 양자역학이란 “덩어리 진 것들의 상태와 운동에 관한 학문”이라고 말한다. 덩어리져 있다는 이야기는 불연속적이란 이야기이다. “명절 때 고속도로의 귀성 차량행렬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하나의 거대한 줄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보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는 불연속적인 차량들의 행렬일 뿐인 것과 같다.”(71쪽) 이와 마찬가지로 원자의 반경도 전자가 특정한 궤도에만 존재하기에 불연속적이다. 20세기 초부터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과학적 발견, 고전 물리학의 체계를 넘어선 새로운 혁명의 과정을 [신의 입자를 찾아서]는 당시의 실험을 평이한 언어로 설명해 간다.(73~123쪽)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가 종종 지나치게 확대해석 되어 우리가 정확히 알 수 있는 진리란 없다는 주장을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양자역학은 결코 진리에 대한 의구심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며 이런 근본적인 회의를 경계한다. “양자역학의 진리라는 개념이 고전적인 의미의 진리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불확정성 원리로 인해 절대적인 진리가 불가능해졌다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진리의 실체(예컨대 파동함수)를 발견한 것은 아닐까? 양자역학에 기반한 현대 물리학과 현대과학은 역설적이게도 전례 없는 정밀도를 자랑하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107쪽)
거인의 족적을 좇아서
양자역학과 함께 현대 과학 혁명을 이끈 상대성이론은 양자역학과 여러 가지 면에서 대조적이다. 양자역학이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서 발전되어 왔다면, 상대성 이론은 거의 아인슈타인 단 한 사람에 의해 완성되었다. 또 양자역학이 전자의 반경이라는 아주 짧은 거리를 다루는 학문인데 반해, 상대성이론은 빛의 속도라는 아주 큰 물리적 계를 대상으로 삼는 점에서도 대조적이다. 저자는 아인슈타인 이전의 상대론까지 거슬러 올라가 상대론의 역사적 유래를 살핀 다음,(134쪽) “열차 속의 테러리스트”라는 설정(151~154쪽)과 유명한 쌍둥이 모순(166~169쪽)을 통해 상대성이론의 기본 원리를 설명한다.
저자는 LHC 가동되면 블랙홀이 만들어져 전 세계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파멸할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LHC 안정성 사정집단’의 보고서를 근거로 이런 우려가 지나친 것임을 밝힌다. “안정성의 근거로 보고서는 우주선(cosmic ray: 우주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에너지의 입자흐름)이 지구나 태양 등 다른 천체와 충돌하는 비율을 들고 있다. 강력한 우주서는 LHC보다 훨씬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보고서는 LHC에서 예상되는 가속입자들의 충돌횟수보다 매초 약 10조배나 많은 횟수의 충돌이 고에너지 우주선과 천체들 사이에서 일어난다고 추정했다. … 그럼에도 우리가 관측하는 모든 행성과 별과 은하 등이 매우 안정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LHC 실험이 지구에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으로 결론내린다.”(205~206쪽)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신의 입자를 찾아서] 마지막 장에서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기반으로 해 발전되어 온 현대물리학의 최전선에 대해 소개한다. 보존과 페르미온, 게이지 이론, 힉스 장 등을 설명한 뒤 저자는 1960년대에 구축된 표준모형으로 독자들을 이끈다.(227쪽 이하) 저자는 여기서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호기심을 환기시킨다. “표준 모형은 지금 현재 인류가 ‘이 세상은 도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에 대한 답으로 제시한, 역사상 가장 모범적인 답안이다. 그 모범답안에 들어 있는 입자들은 페르미온인 경입자 6개, 역시 페르미온인 쿼크 6개 그리고 힘을 매개하는 게이지 보존 5개, 그리고 힉스 보존 1개이다.”(254쪽) 이 모두가 발견되었는데, 오직 하나 힉스 보존만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신의 입자로 불리는 바로 이 힉스 보존을 발견하기 위해 세계 최대의 입자가속기 LHC가 오는 9월에 가동되는 것이다. 예상대로 “‘신의 입자’를 발견하게 된다면, 신에 대한 도전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인류는 자연의 내면에 숨겨진 그 작동 원리를 밝혀내는 데에 새로운 획을 그을 것이다.”(257쪽)
위대한 도전의 시작 앞에서
저자는 LHC 실험이 17세기 뉴턴의 고전역학과 함께 시작된 첫 번째 과학혁명과 20세기 초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이끈 두 번째 과학혁명에 이어 새로운 과학 혁명의 시발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진단한다. “2008년 현재 물리학이 처한 상황을 [인디애나 존스] 식으로 말하자면 성배가 숨겨진 곳으로 안내하는 지도가 안전하게 보관된 육중한 보물상자가 그 개봉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 보물상자를 발견한지 어언 40년이 지났지만 여태 이 상자를 열어볼 수 있는 방법이 우리에게 없었다. 이제 과학자들이 수년에 걸쳐 이 상자를 열어 볼 강력한 도구를 만들어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270쪽) 많은 과학자들의 기대대로 이 보물지도가 인류를 성배로 이끌지는 아직은 아무도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마침내 ‘우주를 창조할 때 신에게 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는지’ 우리가 알게 된다면, 그날의 역사가는 21세기의 바빌론을 이렇게 기억할 것이다. 서기 2008년, 여기 위대한 도전에 나선 인간들이 있었다고.”(271쪽)
들어가며
1장 대충돌
인류 역사상 최고의 이벤트 / 인터넷의 고향 / 가속기의 가치 / LHC 대 SSC /
인간이 만든 가장 정밀한 기계 / 숫자 읽기 / 단위를 알면 물리가 보인다
2장 태초의 수수께끼
원초적 질문 / 깨지지 않는 무엇 / 돌턴의 원자모형 / 원자는 깨진다 /
톰슨의 원자모형 / 전하량의 크기 / 밀리컨의 실험, 조작인가 오해인가? /
러더퍼드의 등장 / 화장지에 튕겨나간 포탄 / 러더퍼드의 원자모형 /
몇 가지 문제들 / 보어의 원자모형
3장 미시세계에서 일어난 혁명 69
양자역학 / 혁명의 시작, 양자역학의 출발 / 역사를 바꾼 곡선 /
막스 플랑크, 문제를 해결하다 / 불연속과 덩어리 / 광전효과 / 역시 아인슈타인 /
물질파 / 입자-파동의 이중성 / 전자도 파동? /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 /
또 한 명의 천재 디랙 / 불확정성 원리 / 자연은 원래 그렇다 /
사발을 뚫고 나가는 구슬 / 양자역학의 공리들 / 그렇다면 이중슬릿은? /
슈뢰딩거 고양이 / EPR 모순 /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의 관계
4장 또 다른 혁명
인류의 수퍼스타 /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 / 상대성 원리의 역사 /
에테르는 어디에? / 특수상대론의 첫 번째 가설 / 두 번째 가설 / ...상대론의 결과 /
시간의 팽창 / 길이의 수축 / 쌍둥이 모순 / E=mc2 / 상대론에 관한 오해 /
일반상대성이론 / 일반상대론의 기본원리 / 중력이론으로서의 일반상대론 /
가장 아름다운 방정식 / 우주상수 / 슈바르츠실트의 해 / 검은 구멍
5장 우리는 지금 어디에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의 결합 / 보존과 페르미온 / 네 가지 힘 /
인류의 가장 정밀한 이론 / 게이지 이론의 등장 / 질량을 만들어내다 /
표준모형으로 가는 길 /양자색소동역학과 표준모형의 완성 / 입자-반입자 /
신은 왼손잡이? / 신비의 입자, 중성미자 / 쿼크와 접착자 / 왜 하필 3인가? /
신의 입자는 어디에? / 못다 핀 무궁화꽃 / 표준모형, 물리이론의 끝인가
나오며
참고문헌
역대 노벨물리학상 수상 목록
찾아보기 “장소는 유럽의 한가운데 제네바. 시기는 서기 2008년 7월, 대결을 펼치는 주인공은 모든 물질의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 경기가 펼쳐지는 스타디움은 지구에서 가장 큰 입자가속기.”
(/ 1장 대충돌중에서)
“세상이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에 대한 답으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무엇을 생각해낸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 세상이 아무리 복잡해 보여도 결국 우주만물은 몇 종류의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 2장 태초의 수수께끼중에서)
“불확정성 원리로 인해 절대적인 진리가 불가능해졌다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진리의 실체(예컨대 파동함수)를 발견한 것은 아닐까? 양자역학에 기반한 현대 물리학과 현대과학은 역설적이게도 전례 없는 정밀도를 자랑하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 3장 미시세계에서 일어난 혁명중에서)
“갑돌이는 지상에 남아 있고 갑순이는 비행기를 타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다. 갑돌이가 보기에, 갑돌이 머리카락이 2밀리미터 자라는 동안 갑순이 머리카락은 1밀리미터 자란다. … 정말로 갑순이는 갑돌이가 봤을 때 ‘덜 늙는다!"
(/ 4장 또 다른 혁명중에서)
“그렇게 훗날 (운이 좋다면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마침내 ‘우주를 창조할 때 신에게 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는지’ 우리가 알게 된다면, 그날의 역사가는 21세기의 바빌론을 이렇게 기억할 것이다. 서기 2008년, 여기 위대한 도전에 나선 인간들이 있었다고.”
(/ 5장 우리는 지금 어디에중에서)
첫댓글 너무 양이 많나요? 이렇게 드래그해서 붙여 버리는 일은 매우 못된 일이겠죠? 그러나 제 의도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일단 강사분들의 대표적인 저자를 다 읽을 수 없다.그렇다면 줄거리나 핵심적인 논지는 알고 가는게 어떻겠느냐는 생각에서 그리했습니다. 관심이 없으면 안 읽어도 됩니다.그냥 눈으로 훅하고 훑어 보기만 하여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