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을 보다가 다윗의 식가욘(애통시)에서 다윗은 매우 이기적인 기도를 드리는 내용을 보았다.
시편 7:6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서 자신만만하게 ‘나를 위하여 깨소서.’라고 매우 이기적인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이런 다윗의 기도를 보면서 다윗은 어떻게 이토록 이기적인 기도를 자신만만하게 드릴 수 있는지를 묵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근거를 주님께서 주셨다.
1) 다윗의 회개에 있다.
다윗은 이 식가욘을 고백하기 전에 충분한 참회(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시편 6편이 바로 다윗의 참회(회개)의 기도이다.
철저한 회개와 확실한 용서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당당하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
회개는 이렇게 가로막힘을 제거한다.
회개는 영적 자유함을 제공받게 한다.
2) 하나님과의 관계의 자신감(친밀감)에 있다.
다윗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자신만만했다.
이기적으로 표현하자면,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 편에 섰음에 조금도 의심이 없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 편임에 조금도 의심이 없었다.
이런 표현이 불편하다면 달리 표현해 보자. 다윗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자신만만했다.
그런 관계의 자신감은 친밀감에서 온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고 그 관계의 친밀감 속에서 사는 사람은 이런 이기적인 기도마저 드릴 수 있다.
3) 승부처가 하나님께 있음을 확신했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생에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이때 다윗은 아직도 정치적 방법, 무력(군사적) 방법을 사용할 여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다윗은 그런 방법을 앞세우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간다.
이런 다윗의 모습은 ‘코람데오’의 신앙이다.
아무리 문제가 해결이 되어도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이다.
아무리 성공하고 복을 받아도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오직 승부처가 하나님께 있음을 믿을 때 우리는 절박하게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게 된다.
승부처가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면 이기적인 기도까지도 드리게 된다.
한나가 그랬고,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그랬고, 히스기야 왕이 그랬고,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