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암초당(茶嵒草堂), 전남
장흥에 있었던 다암(茶嵒) 위영복(魏榮馥 1832 순조32~1884 고종21)의 서재 겸 장수지소였다.
위영복의 자는 방서, 호는
다암이며 본관은 장흥이다. 1832년(순조 32) 장흥 관산 방촌에서 위도천(魏道天)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조부인 위백훈은 존재 위백규의
삼종제로 호를 해의재라 하였으며 존재에게 사사하여 문장과 학행이 뛰어났다. 다암은 3세때 어머니 인천이씨를 여의고 광산김씨의 손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기국이 컸으며 학문을 좋아하였고 효성이 지극했다. 장흥위씨 문각인 장천재를 I자형으로 11칸을 중건하였으며 존재집과 환영지를
간행하였다.
그는 산일 직전에 있던 존재 위백규의 문집간행을 위하여 노사 기정진과 고산 임헌회 등 당시 큰 선비들을 찾아다니며
힘을 다해 교정․정리한 끝에 마침내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1877년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간 함흥까지 다녀온 여행기가 있으며 병자수호조약을
반대하여 각처에 통문을 보내기도 하였다. 1884년(고종 21) 향리에서 53세로 세상을 떠났다.
다암유고(茶嵒遺稿)는 1938년에
계자인 위혁기(魏赫基)가 유고를 모아 족증손 위계룡, 송포 정노수(1877~1965) 등의 발문을 붙여 1938년에 간행하였다. 1975년에
위대환, 위용철, 위계환 등이 존재집을 간행할 때 다암의 유고도 간행할 것이 논의되어 위석한, 위계본 등이 주선하여 간행하게 되었다. 하성래
교수가 서문을 쓰고 위순식이 발문을 붙였다.권1은 시이며 권2는 서간문과 잡저인데 임고산, 기노사, 홍재정, 송병선, 정재판과 교류한 글이다.
잡저의 <존재집간행시말>은 주목되며 권4는 서, 기, 발, 행장 등인데 <환영지> 발문도 있다. 권4는
부록이다.
장흥군에 정자는 장흥읍에 송암리 359번지에 김필의 정자
사인정(舍人亭)과 우목리에 안대수의 정자 연화재라고도 부르는 화수정(花樹鼎), 기양리 40의 1918년 일제강점기때 길신식(吉辛植)이 지었다는
창랑정(蒼浪亭) 등이 있다.
덕제리(德堤里)는 옥녀봉의 장단등을 등진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선인 무수봉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덕망있는 마을이라 하여 덕제라 했다. 자연마을로는 송산, 대반 등이 있다. 대반은 마을 모양이 선인 앞의 소반[床]과 같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정재용이 지었다는
만취당(晩醉堂), 1933년 김병용(金炳庸)이 지었다는 독취정(獨醉鼎), 해질 무렵 강이 물든 것을 가리켜 예로부터 취정낙조(醉亭落照)라 경탄하였으며, 이곳에 정자를 짓고 정제(亭題)도 혼자 취한다고 독취정이라 하였다.
또 임효일(任孝一)이 지었으며 임태규,
병식이 중수했다는 회고정(懷古亭). 또 송산마을의 정세명(鄭名世)이 지은 독곡조대(獨谷釣臺), 생육신의 한 사람 남효온의 추강조대(秋江釣臺),
행원리(杏園里) 위천회(魏天會)가 지어 유유자적했던 '취해서 잠이 든다'는 도가적 삶이 묻어나는 취수정(醉睡亭)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북부에 대원산(204m), 동부에 구봉산, 남동부에 만덕산(248m)이 솟아 있다. 서쪽으로 덕제천이 흐르고, 중앙으로 한계천이 흐른다.
또 관산읍(冠山邑) 에 사라진 정자로는 죽교리(竹橋里)에 1782년에 정재옥(丁載沃)이 지은 화수정이라고 부르는 영호정(暎湖亭),
옥당리(玉堂里)에 1659년 위씨문중이 지은 즉휴루 부계당이라고 부르는 장천재(長川齋), 위도순(魏道純)의 풍평대(風平臺), 위상경(魏相慶)이
지어 지냈던 쌍송정(雙松亭),옥림정(玉林亭), 죽청리(竹靑里) 박수구(朴壽龜)의 송화대(松花臺), 당동리(堂洞里)에는 백홍남(白鴻南)의
괴정(槐亭), 백한남(白翰南)의 반환정(盤桓亭), 정ㅇ수(丁ㅇ壽)의 삼선당(三宣堂), 정창린(丁昌麟)이 유유자적했던 백매정(百梅亭) 등이
있었다. 방촌리(傍村里)에 위계창(魏啓昌)이 지은 죽헌(竹軒)이라고 부르는 계춘정사(桂春精舍), 신기마을 기생 명월(明月) 옥경(玉京)의
여기정(女妓亭)을 위씨문중이 삼괴정(三槐亭)으로 바꿨다, 위정훈(魏廷勳)의 장춘정(長春亭) 등이 있거나 사라졌다.
또 유적으로
천관사 삼층석탑(天冠寺三層石塔:보물 795), 장흥 관산읍의 효자송(孝子松:천연기념물 356), 장흥 위계환가옥(魏桂煥家屋:중요민속자료 161), 당포(唐浦) 앞바다 승첩지도(勝捷地圖:전남유형문화재 25), 장흥 장천재(長川齋:전남유형문화재 72), 천관사 석등(전남유형문화재 134), 천관사 오층석탑(전남유형문화재
135), 장흥 방촌리 지석묘군(傍村里支石墓群:전남기념물 134), 장흥 삼산리(三山里) 후박나무(전남기념물 169), 장흥 위성룡가옥(魏聖龍家屋:전남민속자료 6), 장흥 방촌리 석장승(전남민속자료 33), 옥룡사 불상(玉龍寺佛像), 석남산성(石南山城), 천관산성, 삼괴정(三槐亭), 호곡제고가(豪谷堤古家), 회주고성(懷州古城), 상령고성(觴岺古城), 옥룡사지 등이 있다.
부산면(夫山面) 동쪽으로 장동면(長東面), 서쪽으로
유치면(有治面), 남쪽으로 장흥읍, 북쪽으로 장평면(長平面)·유치면에 접한다. 면의 북부·동부·서부는 산지이고, 중앙부를 탐진강(耽津江)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면서 넓은 부산평야를 펼친다. 용반리(龍盤里)의 김대현. 김영윤의 농월정, 김응정(金凝亭)이 지은 강정(江亭)이라고도
부르는 삼가정(三佳亭), 1953년에 이헌근(李憲根)이 지은 지천정(知川亭), 기동리(基洞里)의 1593년 위덕관(魏德寬)이 지은
경호정(鏡湖亭), 위정(魏廷)이 소옹정(笑翁亭)을, 호계리 이원룡(李源龍) 서륜당(敍倫堂). 병간정(屛澗亭), 구룡리(究龍里) 자미마을에
위원량(魏元良)이 송암정(松岩亭), 유양리에 백명고(白命考)의 묵우당(默愚堂), 내안리 안곡마을 김문식(金文植)의 수인정사(修人精舍),
박문규(朴文圭)의 노한당(老閑堂), 문기철(文基哲)의 서경당(書耕堂), 금자리(金子里) 금장마을 1910년에 이권전(李權銓)지었으며 1930년
개수한 독우재(篤友齋) 등이 있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잡곡이고, 특산물로 마포(麻布)·표고버섯·유채 등이 있다. 교통은
강진·보성·영암 등으로 국도와 지방도가 연결되어 편리하다. 문화재로는 장흥 구룡리 마애여래좌상(長興九龍里磨崖如來坐像:전남유형문화재 193),
부춘정 원림(富春亭園林:전남기념물 67), 용호정 원림(龍湖亭圓林:전남기념물 68), 장흥 유양리(長興柳陽里) 고인돌군[支石墓群],
화수정(花樹亭), 영춘재(永春齋), 원모재(遠慕齋), 헌유사지(獻留寺址), 의마총(義馬塚), 금계사(金鷄祠), 의열사(義烈祠), 망군대(望君臺)
등이 있다.
용산면(蓉山面)연대봉(燃台峰:397m)·억불산(億佛山:518m)·광춘산(廣春山:384m)·부용산(芙溶山:609m)에 의해 분지를 형성하며 용산면의 중앙을 가로질러 득량만으로 흘러드는
여의천(如意川) 주위에 소규모의 곡저평야(谷底平野)와 해안평야가 발달해 있다. 부춘리(富春里) 춘정마을에 1598년 문희개(文希凱)의 부춘정,
용반리(龍盤理) 최규문(崔奎文)의 용호정(龍湖亭), 동민이 지은 화수정(花樹亭), 모산리(茅山里) 백진항(白鎭恒)의
계서초당(溪西草堂=열호재.환학정), 김경진(金景振)의 고금대(鼓琴臺), 어산리(語山里) 1930년대 이수길(李洙吉)이 지었으며 영사재라고도
부르는 비정(榧亭), 이승(李昇)의 독이정(讀易亭), 운주리(雲柱里) 고혜진(高惠鎭)의 침간정(沈澗亭) 등이 있었다,
문화재로는
장흥 이조백자도요지(長興李朝白磁陶窯址:전남기념물 30), 비정사(榧亭祠), 영석재(永錫齋), 장흥 어산리(語山里) 석탑, 접정리(接亭里) 지석묘군, 녹원리(鹿院里) 지석묘군, 용산면 지석묘군, 당곡사(唐谷祠), 영계재(永溪齋), 월산재(月山齋), 용강사(龍岡祠), 심향포(沈香浦)와 덕암(德岩), 학성(鶴城), 충렬사(忠烈祠) 등이 있다.
안양면(安良面) 면의 서·북·동 방향을 연태봉(燃台峰:399.7m)·억불산(億佛山:518m)·사자산(獅子山:666m) 등 해발고도 400∼500m의 산지가 둘러싸고 있으며 남해를 바라보는 해안지대에
평야가 있다. 앞바다에는 유인도인 장재도(長財島)가 있는데 인공방조제로 육지와 연결된다. 상암리 여암마을의 백하인의 대하정 등이 있었다.
장동면(長東面)은 제암산(帝岩山)·용두산(龍頭山)·강산(江山)에 의해 분지를 형성하며 탐진강(耽津江) 지류 부근에 곡저평야가 발달하였다. 만년리(萬年里)의 1584년 김성장(金成章)의
동백정(冬栢亭), 삼정마을 1885년에 이원근이 지은 다수정(多樹亭), 산리(山里) 우봉마을에는 1895년 안국심(安國心)이 지었다는
목미정(木美亭), 조양리(朝陽里) 관호마을 1700년 정재환이 지었다는 관호정(觀湖亭), 봉동면(鳳洞理) 진곡마을 이병태(李炳泰)가 지었다는
용은정사(龍隱精舍), 밤실마을 김경추(金景秋)가 지어 1930년 중수한 관수헌(觀水軒), 용곡리(龍谷里) 두룡마을 1919년에 이평호(李平浩)가
지었고 1978년 중수된 용암정(龍庵亭) 등이 있었다.
문화재로는 용화사(龍華寺) 약사여래좌상(전남유형문화재 46), 정경달 신도비(丁景達神道碑), 양강사(楊江祠), 진산사(珍山祠), 맹산산성(孟山山城), 반계사(盤谿祠), 만수사(萬壽祠), 북교리(北橋里)·만년리(萬年里)·하산리(霞山里) 등의 고인돌군이 있다.
참고문헌=존재집. 장흥군지. 호남문화연구.
고전번역서
문화.김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