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인문학 또는 사회학(2)
- 노래하는 랭보, 짐 모리슨
전인식
시를 쓰는 가수들이 더러 있다.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유명한 레오나드 코혠과 2016년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도 있지만 그룹 도어즈의 리더 짐 모리슨을 빼놓고 얘기할 순 없다. 일부 음악 매니아 층을 제외하면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랭보를 좋아하고 랭보의 삶을 추구한 사람이었다.
랭보를 떠올리는 한 단어는 무엇일까 이름을 대신할 한 단어는 바로 ‘반항’이다. 랭보는 16세에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세에 이르기까지 4년 동안만 시를 썼다. 마치 스무 살 이후의 시는 무의미하다는 듯 종결지어 버렸다. 지적 조숙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에게는 시와 문학이 시시했을까? 랭보의 시 쓰기의 포기는 많은 사람들의 억측을 자아내기도 했다. 시 공부하는 사람치고 랭보의 시를 읽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로 랭보가 현대 시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짐 모리슨에게 있어 시인 랭보는 숭배의 대상이자 자신이 꿈꾸는 모델이었다. 어릴 적부터 짐 모리슨은 시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공부 안 해도 성적이 잘 나오는 IQ 149의 수재였고 문학청년이었다. 고교 시절 제임스 조이스를 이해하는 유일한 학생이었고,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과 미학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상징주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를 좋아해서 그의 시집을 끼고 살았다. UCLA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며 두 편의 영화를 만들기도 하였으나 영화보다는 연극영화과 동창인 맨자렉 등과 그룹 도어즈를 결성하였다. 도어즈라는 밴드네임은 현대 아나키즘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월리엄 블레이크가 쓴 시 ‘인식의 문이 닦여지면 인간에게는 모든 것이 선명하게 드러난다’(If the doors of perception were cleansed, everything would appear to man as it truly is, infinite.)라는 구절에서 이름을 가져 왔다. 이처럼 밴드 이름에도 자신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짐 모리슨은 여러므로 랭보처럼 기존의 세계를 부정하며 현실의 한계에 도전하고 방황과 일탈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모색했다. 다른 음악인들이 평화와 사랑을 노래할 때 그는 성과 죽음을 노래했다. 네 살 때 가족 여행 중 어느 사막에서 목격한 인디언의 죽음은 그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랭보가 그러했듯이 너무 이른 나이에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문학적 사유가 끼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와 노랫말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어떤 이는 그의 모습에서 인디언 샤먼을 느낀다고도 했다.
짐 모리슨은 시인의 기질을 타고난 로커였다. 내면적으로는 삶과 죽음이 옆에 있었고 외형적으로는 베트남 전쟁을 비롯해 폭력과 이기가 난무하는 시대에 무의식과 혼돈 광기를 추구했다. 그는 로커로서 노래하기 이전에 이미 니체와 랭보를 통독하고 두 권의 시집을 내기도 한 시인이었다. 제정신으로는 살 수가 없는 시대에 스스로 미치고 싶었던 까닭이 도처에 많았던 걸까 알콜과 마약으로 환각에 취하고 기꺼이 어릿광대가 되어 시대의 희생양이 되고자 했다. 공연 도중 음란한 언어를 사용했다는 혐의로, 성기를 노출한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이외 무대 위에서 구강성교행위와 자위행위 묘사를 하는 등 일련의 일탈 행위들은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과 정형화된 세상에 엿 먹이고 조롱하는 행위임을 알 수 있다. 불편한 시대를 살아가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도어스와 짐 모리슨은 동의어에 다름없다. 그들의 음악은 블루스 록과 사이키델릭 록을 표방한다. 보컬 짐 모리슨의 저음의 음울함과 에로티시즘의 노랫말을 살펴보면 그가 시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도어즈의 노래중 몇 곡의 가사를 살펴보면 <moonniht drive>중에 ‘달을 헤엄치자/ 파도를 타고 올라가자/ 도시가 잠들려는 어둠을 뚫고 나가자’ 이 노랫말에 반해 그의 친구들이 도어즈에 합류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도어즈의 최대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Light my fire>의 반복되는 후렴구는 뜨거운 삶과 정열을 나타내는 은유적 문구를 사용했는데 도어즈의 열렬한 팬이기도 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구절에 대해 자기만의 해석을 에세이에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The end>의 가사 중에 ‘아버지,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요 .어머니 저는 어머니와 자고 싶어요.’ 이와 같은 가사로 클럽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짐 모리슨은 기자들의 질문에 부모들이 살아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신을 고아라고 했다. 가사에서처럼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자고 싶다고 했다. 적나라한 오디푸스적 내용이다. 해석하자면, 아버지는 국가나 권위적인 기성세대를, 어머니를 통해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내용으로, 새로운 세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의미일진대 사람들은 미친놈이라고 욕을 퍼붓기도 했다. <people are strange>는 이방인 같은 그의 삶을 잘 보여준다. ‘네가 이방인일 때 사람들은 이상하다 네가 침울할 때 길은 울퉁불퉁하다 네가 이상할때 얼굴은 빗속으로부터 나온다. 네가 이상할 때 아무도 너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다’ 노랫말들은 한마디로 반항의 시와 다름없다.
짐 모리슨은 1968년 듀크대학 불문학과 교수인 윌리스 파울리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 편지에는 랭보 시집을 제대로 번역해 주어서 고맙다는 감사의 말씀과 당신이 번역한 랭보 시집을 끼고 다닌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14년 후 도어스의 음악을 처음 들은 파울리 교수는 짐 모리슨의 가사가 랭보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단번에 직감한다. 그리고 1994년에 <반역의 시인 랭보와 짐 모리슨>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불문학을 전공한 교수가 프랑스 시인 랭보와 미국의 록 가수 짐 모리슨을 바로 반항이라는 코드로 하나로 묶었으며 대학에서 랭보와 짐 모리슨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 사정상 더 이상 노래를 할 수 없었던 짐 모리슨은 문학을 하고 싶었을까 여러 문인들이 자발적 유배를 택했듯이 프랑스로 파리로 건너왔다. 임대아파트를 얻어 살던 어느날 그곳에서 심장마비 또는 약물과다 복용 등의 사인으로 27년 삶을 마감했다. 그는 지미 헨드릭스, 제니스 조프린, 커트 코베인등과 함께 이른바 ‘27클럽’의 멤버가 되고 말았다. 항간의 사람들은 짐 모리슨의 사망의 미스테리를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허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친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바람에 시신은 프랑스 파리 외곽 페르 라세즈 공동묘지에 영원히 늙지 않는 나이로 잠들어 있다. 그곳에는 음악가 쇼핑, 소설가 발자크, 오스카 와일드, 몰리에르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누워 있지만 그의 묘는 어느 예술가보다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지금에도 늘 꽃다발이 넘치고 각국의 언어로 추모의 글을 남기며 그를 추억하고 있다.
모리슨이 즐겨 입던 가죽바지는 록 가수들의 표준 의상이 된지 오래다. 사후에 짐 모리슨에 관한 전기가 20권 이상 출간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를 회상하며 작품을 남겼다. 2009년 <When your strange>라는 도어스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으며 특히, 도어즈의 광팬이기도 한 올리버 스톤 감독은 짐 모리슨 사망 20주기를 맞아 영화 <도어즈>를 만들어 그를 추모했다. 또한 전쟁영화의 최고작인 영화 <플래툰>, 프란시스 코플라의<지옥의 묵시록>등이 도어즈의 코드로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 속에는 도어스와 짐 모리슨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책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도어스의 노래를 다 알고 있을 정도이다. 극찬을 아끼지 않을 만큼 짐 모리슨을 좋아한다. 특히 ‘짐 모리슨을 위한 소울키친’에서 그를 전설 그 이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윌리스 파울리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랭보와 비교하며 짐 모리슨을 당당히 시인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을유문화사의 현대예술 거장 시리즈에도 <짐 모리슨>이 자리하고 있다. 이외에도 노래 ‘도마뱀 찬가’ 때문일까 새로이 발견된 도마뱀의 학명을 모리슨의 이름을 따서 붙여지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여전히 우리들 속에 살아 있다.
짐 모리슨을 여타 다른 대중음악가들과 같이 분류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무대 위에서의 자기파괴적 일탈 행위 또한 랭보가 그러했듯이 기존 세계에 대한 반항과 새로운 세상으로 향한 자유의지로 읽어야 할 것이다. 짐 모리슨은 랭보의 초현실적 시를 음악적으로 재해석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노랫말 또한 랭보에게 영향을 받은 시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가 꿈꾸던 ‘인식의 문’은 어디에 있을까?
문제가 되었던 도어스 노랫말 일부를 읽으며 마무리한다.
The killer awoke before dawn, he put his boots on
He took a face from the ancient gallery
And he walked on down the hall
He went into the room where his sister lived, and...then he
Paid a visit to his brother, and then he
He walked on down the hall, and
And he came to a door...and he looked inside
Father, yes son, I want to kill you
Mother...i want to...fuck you
킬러는 새벽이 되기 전에 일어나서 부츠를 신었다.
그는 고대 갤러리에서 얼굴을 가져와서
홀을 걸어 내려갔다.
그는 자신의 누이가 살고 있는 곳에 가고
그 다음에는 자신의 형이 살고 있는 곳에 가고
그다음에 홀을 걸어 내려갔다.
그리고 문에 도착해서 안을 봤다.
아버지, 왜 그러냐 아들아, 당신을 죽이고 싶습니다.
어머니... 당신과 XX를 하고 싶습니다.
- 도어스의 <The End> 중에서
전인식
1997년 《대구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8년 불교문예 신인상 수상.
시집으로 검은 해를 보았네가 있음. 1995년 신라문학대상, 1997년 통일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