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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도래기재에서 강원도 태백시 화방재까지 걸었다
25차 백두대간
(1) 언제 : 2017.6.24. (토) 맑음
(2) 어디를 : 도래기재~구룡산 ~신선봉~깃대배기봉~태백산~화방재...24.33km(누계488.51km)
(3) 누구와 : 나와 강선생
(4) 산행 이야기 :
나는 전남 화순군 춘양면 석정리에서 테어 났다.그런데 경북 봉화군에 같은 이름의 춘양면이 있다.살면서 한번쯤 같은 이름의 봉화군 춘양면에 가보고 싶기도 했었다.살면서 딱히 이쪽에 올 일이 없어서 한번도 오지 못했다.그런데 이번 백두대간 산행중에 봉화군 춘양면을 방문하여 춘양택시를 2번이나 탔고 봉화군 춘양면 터미널 옆에 있는 동아모텔에서 하루밤을 유하기도 했다. "억지 춘향" 또는 "억지 춘양" 이란 말이 있다.전자는 춘향전에서 춘향이가 변사또에게 억지수청 드는 말로만 알았다.그러나 봉화군 춘양에 오고 보니 "억지 춘양"이 맞는 말이란다. 철도 영동선이 만들어 지기전 1953년 태백산맥을 관통하며 경북 영주와 강원 철암을 잇는 철도 영암선(86.4km)이 개통되었다. 철도 영암선은 경북의 철강석이나 무연탄 등을 운송하는 중요한 산업 선로였다고 한다.그리고 당시 봉화군 춘양에는 소나무(일명 :춘양목)가 많이 나서 영암선을 이용하여 운송하였다고 한다.그런데 영암선 철도가 만들어 질때 당시 자유당 원내 총무였던 이곳 출신 국회의원 "정모씨"의 정치적 힘으로 철도가 직선으로 지나지 않고 춘양면 소제지 마을를 억지로 한바퀴를 돌아 나가게 철도을 만들었단다. 철도는 지금도 그런 모습이고 억지로 철도를 만들었다고 해서 "억지춘양" 이란다.
이번 산행은 태백산(太白山1,567m) 마루길을 걷는 구간이다.태백산은 한반도의 척추같은 산이며 중요 중추 역활를 하는 산이다.백두대간이 백두산으로부터 북한의 낭림산과 금강산을 타고 내려와 설악산과 오대산을 지나 두타산과 함백산 그리고 태백산에서 용트림하듯 하늘로 솟구쳐 오르다가 소백산에서 잠시 쉬고 다시 월악산과 속리산을 타고 내리다가 덕유산에서 미끄럼을 타듯 지리산까지 가는 구간이다.옛부터 우리 조상님은 산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그래서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과 무등산의 천제단등 다른 여러산에서도 제사를 올렸다.그런데 태백산 "천제단"은 더욱 우리민족이 신성시 했던 산이였던 같다. 제사를 드리는 산을 백산(白山)이라고 하는데 "밝은 산"중에서 가장 "밝은 산"이 태백산이다.(영주 유림 관리소 안내글 참조)
금년(2017년)들어 오늘까지 비 다운 비가 내리지 않아 100년 만의 가뭄이라 하고 농촌지역은 벼농사가 원활치 못하고 밭농사는 아예 농사을 포기하는등 가뭄의 피해가 심하다.더구나 섬지역은 식수조차 어려울 만큼 비가 절실하다.태백산 천재단에서 기우제라도 올려야 하는것 아닌가?. 나는 태백산 천재단 앞에 서면 기도라도 올리고 싶었다. 그러나 출발전일 일기예보에 작은 "비"소식이 있어 다행이였고 많지 않는 강수량 예보에 우리의 산행은 무리가 없을 듯하여 출발하였다. 전일 오후 6시, 나와 강선생은 아내의 차량으로 봉화군 춘양면으로 달렸다. 대략 400여km를 4시간 30분이나 달려 봉화군 춘양면에 도착 한것이다.전라도 말로 겁나게 먼거리이다.
오늘의 산행기를 남긴다.
이번 구간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 도래기재에서 태백시 화방재까지 24.32km를 가야 한다.
밤 11시무렵 봉화군 춘양면에 도착한다.
내일 새벽에 길을 나서면 다시 춘양에 올 수 없으니 늦은 시간이였지만 춘양면소제지
마을구경을 나갔다.나의 고향 마을과 이름이 같은 곳이여서 궁금했는데 이미 밤11시 시골마을이
통금시간이나 다름 없었다. 사실 요즈음 시골은 어둠이 깔리면 적막한 자정시간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마을 가운데에 불꺼진 재래시장이 있었다.
시장 아치형 입간판에 "억지 춘양 시장"이라 크게 쓰여 있었다.
낮이였다면 시장 국밥에 탁주라도 한잔했을 것인데 아쉽다.
(춘양면 재래시장 입구)
(도래기재에서 산행을 준비하고)
춘양면 동아모텔에서 두시간쯤 자고 일어났다.
새벽 1시30분에 일어나 채비를 하고 예약한 택시을 타고 도래기재에 도착한다.
아내는 더 잔후 아침에 서울로 가서 딸들을 만나고 내일오후 삼수령(피재)에서 만나기로 했다.
새벽 2시 태백산을 넘으려 산행을 시작한다. 새벽 컨디션이 좋다.
하늘이 가까웠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태백산을 넘기 위해 구룡산을 향하는데
구룡산까지는 5.5km이니 2시간쯤 땀나게 걸어야 할 거리이다.
나는 2013년 2월1일 태백산을 오른적 있다.
태백산 눈꽃을 보기 위해 대학친구인 영우,득규,규철,형철 그리고 나,
이렇게 5부부가 같이 오른적 있다.
그때 산행 방법은 전남 광주역에서 눈꽃 투어열차를 이용하여 1박2일 일정으로
열차를 타고 태백시에 도착하여 다시 버스를 타고 유일사에 와서 태백산 정상을 올랐었다.
그때 세찬 바람은 빰을 베는듯 추웠으며 서슬 푸른 눈꽃산행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구룡산(九龍山1,345m)은 경북 봉화 춘양면과 강원도 영월읍과 상동읍 사이에 있는 산이다.
- 어느 아낙이 물동이를 이고 오다가 용이 승천하는것을 보고
"뱀 봐라" 라고 말하며 용의 꼬리를 잡아 당겼다.
그러자 용이 떨어져 뱀이 되어 버렸다 -라는 전설이 있었다
(영주국유림관리소 안내글 참조)
새벽숲은 고요했다.우리는 그런 조용한 적막함을 깨고 깊은 숲길을 걸었다.
본시 새벽숲은 이슬이 내려 촉촉하거나 축축할 수 있는데
지금은 숲이 건조해서 거침 없이 걸을 수 있었다.
이곳은 해발 757m 지점이며 1980년대까지는 소나무 일명 춘양목이 우점하였으나
당시 솔잎혹파리 해충(제선충)의 피해가 심하여 많은 개체수가 감소하였고
지금은 이후에 조림한 잣나무 숲이 우점하여 있는 상태이며
상층부에는 소나무,잣나무,신갈나무가 주로 서식하고 중간층에는 개옻나무,드릎나무
하층부에는 뱀고사리,취나무와 싸리나무등이 서식하고 있다.
(영주국유림사업소 안내 설명판 참조)
어둠속에 나타난 소나무는 어른 두사람이 안을 만큼 큰 둘래를 가진 거대한 소나무였다.
그 두 그릇의 소나무가 어서 오라는듯 기다리며 서 있는 향국이고
마치 "이제야 오신겁니까? "라고 말하며 기다리는듯 하다.
간간히 보이는 이런 춘양목 후예가 든든하다.
1시간쯤 걸었다. 등산로 옆 공터에 국립공원 등산로를 보수하는 분들의
지게와 괭이등 작업도구가 가지런하게 놓여 있고 그것은 비롯 무생물이지만 반가웠다.
(알루미늄 지게와 작업도구들)
구룡산 오르는 길이 가파른 산이라 짐작했지만 흙이 많은 부드러운 산이였으며
곳곳에 나무의자와 숲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어 읽는 재미가 있었고
나는 급하지 않게 헤드라이트 불빛 비추어 읽으며 음미하고 천천히 걸었다.
첫번째 임도(林道)을 만난다. 임도는 숲을 관리하는 도로 이기도 하지만
방화선(防火線)이기도 하다.그래서 이곳의 임도는 일반 도로보다 휠씬 넓은 형태였던 것이다.
얼마전 오랜 가뭄으로 숲은 건조한데 강원도 어느 백두대간 구간에
화재가 발생하여 많은 숲이 훼손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임도(林道)에 있는 나무 움막)
임도에서 나무 움막을 만나고 움막 안에서 잠시 쉬는데
남성 3분이 헤드라이트를 밝히며 들어 오신다.
그분들은 전북 익산에서 오신 백두대간팀이셨고
간단한 인사 몇마디 나누고 먼저 출발하신다.
잠시후 우리는 첫번째 정상 구룡산에 올랐고 먼저 도착 해 있었던 익산 3인조팀과
사진을 번갈아 찍는다. 이제는 고직령을 지나 곰넘이재을 지난다.
태백산 천제를 지내려는 사람이 넘던 곰넘이재는
"신"(神)이 있는 고개, 곰(검신)님이라 불렀던 고개이고 신에게 다가갔던 "신의 고개" 였다.
곰넘이재 아래 갈참나무 한그루가 우람하고 당당하여 서서 여긴 " 내땅이다" 라고 말하는듯
한데 수령이 오래되고 크기가 거대하게 큰 참나무이다.
그리고 산죽숲을 한참이나 지나고 1,280m의 신성봉에 올랐으며 말없이 지나친다.
신선봉을 지나 작은 봉우리 정상에서 손씨묘을 만난다. 이곳에서는 알바하기 쉽다.
손씨묘역에 이르러 직진하지 말고 급하게 우측으로 내려 가야 한다.
손씨묘에서는 내리막이면서 평편한 길이며 어렵지 않게 차돌베기봉을 향한다.
어떤 갈참나무는 윗가지가 잘렸는데 몸통에서 새로운 작은가지들이 나와 살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은 인간이 배워야 할 모습이며 갈참나무의 진한 생명력이였다.
등산로 옆에는 간간히 영주국유림관리소에서 설치한 종합 안내판들이 있는데
그 장소의 설명과 간단한 지도도 그려져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는 안내판을 읽고 사진을 남겼으며 나중에 산행기를 쓸 때 참고를 했다.
(강쌤이 이마의 땀에 젖은 손수건을 손으로 짠다)
6시간 12km쯤 걷고 쉼터의 나무 의자에 앉았다.
우리는 간식으로 쵸코렛과 오이를 조금씩 먹었고 대부분 물만 먹고 걸었다.
뽀송뽀송 나는 땀은 모자를 적셨으며 강쌤은 이마에 둘러 젖은 손수건의 땀을 손으로 짰다.
9시쯤 전복죽으로 아침겸 점심을 먹는데 편의점에서 구입한 인스턴트 식품이다.
이런 식품들이 산에서는 간편하여 좋지만 찬음식이라서 장이 약한사람에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장이 튼튼하여 찬음식을 먹어도 별 탈이 없었지만
강쌤은 찬음식을 조심스럽게 먹었고 반드시 매실물을 마셨다.
차돌베기에서 깃대배기봉까지는 두시간정도 걷고 고도를 350m정도를 올려야 한다.
정상 표시석이 두개가 있는데 첫번째 표시석을 지나 두번째에 이르러
시원한 조망이 되는 정상석을 만난다.
깃대배기봉(1,368m)은 산죽(山竹)이 어우러진 생태 학습장이 있었다.
상층에는 주로 신갈나무와 중층은 물푸래나무와 자작나무가 많이 서식하고
하층은 노린재나무,국수나무,다래나무가 많이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
이후 1,461봉을 넘고 등산로는 부소봉의 옆으로 비켜간다.
부소봉을 옆으로 지나는데 야생화가 지천이며 세월의 한계에 맞서 단단한 주목으로 남아
살았던 생명이 지금은 무생명이지만 천년의 세월을 견딘다는 주목 군락지를 만난다.
부소봉 주변은 주목 군락이 넓게 펼쳐져 있었으며 살아있는 나무와 죽어 있는 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숲이다. 저 멀리 태백산 장군봉이 보인다.
천재단은 우리의 조상들이 하늘에 제사을 지내기 위한 제단이다.
태백산 정상에 천왕단과 북쪽에는 장군단 그리고 300여m 아래에
규모가 작은 천재단이 있었다.
(태백산 정상의 천왕단과 정상 표시석)
규모가 가장 큰 천왕단은 둥근 원형이였으며
멀리 떨어져서 보면 마치 하늘를 떠 받드는 기둥같은 모습이이였다.
천왕단 안에서는 "한배검"이라는 제단석을 향해 기도와 예을 올리는 두 여인이 있었고
나도 여인의 뒤에서 묵념으로 간단하게 기도을 올렸다.
하늘이시어 비를 내리소서!
그리고 우리의 백두대간 산행길에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기도였다.
(태백산 정상석에서 친구와 기념사진 찍었다.)
(천왕단 주변에 선 나)
천왕단 주변은 넓은 공터를 유지하고 내려다 보는 산줄기는 첩첩산중이였으며
멀리 고한읍 "강원랜드"가 보인다.
태백산 정상에 오른 어느 중년부부는 전망 좋은 바위에 앉아 사과을 먹으며
담소중인데 다정한 그 부부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고 천왕단 북측 장군봉 천제단에서
선생님과 같이 온 꼬마숙녀가 깜찍 포즈를 취해 주어 사진을 찍기도 했다.
(휴식중인 부부가 멋져 보였다)
(꼬마숙녀)
(장군봉)
태백산 정상 장군봉(1,567m) 남한의 일곱번째 봉우리이다.
(태백산 나목 )
긴세월 얼마나 시리고 아팠을까?
천둥과 번개가 치는 어두운 밤엔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동장군 눈발이 날리고 눈꽃이 피는날 얼마나 추웠을까?
그래도 긴 세월 나목(裸木)으로 남아 버티고 있는 모습이 쓸쓸하다.
이제 그만 내려 놓고 "나목이시어 이제 그만 누워 쉬시라" 하고 싶음이다.
태백산 정상에서 백두대간은 유일사 방향으로 내려가 화방재을 향하는데
4.5km구간을 내려 가야 한다.
오래전 눈꽃산행때는 유일사쪽에서 올라와 당골로 내려간적이 있다.
태백산 정상 천왕단에서 기도를 올리고 주변의 경치을 감상하며
살아 있거나 또는 죽었지만 존재를 고수하는 주목군락을 보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산을 하기 시작 했다.
새벽 2시부터 걷기 시작하여 우리는 10시간을 넘게 걸었고 걸은 거리는
20km가 넘는 거리이다. 이제 2시간 남짓 하산하면 화방재에 도착 할 것이다.
사길령과 유일사 갈림길에 도착하여 우리는 유일사로 내려가지 않고
사길령으로 백두대간을 이어 간다.
산행 후반부 갑자기 피곤이 밀려 온다. 이제부터는 체력적은 부담이 되는 시간이지만
워낙 일찍 산행을 시작했으니 시간적 여유가 많아 자주 쉬면서 조금씩 나누어 나아 갔다.
화방재(939m)까지는 3km남았다.사길령(치)를 지나 하산하는데 태백산 산령각이 나타난다.
사길령은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들어오는 관문인데 산이 높고 험하여 수백명씩 대열을 이루어
이 고개를 넘었다.이곳을 주로 지나던 보부상들은 200년전부터 이 산령각에서 그들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고 지금도 매년 음력 4월 15일에 제를 올린다고 한다.
(사길령 산신각(산령각))
국립공원직원이 산령각 앞에서 휴식중이며
10여분전에 익산 3인조가 지나 갔다고 알려 주는데 우리는 그들과 비슷한 속도로 걷고 있었다.
화방제로 가는 길은 가파른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이제 고도는 많이 내려 왔다.주변은 편백나무가 빽빽하게 가꾸어져 있고 숲이 건강하다.
사길령 유래을 새긴 돌탑이 있는데 사길령은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들어오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신라시대에 태백산 꼭대기로 통하는 고갯길이 있어 천령(天嶺)이라 했는데 그길이 높고 험하여
고려시대에 다시 길을 만든것이 사길령이다.
사길령은 강원도의 관문이기도 했지만 하늘로 통하는 천령(天嶺)이고 하늘길이였다.
(옛 화방재의 소박한 모습))
이제 화방재(花房嶺)가 지척이다.
화방재는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이 볽게 타오르는 모습이고
그것이 마치 꽃방석 같다하여 "화방제"란다.
또한 이곳 마을 이름이 어평리인데 단종과 관련이 있다.
- 죽어 태백산 산신이 된 단종대왕의 혼령이
"이제부터 내땅"(御坪)이다. 라고 해서 어평리(御坪里)란다 -
이제 산행거리는 24km를 넘고 있었고 차량이 넘나드는 화방재에 도착한다.
우리는 오늘 태백산을 넘었다. 처음엔 가볍고 끝날땐 무거운 발걸음 이였지만
눈으로 보는것과 가슴으로 느낀 감동은 아주 크다.
화방재에서 예비군 진지(陣地) 풀베기를 하는 예비군 중대장을 만났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내일이 6.25, 67주년이라고 말한다.
예비군 중대장과 군대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의 백두대간 사연을 듣고는 놀라시며
교통편을 물으시더니 우리를 태백시 외각에 있는 보석사우나 찜질방까지 테워다 주신다.
그곳은 24시간 운영하는 찜질방을 겸하고 있어 우리가 휴식하기엔 안성마춤이였다.
우리는 그 사우나에서 씻고 숙박과 저녁식사까지 해결하니 간편했다.
(화방재 교통표지판)
나는 한민족의 영산(靈山) 태백산을 그렇게 넘었다.
거칠것 같았던 태백산 마루길은 부담스럽지 않게 넘는 길이였으며
장군봉은 하늘을 떠 받드는 형국인데 장군봉 천제단은
우리 민족이 오랬동안 제를 올렸던 신성한 제단이였다.
오늘 새벽 2시부터 걷기 시작하여 오후 1시30분에 마쳐
11시간30분 동안 24.33km를 걸었다.
나의 백두대간 행진은 내일 함백산(咸白山1,563m) 넘을 것이며
내일의 산행도 기대가 된다.
2017년 6월 24일(토) 맑은 날 걷고 6월 29일(목)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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