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선교사(1840-1866)
<<한국 개신교의 첫 순교자이자 선교사, 1866년 대동강에서 순교>>

1.출생: 1840년 9월 7일, 영국 웨일즈의 회중교회 목사의 두 번째 아들로 태어남.
-부친(로버트 토마스)은 매우 경건한 사람으로 웨일즈 하노버교회 담임목사로 목회하다 1884년 2월 28일 하노버교회 사임후 10월 2일 별세.
2.학창시절
①3년간 클랜도버리 칼리지에서 라틴어, 헬라어, 불어를 공부(어학에 남다른 재능)
②1856년 16세때 신학공부를 위해 런던 대학 뉴칼리지에 진학했으나 그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학교측에서 1년후로 입학을 연기함.
-그의 학창생활은 방황과 낙망으로 휴학과 복학의 과정을 지내며 런던대학교 뉴칼리지에서(1857~1863년 5월)학사 및 신학과정을 마쳤음.
3.목사안수:1863년 6월 4일 고향 하노버 교회에서 목사안수(그때 나이 23세)
-그는 목사안수 받은 후 중국선교의 사명을 느껴 부인 캐롤라인과 함께 런던선교회 파송을 받고 중국상해로 떠남
4.선교사로 파송
①1863년 8월 영국 런던 선교회 파송선교사로 아내 캐롤라인과 중국 상해 도착.
②아내 캐롤라인이 환경에 적응을 못하고 유산 후 1864년 3월 24일 별세함.
-임신중 이국생활에서 오는 충겨고가 다른 기후로 고생하다 중국 남부로 이동. 거기서 미국 선교사 부인의 죽음을 듣고 그 충격으로 유산후 사흘 뒤 사망.
③중국 선교지에서의 방황
-1864년 사표제출(아내 잃은 충격과 선임 선교사 무어헤드 월권을 이유로)
-1865년 1월부터 8개월간 그는 청나라 해상 세관 통역관으로 근무함.(이때 중국어, 몽골어, 러시아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정도로 어학을 습득)
④중국 파송선교사 윌리암슨의 도움으로 선교의 열정을 재충전함.
-스코틀랜드 장로교 중국담당자 윌리암슨을 만나 조선에 대해 듣게 되었고 윌리엄슨은 런던 본부 선교국에 적극적으로 그를 변호하여 천거해줌.
⑤방황중에서도 선교사 업무이행
-지푸에 머물면서 해관 업무에 못지않게 성서연구반을 운영하였고 또한 중국인들을 위한 주일예배와 영어 회중교회를 인도하였음.
5.한국선교에 대한 관심과 제1차 조선 선교여행
①그는 윌리암슨의 소개로 한국에서 온 천주교인 두명을 만난후 조선으로 떠남.
-1865년 9월 13일 그는 황해도 창린도에 도착하여 2개월간 한글을 배우며 성경을 배포하고 전도한후 1866년 1월초 중국 북경으로 되돌아왔음.
②그후 런던 선교회에서 토마스 선교상게 북경에서 활동하도록 새로이 임명함.
-1866년 4월까지 북경대학 학장서리로 지내면서 평양감사 박규수를 만나 한문성경 1권을 전달했고, 1년후 그 성경이 평양에 흘러들어간것에 감격
③당시 조선은 병인박해(1866-1871)시기로 천주교의 박해가 극을 이루었음. (*1866년 고종3년, 대원군이 천주교 신자들을 크게 학살한 사건)
6.제2차 조선 선교여행
①1866년 8월9일 미국 제너럴셔먼호 통역관 자격으로 탑승(동양인19명, 서양인5명)
-당시 조선은 대원군 치하 쇄국정책으로 ‘청국의 허락없이 외국과의 통상 불가능’함을 통보했으나 셔먼호는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으로 전진함.
②이런 상황에서 조선과 셔먼호가 대치중에 협상을 시도함.
-조선은 양쪽 협상을 위해 중국 이익현을 파송했으나 셔먼호 안에서 그를 인질로 붙잡아 두자 결국 박규수는 셔먼호를 불태우기로 결심함.
③조선정부는 대동강 상류에 불타는 나룻배 띄워 셔먼호에 옮겨 붙인후 포위함.
-셔먼호의 선장, 중국 서기 조능봉, 이팔행 등이 참수를 당하고 토마스도 모래사장에서 기도한 후 평양출신 군인 박춘권에게 성경을 건네주고 순교함.
7.순교:1866년 9월 2일 27세때 조선 대동강변에서 순교(아내 잃은 지 2년 6개월 후)
8.그가 남긴 씨앗
(1)병졸 박춘권
①심경에 변화 경험-‘도대체 무슨 책 이길래 죽어가면서도 건네주려 했을까?’생각.
②동료 몰래 현장에 다시 가서 흩어진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어 영주교회 영주가 됨.
-조카 이영태는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어 평양숭실대학에 들어가 졸업한 후 레이놀즈의 조사가 되어 현재 한글성경 2/3을 번역하는데 결정적인 공헌.
③병졸 박춘건은 훗날 평양 최초의 교회 ‘널다리골 교회의 대표’가 됨.
(2)최치량
①당시 12살 소년 최치량은 토마스로부터 포리에서 한문성경 3권을 건네받음
②성경이 ‘금서’라는 사실을 알고 겁이나 평양 영문주사 박영식에게 전달.
③박영식 집에 자주 놀러갔다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음.
(3)박영식
①조선 평양 영문주사 박영식, 최치량으로부터 한문 성경 3권을 건네받음.
②질 좋은 종이로 만들어진 성경 2권으로 자기 집의 바닥, 벽, 천장까지 도배함.
(#당시 한지류는 종이 질이 우수, 한쪽 단면만 인쇄되는 찢을 필요가 없음)
③어느날 요5장 24절이 눈에 들어와 처음에는 무의미하게 읽다 고민에 빠짐.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자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나“
-그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으니라”말씀 읽고 예수 영접후 구원을 얻음.
④성경으로 돕한 그의 집이 평양 최초의 교회“널다리골교회(장대현교회 전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