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말엔 더 많이 울었네요. 연출자가 컷~하며 조작할 수 없는 백퍼실제쇼(리얼리티) 때문입니다. (7번째 테니스 이야기입니다.)
5세트의 경기에서 앞 2세트를 내줬다면 역전에 성공하기란 참 힘들겠죠. 기가 많이 죽고 부담백배라 몸이 무거워지죠. 상대가 랭킹 우위 선수라면 더욱 그럴테구요. 그러나, 라파엘 나달이라면 다른 얘기가 됩니다. 세트당 1시간이 넘는 에너지를 쏟아 붓고 후반 3세트를 내리 따내는 역전극을 펼치며 2022 호주 오픈 테니스 우승을 차지했죠. 저는 경기 종료부터 시상식 내내 울었습니다. 그 위대하고 위대한 영혼에 감동되어..
이 승리가 위대한 이유는 그가 누구이고 무엇인지와 관련한 본연의 모습이 선수 생활 20년 후에도 변치 않음으로써 모두에게 영감이 된 데 있을 거 같습니다. 나달은 늘 나달한다는 겁니다.
상대가 10년이나 어린 선수이니 체력적 열세에 대한 고민이 있게 마련인데 쏴서 넘겨야 할 공에만 몰입할 뿐 망가질 몸 따윈 아예 안중에 없어요. 두 세트를 먼저 잃으면 잠시라도 발걸음 둔화 등 살짝 힘빠지거나 맥빠진 표정에 집중력이 저하되기 마련인데 여전히 항상성을 유지했죠. 기울어진 전세에도 조급함은 없었어요. 한결같은 수행 동작만 할 뿐.... 그냥 ‘다시 처음’이라는 마음만 있어 보였어요. 불안이나 부담보다는 도전의식이 앞선 거죠. (나중 인터뷰 내용 보니 저의 느낌 그대로)
호주오픈 9번 우승자 노박조코비치가 백신 미 접종으로 입국이 거부되자 제1 라이벌 나달이 먼저 그랜드슬램 21승 신기록에 도달할거란 기대감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희망사항으로 보는 편이었지요. 실제로 우승 예견이 상대인 랭킹 2위 메드베데프에게 76% 쏠렸고 나달이 앞 2세트를 잃었을 땐 무려 96%로..
그러나 불굴의 투지의 아이콘, 그의 사전에 ‘적당히’란 없는 성실의 대명사, 결코 초심을 잃지 않는 자, 나달이었죠. 해 냈어요.
뜨거운 가슴은 주변도 달구는 법이죠. 그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무너지며 두 손으로 감싸쥔 얼굴을 바닥에 대고 흐느낄 때 저는 빈 집에 홀로 남겨진 아이마냥 통곡했습니다. 관중들도 따라 울었고요, 중계하는 (해외)캐스터와 해설자도 감격한 듯 목소리가 갈라지더군요.
그는 천성적으로 사람을 울리는 사람 같습니다. 그 정도면 찰기 오른 얼굴로 으스댈 법도 한데 늘 배고픈 표정과 겸양의 분위기로 주어진 상황에만 몰두하는 편이죠. 도무지 관중 앞에서 끼를 부리는 일도 없고 자기 확인을 위해 시선 유인하는 일도 없어요. 안 풀리는 경기에서 화를 내는 법도 없으며 불필요한 혼자말이나 모션을 하는 일도 관객에게 공감이나 응원을 요구하는 몸짓도 없어요. 그런 면에서 노박 조코비치와는 정반대죠. 그저 공의 처리에만 몰두하는 일꾼일 뿐이에요.
그런데 그는 왜 그렇게 열심히 할까요? 그가 아직도 허기진 걸까요? 엄청나게 번 돈, 행복한 가족, 사랑하는 아내, 사회에의 기여......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전세계 무수한 팬들.. 도무지 그가 2세트를 잃어도 5시간 24분이나 종횡무진한 이유가 뭘까요?
내일이 없을 것처럼 온 몸을 다하는 수행자, 타고나지 않고는 힘들다고 봅니다.
뱀발 1: 나달이 저의 최애 선수긴 하지만 게임내내 메드베데프를 응원했어요. 나달은 이미 20번이나 우승 경력이 있으니까요. 근데 인석이 계속 드롭샷을 날리는 거에요. 나달의 힘을 빼보려고 했을 거 같은데.. 자충수죠. 나달을 겪어보고도 오판을 하다니... 조코비치 정도의 정교한 드롭샷이 아니고서는 나달의 걸음을 이겨낼 자는 없는데 말이에요. 어쨌거나 나달이 또 우승했어도 감동과 기쁨이 반감되는 건 아니죠.~^^
뱀발 2: 우승 후 인터뷰 앞 2세트 잃고 어떤 생각이었느냐의 질문에 Nadal said: "If you fight [until] the end, [the] normal thing is [to] lose the match in straight sets after that situation. 중략.. I just wanted to keep believing [until] the end. I just wanted to give myself a chance." (Nadal did just t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