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 중에서
나전칠기’라는 말은 칠기에서 나타내는 문양을 조개를 이용하여 장식하는 것을 말하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 등 여러 곳에서 제작되었다. 한국 · 중국 · 일본 등에서 공통으로 쓰이는 ‘나전’이란 말의 한자는 소라 ‘라(螺)’자와 보배로 꾸민 그릇 ‘전( 鈿)’자로 소라 껍데기를 활용해 장식한 기물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자개’라는 별도의 고유어를 함께 써왔으므로 자개는 나전과 같은 말이다. 아름다운 진주 광택을 지닌 조개껍데기의 안쪽 패 면을 종잇장처럼 얇고, 판판하게 갈아 놓은 것을 말하기도 하고, 그것으로 무늬를 만들어 장식하는 기술 또는 기법으로 만들어진 공예품을 이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나전칠기는 통일 신라 시대에서 시작하여 고려 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기법과 그 적용 문양의 변천으로 다양하게 발전되어 왔다 주로 왕들만이 사용하는 고급 공예로 자리 매김하면서 그 고귀함을 이어 왔다 고려시대의 나전칠기는 자개의 컬러와 그 제작 기법이 뛰어나 세밀하고 귀하여 중국에서도 인정하는 것으로 보아 그 시대의 독창적인 기법을 선보였다 고려 말기가 가장 활발한 부흥의 시기로 생각된다 조선시대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대중화와 산업화의 노력이 이루어졌으나이후 소득 수준의 향상으로 인한 생활 문화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서양 가구에 밀려 쇠퇴되다가 현재까지 나전칠기의 명맥을 근근이 이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나전은 통일신라 시대(676~936)부터 시작해 고려 시대(918-1392)에는 최고 수준의 기법에 이른다. 당시 고도의 제작 기법으로 경함 및 향함 등이 정교하게 제작되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불교 경전을 보관하던 ‘고려 나전경함’이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조형 문화로 평가받고 있는 고려 나전경함은, 미국을 비롯해 영국, 네덜란드, 일본 등의 주요 국립박관에 소장되어 있고, 그중 한 점만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물 제1975호로 지정되어 보관되고 있다.
임충휴 명장은 이 고려나전경함을 그대로 재현해서 현재 그의 전시실에 전시 중이 다. 조선 시대에도 나전칠기는 왕실의 혼례 품이나, 양반층의 일상적인 사치품 또는 부장용 명기 등으로 제작되었으나, 18세기를 전후하여 상공업의 발전을 통해 새롭게 대두된 평민 부유층의 등장과 맞물리며 회화적인 문양과 서민적인 민화풍의 문양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십장생이나 천도복숭아, 학, 포도 넝쿨 같은 문양은 임충휴 명장의 작품에서도 주요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