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약재학음집(惕若齋學吟集) 김구용(金九容)생년1338년(고려 충숙왕 복위 7)몰년1384년(우왕 10)자경지(敬之)호척약재(惕若齋)본관안동(安東)초명제민(齊閔)특기사항정몽주(鄭夢周)ㆍ이숭인(李崇仁)ㆍ이색(李穡) 등과 교유
惕若齋先生學吟集卷之上 通善郞晉陽大都護府判官兼勸農兵馬團練判官男明理編 / 詩
酬全少尹 *淸遠亭
竹溪流接洛東江。淸遠亭前萬樹黃。遙想菊坡重九日。諸郞爭獻萬年觴。
竺山那得似驪江。秋水滔滔菊綻黃。樓上笙歌當午月。纖纖玉手捧霞觴。
立齋先生文集卷之三十四 / 碣銘 / 笁山府院君菊坡全公墓碣銘 並序
公諱元發。姓全氏。菊坡其號也。曾祖忠敬。高麗典法部揔郞。祖大年。版圖揔郞。考璡。鷹揚軍民部典書。皆以文科進。公亦擢第顯於朝。時中國選東國賢良文學試之。忠肅王以公膺。入果魁。仕至金紫榮祿大夫兵部尙書兼集賢殿太學士。先是中國責東國歲貢駿馬金銀絹帛。弊不堪。公懇奏蒙特蠲。至大明亦因之。尋丁父憂還。王以其功封笁山府院君。又賜笁山下一區第以寵之。及恭愍立。
공민왕 | 1 | 1352 | 임진 | 至正 | 12 | 66 | 다시 侍講이 되다. ○ 辭職하다. ○ 다시 우정승이 되고 純誠直節同德贊化功臣號를 받다. |
公見權奸橫。退居笁山下。與李益齋齊賢,金惕若九容,金蘭溪得培爲道義交。相得甚驩。公旣歿未幾。麗命革。遺事亦磨滅無傳。然邦人慕其德不衰。議欲俎豆之。至八世孫贊。學於陶山李先生。間語及此。先生曰公間世賢。崇報宜矣。逮英廟朝。又以蠲貢事下敎曰我東之國富民安。果誰之力。用是鄕士林。卽公杖屨地。立祠於蘇川。獨其墓尙無表。公之諸雲仍。方合謀樹碣。其十四世孫明采氏爲採邑誌院記及譜序諸信筆。示余乞爲銘。盖公之子僴司僕寺正。孫直縣監。弘少尹。謹郡事。該慓敬至曾玄。登大小科者某某。至九代孫以性。遊吾先祖文莊公門。亦文科府使贈都承旨。於乎。公之蹟。今乃得顯刻焉。豈亦有時而然歟。墓在笁西分退洞午向原。銘曰。
東國自崔孤雲,李牧隱之外。其入仕中國。功施到今。身名俱完者。惟菊坡有焉。宜其廟食百世。而墓亦表識之。以益保守永久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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惕若齋先生學吟集卷之下 通善郞晉陽大都護府判官兼勸農兵馬團練判官男明理編 / 詩
留襄陽寄安東府使 安仲溫
一別花山十六年。歸來魂夢更茫然。映湖樓下應迷路。須遣嬌童導我先。
湖上危樓翼似飛。汀洲姸暖似春時。月明須倚闌干曲。孰有佳人玉笛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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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렴정집(景濂亭集) 탁광무(卓光茂)생년1330년(고려 충숙왕 17)몰년1410년(조선 태종 10)자겸부(謙夫)호경렴정(景濂亭), 졸은(拙隱)본관광주(光州)시호문정(文正)특기사항이제현(李齊賢)ㆍ정몽주(鄭夢周)ㆍ이숭인(李崇仁) 등과 교유
~ | ~ | ~ | ~ | ~ | ~ | ~ | 洪永通이 간관을 능멸한 일을 탄핵하다가 도리어 신돈의 모함을 받다. ○ 中正右司諫大夫 進賢館提學 知製敎를 거쳐 禮儀判書에 이르다. ○ 일로 인해 관직을 그만두고 향리인 光州에 돌아와 정자를 짓고 소요하다. 李齊賢이 정자에 ‘景濂亭’의 편액을 지어 주고, 諸家들이 銘과 題詩를 지어 주다. |
景濂亭集卷之一 / 詩○七律 / 退老詩 文選則但題景濂亭。故今從家本。
懶向人前強作顏。水亭終日對靑山。吾家嗜好與時異。此地淸幽非世間。風月無私隨處足。乾坤大度放予閒。逍遙自適忘機裏。臥看長空倦鳥還。
동문선 제16권 / 칠언율시(七言律詩)
경렴정 익재소명 (景濂亭) 益齋所名
李齊賢1 | 1287 | 1367 | | 李之公 | 慶州 | 仲思 | 益齋, 櫟翁 | 文忠 | 雞林府院君 |
탁광무(卓光茂)
사람들 앞에 억지 웃음 짓기 싫어 / 懶向人前强作顔
온종일 수정에서 청산만 바라보네 / 水亭終日對青山
우리 집의 기호는 시속과는 다르네 / 吾家嗜好與時異
이 땅의 청한은 세상 것이 아니로세 / 此地淸幽非世閒
풍월은 사가 없으니 가는 곳마다 푸짐하고 / 風月無私隨處足
천지는 도량이 커서 한가한 나를 내버려두네 / 乾坤大度放予閑
만사를 다 잊고서 멋대로 거닐다가 / 逍遙自適忘機裏
누워서 공중에 돌아오는 지친 새를 보노라 / 臥看長空倦鳥還
ⓒ 한국고전번역원 | 양주동 (역) | 1968
景濂亭集卷之一 / 詩○七律 / 景濂亭扁額
海東形勝擅湖南。上有濂亭下有潭。弄月吟風多靜味。觀魚聽鳥足閒談。島頭松葉合雲飽。池面蓮花帶雨酣。幽趣溪山眞釀得。詠而歸日飮而甘。見草溪鄭氏海東詩
동문선 제97권 / 설(說)
경렴정 명 후설(景濂亭銘後說)
정도전(鄭道傳)
겸부(謙夫) 탁(卓)선생이 광주(光州) 별장에 못을 파고 연꽃을 심고, 못 가운데에 흙을 쌓아 작은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정자를 짓고 날마다 올라서 즐거움을 삼았다. 익재(益齋) 이문충공(李文忠公)이 그 정자를 경렴(景濂)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염계(濂溪)의 연꽃을 사랑하는 뜻을 취하여 우러르고 사모하고자 해서이다. 그 물건을 보면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을 생각하면 반드시 그 물건에 마음을 쓰게 되니, 느끼기를 깊이하고 후하게 하기를 지극히 해서이다.
일찍이 생각하건대, 옛 사람이 화초에 있어서 각각 사랑하는 것이 있으니, 굴평(屈平)의 난초와 도잠(陶潛)의 국화, 염계의 연꽃이 그것이다. 각각 그 마음에 있는 것으로써 물건에 붙였으니 그 뜻이 은미하다. 그러나 난초는 꽃답고 향기로운 덕이 있고, 국화는 은일(隱逸)의 높은 것이 있으니, 두 사람의 뜻을 볼 수 있다. 또 염계의 말에 이르기를, “연은 꽃 중의 군자라.” 하고, 또 말하기를, “연꽃을 나와 같이 사랑하는 자 누구인고.” 하였으니, 자기가 즐거워하는 것으로써 남과 함께 하는 것이 성현의 마음 씀이다. 당시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 주는 이가 없음을 탄식하고 후에 알아주는 자를 무궁한 세상에서 기다렸으니, 진실로 연이 군자 되는 것을 안다면 염계의 즐거움을 거의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물건을 인하여 성현의 즐거움을 알아내는 것을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황노직(黃魯直)이 말하기를, “주무숙(周茂叔)은 가슴 속이 쇄락(洒落)하여 산들 바람과 개인 달 같다.” 하였고,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주무숙을 본 뒤로는 매번 중니(仲尼)와 안자(顔子)의 즐거운 곳과 즐거워하던 것이 무슨 일인가를 찾아 보게 하였다. 이 뒤로부터 바람을 읊조리고 달을 읊고 돌아온다 하는 것에 내가 증점과 같이 하였다.” 하였다. 내가 가만히 혼자 생각하건대, 염계를 경모하는 것에 방법이 있으니, 모름지기 쇄락의 기상(氣象)을 알아서 증점과 같은 뜻이 있는 연후에야 말하여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문충공이 지은 명(銘)에 말하기를, “발을 걷고 꿇어 앉아 있노라면 바람과 달이 가이 없다.” 하였으니, 이 한 구절이 옛 사람이 단정한 공안(公案)이다. 어떻게 하면 한 번 그 정자에 올라서 함께 참여할까.
ⓒ 한국고전번역원 | 임창순 (역) | 1969
三峯集卷之二 奉化鄭道傳著○昌寧成石璘選○安東權近批 / 七言絶句
鷲峯寺樓上賦得一絶。奉寄卓先生。按卓先生名光茂。號景濂亭。時在光州。
客夢初驚一葉秋。偶乘微雨上高樓。居僧遙指先生宅。白石淸泉谷口幽。
삼봉집 제2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취봉사 누 뒤에서 절 한 수를 지어 탁선생에게 봉기하다[鷲峯寺樓上賦得一絶奉寄卓先生]
【안】 탁선생의 이름은 광무(光茂), 호(號)는 경렴정(景濂亭)인데 이때에 광주(光州)에 있었음.
일엽(一葉)의 가을이라 나그네 꿈이 설레어 / 客夢初驚一葉秋
우연히 비를 타고 높은 누에 올랐다오 / 偶乘微雨上高樓
중이 멀리 선생의 댁을 가리키는데 / 居僧遙指先生宅
하얀 돌 맑은 샘 깊숙한 골이었소 / 白石淸泉谷口幽
[주-D001] 일엽(一葉) : 가을을 표현한 말임. 당인(唐人)의 시에 “산 중은 갑자 셀 줄 모르고, 나뭇잎 떨어지면 가을 왔다 생각하네[山僧不解數甲子 一葉落知天下秋].” 하였음.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역) |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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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 제36권 / 전라도(全羅道) / 진원현(珍原縣)
【불우】 취봉사(鷲峯寺)ㆍ상청사(上淸寺)ㆍ하청사(下淸寺)ㆍ연화사(蓮花寺) 모두 불대산에 있다. 죽림사(竹林寺) 죽림산에 있다. 상림사(上林寺) 가리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