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풀꽃
유준호
화원 꽃은 모두 다 재 값이 매겨 있다.
풀꽃은 햇빛의 울력으로 절로 자라
하늘이 임자이기에 마무런 값이 없다.
뉘도 모를 애틋함 자아내는 풀꽃이다.
밟혀서 엎드렸다 눈치껏 일어앉아
이름을 불러줄 날만 한사코 기다린다.
자취없이 봄바람이 오가며 손 잡는다.
풀꽃은 벌 나비 춤사위로 너울대며
연연한 섭리가 서린 꽃향기 뿜어낸다.
어찌 보면 사람들도 더러는 풀꽃이다.
하늘에 목숨을 맡겨놓고 무심결에
어디든 뿌리를 내려 공으로 살아간다.
(시조미학, 2019 여름호)
이 작품은 화원 꽃과 풀꽃이 대비되어 있다. 화원 꽃이 안정 속에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풀꽃은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비유하고 있다. 둘째 수에서‘뉘도 모를 애틋함을 자아내는 풀꽃’이라면서 풀꽃에 연민의 정을 보내고 있다. 흔히 개인적으로는 약자에 대해서 불쌍한 마음을 품는다. 그러나 집단화되거나 익명 속에서는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짓밟고 얕잡아보는 것이 세상인심이다. 비교하는 마음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보다 잘난 사람에게는 열등의식을 가지고, 못난 사람에게는 우월감을 가진다. 그러면서 남을 짓밟기 위해서 무한한 욕망을 품게 된다. 한편 약자에 무한한 애정을 보이는 사람들은 가진 자나 강한 자를 악으로 보는 편견을 가지기 쉽다. 우리 사회는 한쪽으로 치우친 편견과 고정 관념 때문에 갈등이 고조 되고 있다. 세상을 선악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중정을 잃은 사람들의 눈이다. 그러나 위 작품에서는 대립의 관계로 보지 않는다. 둘째 수 종장에서“이름을 불러줄 날만 한사코 기다린다.”라고 하였듯이‘화원 꽃’과 마찬가지로‘풀꽃’도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러나 찾아오는 존재는 화원 꽃과는 달리‘봄바람’‘벌 나비’이다. 대자연이다.그것은 대자유를 뜻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수 초장에서는“어찌 보면 사람들도 더러는 풀꽃이다.”라고 하며 풀꽃을 인간들에 비유하고 있다. 종장에서는“어디든 뿌리를 내려 공으로 살아간다.”라며‘공’즉 어디에 걸림이 없이 무심결에 산다는 것이다. 무소유의 인간이 집착을 놓았기에 더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럴 때 약자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 “풀꽃은 벌 나비 춤사위로 너울대며”생명이 충만함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아프다. 약하다고 나약한 소리를 한다. 그러나‘풀꽃’을 바라보면서 우리 역시 저 풀꽃과 같다고 자각한다면 무한한 자유를 얻게 됨을 노래하고 있다.(김우연, 좋은 시조 읽기. 2020.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