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이나 슈베르트등 많은 서양 음악사의 작곡가들이 시인의 주옥같은 시(詩)들을 가사로 사용했듯 우리나라의 조두남 작곡가도 여러 시인들의 시를 가사로 사용하여 작곡을 하셨다.
이번에 만날 시음악(詩音樂)은 작곡가 조두남 선생의 ‘산촌’이다.
1912년, 조두남 선생은 평양 출신으로 카톨릭 가정에서 출생하여 어릴적(6세)부터 미국인 신부 캐논스(Cannons.J)에게 음악을 배우기 시작하여 음악적 역량을 키우기 시작하였다.
11세에 ‘옛 이야기’라는 곡을 시작으로 작곡에 발을 디뎌 위대한 한국 작곡가의 족적을 남기기 시작하였다.
신부님에게 배운 피아노 실력이 날로 발전하여 여러 교회에서 오르간과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였고, 17세에 첫 가곡집을 출판하였다.
17세에 가곡집을 출판하다니 천재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대표작 가곡으로 ‘일송정 푸른 솔은...’으로 시작하는 너무도 유명한 ‘선구자’, ‘뱃노래’ ‘그리움’, ‘제비’, ‘접동새’, ‘또 한송이의 나의 모란’등이 있다.
일제의 탄압으로 국내 활동이 힘들어지자 만주로 건너가 작품 활동을 지속하였으나
1943년부터 만주국의 취지에 따라 일본 중심의 국민음악 창조를 위해 만주 작곡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친일 행적으로 뼈아픈 역사적 사실도 있으나 6.25전쟁으로 피난한 곳, 마산에 뿌리를 내리시고 돌아가시기까지 지역의 문화 발전과 예술 진흥에 많은 공헌을 하셨다.
산촌
이광석 작시/조두남 작곡
달구지 가는 소리는 산령을 도는데
물 긷는 아가씨 모습이 꽃인 양 곱구나
사립문 떠밀어 열고 들판을 바라보면
눈부신 아침 햇빛에 오곡이 넘치네
야아~ 박꽃 향내 흐르는 마을
천년만년 누려본들 싫다손 뉘 하랴
망아지 우는소리는 언덕을 넘는데
흐르는 시냇물 사이로 구름은 말 없네
농주는 알맞게 익어 풍년을 바라보고
땀 배인 얼굴마다 웃음이 넘치네
아아~ 박꽃 향내 흐르는 마을
천년만년 누려본들 싫다손 뉘 하랴
지금의 시골은 기계화되어 현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우리 세대만해도 달구지나 사립문등이 언뜻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곡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우리 장단의 흥겨움과 서양 악기를 통한 화성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귀를 기울이게 된다.
‘농주’, ‘풍년’, ‘땀 배인 얼굴’로 농사지으며 행복한 서민의 모습을 밝게 표현하여 머릿속에는 달구지를 끄는 소와 풍요로운 시골 풍경이 그려지고 절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어진다.
필자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 살고 있어 농촌의 모습이 어떠한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가곡 ‘산촌’을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 민족 고유의 흥이 살아있는 독특한 정서를 느끼게 된다.
한류(韓流)의 바람이 전 세계에 불어 음식, 영화, 노래 등 여러 방면의 문화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가곡은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중심의 흐름이 있어, 성악과를 졸업한 필자는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이태리, 독일 가곡을 배우기에 바빴던 기억이 난다.
서양 가곡에 비하면 짧은 시간일수도 있지만, 지난 백여 년 동안 작곡되어진 한국 가곡은 어디에 내어 놓아도 훌륭한 명품 곡들이 많이 있다
가장 한국다운 명품 노래를 고르라하면 ‘산촌’을 추천하고 싶다.
곡 위에 ‘느리지 않게 민요풍으로 춤추듯이’가 모든 것을 말하듯, 당김음에 덩실 덩실 춤추고 싶어지는 노래의 장단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고 시원하게 한다.
슬프거나 그리워하는 애가(哀歌)가 많은 한국 가곡 중에 흥이 나는 곡이 있어 반갑고 귀한 마음이 든다.
슬픈 감정보다는 ‘흥’이 있는 기쁨을 표현하는 ‘산촌’같은 한국 가곡이 많이 불려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실제로 여러 성부의 성악가들에게 사랑받고 불려지고 있다.
필자도 내년에는 신나게 불러볼 생각이다.
다양한 성부로 불러지고 사랑받고 있는 한국 가곡 ‘산촌’을 꼭 감상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성문원(소프라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