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회 마음공부 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안녕하세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마음공부를 단계적으로 안내하는 마음나라 TV입니다. 반갑습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듯이 깨달은 것과 깨닫지 못한 것은 천양지판의 큰 차이가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깨달음을 얻었다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처럼 마음공부를 하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하는 것도 생각해 봄직하다. 그래서 오늘은 마음공부 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하는 주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다.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하고 질문해 보면 격외로 선문답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나 그 내용은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면 진리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진리(眞理)하면 참된 이치라고 한다. 참되다는 말의 반대말인 거짓이다는 변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으니 참된 이치인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부처님과 소태산 대종사 두 성자는 대각하였다고 한다. 얼핏 보면 두 성자의 깨달음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같은 내용을 깨달았을 지라도 설명하는 방식이나 입각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이 세상의 존재에 대한 이해로 연기(緣起)를 깨달았다고 하여 이 세상의 모든 존재의 실상은 없으며 인연 따라 생멸한다 하였다. 그런데 소태산 대종사는 깨달음 이후에 “만유가 한 체성이요 만법이 한 근원”이라 하였다. 이를 한 분은 표면의식을 또 한 분은 심층 마음을 설명하고 있기에 그 설명이 다른 데 표면의식과 심층마음은 둘이 아니다. 이를 정산종사는 성품과 정신과 마음과 뜻으로 설명하였다.
정산종사는 1962년 1월 열반에 앞서 ‘삼동윤리에 대하여 설명하여 보라’ 하고 “동원도리는 이 세상 모든 종교가 한 울안 한 이치인 것을 말한 것이며, 동기연계는 이 세상 모든 생령이 한 집안 한 권속인 것을 말한 것이며, 동척사업은 이 세상 모든 사업이 한 일터 한 일꾼임을 말한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그 말이 옳으며, 세상의 대세가 차차 이 길로 돌아오고 있으니, 여러분이 먼저 잘 지키고 보급하여 우리의 법이 천하 만고의 대법이 되게 하라.” 한 후 마지막으로 “마음공부 잘 하여서 새 세상의 주인 되라.” 부촉하였다고 한다.
‘새 세상의 주인 되라’ 하였는데 여기에서 ‘새 세상’은 물질이 개벽된 세상을 의미한다. 지금 세상은 인지와 과학의 발달로 과학과 자본이 결합하여 각종 산업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어 물질이 개벽된 새 세상이라 하였을 것이다. 물질의 세력은 날로 융성하나 반대로 물질을 사용하여야 할 사람의 정신이 점점 쇠약하여 물질의 지배를 받게 되어 가고 있다. 사람은 만물의 주인이요 만물은 사람의 사용할 바인데 사람이 물질에 휘둘리게 되어 물질의 노예생활을 면하지 못하게 되어 가고 있으니 걱정이다. 그러므로 미래에는 모든 인류가 정신의 힘을 확장하여 물질의 세력을 항복받아 물질을 사용하는 물질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주인(主人)이 된다는 의미는 어떤 대상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하거나 고용하는 사람으로 된다는 의미가 있으나 여기에서는 집단이나 단체에서 주체적으로 맡아서 처리하고 움직여 나가는 사람으로 된다는 의미가 더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여기에서는 물건을 소유하거나 사람을 지배하는 사람을 의미하기 보다는 미망과 허상에서 벗어나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인 줄을 알고 당하는 곳마다 상황 따라 그 장소에서 모든 일이 다 잘 되도록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마음공부 잘 하여서 새 세상의 주인 되라” 하였는데 마음공부를 잘 하면 새 세상의 주인으로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이 주인이 되지 않으면 돈 곧 물질이 주인이 된다. 주인이 되라는 말은 오래전 당나라의 선승이었던 임제선사가 지은 임제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으로 일반적으로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서있는 곳이 모두 진리이다.”로 해석하고 있다. 이 말은 어느 곳에 가든지 ‘주인’이 되면 그 모든 곳이 그대로 참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서있는 곳이 모두 진리이다.”라는 의미의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을 나는 ‘당하는 곳마다 주인이 되는 수처작주와 만나는 곳이 모두 부처님이라는 입처개진’으로 설명하고 싶다. 이와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법문인 『정전』 “불공(佛供)하는 법”에서는 ‘당하는 곳마다 부처님이니 일일이 불공하라’는 내용이 있다.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순서를 바꿔 생각해 보면 ‘사사불공 처처불상’이 되는 데 일마다 불공을 하면 곳곳이 부처님이 된다는 의미가 되어 수처작주 입처개진과 통한다.
정산종사는 “각자의 마음공부를 먼저 하는 것은 곧 불공하는 공식을 배우는 것이라” 하였으니 ‘마음공부 잘 하여서 새 세상의 주인 되라’는 말은 마음공부를 잘 하면 불공을 잘 하여 주인이 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공부 하면 당하는 곳마다 부처님인 줄을 알게 되고 그래서 일일이 불공을 하는 주인이 되는 것이다. 새 세상의 주인은 세상일을 남의 일로 보지 않고 모두 나의 일로 보게 되니 모든 것을 다 참고 잘 되도록 불공하고 아끼고 북돋우며 불평불만 하지 않는다.
주인은 비전과 목표, 지식과 정보, 결과와 성과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여 모든 이들이 주인 되도록 인도 한다. 또 주인은 긍정적으로 보고 빙공영사(憑公營私) 하지 아니하고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삶을 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원칙대로 정직하게 살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손해 볼 줄도 안다.
나는 매 회마다 마음공부를 끝마치기 전에 “마음공부 잘 하여서 새 세상의 주인 되자.” 하며 마무리 해 오고 있다. 이는 내 말이 아니고 정산종사의 말씀으로 마음공부 하는 목표가 새 세상의 주인이 되는 것이고 마음공부 하면 내가 달라져서 세상의 주인으로 진자리 마른자리, 호(好) 불호(不好), 영욕(榮辱) 고락(苦樂)을 가리지 않고 매사에 사사불공을 한다. 그러면 내가 처해 있는 곳이 꽃자리인 처처불상이 되는 것이다. 세상의 주인이 된 것이다.
당나라의 서암스님은 매일 스스로 주인공을 부르고 스스로 대답하였다고 한다. “주인공아”라고 부르고는 스스로 “예”하고 대답하였다. “성성하게 깨어있어 남에게 속지마라.” “예, 예”하고 스스로 부르고 답하곤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마음공부 자체가 주인 노릇하는 법을 공부하는 것이다. 그 대상이 정신적 존재든 물질적 존재든 주인을 밖에서 찾다보면 자신은 종이 된다. 결국 주인은 내 안에 있고 마음이 주인이다.
마음공부를 잘 하면 너도 나도 모두 주인이 될 것이다. 주인은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살며 궂은 일 좋은 일 가리지 않고 너 나 구분 없이 우리라는 큰 가족 안에서 한권속이 되어 이 세상 모든 사업이 한 일터 한 일꾼임을 알고 실천한다. 세상의 기운이 이제 여기 마음으로 돌아오고 있다 하였다. 대세가 차차 이 길로 돌아오고 있는 것을 알면 마음공부 하지 말라 하여도 열심히 꾸준히 하여서 새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다. 마음공부 잘 하여서 새 세상의 주인 됩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