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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2008년 4월 27일 / 대예배 / 마 7:24-27
■ 1970년 서울 신촌 로터리 근처에 있는 와우시민아파트 5층 건물 한 동이 붕괴되어 33명이 사망하고 40명이 중경상을 입은 대형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렇게 무너진 그 아파트는 오래된 아파트가 아니라 지은 지 불과 4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이 입주한지 20일밖에 되지 않은 새 아파트였는데 그러한 새 아파트가 그만 폭삭 주저앉은 것이었습니다. 왜 그런 대형 참사가 일어났는가에 대하여 건축전문가들이 나중에 알아본 결과 이 아파트는 기둥 하나에 19㎜ 철근이 70개씩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규정에 1/12 밖에 안 되는 5개 정도씩밖에 넣지 않았기 때문에 무너지고 말았으며, 또 콘크리트 배합비율도 시멘트를 알맞게 넣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멘트 비용은 업자들이 다 떼어먹고 정작 넣어야 할 시멘트는 넣는 시늉만 내었기에 무너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기초가 튼튼할 수 없는 의도적인 부실공사였다는 것입니다. 또 전문가들이 살펴본 바에 의하면 건축설계상 이 아파트의 건물 하중은 ㎡당 280㎏인데 무너질 때의 그 아파트의 실제 하중은 900여㎏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무게보다 배나 더 초과되어 있었으니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 설계사들이 그 아파트 건물 하중을 그렇게 280㎏으로 낮게 잡은 것은 당시 입주자들의 생활이 지금과 비교해 볼 때 아주 가난한 것을 전제로 해서 살림도구가 얼마나 있겠나 싶어서 건물 하중도 작게 잡았는데 거기에다가 철근 시멘트 빼먹어 모래아파트와 같은 부실공사가 되었으니 입주 20여일 만에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건축학 이론에 의하면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부실 공사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미국 컬럼비아 대학 건축학 교수인 M. Salvador의 건축 구조학 이론에 의하면 건축물이란 3가지 하중(荷重)을 고려해야 그 건물이 튼튼하고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 고려해야 할 3가지 하중이란 고정하중, 적재하중, 이동하중이란 3가지 하중입니다. 말이 좀 어려운 것 같은데 하중(荷重)이란 무게를 말하는 것으로서 고정하중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콘크리트 벽돌 철골빔 등 구조물 자체무게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고, 적재하중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그 건축물 안에 모든 것이 들어가고 실린 상태의 무게 즉 사람이나 각종 물건 등 모든 것들이 들어간 상태의 무게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동하중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그렇게 된 건축물에 가해지는 각종 외부의 영향이나 압력 말하자면 비나 바람 눈 태풍 지진 등 외부의 각종 영향도 충분히 고려해야한다는 것으로서 그래야 그 건물이 기초가 튼튼한 건물이라 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멋있게 보여도 그 건축물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는 것입니다.
■ 어느 목사님이 성지 연구를 갔을 때에 시나이 반도 광야를 지날 때였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광야였는데, 갑자기 도로가 유실된 곳이 나왔고, 큰물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 있는데 현지 안내자는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서 생긴 일인데, 이럴 때에 자칫 폭우를 잘못 만나면 차가 전복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기후와 지형 조건 하에서 일어나는 이런 현상을 들어서 산상 설교의 결론을 지으셨습니다. 비가 오고 홍수가 지고 바람이 불어 집들을 강타할 때에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지 않고,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무너진다고 하셨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기후는 건기와 우기로 나누어집니다. 일반적으로 우기가 되는 겨울철은 10월이나 11월경에 시작되어 그 이듬해 3월경까지 계속됩니다. 우기에 내리는 비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는데, 이른 비와 늦은 비 그리고 겨울비로 나눕니다. 이 중에 겨울비는 12월에서 2월까지 내리는데 장맛비라고도 부릅니다. 이스라엘 땅의 대부분의 강과 시내들은 건기에는 말라서 일반 평지와 같다가 우기 때, 특히 장마 비가 내릴 때면, 큰 강물을 이루며 흘러갑니다. 이런 강을 와디라고 하는데, 그곳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곳이 강인지 평지 사막인지 잘 구분이 안 됩니다. 만약에 그곳 지형이나 기후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와디에다가 집을 짓고 살려고 했다면, 건기에는 괜찮았겠지만 우기가 닥쳐 갑작스럽게 장맛비가 내리게 되면, 그 집은 급류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러니 지혜로운 사람은 결코 그런 곳에 집을 짓지 않을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힘이 들고 수고스럽지만, 반석이 나올 때까지 땅을 파고 반석 위에 기초를 두고 집을 지을 것입니다. 그러면 비록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지고 강한 바람이 불더라도 그 집은 그 시련을 이겨낼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집을 반석 위에 세운 지혜로운 사람 같고, 당신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그 집을 모래 위에 세운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당신의 말씀을 듣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실천함으로 견고한 반석 위에 세워진 집과 같은 성공적인 신앙의 삶을 살아가기 원하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폭풍우를 견디는 견고한 집
사람들이 왜 집을 짓습니까? 작렬하는 태양과 폭풍우와 더위와 추위를 막아내고 또 해로운 짐승이나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안전하고 평안한 삶을 살기 위해서 집을 짓습니다. 그러므로 집을 지을 때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고려할 것은 견고성과 안전성입니다. 집이 견고하고 안전한지는 겉으로 봐서는 잘 모릅니다. 비▪바람이 몰아쳐 봐야 드러나게 됩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면 반석 위에 견고한 기초를 둔 집은 무너지지 않고 건재하지만,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짓고 있는 인생의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우리 모든 인생들이 날마다 살아가는 삶 자체가 한 채의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십니다. 때가 되면 우리가 지은 인생집, 신앙의 집이 제대로 지어진 집인지 아닌지를 시험하는 일이 반드시 발생한다는 겁니다.
우리 인생의 집을 시험하는 폭풍우는 두 가지를 상징합니다.
① 현실의 삶에서 당하는 여러 가지 환난과 질고, 예기치 못한 사고, 원치 않는 갈등과 분쟁들을 의미합니다. 평상시에 모든 것이 평안하게 돌아갈 때는 제대로 집을 짓고 있는지 아닌지 잘 모릅니다. 평안할 때는 내가 인생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에 시련이 닥쳐와, 환난과 질고의 바람이 불고, 고통과 한숨과 슬픔의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면, 내가 그 동안 지어온 인생의 집이 제대로 지어진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②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받을 심판을 상징합니다. 인생들에게 최후 심판이 있습니다. 모든 인생들에게 종말이 오고, 그 때가 되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인데, 그 때에 하나님께서 각자가 행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어떤 사람은 잘했다고 칭찬 받고 상급을 받게 되지만, 어떤 사람은 심판받고 저주 받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산상 보훈 말씀을 마치시면서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다 들었는데, 내 말이 바로 너희가 든든한 집을 세울 수 있는 반석과 같은 기초다. 내 말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집을 반석 위에 세우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내 말대로 순종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너희 집을 모래 위에 세우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겠느냐? 결단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도 신앙생활에 성공하라고 하십니다. “어떤 시련에도 무너지지 않는 신앙인이 되라! 쉽게 대충 빨리 지었다가 시험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리는 허술한 집을 짓는 어리석음을 결코 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반석 위에 기초를 두라
집짓기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기초를 파고 다지는 데에 있습니다. 자기 혼자 살 집을 짓거나 그저 며칠 동안 야영할 움막을 짓는다면, 기초에 신경 쓸 것도 없습니다. 적어도 몇 십 년 살 집을 짓는다면,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살 크고 넓은 집을 지으려고 한다면, 반석이 나올 때까지 기초를 파야 합니다. 기초를 파고 다지는 데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공사비도 많이 들어갑니다.
■ 일본 도쿄에는 임페리얼이라는 호텔이 있다고 합니다. 이 호텔을 지은 미국의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는 기초공사를 하는데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기초공사 2년, 나머지 공사 2년. 그래서 합 4년 만에 호텔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이 호텔은 무리하게 돈을 많이 들여서 지은 건물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되었습니다. 그리나 이 호텔이 지어진 뒤 52년이 지난 후에 동경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동경의 2/3정도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수십 만 명이 목숨을 잃거나 심하게 다쳤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 속에서도 유독 호텔만큼은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불과 유리창 5개만 깨졌을 뿐입니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안전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기초를 그만큼 튼튼하게 다졌기 때문입니다. 그 후 라이트는 건축가로서 신화적이며 전설적인 인물로 남게 되었습니다.
반석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아버지의 뜻입니다. 보통 하나님의 말씀을 반석이라고 합니다만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기초로 한 것’이라고 하신 것을 마음에 간직하십시다.
마 7:24 / 내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사람은 든든한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21절 / 종교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라 해서 다 믿음이 깊은 사람은 아니다. 그들이 내게 `주님'이라 부른다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 여기 드러난 예수님이 가르치신 산상설교의 말씀을 좇아 살 때 인생의 하부구조는 단단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마음이 평안하고 든든하며, 세상 풍파에도 능히 신앙을 유지할 뿐 아니라 더욱 뿌리가 견고해지니 천국에 들어가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마 7:22-23 / 심판 때에 많은 사람이 ‘주님 ,주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이적을 행하였습니다.’라고 말하더라도 23)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너희는 내 사람이 아니다. 물러가라, 이 악한 자들아!”
이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서도 그럴듯하게 위장된 사람들로 심판 날에는 멸망당합니다. 무엇이 불법입니까? 아버지의 뜻과 다르면 불법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을 기억하실까요? 선지자 노릇, 귀신을 쫓는 것, 능력을 행하는 자가 아닙니다. 신앙의 핵심은 기적이 아닙니다. 진정한 신앙이란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용기 있게 믿음을 지키는 것이고, 병든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말씀을 구체적으로 따르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사랑하고 용납하고 사는 것입니다.
마 7:25 / 비가 쏟아져서 홍수가 나고 폭풍이 휘몰아쳐도 그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반석 위에 지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인생의 집에 비가 내라고 홍수가 나고 폭풍이 불어 집을 흔드는 시간이 옵니다. 지혜로운 사람에게도, 미련한 사람에게도 같은 일이 생깁니다. 경제 위기가 오고 건강의 적신호가 켜지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 있습니다. 기초가 없이 겉으로만 그럴듯하던 집들은 이런 때를 견디지 못합니다. 당연히 무너지고 허무함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 심판이라고 한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다시 그에게는 회복할 시간과 기회도 없고 다시 시작할만한 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위기 중에도 바른 기초 위에 든든한 집을 지은 사람이라면 결코 무너지고 망하지 않습니다.
욥이 그랬습니다. 그의 인생의 하부구조는 돈도 자녀들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입니다. 그러기에 그에게 무서운 환난과 재난의 바람이 불어와 다 날아가 버린 것 같았습니다. 사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일어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반석위에 세운 연고로, 하나님만을 의지하였기에 그 하나님께서 욥을 이전보다 더 크게 세워주셨습니다.
▶ 우리 인생의 집을 세울 기초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하기 전에 일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세상 사람들은 어디에 집을 세우는 지?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근거로,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는지? 가치관이 무엇이며 인생관이 무엇인지?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 대신에 세상의 철학이나 이념, 인간이 만든 종교 또는 물질과 명예나 권세와 같은 것에다가 집을 세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것에 자기 인생집을 세우는 것은 모래 위에 세우는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세상의 물질, 명예나 권세가 현실에서 인생들이 겪는 환난의 바람을 막아주지 못합니다. 또 모든 인생들에게 닥쳐오는 마지막 환난의 바람! 죽음 앞에 설 때에, 더더구나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합니다. 결국 이런 것들을 의지하고 살아온 인생은 모래 위에 세운 집처럼 와르르 무너지고 맙니다.
▶ 그렇지만 믿음의 선진들을 볼 때에 그들은 망한 것 같으나 망하지 않았고, 그들의 소망이 허무한 것 같았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약속하신 바를 이루어주셨으며, 그들은 세상에서 놀림을 받았으나 결국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마십시다. 힘이 들고 어려워도 그 분의 말씀을 믿고 그 분의 뜻대로 살아가십시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읍시다. 그리하면 때가 이루매 반드시 거두게 될 것입니다.
■ 탤런트 중에 한인수 장로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이 지방의 어느 작은 교회에 간증 집회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기간에 드라마 출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10회분 고정 출연’ 나이가 많은 연기자에게 10회분 고정 출연이라는 기회는 큰 행운입니다. 특히 극중의 역할도 마음에 들었답니다. 그렇게 해서 한 번 뜨게 되면 광고로 연결이 되어 목돈을 거머쥘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런데 한인수 장로님은 그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드린 약속을 지키고, 작은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따라 어디든지 부르는 곳이면 가서 은혜를 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서울이든, 지방이든 가리지 않고 가겠다고, 먼저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겠다고 약속했었던 것이고, 그 약속을 지켰던 것입니다. 특별히 그에게 그 배역을 마련해 준 담당 PD나 드라마 작가의 눈에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자신들의 배려를 저버린 그 분의 신앙이 어떻게 비쳤을까요? 다음부터는 배역이 끊어질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인수 장로님은 그걸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섬기고 오랜만에 방송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에게 ‘50회분 고정 출연’이라는 드라마에서 더 큰 역할이 결정되어 기다리고 있더랍니다. 한 장로님은 이런 것을 바라고 행동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자신의 삶의 근거를 두고 행동했을 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은혜를 더 하실 것입니다.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라!
이제 중요한 것은 이제 내가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실천해 보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경험해 보아야 합니다(요 14:21). 어떤 말씀이든지 한 마디 말씀이라도 순종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경험되고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 의사들이 하는 말이, 의사는 처방만 내려줄 뿐이고, 병은 환자 자신이 고치는 거라고 합니다. 의사가 처방해준 대로 정시에 약을 잘 먹고 지시사항대로 순종하는 환자는 치료가 잘 되고, 약을 제대로 먹지 않고, 지시사항을 준수하지 않는 환자는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치료가 된 환자는 담당 의사를 실력 있는 명의라고 하고, 치료가 안 된 환자는 의사를 돌팔이라고 한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의 병든 영혼과 육신을 치료하며 병든 가정을 치료하는 명약입니다. 또 우리 영혼을 건강하게 만들어 천국을 누리게 하는 보약입니다. 그러나 이 약의 약효는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실천하는 자에게만 발휘가 됩니다. 밥은 먹어서 소화가 되어야 힘이 나오고, 신약과 구약은 순종해야 능력이 됩니다. 말씀을 받아 그 의미를 이해하고, 단 마음으로 순종할 때에 말씀의 능력이 역사한다는 말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아는 대로 행하는 것이 힘’이라고 수정 보완해서 말해야 합니다.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힘이 난다.’는 지식 자체가 힘을 주지 못하듯이, 어떤 지식 자체가 힘이 되지는 않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지식 얻은 것으로 만족하고 더 이상 나가지 않습니다. 그 지식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필요한 대가를 지불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용서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 용서해야 합니다. 기도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 감사해야 합니다. 찬양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 찬양해야 합니다. 사랑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교회 다니면 사람이 변한다고 합니다만, 교회에 왔다고 다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실천할 때에만 내 삶이 변화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반석 위에 다시 우리의 집을 세우는 일입니다.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을 어렵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고 했습니다(요일 5:3-4).
순종에는 놀라운 영육간의 축복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단 한 번만 실천해 보아도 그 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한 번만이라도 그 복을 맛보게 되면, 그 이후로는 쉬워집니다. 이제 산상보훈 말씀을 다 들었습니다. 여기에 신앙생활의 원리가 다 들어 있습니다. 부디 이 말씀대로 순종하심으로 날마다 자기 인생의 집을 반석 위에 짓는 지혜로운 건축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옛날 황해도 재령에 있는 동부 교회에 정찬유라는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서 존경받는 훌륭한 장로님이셨습니다. 그는 학교 앞에서 작은 문방구점을 경영하면서 어렵게 살았습니다. 가난하게 살다 보니까 그는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말씀을 듣는 가운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내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십일조를 떼먹고 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내 형편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래도 배가 고프고, 저래도 배가 고프다면 차라리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배가 고픈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그때부터 그는 아예 굶을 각오를 하고서 십일조 생활을 철저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차츰차츰 그의 형편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그에게 물질의 복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느 정도 자금이 모였을 때, 그동안 하던 문방구점을 문을 닫고서 그 대신 건축자재 상회를 열었습니다. 때마침 건축 붐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서 자기가 살던 집을 신식으로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바람에 그는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황해도에서 몇째 가는 큰 갑부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기가 사는 허름한 집도 현대식으로 고쳐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당에 건축자재들을 잔뜩 쌓아놓았습니다. 그는 흐뭇한 심정으로 건축자재를 바라보던 순간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던가?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은 허름한 채로 내버려두고서 내가 내 집만 새롭게 고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새로 짓기 전에는 자기의 집을 절대로 고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는 즉시 그동안에 모아놓았던 모든 돈을 교회 건축헌금으로 바쳤습니다. 그 당시 돈으로 3만 환이었습니다.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20억에 이르는 큰 돈입니다. 교회는 그 돈으로 새로운 교회부지 3만평을 산기슭에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현대식 건물로 예배당을 아름답게 지었습니다. 교인들은 그의 귀한 뜻을 기르기 위해서 예배당의 머릿돌에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정찬유 장로 기념 예배당> 그런데 웬일인지 갑자기 정장로님의 모습이 교회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는 그 교회에 다니지 않고, 멀리 떨어진 다른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과 교인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부랴부랴 목사님과 교인들은 그의 집을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니 장로님, 왜 본 교회를 두시고 일부러 다른 교회에 출석하십니까? 무슨 섭섭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동부 교회에 출석한 것은 그 교회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교회의 주인이 바뀌어서 정찬유 장로가 지은 정찬유 개인의 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더 이상 사람이 주인으로 앉아있는 교회에는 다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조용히 돌아가 주십시오.” 그제야 목사님과 교인들은 그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즉시 예배당의 머릿돌에 있는 "정찬유 장로 기념 예배당"이라는 글씨를 지웠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그는 예전처럼 본 교회 출석을 하면서 더욱 충성을 다했다고 합니다.
정말 훌륭한 장로님입니다. 그리고 정말 지혜로운 분이셨습니다. 이렇게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분이 있는가 하면 또한 인생의 집을 모래 위에 짓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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