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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시작하라(1)
고귀한 목적을 위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자
2018년 7월 9일 / 대예배, 수요예배 / 디모데후서 2:20-26
딤후 2:20-26 / 부잣집에는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만이 아니라 나무와 진흙으로 만든 그릇도 있어서 값비싼 그릇은 손님을 접대하는 데 쓰이고 값싼 그릇은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데 쓰입니다. 21) 만일 그대가 죄를 멀리한다면 순금으로 만든 그릇, 곧 집안에서 가장 비싼 그릇이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장 고귀한 목적을 위해서 그대를 사용하실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22) ➊ 젊은 사람이 갖기 쉬운 욕정을 피하고, ➋ 늘 올바른 일을 하려 애쓰시오.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귀는 일을 기쁘게 여기시오. 23) ➌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어리석은 논쟁에 말려들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24) 하나님의 백성은 싸워서는 안 됩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는 부드럽게 인내를 가지고 가르치시오. 25) ➍ 진리를 거역하는 사람들을 가르칠 때는 겸손한 마음으로 대하시오. ➎ 만일 그대가 온유한 태도로 따뜻하게 가르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진리를 믿게 될 것입니다. 26) 이렇게 해서 마침내 정신을 차리게 되면 제멋대로 휘두르는 사단의 올무에 걸려 죄의 종이 된 사람들이 모두 거기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게 될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사람(교회), 하나님에 의한 사람(교회) 하나님을 위한 사람(교회)이 되라
1.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알프레드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노벨이 신문을 펼쳐드는 순간에 정말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 신문에 ‘죽음의 상인, 노벨이 죽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기 때문이다. 물론, 그 기사는 오보(誤報)였다. 사실은 그의 형 ‘루트비히 노벨’이 죽었는데, 프랑스의 한 신문 기자가 잘 못 알고 실수로 기사를 잘못 쓴 것이다. 하지만, 그 잘못된 기사가 노벨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노벨은 그 신문 기사로 인해서 큰 충격을 받았고, 그래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게 되었다. 노벨은 자신의 여생을 돈만 아는 장사꾼으로 마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유산의 94%인 440만 달러를 기부해서 노벨상을 제정했다. 신문의 오보로 노벨은 아직 살아있는 상태에서 ‘자신’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평가를 미리 접하게 되었고, 그 일로 그는 새 인생으로 거듭났다.
우리도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된다. 죽은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세상 사람들의 평가가 있게 마련이다. ‘내가 죽은 후에 사람들은 나를 어떤 평가를 할 것인가?’, ‘그 사람 잘 죽었다’, ‘아냐! 그 사람은 아까운 사람이야’ 우리 스스로 자신에 대한 중간평가를 해봐야 한다. 자신이 죽은 후에 과연 몇 사람이나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할는지? 조용히 한 번 생각해보자. ‘나는 누구인가?’ ‘나는 세상에 왜 존재하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 요한복음을 보면 특이한 현상을 목격하는데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귀히 쓰는 그릇이 되었다.
1장 : 생명의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요 1:12).
2장 :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듯 별 볼일 없는 사람일지라도 예수님은 귀한 그릇으로 만드신다. 보라! 물 떠온 하인들과 제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믿게 되었다.
3장 : 바리새파에 속한 니고데모라는 유대인 지도자요 이스라엘의 존경받는 선생에게 새롭게 다시 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시며 ‘내가 너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며 영에서 나온 것은 영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후일 공회에서 예수님을 정죄하려고 할 때에 니고데모는 동료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옹호하였다(요 7:50-53). 그뿐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 못 박혀 돌아가시자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함께 예수의 시체를 모셔다가 몰약과 침향을 섞어 만든 방부제를 100근 가량 가져 와서 유대인들의 장례 풍속대로 방부제를 바르고 길고 고운 베로 감아 장례를 치렀다.
4장 : 유대인이 아닌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그것이 그의 속에서 샘솟는 샘물이 되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할 것이다.’라고 하시며, 이어서 ‘여자여, 내 말을 믿어라. 여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온다. 예배는 어디서 드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드리느냐가 중요하다. 너희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 유대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예배를 드린다. 이는 구원이 유대 사람들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니 우리는 반드시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아버지께서 이런 예배를 우리에게 원하신다.’고 하셨다. 이에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가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와서 보세요. 나의 지난날을 낱낱이 알아맞히신 분이 계십니다. 와서 그분을 만나보세요.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닐까요?’ 그 동네의 수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분이 내 지난날의 일을 낱낱이 알아맞히셨다’는 그 여자의 말을 듣고 예수께서 메시아라고 믿게 되었다.
5장 : 베데스다 못을 방문하셨는데, 물가에 앉아 천사가 물을 동할 때에 먼저 들어가서 고침을 받으려 하는 사람들 중에 38년 동안 병을 앓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예수님은 그에게 ‘일어나 침구를 걷어들고서 걸어가라!’고 하시며 병을 고쳐주셨다. 얼마 후에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그를 만나 말씀하셨다. ‘이제 네가 나았으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더 심한 병으로 고생할 것이다.’ 그제야 그는 자기 병을 고쳐 주신 분이 예수인 것을 알고 유대인들에게 가서 사실대로 말하였다(요 5:15).
6장 :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약 2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배부르게 하신 후 다시 먹을 것을 위해 찾아온 그들에게 예수께서 여러 말씀을 해 주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아온 것은 내 이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먹을 것을 배불리 주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애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 애써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내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것은 내가 전에도 말한 대로 너희가 나를 보고도 믿지 않는 일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고 내가 그를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모두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안에 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능력으로 내가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내 능력으로 살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따랐던 많은 사람들조차 불평하면서 ‘이해하기에 너무 어려운 말씀만 하시는구나. 어느 누가 그 말뜻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단 말인가?’하며 예수를 떠나갔다. 그러나 시몬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말씀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은 주님뿐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8장 : 7계명을 범한 여인을 죄를 사해주시며 ‘너를 고발하던 자들은 어디 갔느냐? 그들 중에 너를 정죄한 사람이 하나도 없더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누구를 막론하고 말씀을 받아들여 거듭난 삶을 살아갈 것을 강조하셨던 것이다. 영접하는 이들을 영생과 더불어 성도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게 하셨다. 이 여인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여인은 자기에게 있었던 일을 간증하면서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였을 것이다.
실제로 여인을 비롯하여 저들 모두는 거듭난 삶을 살면서 복음 전파를 위해 애를 썼다. (간증하라 : 롬 10:9-10 / 만일 여러분이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주님이십니다.' 하고 고백하고 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속에 굳게 믿으면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믿을 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고 그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입으로 고백함으로써 확실하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쓰임 바 되는 사람이 되자 / ■ 많은 사람들이 미켈란젤로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지만, 보톨도 지오바니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보톨도 지오바니는 미켈란젤로의 선생이다. 미켈란젤로가 14살이 되었을 때 보톨도 선생님의 학생이 되기 위해 찾아갔다. 보톨도는 미켈란젤로의 특별한 재능을 보고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너는 위대한 조각가가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 미켈란젤로가 대답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기술을 더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톨도는 그에게 말했다. “네 기술만으로는 안 된다. 너는 네 기술을 무엇을 위하여 쓸 것인가 먼저 분명한 결정을 해야 된다.” 그리고 그 스승은 미켈란젤로를 데리고 나가서 두 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처음 구경시켜준 곳은 술집이었다. 미켈란젤로가 말했다. “선생님, 술집 입구에 아름다운 조각이 있네요.” 그러자 스승이 대답했다. “이 조각은 참 아름답지만 그러나 그 조각가는 술집을 위해서 자기의 재능을 사용했단다.” 그 스승은 다시 어린 미켈란젤로의 손을 잡고 큰 교회로 가서 아름다운 조각상을 보여주었다. 선생님이 물었다. “너는 이 아름다운 예배당에 있는 이 조각상이 마음에 드느냐? 아니면 저 술집 입구에 있는 조각상이 마음에 드느냐? 똑같은 조각이지만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또 하나는 술 마시는 사람들의 쾌락을 위해서 세워졌단다. 너는 네가 가진 기술과 재능을 무엇을 위해서 쓰기를 원하느냐?” 스승이 묻는 이 질문에 어린 미켈란젤로는 큰 도전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세 번씩이나 이렇게 크게 대답했다고 한다.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나의 재능을 쓰겠습니다!(For God, for God, for God I will use my skills!)” 이렇게 자기가 갖고 있는 재능을 하나님을 위해 쓰고자 다짐함으로 그는 역사에 위대한 조각과 그림을 남기는 예술가가 되었다. 미켈란젤로가 만든 위대한 작품 중에 ‘천지 창조’나 ‘최후의 만찬’ 같은 위대한 작품을 수도 없이 많이 남겼다. 지금도 조각이나 미술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들을 보며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 중요한 사실이 있다.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재능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사용하느냐에 따라 좋은 열매도 거둘 수 있고 나쁜 열매도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 미국의 정치가 벤저민 프랭클린이 필라델피아 시민들에게 무엇인가 작은 선한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아름다운 등을 하나 준비해서 집 앞에 선반을 만들고 그 위에 올려 두었다. 동네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등불은 집 안에 두어야 하는 데 왜 집 밖에 두는가? 그것은 기름낭비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자 사람들은 뭔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집 밖에 등불을 켜두니까 밤에 지나가는 사람이 넘어지지 않았고 멀리서도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좋게 여긴 사람들이 하나 둘씩 집 밖에 등불을 내달기 시작하자 길거리가 환하게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가로등의 시작이다. 만약 길거리에 가로등이 없다면 어떡했을까? 얼마나 캄캄하고 어둡겠는가? 세계적으로 가로등이 생기게 된 것은 벤저민 프랭클린이라는 한 사람이 주변 사람들을 위하여 집 밖에 등불을 둠으로 시작되었다. 한 사람의 선한 행동이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감화를 준 것이다.
마 5:14-16 /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즉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밤에 불을 밝혀 둔 언덕 위의 마을과 같다. 15) 등잔에 불을 밝히고 됫박으로 그 등잔을 덮어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방안을 환하게 밝히려면 누구나 그 등불을 등잔대 위에 얹어 놓지 않느냐? 16) 너희 빛을 가리지 말고 모든 사람들에게 환하게 비추어라. 모든 사람에게 착하게 행동하라. 그래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라.
사 60:1-3 / [새 예루살렘의 영광] 예루살렘아, 이제 일어나 환한 얼굴로 기뻐하며 네 얼굴에서 광채가 빛나게 살아라! 내가 네게로 다시 왔으니 네 빛은 바로 나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내 영광이 너를 환하게 비추어 태양과 같이 밝을 것이다. 2) 온 세상이 깜깜하여 세계 만민들이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지만, 너 시온산 꼭대기 위에서는 나 여호와의 빛이 환하게 밝아 오고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게서도 나의 영광이 환하게 빛을 발할 것이다. 3) 나의 영광이 네게서 밝게 빛날 때 세계 만민들이 그 빛을 보고 네게로 오며 세계의 왕들이 네게서 반사되는 빛을 보고 찾아와서 시온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 팔미도의 작은 등대 / 1950년 9월15일, 7만 5천의 병력과 261척의 함정이 자정에 인천에 상륙해서 완전히 패망하고, 인민군에 밀려 낙동강 전선까지 잃어버릴 위기에 한국을 살려낸 인천 상륙 작전에 대한 이야기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잊을 수가 없다. 괴뢰군에 밀려 낙동강까지 밀려 마산, 대구, 왜관, 포항을 잇는 낙동강 라인이 형성되어 전국이 함락되는 위기에서 많은 목사님들과 기독교인들이 부산과 제주도에 모여 기도를 했고 맥아더 장군은 인천 상륙 작전을 계획하게 되었다. 사실 인천은 조수 간만의 차가 세계에서 가장 심하여 노르망디 상륙작전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성공 확률이 거의 없는데다가 수로가 험하고, 암초가 많아서 그런 해안의 조건에다가 그것도 야간에 등대의 도움 없이는 상륙 작전을 엄두도 못 내는 절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인천 앞바다의 조그만 섬, 팔미도라는 작은 섬에 작은 등대 하나가 있었다. 넓이는 2m, 높이는 7.9m이다. 그런 등대의 불빛을 통해 지나다니는 모든 배들에게 암초와 방향들을 알려 주었다. 당시에 인민군 수중에 들어 가있고, 팔미도 등대의 불을 완전히 꺼버렸기 때문에 켜지지 않으면 상륙 작전은 밤에 감행할 수 없었다. 맥아더 장군은 7월에 Blue Hearts 작전을 세워 Chromite라는 이름 아래 한국인 세 명, 미국인 세 명을 특공대로 그 섬에 보냈다. 켈로 부대라고 하는 특수 부대가 최규봉 씨를 대장으로 해서 팔미도 섬을 탈환, 등대를 장악하게 하였다. 그들이 적과 싸워 등대를 점령하고 보니, 등대에 불을 켜는 반사경의 전선이 나사가 풀려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나사를 찾는데 3시간이 소요되었지만 등대를 고쳐서 불을 밝히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밖에 나가 철조망에 성조기를 게양했다. 팔미도를 애타게 바라보던 연합군 함대가 등대의 불빛을 본 것은 1시간 40분 늦은 오전 2시 20분이었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맥아더 장군은 등대의 불빛과 성조기를 확인하자, 인천 앞바다로 진격 명령을 내렸다. 7개국 연합군의 함대는 서슴없이 등대의 불빛을 받아가면서 위치를 확인하고, 인천 상륙 작전을 성공하였다. 9월 28일에 서울이 다시 수복이 되고, 대한민국이 살아나게 된 것이다. 만일 이 등대의 빛이 없었다면 상륙 작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최규봉 대장은 당시 게양했던 성조기를 뉴욕을 방문해서 맥아더 장군 가족에게 태극기가 그려진 함에 넣어서 기증하였다고 한다.
세상의 빛도 때로는 이렇게 중요하듯이 한 사람의 등불이 수많은 사람을 살리고, 한 작은 등대가 한 나라를 살리고, 한 작은 불빛이 수많은 전쟁을 이기게 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말이 아니라 빛 된 착한 행실이다. 형식적인 믿음과 예배를 떠나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주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자.
3. 이제부터라도 내 중심에서 적당히 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중심에서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 하자 / ‘적당히 사는 법’이란 책에서 저자 ‘고코로야 진노스케’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의 중심을 ‘타인’에서 ‘자신’으로 옮겨올 때, 중요해지는 것이 바로 ‘적당히’입니다. 이 ‘적당히’는 ‘목표를 정하지 않는다’, ‘남에게 폐를 끼친다’, ‘되는 대로 산다’라는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 ‘적당히 산다’는 말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자신의 기분이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적당히’라는 말대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적당히 사는 법’이다. 요리를 할 때 책에 적힌 그대로 따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 입맛에 딱 맞는 맛을 찾아낼 수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시선, 사회 규범에 따라 살기보다는 스스로 적당히 살다 보면 자신에게 딱 맞는 삶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적당히 산다’는 것은 자신에게 ‘딱 맞는 삶’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문제는 타락한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의 차이는 ‘누구를 중심으로 하고 있느냐?’이다. 타락한 아담은 자기를 중심으로 살려고 함으로 그의 후손들도 이기주의에 휩싸여 죄를 짓게 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고 하므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명분(名分)아래 살아간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적당히’라는 미명(美名) 아래 신앙생활을 게을리 할 뿐 아니라 자기중심으로 말씀까지 변경시켜 하나님 뜻대로 산다고 말한다.
例 :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듣기는 다 같이 듣고 다 거의 비슷하게 이해를 한다. 그리고 집에 가서 한 두 번 정도 복습도 한다. 시험 때가 되면 염려가 되어 몇 번 보고 시험을 본다. 그렇게 하는 것이 보통 학생들이 공부하는 스타일들이다. 그러나 B+이상이나 A를 받는 학생은 그 정도의 수준으로 공부를 하지 않고 학교 갔다 오면 바로 그날 수업시간에 배웠던 공부를 다시 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또 그렇게 한다. 그렇게 해서 전체 과정을 10번 이상을 공부를 하는데, 사실 처음에 5번 이상 읽는 것은 고역이다. 그러나 6-7번 정도 읽고 나서 8-10번 정도를 가게 되면 그 때부터는 눈으로 읽고 길 가다가도 머릿속에서 책장을 넘기고 또 생각을 하게 되고 그래서 배운 것과 실생활과 연관도 지어보게 된다. 그러면서 시험을 보게 되면 당연히 좋은 성적을 거둘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과 실패하는 사람들의 차이도 여기에서 난다고 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칠전팔기처럼 자기가 했던 일을 숙달되기까지 하고 그리고도 또 한다. 때로는 말할 수 없는 실패를 겪으면서도 또 하고 또 하고 그래도 또 하고 완전히 그 분야에 대해서는 도사가 되어버린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신앙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말씀과 기도인데, 말씀도 많이 알고 성경공부도 많이 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잘 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 상황에서 그 성경말씀을 머리로만 얕게 조금 알고 있기 때문에 성경지식이 행함으로 옮기지 않기에 막상 어려움이 부딪쳐 오면 믿음은 어디로 갔는지 긴 한 숨만 쉬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시 1:2-3 / 얼마나 복되랴! 여호와의 가르침을 기뻐하고 그 가르침을 밤낮으로 읽으며 늘 명상하는 이는. 3) 이런 이는 시냇가에 옮겨 심은 나무 같아서 철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는 나날이 푸르리니 하는 일마다 끊임없이 번창하리라.
▶ 기도도 마찬가지다. 대개 한두 번 건성으로 기도를 한다. 그러나 별 응답이 없는 것 같으니까 ‘하나님이 있기는 어디에 있어’하고 기도를 그만 둔다. 그렇게 하다 보니 응답은커녕 오히려 조금 있는 믿음마저 식어버린다. 신앙생활에서는 다윗처럼 하나님께 우리의 사정을 아뢰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것이 핵심이다. 매사에 응답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말씀을 적당히 읽고, 기도도 적당히 하면서 하나님과의 교감이 없이 살아간다면 종교생활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기 위해서는 다윗처럼 말씀은 깊이 묵상하고,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과부처럼 자기의 힘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 나와 간구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저마다 다 있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고난을 주실까? 그것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와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려고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대부분 등 따습고, 배부르면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감당할 수 없는 시련과 불가능의 장벽을 주시는 것이다.
누가복음 18장을 보라.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 자기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재판장에게 나와서 억울한 일을 해결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재판장은 못된 사람이라 그 간청을 들은 척 만척한다. 그럴지라도 과부는 억울하기 때문에 재판장을 계속 찾아와서 주야로 간청하였다. 재판관은 오랫동안 그 말을 무시해 왔으나 귀찮아 견딜 수 없어 ‘이 여자가 나를 이렇게 성가시게구니 그의 소원대로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나를 찾아와서 견디지 못하게 할 테니까.’라고 하면서 과부의 청을 들어주었다. 예수님은 ‘비록 악한 재판관이라도 이처럼 들어주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으로 간구하는 그의 백성에게 공정한 판결을 해주시지 않겠느냐?’라고 안타까워하시면서 ‘그러나 인자가 다시 돌아올 때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과연 몇 명이나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구나!’라고 하셨다.
기도는 수시로 끊임없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개 몇 번 해보다가 안 되면 그만둔다. 사탄이 사용하는 2가지 무기가 있는데, ➊ 앞으로 넘어뜨리는 것으로 ‘즉 네가 최고야, 참 잘한다.’라고 해서 교만하게 해서 앞으로 덤벙거리며 나가다가 넘어지게 하는 것이고, ➋ 뒤로 넘어지게 하는 방법이 있는데 낙심하게 하여 넘어뜨리게 한다. 대개의 사람들이 이 낙심의 병에 걸려서 신앙생활을 포기한다.
결론으로 누가복음 11:15-13을 묵상하자
눅 11:5-13 / 예수께서는 기도에 대한 것을 더 많이 가르쳐 주시면서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에게 친구가 있다고 가정하자. 한밤중에 그 친구에게 가서 ‘여보게, 떡 세 덩이만 꾸어 주게. 친구가 여행 중에 우리 집을 찾아왔는데 먹으라고 내놓을 것이 없어 왔네’ 하고 말하면 7) 그 친구는 침실에서 큰소리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제발 나를 귀찮게 하지 말게. 문은 이미 다 잠가 놓았고 우리는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네. 그러니 지금은 자네에게 어떻게 해줄 수 없네.’ 8) 그러나 내 말을 잘 들으라. 그가 친구라는 이유로는 일어나서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그가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면 그 간곡히 조르는 것 때문에 일어나 그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9) 기도도 이와 같다. 구하라, 주실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어주실 것이다. 10)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아버지된 사람으로 아들이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겠느냐? 12) 아들이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비록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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