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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사는 사람들
로마서 1:16-17
2025.0302
새빛교회 주일예배
서론
종교개혁자들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라는 롬 1:17의 말씀을 붙들고 그들의 개혁 사상과 개혁신앙, 그리고 개혁운동을 펼쳐 나갔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그들의 생명을 바쳐가며 사람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세상을 살려 나가는 역사를 이룬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음미하고 우리도 개혁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 시대에 바른 삶을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개역성경에 “오직”이라는 말이 들어있는 데 헬라어 원문에는 없는 단어입니다.
아마도 역자는 우리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붙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의인이라는 말은 보편적으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신자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우리 신자들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은 우리 신자들의 신앙과 삶에 대한 가르침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자들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이며,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신자는 무엇을 믿습니까? 우리 신자들은 믿음에 대해서 배우고 알아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과연 우리는 매일 매일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경과 신학과 교리와 신앙의 대 전제는 바로 창세기 1:1에 기록된 바와 같이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은 태초에 하나님이 스스로 계셨고, 그 하나님께서 세상의 만물을 다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의 사고의 틀 가운데서, 나의 신앙의 시작에 있어서 이것을 전제하지 않으면 우리는 기독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지혜로 이 세상을 기획하시고, 그의 권능으로 창조하시고, 그의 사랑으로 그가 창조하신 만물을 섭리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주관하십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하나님으로 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손을 거쳐,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로마서 11:36에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믿는 것입니다.
나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가 대학을 다닐 때, 최희준이 불러 히트를 쳤던 노래, “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를 많이 불렀다. 유행가 가락이지만 나의 인생을 생각하게 하고,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철학적인 노래 가락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 쯤은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 가를 생각해보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답은 성경 밖에 분명하게 말하는 곳이 없다. 하나님께서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그 사이의 내 인생도 하나님께서 Control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활동을 믿는 것습니다.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나를 지켜 보시는 분이십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룻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한 인간의 인생을 어떻게 주관하시고 이끌어 가시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룻이라는 한 모압 여자를 그리스도의 족보 가운데 넣기 위해서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게 하시고, 나오미를 베들레헴을 떠나 양식이 풍족한 모압 땅으로 이민 가게 하시나, 그는 그곳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게 하신다. 세 과부가 남게 된 상황에서 나오미는 결국 작은 며느리, 룻이라는 모압 여자 하나를 데리고 귀향하지만, 고향의 생활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보아스라는 베들레헴의 유력한 인사를 만나게 하신다. 그리고 나오미는 당시의 법대로 며느리 룻과 함께 보아스라는 친족의 아내가 되어 오벳을 낳는 데, 다윗과 그리스도는 바로 오벳의 후손입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얼마나 섬세하고 정확하게 설계하시고 인도하시는 가를 알게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은사와 그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9)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메타멜레토스”(άμεταμέλητος)라는 말은 영어 irrevocable로 번역하고 있는 데, 이는 “돌이킬 수 없다” “후회가 없다” “실패가 없다” God never fails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빈틈없이 우리의 인생을 설계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내 인생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하나님께서 건축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건축하시는 내 인생은 결코 하자나 부실 공사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creation and providence)를 믿어야 합니다. 그의 지혜로운 창조와 능력의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인생을 두려워 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관적이나 지나치게 낙관적 이어서도 안됩니다.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개인의 인생 뿐만 아니라 한 나라와 세계의 역사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 가운데 선지서를 보면 하나님은 열방을 통치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나라를 세우시기고 하고, 한 나라를 불러 다른 나라를 징치하는 도구로도 쓰시고, 한 나라를 아예 멸망시키시는 일도 하십니다. 한 나라에 흉년도 주시고, 풍년도 주십니다.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그것을 유지, 관리하시는 일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사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근심과 걱정이 떠나질 않습니다. 한국은 어떻게 되는 것이며, 북한, 우크라이나, 유럽, 러시아, 그리고 남미나 아프리카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염려가 떠나질 않습니다. 나야 80년 살았으니 그렇다치고 우리 후대는 어떻게 되나? 이런 생각 안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나라의 흥망성쇠, 한 인간의 생사화복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재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지혜로 세상 만사를 기획하시고, 실행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우리가 죄인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왜 죄인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시에 만들어 놓은 언약적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아담을 머리로 하는 언약적 연대성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언약적 저주를 받음으로 그의 연대성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죄인이 되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이게 된 것입니다(롬 3:9, 20, 22). 하나님께서는 그가 창조한 모든 것들을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는데 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 때문에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벌을 받고, 죽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워 이들을 살리는 길을 모색하신 것입니다(롬 3:22). 하나님께서는 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들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받는 것입니다(롬 3:21-26). 그런데 하나님은 의로우셔서 죄인들의 죄 값을 치르게 하시는 분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죄값을 누가 어떻게 치러야 하는 것입니까?
첫째, 죄값은 죄 지은 죄인 자신이 치러야 하는 데, 이경우는 모든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이 죽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둘째는 누군가 대신 죄 값을 치뤄줘야 합니다. 그러나 대신 죄 값을 치뤄준다는 말은 죄가 없는 사람이나 피조물이 죄인들의 죄를 지고 대신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모두 아담과의 언약적 연대성 때문에 다 죄인입니다. 그래서 피조물은 아무도 죄를 대속할 수 없습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새 아담을 창조하여 그가 아담과 그의 언약적 연대성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을 위한 속죄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경우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죄를 지을 때마다 아담을 새로 창조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계속 죄를 짓고, 하나님은 그 때마다 새로 새 아담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죄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넷째는 하나님 자신이 차라리 아담의 속죄자가 되는 것이다. 이 경우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사람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유혹한 뱀, 곧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할 자로 “여자의 후손”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는 사단을 물리칠 수 있는 영적 권세를 가진 반면, 여자에게서 낳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성과 인간의 인성을 겸하여 가진 존재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반드시 다시 부활해야 합니다. 그래야 속죄가 증명되고, 그가 창조한 모든 피조물이 사단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이 대신 죄 값을 치르기로 작정하시고, 그의 아들을 보내어 우리 죄인들의 죄 값을 치르도록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함으로 신성과 인성을 가진 존재이며, 그는 아담의 언약적 연대성 안에 들지 않기 때문에 죄가 없고, 그래서 인간의 대속자로서의 자격을 갖춘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는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심으로 새아담으로서 증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새 아담이기 때문에 그는 만물 위에 뛰어난 하나님의 통치자, 대리자 왕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건설하는 새 언약의 대표자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속죄 와 부활, 그리스도의 새 하늘과 새 땅의 통치자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사이 젊은이들이 생각한 것과 같은 오빠나 형이 아닙다.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를 우리의 구속주이시오, 왕이시요,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때, 우리는 새 아담이신 그가 이루시는 나라의 새 백성이 되는 것이요,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 생명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를 새로운 인격체로서 변화되고, 성장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께서 나의 주요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행2;36).
3. 우리는 그가 만드신 그의 형상임을 믿습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바울은 에베소 2:10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는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시어 우리로 그것들 가운데 행하게 하려는 것이다.” (바른성경)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개역성경)
개역성경 더 표현이 중후하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체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물, 그래서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3:4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손마른 자를 고치실 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목숨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옳으냐?”고 물으시며, 그 손 마른 자를 고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과 살리는 것을, 악을 행하는 것과 선을 행하는 것으로 병행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악이고, 사람을 살리는 것이 선이라는 말씀입니다. 선이란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의 선한 일, 하나님의 선한 일은 살리는 일입니다. 사람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학교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일이 다 선한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가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하나님께서 전에 예비하셨다는 것입니다. 즉흥적을 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 안에서 선할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전에 예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우리가 낳기 전에, 바로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세우실 때부터 우리를 그의 계획 가운데 두시고, 모든 일을 예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 잠깐 바람처럼 왔다가 속절없이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 아닙니다. 창세 때부터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존재하고, 이 땅에 와서 선한 일을 하고,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야 할 하나님의 특별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사화복의 삶, 그 자체가 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섭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뜻대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 복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이 자기 원대로, 자기 뜻대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내가 알 수 없는 인생을 삽니다. 내가 생각지도 못하게 좋은 일을 만날 때도 있지만, 뜻밖에 내가 원치 않는 일이 나를 괴롭히고, 인생을 혼란 가운데로 몰아넣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나 놓고 보면 다 하나님의 뜻이 그렇게 이루어졌구나 하고 내 인생을 긍정할 수 있고 하나님을 긍정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인생을 궁극적으로 선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좋다고 날 뛸 일도 아니고, 지나치게 좌절하고 절망해서는 더욱 안 됩니다. 오히려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이 내 안에서, 나를 통해서 이루어 지도록 조용히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되돌이킬 수 없습니다. 실패가 없습니다. 실패는 내가 고집부리고, 불순종하여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 아담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그의 형상을 따라 새롭게 만드시고, 우리 인생을 인도하신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이것을 믿을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대하여 긍정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나를 예비하시고 이 세상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보내셨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할 마음이 생기고, 우리 부모에 대해서 더욱 감사해지고, 세상에 대하여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행복이란 자신에 대해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때 느끼는 충만함 입니다.
결론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예비하신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구별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