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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하고 축복하라(2) ○○
원수를 제대로 용서하는 방법은, 원수를 용서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축복까지 해주는 것이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 6:28).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19-21)
많은 사람들은 “원수를 용서하기도 힘든데 축복까지 하라니”라면서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수를 용서하고 축복할 때, 일차적으로 가장 큰 혜택을 입는 자는 용서하는 바로 그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보상 심리가 있다. "내 원수의 빚은 공짜로 탕감해 주면 내가 받을 빚은 누가 갚아주는가? 내 원수를 누가 갚아 줄 것인가?"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하나님이 갚아주신다고 말씀하신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 19:17).
형제가 지은 죄는 빚이란 사실을 기억하는가? 어떤 형제가 나를 해코지 했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빚을 진 것이다.
만일 내가 그 빚을 탕감해 주면 누군가가 나에게 그 빚을 갚아 주어야 한다. 내가 남에게 돈을 빌려주었을 경우, 채무자가 돈을 갚는 것이 당연하지만 누군가가 나타나서 '내가 채무자 대신에 당신에게 돈을 갚겠소'라고 한다면 채권자인 나는 당연히 반길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에게 죄 지은 형제의 죄 값을 탕감하고 난 후 나는 하나님께 죄 값을 청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것은 상징적인 표현이고 실제로는 주님이 나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 주시고 기쁨과 평강을 주신다는 말이다.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병은 이 세상의 어떤 약(藥)으로도 치료할 수 없다. 미워할수록 내 가슴에 굵은 대못을 망치로 쾅, 쾅 박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것을 치료하는 약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신약의 가르침, 원수를 용서하고 축복하는 일이다. 내가 원수를 용서하고 축복할 때 나를 괴롭히던 증오의 가시가 뽑히고 내 심령에 평강과 안식이 임한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 용서와 축복의 기도
실제로 다음과 같이 하면 좋다.
“주님, 저의 원수를 용서하고 축복합니다.
그의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게 해주옵소서.”
물론 성경에는 축복을 구체적으로 하는 구절들이 있다. 제사장의 축복기도(민 6:22-27), 야베스의 축복 기도(대상 4:10) 등이 있으나 요삼 2절의 축복 기도가 간단하면서도 영혼육의 전체적 축복이 포함되어 있고 암기하기도 쉽다.
○ 용서하지 않았을 때 받는 불이익들
형제 자매를 제대로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불이익이 있을까? 그 반대는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자신이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지 못한다(마 6:14-15; 막 11:25; 롬 12:19-21; 요 20:23).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막 11:25).
성경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죄 지은 형제에게 스스로 원수 갚겠다고 하는 것은 월권 행위이다. 한때 모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건드린 월권행위를 했다 해서 해임된 적이 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의 고유 권한이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 12:19).
세상의 국가에서도 폭행을 가한 가해자를 개인적으로 보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범법자를 처벌하는 것은 국가의 고유 권한이다. 세상에서 누가 나를 해코지했다고 해서 가해자를 해치면 똑같은 죄인 취급 받는다.
하나님의 법도 마찬가지이다. 누가 나를 해코지했을 때 즉시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할 때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괴롭히는 '옥졸들'에게 붙이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원수에 대해 취할 행동은, 첫째 그를 위해 기도하고, 둘째 그를 선대하여 축복하는 일이다(눅 6:28; 롬 12:20-21; 벧전 3:8-9).
원수가 잘못 되는 것을 보고 고소하게 생각하면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용서하지 않은 사람에게 임한다.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 아니하사 그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잠 24:17-18).
많은 사람들은 원리는 이해하지만 도대체 원수를 용서할 기분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원수를 용서하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다. 말씀에 대한 순종은 내 기분에 따라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성경 말씀에 순종하여 용서하겠다는 의지를 발동하여 용서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따라온다. 기분에 속지 말라.
화란의 코리 덴 붐은 2차 대전 당시에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온갖 고통과 수모를 당했다. 전쟁이 끝났을 때, 화란 사람들은 정작 독일군보다는 자신의 동족을 적군에게 밀고한 배신자들을 더 미워했다. 코리 덴 붐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유럽 각국을 다니면서 용서와 화해의 복음을 전했다.
어느 날 그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용서와 화해의 복음을 전했다. 집회가 끝나고 참석자와 인사를 할 때 그녀 앞에는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웃음을 머금은 채 손을 내밀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용서해야 한다"라면서 악수를 청했다.
그 사람은 바로 강제수용소에서 코리 덴 붐에게 온갖 몹쓸 짓을 자행한 수용소장이었다. 코리 덴 붐의 몸이 갑자기 얼어붙었다. 도저히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이런 짐승을 용서하다니."
그러나 용서의 전도자가 용서를 못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녀는 하나님께 용서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그 사람과 악수했을 때 그녀의 마음에는 실제로 용서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도 용서하기가 힘들면 하나님께 처분을 맡겨야 한다. 하나님의 처분에 맡길 때에도 사적인 감정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에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내가 원수를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괴롭힌다. 내 마음속에 앙심을 품고 있으면 그 화살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날아간다.
자기 남편을 심하게 괴롭힌 남자를 미워하는 어떤 자매가 있었다. 그 자매는 그 원수에 대해 말하면서 얼굴이 굳어 있었다. 아무리 용서에 대한 성경 말씀을 들이대어도 표정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도저히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결심이 대단했다.
그러나 '만일 자매님이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그 증오의 화살이 가장 사랑하는 남편이나 자녀들에게 날아간다'고 말해주었더니 그제야 깨달은즉 표정이 부드럽게 펴졌다.
이것은 마치 종로에서 뺨 맡고 한강에서 눈물 흘리는 것과 같다. 우리 속에 있는 증오라는 동물은 어디서 당했는지 개의치 않고 자극을 받으면 바로 주변의 사랑해야 할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한다는 사실이다. 마음속에 많은 상처를 지닌 사람의 부부 생활이나 인간 관계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셋째 영, 혼, 육의 고통을 당한다(롬 2:9-10; 8:6; 사 48:22; 57:21).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롬 2:9-1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사 48:22).
마음의 고통은 용서 못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들이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원수가 아니라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이다.
루이스 스미디즈는, 용서할 때 가장 많은 혜택을 받는 사람은 원수가 아니라 바로 용서하는 사람 자신이라고 말했다.
넷째 기도 응답이 막힌다(잠 28:9; 시 67:18; 잠 15:8; 21:13; 사 1:15-16; 59:1-2).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 28:9).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 59:1-2).
왜 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가? 내 속에 용서 못한 죄악이 도사려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하나님이 예물을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마 5:23-25; 호 6:6; 암 5:21; 사1:11-18).
"22.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 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마 5:23-25).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 1:13).
마지막으로 마귀의 계책에 놀아난다(고후 2:10-11; 엡 4:26-27).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계책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고후 2:10-11).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 4:26-27).
죄 지은 형제나 자매를 제 때―해가 지도록 즉 하루가 지나기 전―에 용서하지 않으면 마귀에게 공격할 발판(foothold)을 제공하여,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통해, 분노. 증오, 배신감, 죽음과 자살의 영이 역사하여 이후에 용서하는 것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이런 경우, 가누지 못하는 분노와 증오를 타고 악령들이 틈탄 경우가 많아서 용서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런 때는 전문 치유사역자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 누구를 용서할 것인가?
우리는 용서라고 하면 얼른 나에게 죄 지은 사람만을 용서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나에게 죄 지은 형제는 물론 본인 자신도 용서해야 한다.
- 다른 사람들
나에게 고통과 상처를 준 모든 사람들을 말한다. 우리가 가장 열심히 노력하여 용서해야 할 대상들이다.
• 부모 형제,
• 배우자, 자녀 및 가족들
• 직장이나 교회의 상사나 동료들
• 기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
당신을 힘들고 고통스럽게 한 원수를 나열하고, 그들을 용서하고 축복하라.
-본인 자신
자신이 죄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연민의 정과 함께 피해자가 된 그 사실을 증오하여 자신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완벽주의, 율법주의, 부당한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이다. 이런 사람은 그리스도의 피 공로에 의지하여 자신마저 용서하고 축복할 필요가 있다.
당신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일이 있는가? 당신의 잘못을 용서하고 축복하라.
○ 어떻게 용서할 것인가?
용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표현이다. 신자는 누구나 죄 지은 형제를 용서할 권세가 있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 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 20:23).
그러므로 용서는 직설적으로 해야 한다. 즉 "하나님 아버지 저는_____죄를 지은 _____를 용서합니다"라고 해야 한다. "하나님 저는_____를 용서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제가 ____를 용서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라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어떤 사람은 용서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여 용서하다 보면 그 사람을 용서할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진정 용서하면 그 사람이 불쌍히 여겨져서 그 사람의 죄를 대신 회개할 수도 있게 된다.
또 어떤 사람은 용서는 되지만 축복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말씀에 순종하여 실제로 축복하다 보면, 그 사람이 불쌍히 여겨지고 그 사람의 영혼이 귀한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이 땅에서 용서할 때(풀 때), 땅에서 매인 것이 하늘에서도 풀어진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8:18).
또한 가능하면 가해자 본인에게 직접 용서하면 좋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가해자의 사망, 원거리에 거주, 행방불명 등―으로 가해자를 직접 용서하기 힘들거나, 가해자가 아직 용서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그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 필요하다.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은,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는 죄는 일차적으로 법의 제정자인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유의할 사실은 마음으로 지은 죄는 하나님께만 용서를 구할 것이며, 성적인 죄를 배우자에게 미주알고주알 자세히 고백하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
○ 진정 용서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가벼운 상처의 경우는 쉽게 용서하고 잊어버릴 수 있지만, 깊은 상처나 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된 상처를 제대로 용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용서한 것 같은데, 환경이 힘들거나 외부의 자극이 있으면 또 다시 생각나서 괴로울 때가 있다.
이럴 때는 계속 용서하고 축복하는 수밖에 없다. 생각날 때마다 계속 하노라면 점차적으로 상처의 아픔이 약화된다. 또한, 육신에 상처의 아문 자국이 있어 과거의 상처를 회상시키기는 하지만 아픔은 주지 않듯, 상처의 기억은 나지만 마음에 별로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용서하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람에 대한 증오의 마음은 사라지고 그 사람이 불쌍하게 보이기도 한다. 이전에는 나의 상처만을 기억했지만 상처를 준 그 사람의 처지가 불쌍하게 보인다는 말이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그 마음을 주신 것이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 . "(엡 4:32).
이런 마음이 들 때, 원수의 치유되지 않은 상처, 원수의 잘못된 성격을 위해 중보기도할 수 있게 된다.
“주님, 그 사람의 ______죄를 대신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시옵고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씻어주시옵소서!”
그러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더욱더 원수에 대해 자비와 긍휼의 마음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원수가 잘 되면 배가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같이 기뻐하게 된다. 혹시라도 원수가 잘못되었을 때, “그것 봐라, 고소하다”라고 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 아니하사 그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잠 24:17-18).
이렇게 하노라면 내가 변화된 될 뿐만 아니라 내 마음이 치유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원수도 변화시켜 주시고 원수와 화목하게 해주시기도 한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 16:7).
이렇게, 원수를 용서하고 축복하며, 더 나아가서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대신 회개하고, 그 사람이 잘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으로 기뻐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진정 용서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심령의 기쁨과 평강과 안식을 누릴 수 있다.
한편, 어떤 사람이 나에게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나 보다 좀 잘난 사람이라면 우리는 죄성에 의해 습관적으로 그 사람에 대해 수군거리고 비방하거나 트집을 잡아서 자기도 모르게 죄를 쌓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는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그를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그의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게 해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그 사람에 대한 생각 마저 사라지고 마음의 평정을 찾는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 6:28).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고후 2:10-11).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