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연수행은 지금까지 인간중심적 종교 수행을 떠나서, 훨씬 넘어서 한울=우주 중심의 수행을 말합니다. 우주 운행의 법칙을 따라서 살아가는 수행을 말합니다. 수행은 우주 운행을 따름이요 다함이 되어야 합니다.
우주 운행의 길을 따르고 다함으로 인간중심의 길에서 벗어나 우주 운행의 길 그 자체가 됨을 말합니다. 20세기까지 인간중심적 종교의 틀 꼴 정신 설법 설교 강의 강론 설명 일체를 내던져 버리고 새롭게 '나'를 한울=우주로 살아감이야말로 21세기 자연수행=한몸짓기살림살이입니다. 우주=한울중심적 제물(자연)살림살이를 새로운 인간의 탄생으로 그 획을 잡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땅=흙을 좋아함은 나 또한 땅=흙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나는 땅이고 흙입니다. 땅=흙은 어머니이고 어머니의 살입니다.
내가 어머니에게서 나왔음은 바로 땅에서 나왔다는 뜻입니다.
땅=흙을 다 알지 못하는 나를 다 알 수 없습니다. 나는 하늘이고 땅이고 사람다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21세기 자연수행의 길은 바로 제물살림살이의 길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하늘의 아들, 딸입니다. 땅=흙에서 나왔습니다. 땅의 아들, 딸입니다. 사람(아버지+어머니)에게서 나왔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아들,딸입니다.
내가 비를 좋아함은 내가 물이기 때문입니다. 비로부터 배워야 하는, 드디어는 비가 되는, 비로 내려서 마른 땅=흙을 촉촉하게 물기 나는 땅으로, 흙으로 지어서 씨알에게거 새싹을 트게 하는, 뿌리 내리게 하는, 떡잎으로 싹트게 움트게 눈 나게 하여, 줄기 가지 잎 퍼지게, 꽃으로 피어나게, 열매를 영들어가게 하는 비가 되어서 골짜기 물로 흘러내려서, 시냇-물에서 가람으로, 바다로 넘치게 하는 한울의 일을 배워야 합니다. 나는 물에서 태어난 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빛을 좋아함은 내가 빛이기 때문입니다. 아침햇빛, 한낮의 햇빛, 저녁햇빛으로 붉어지는, 새벽녘으로 붉게 타오르는 빛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아침해를 좋아함은 나는 빛의 아들이고, 빛의 딸들=빛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늘모심은 잴 수 없는 높이, 잴 수 없는 넓이 그들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바로 하늘의 아들이요 딸, 하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입니다. 하늘사람=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늘마니(마니는 사람)입니다.
내가 땅=흙을 좋아함은 나 또한 땅=흙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나는 땅이고 흙입니다. 땅=흙은 어머니이고 어머니의 살입니다. 내가 어머니에게서 나왔음은 바로 땅=흙에서 나왔다는 뜻입니다. 땅=흙을 알지 못하고 나를 다 알 수 없습니다. 나는 하늘이고 땅이고 사람다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21세기 자연수행의 길은 바로 제물살림살이의 길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하늘의 아들 딸입니다. 사람에게서 왔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아들 딸입니다.
21세기 자연수행의 길-나의 갈길 다가도록은 내가 하늘에서 왔으니 하늘의 뜻따라, 하늘의 얼따라 살아가는 살림살이를 말합니다. 내가 땅 흙에서 왔으니 땅 흙의 꼴대로, 틀대로 살아가는 살림살이를 말합니다.
모든 종교의 경전이나 교리-설교-설법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석가족의 사람인 고타마 싯타르타에 앞선 셀 수 없이 많은 부처의 길을 따름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조로아스터교, 이슬람교, 유태교, 힌두교, 기독교, 동학인 천도교나 무엇으로도 다 드러낼 수 없는 종교의경전, 교리, 설법, 설교는 하늘의 뜻대로 땅 흙의 꼴 틀대로 사람다운 사람의 사람으로 넘치는 살림살이대로 살아가자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모든 종교는 경전, 성서, 불법,설교, 교리는 자연의 몸인 '나'라는 교과서를 설명=풀이하고자 하는 참고서에 불과합니다.
경전이나 교리, 설법, 설교는 어디까지나 그 시대의 반영으로서 어쩌면 편견이거나 고집, 아집일 수 있습니다. 종교적 배타성은 역사적으로 하늘과 땅, 사람들에게 엄청난 악폐를 끼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자연은 한울의 뜻을 드러내는 한울살림살이의 본보기입니다. 자연의 살림살이를 통해서 한울의 길을 걸어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자연은 하늘의 뜻의 반영으로서 천연(天然)이라고도 합니다. 땅의 뜻의 반영으로서 지연(地然)이라고도 합니다. 사람다운 사람의 뜻을 반영하는 말로는 인연(人然)이라고도 합니다.
21세기 자연수행은 산과 바다, 벌레와 짐승, 풀과 나무, 그들과 함께 사랑과 고른삶(평화)넘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살림살이입니다. 모든 풀꽃이 아름답게 피어나듯이 우리 모두가(제가 그토록 바라는 그 누리 안에서) 함께 보듬어주며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21세기 자연수행은 어떤 특별한 경전이 없습니다. 흙이 경전이고, 빛이 경전이며, 물이 경전입니다. 비 바람 눈 이슬 서리 풀과 나무, 벌레와 짐승 등등이 모든 것들이 살아 있는 경전입니다. 그 경전을 "살아 있는 몸의 말씀-몸인 경전-하늘말씀"이라고 합니다. 몸이 바로 경전입니다. 몸이 아프면 아프지 않게 하라...가 하늘말씀입니다. "슬프면 슬프지 않게 하라, 괴로우면 괴롭지 않게, 배고프면 배고프지 않게 하라, 일거리 없으면 일거리 마련해주라"가 몸인 경전-말씀-성서(성경)입니다. "배 아프면 배 아프지 않게 하는 것"이 한울말씀 경전입니다.
자연수행은 비우는 일입니다. 넘치는 것을...
자연수행은 채우는 일입니다. 덜 차있는 것을...
빈 그리움을 불리는 일입니다. 채우는 일입니다.
빈 사랑을 불리는 일입니다. 채우는 일입니다.
밥을 먹음으로 빈 배를 채우는 일입니다.
밥을 비워서 찬 배를 채우는 일입니다.
알맞게 살아가는 일입니다. 자연수행은 더/덜없이 텅 빈 넉넉함으로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게, 더도 없고 덜도 없는, 가운데 자리야말로 텅 빈 넉넉함의 자리입니다. 치우침 없는 살림살이를 뜻합니다.
자연수행은 지구가 돌아가듯이, 해가 돌아가듯이 우주의 운행에 따라서 어는 곳으로도 치우침 없는 운행=살아감=살림살이를 뜻합니다. 길을 닦다...닦아감입니다. 울퉁불퉁하지 않게 길을 치다, 치워감입니다. 고르게 꼭 알맞게, 더/덜 없는 살림살이(中正之道)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21세기 자연수행입니다.
1)다사랑함이니(1)
어느 길을 가든지
어떻게 피어나든지
어떤 꼴로 영글어가든지
다사랑함입니다.
가든지
오든지
있든지 없든지
나름대로 살아가옴이
다사랑함입니다.
살아 있든지
죽어 갔든지
이제 여기에서 함께
숨 쉬고 있음을 외롬 넘어서 아픔 넘어서 괴롬 넘어서
다 사랑함입니다.
타는 그리운 사랑입니다.
이 한목숨 다 함으로
살앙입니다.
'살'은 살다 살리다
'앙'은 너 나 우리 함께...
사랑이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나도 잘 살고
다른 사람도 잘 살게 하시는
제물=한울=우주라 합니다.
사랑은 사람되는 몸짓이고 몸일입니다.
잘 살리지 못한 사랑은 쪽진 사랑입니다.
잘 살지 못한 사랑은 쪽진 사랑입니다.
사랑은 온짝짓기입니다. 한울짓기 한몸짓기입니다.
한울짝짓기입니다. 한몸짓기살림살이입니다.
사랑은 온사람됨의 바탕입니다.
사랑함으로 온사람을 낳기 때문입니다.
짝짓기 없음은 사랑없음입니다.
사랑없음은 새로운 목숨=아기 없음입니다.
사람이란 하늘삶을 살면서 하늘의 것을 먹고 하늘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따앙삶을 살면서 따앙의 것을 먹고 따앙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2)다사랑함이니(2)
다사랑함으로
텅 빈 넉넉함을로
다 가게 합니다.
다 오게 합니다.
다 줌으로 다 받음으로
한몸을 짓습니다.
한울을 다룹니다.
우주가 됩니다.
다가옴 다가감은
다 잘 살고 다 잘 살리는 다 잘 살 길입니다.
온달길입니다. 바보의 길입니다.
'빛의 나라만을 바라보다'의 삶입니다.
텅 빈 넉넉함으로
아! 사랑의 깊이는 높이는 그 넓이는...
다사함 김명식의 따뜻한 혁명, 자연수행의 길 <텅 빈 넉넉함으로 > , 제5부 '자연수행의 길 :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중에서)
첫댓글 보이는 모든 것이 경전, 이 부분은 쉽게 이해가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