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척화비(온양.신창) (순례지/성지)
주소: 충남 아산시 신창면 서부남로840번길 26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와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에서 승리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척화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해 1871년 6월 12일(음 4월 25일) 서울의 종로와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 길이 4자 5치, 너비 1자 5치, 두께 8치 5푼이고, 재료는 화강암이다.
비문에는 큰 글씨로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서양 오랑케가 침범하여 싸우지 않으면 화친해야 하는데,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작은 글씨로 ‘戒吾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우리의 자손만대에 경계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라고 씌어 있다. 이 척화비를 건립하고 나서 흥선대원군은 6월 20일 미 군함과의 접촉을 시도했던 이승훈(李承薰)의 증손자 이연구(李連龜) · 이균구(李筠龜)형제를 인천에서 참수하고 이어 7월 16일 미 군함과 접촉했던 우윤집(禹允集) · 최순복(崔順福) · 박상손(朴尙孫) 등의 천주교인을 강화의 갑곶(甲串)에서 참수했으며 이후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더욱 강화하였다.
그러나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 후 흥선대원군이 청국으로 납치되자 종로에 세워졌던 척화비는 일본 공사의 요청으로 철거되어 보신각 부근에 파묻혔다가 1915년 발굴되어 경북궁으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울 이외에 강화 · 동래 · 함양 · 부산 · 경주 등지에도 서울의 것과 같은 척화비들이 1920년대까지 남아 있었으나 현재는 그 흔적마저 남아 있지 않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
1. 아산 신창, 척화비
신창 척화비(新昌 斥和碑)는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읍내리에 있는척화비이다. 1984년 5월 17일충청남도의 문화재자료 제236호로 지정되었다.
신창초등학교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이 비는 높직한 사각받침 위로 비몸을 세운 모습이다. 비문에는 “서양오랑캐가 침범함에 싸우지 않으면 화의인데,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강한 경고 문구가 쓰여 있다.
현지 안내문: 척화비는 병인양요(丙寅洋擾)와 신미양요(辛未洋擾)를 겪은 후,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하여 대원군(大院君)이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이다. 이 비도 그 중 하나로 내버려져 있던 것을 동네 주민들이 1969년에 신창초등학교 교정에 옮겼다가, 1987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비의 전면에 "서양의 오랑캐가 침범하니 싸우지 않으면 화의를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라는 내용과, 측면에 우리 만대 자손에게 경고하노라(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라고 쓰여져 있어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한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다. 전국에 설치된 척화비는 1882년에 임오군란 때 대원군이 청나라로 납치되자 일본 공지사의 요구로 철거되었으나 그 중 몇 개의 비가 발견되어 보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