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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무너지는 백도무림(白道武林) 팔월(八月) 일 일(日). 이 날은 무림사에 길이 기억될 겁(劫)의 날이었다. 천하백도를 좌지우지하는 명문거파들은 대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마인무사들에 의해 철 저히 유린되고 있었다. 거의 동시에 팔만 무사가 나타났으며, 그들은 도합 팔십 개 무림방파를 한날 한시에 정복해 버린 것이다. 남궁세가(南宮勢家),북원풍령가(北苑風玲家),사천당가(四川唐家). 기라성 같은 강호의 세력들이다. 악마무후의 세력이 감히 건드리지 못했던 백도의 거목(巨木)들은 한날 한시에 유린되어 버 린 것이다. 사실 백도의 힘은 미약하다 할 수 있었기에, 군소방파들이 일시에 정복당한 것은 큰일이 아 니라 할 수 있었다. 하나, 세 그루 거목이 쓰러졌다는 것이야말로 백도천추에 길이 빛날 일대 치욕 사건일 수밖 에 없었다. 그 첫번째의 장소는 의화검맹. 그들은 불같이 일어나는 백도의 힘을 하나로 합하고 있었는데, 일만여 천마검사들에게 두 시진 만에 정복당하고 말았다. 사실,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패배였다. 초옥린은 능조운의 얼굴을 이용해서 의화검맹의 진세를 유린하였으며, 그 틈을 이용해 천마 검수들은 낙안애를 점령해 버린 것이다. 두 번째의 장소는 소림사(少林寺). 실로 커다란 무림의 거성(巨星). 그 곳은 오랫동안 악마무후에게 유린되다가 갑자기 되살아났었다. 한데, 그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칠천여 무사들에 의해 포위되어 버리고 만 것이 다. 소림사 방장(方丈) 뇌법선사(雷法禪師). 그는 무수한 마도고수들이 소림사를 휘어 감는 데에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던가?그는 인상을 찡그리지도 않았으며, 전혀 놀라워하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백여 무사들에게 포위되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 인내(忍耐)하고 있다고, 패배(敗北)한 것이 아니네들. 아미타불… 잠자는 소림사를 다시 깨우지 말게나. 지난번 불도장(佛道場)이 피에 젖은 것만으로도, 승려로 도저히 씻지 못할 죄를 지었거늘… 어이해, 또 죄를 짓게 하는가? 소림사의 젊은 승려들은 선장(禪杖) 계도(戒刀)를 써서 싸우고자 했었다. 만에 하나, 뇌법선사가 녹옥불장(綠玉佛杖)을 휘둘러서 싸우지 말라는 명을 내리지 않았더라 면… 천마맹은 소림을 얻기 위해 무수한 목숨을 잃어야 했을 것이다. 어쨌든 소림사는 하루 만에 천마맹에 의해 장악당하게 되었다. 세 번째의 장소. 그 곳마저 정복당했다는 것은, 강호의 흑도백도(黑道白道)를 뒤흔들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회남(淮南)의 대륙상가(大陸商家). 지난 수백 년 간 한 번도 거처를 발각당하지 않았던 대륙상가마저 일순 장악되어 버린 것이 다. 초옥린은 대륙상가를 정복하는 데 특히 주의를 기울였다. 그의 휘하 가운데 가장 강하다 할 수 있는 팔황신마령주(八荒神魔令主)가 모조리 대륙상가 로 들어갔으며, 무려 만사천에 달하는 무사들이 일대를 완전히 에워싼 후에야 대륙상가에 대한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대륙상가는 일각도 아니 되어 포위되었다. 한데, 그 후에 벌어진 일이야말로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이럴 수가……!" 팔황신마령의 괴수가 되는 자는 활짝 열리는 석문 앞에 머물러 있었다. 그의 등 뒤쪽에는 거한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으며, 그들 뒤쪽에는 살기를 흘리고 있는 혈 포무사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끼이이익-! 문은 활짝 열렸다. 그 곳은 대륙상가의 황금창(黃金倉)이며, 그 안에는 적어도 오천만 냥(兩)에 달하는 황금이 금궤로 숨겨져 있다는 말이 전설처럼 오가고 있었다. 한데, 황금창은 텅 비어 있었다. "대체 이럴 수가? 천하제일의 부를 자랑하고 있는 대륙상가의 황금창이 텅 비어 있다니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기진이보(奇珍異寶)에 혈안이 되어 있던 자들은 실망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대륙상가 안에는 기진이보도 없었으며 황금이라고는 부수러기도 없었다. 팔황신마령주는 일 만사천 무사들을 이끌고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달려와서 텅 빈 지하 석굴 하나를 정복하게 된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그들은 늙고 병든 사람들을 사로잡았을 뿐이며, 그리고 엄청난 규모라는 대륙상가의 부에 대해서는 흔적조차 찾아보지 못하고 마는 것이었다. 세우에 젖는 창 아래. 초옥린은 흑포를 걸친 채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지난 십 일에 걸쳐 단 한숨도 자지 않았다. 그는 천하 각지에서 전해지는 수백 통의 밀지를 세세히 읽고, 용의주도한 계략을 거듭 꾸몄다. 하여간, 그는 가공스러운 정력가였다. 그는 패도의 화신이라 할 수 있었으며, 무림사에 다시 없는 패웅(覇雄)이라 불리어 부끄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정복감을 느끼기 이전에 참담함에 휘어 감길 수밖에 없었다. 백도는 너무나도 쉽게 무너졌다. 그것이 그를 오히려 긴장시켰다. 그는 적어도 사만(四萬) 휘하무사들을 희생시키는 가운데, 구파일방을 비롯한 백도를 정복할 계획을 세운 바 있었다. 그러나 크고 작은 싸움이 벌어지는 가운데, 희생이 된 사람은 십분지일밖에 되지 않았다. 백도는 너무나도 쉽사리 그에게 굴복한 것이다. 하나 진정으로 대세를 파악할 줄 아는 사람 이라면, 그의 승리가 다분히 공허한 것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전 세력을 다 동원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륙을 상대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걸기 위해……."초옥린은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쏴아아… 쏴아아……! 비가 스잔하게 뿌려졌다. 이미 가을(秋)은 시작된 듯했다. 비는 한기를 몰며 쏟아져 내렸다. "한데, 얻은 것이 없다. 백도인들은 세력을 철저하게 분산시켜 두었다. 나는 시산혈해(屍山 血海)를 이룩하지도 못하고 나의 세력만 노출시키고 말았다. 그렇다. 그 녀석은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하고, 미리 세력을 여러 곳에 안배시킨 것이다!"초옥린은 창 밖 에서 한 인물을 볼 수 있었다. 이미 제거된 자, 그는 바로 능조운이었다. 능조운이 나타날 리는 없으며, 초옥린이 보고 있는 것은 능조운의 환상에 불과하다. 능조운은 묘하게 웃고 있었다. 검에 베어지던 그 날처럼! "네놈은 위대했다. 네놈은 제거된 후에도 대륙무림을 지배하고 있다. 사람들은 네가 돌아오 기를 철석같이 믿고 있으며, 네가 명령을 내리기만을 기다리며 저항조차 하지 않고 있다. 으 음, 네놈이 중원무림계에 내린 뿌리가 이 정도로 깊을 줄이야……."승자는 피로 자신의 승리 를 확인한다. 빈 집을 차지하는 자는 진정한 승자라고 할 수가 없다. 초옥린이 당한 경우가 그러한 경우 였다. 구파일방은 예상보다 쉽게 정복되었으며, 그의 휘하무사들은 희생을 치루지 않고 승리를 취 할 수 있었다. 하나, 피바람이 일어나고, 시체가 들판을 뒤덮는 것보다 오히려 승리감이 들지 않았다. 쏴아아… 쏴아아……!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구파일방은 그 놈을 기다리고 있다. 대륙상가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그 놈을 기다리고 있으 며… 머지않은 장래에 저항을 시작할 것이다."그는 주먹을 불끈 거머쥐었다. "하나, 이미 대세는 결정지어졌다. 천하는 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나는 이 날을 위해 이 년 반을 썼다."초옥린은 혈풍을 자제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점점 초조하게 되었으며, 분명 자신에게 베어진 능조운의 존재를 보다 강렬히 느끼기 시작했다. "놈은… 무사들의 우상이다. 죽어도 사라지지 않을……!"쾅-! 초옥린은 발을 굴렀으며, 한때나마 능조운이 서재로 썼던 의화검맹의 아담한 건물 바닥에 깊이 족인이 찍혔다. "차라리… 네놈을 만인이 보는 앞에서 죽여야 했었다. 그렇다. 네놈을 암습한 것이 잘못이었 다. 네놈을 암습해 이겼기에, 나는 비겁자로 낙인이 찍혀 버린 것이고… 백도인들은 나를 조 롱하는 것이다. 빌어먹을!"초옥린은 주먹을 불끈 거머쥐었다. "강호가 나를 살인귀로 만들고자 하는군. 피를 뿌리고 싶지 않았는데……!"초옥린은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그러나… 이미 나는 천하제일인이다. 그것만은 누구도 부정 못한다. 나는 능조운이 일 년 간 한 일을 단 열흘에 해치웠다. 나는 장차 무림의 신이 되리라. 그 날은 멀지 않았다.' 반시진 후. 초옥린은 채광이 잘된 방 안으로 접어들었다. 그 곳에는 의화검맹의 일맹주와 이맹주가 연금이 되어 있었다. 초옥린은 천하를 경동시키지 않기 위해 그들을 살려 놓고 회유하고자 하는 상태였다. 두 고집쟁이를! "천하를 위해… 고집을 꺾어라!" 초옥린은 뒷짐을 진 채 방 안을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그의 목소리는 나직하면서도 엄숙했다. "나를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으로 인정한다고 발표하기 바란다. 당세에서 구파일방이 사는 길은 그것뿐이다. 물론 나 자신을 위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구파일방을 위해 말하는 것이다. 나는 너희들과의 정분을 보아서라도, 구파일방을 관용해 줄 수 있다. 하나 내가 거느리고 있는 수하들은 내가 하명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어길 것이며, 너희들이 구파 일방의 장문인들을 조종하지 않는다면…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이 저항하다 쓰러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초옥린은 꽤나 쓸쓸한 표정이었다. 어쩌면 그는 완전한 고독자(孤獨者)일지 모른다. 비록 천하를 얻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는 우울한 고독자에 불과한 것이다. 여불군과 철거. 둘은 초옥린이 어떻게 말하든 간에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하기에 바쁜 상태였다. 여불군은 상고시대의 기보(碁譜)를 보며 복기를 하고 있었으며, 철거는 먹는 데 열중하고 있 었다. 그들은 초옥린이 어떠한 말을 하든 간에 관심이 없다는 자세였다. 초옥린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를 무시했다면, 그들은 아마 시체가 되어 드러누웠을 것이다. 하나, 초옥린은 지금 참고 있었다. "나를 무시해도 좋다." "……!" "……!" "나를 악마라고 불러도 좋고, 나의 얼굴에 침을 뱉어도 좋다. 그러나… 나의 말을 무시하지 마라. 백도를 위해 하는 말이다."그가 그렇게 말할 때, 이제까지 복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이던 여불군이 쓰윽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네 말은 진심에서 하는 말이냐?" "그렇다!" 초옥린의 눈에서 마광이 번뜩일 때. "좋아, 그럼 침을 뱉어 주지! 카악!" 여불군은 입을 벌렸으며, 누런 가래침이 퉁기어졌다. 그것은 너무나도 정확하게 초옥린의 얼굴에 가서 달라붙었다. 우뚝 솟아오른 콧등 위로. 여불군이 내뱉은 가래침은 정확하게 초옥린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순간, 꾹꾹 참고 있던 초옥린의 분노가 폭발해 버렸다. "감히… 네놈이?" 초옥린은 치를 떨며 손을 비스듬히 후려쳤다. 펑-! 폭음이 일어나며 여불군의 몸뚱이가 붕 떠올랐다. 그는 무공이 폐쇠당한 상태인지라, 저항도 하지 못하고 훌훌 날아올랐다가는 벽에 등을 부 딪치며 떨어져 내렸다. 그의 코와 입에서는 붉은 핏물이 주루룩 흘러 나왔다. 한데, 그는 오히려 즐겁다는 듯 히죽 웃는 것이 아닌가?"그래, 진작 이랬어야만 했다. 네놈 은 정인군자의 가면을 벗었어야 했다. 크크, 그래야 너다운 행동이다.""닥… 닥쳐라!" "크크… 너는 능조운이라는 인간을 영원히 능가하지 못한다. 아마도 그였다면… 내가 얼굴 에 침을 뱉었다 하더라도, 웃고 말았을 것이다.""조… 조운, 그 놈이 그리도 위대했단 말이 냐?" "크크… 그는 불사신이다." "그는 제거되었다. 철저하게!" 초옥린이 입술을 질겅 씹으며 말하자……. "어쨌든 좋아. 우리들이 너를 천하종사로 섬기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다.""으음……!" "죽여 다오, 속시원하게. 자결은 죄악이니, 자결할 수도 없고!""……." 초옥린은 눈에서 마광을 뿜어 냈다. 그의 눈에서 흘러 나오는 눈빛은 너무나도 잔혹해서, 여유만만하던 여불군도 공포에 휘감길 수밖에 없었다. 초옥린은 핏빛 안광을 흘리며 한 자 한 자 끊어 말했다. "강호세력이 나를 무너뜨리기를 바라겠지. 특히 황궁의 세력이!""으음……!" "훗훗… 곧 너의 기대는 하나의 환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는 목숨 을 구걸하게 될 것이다. 네게… 시간을 주겠다. 그 시간 안에 마음을 정하기 바란다.""시간?" "나는 능조운과 다르다. 인내력이 부족하다는 데에서. 나는 악마라 불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는 않는다. 훗훗, 진정한 나의 힘을 보여 주겠다. 피비를 흘리고 싶지는 않지만, 바란다면… 정말 뜨겁고 비린 피맛을 보여 주겠다. 오늘부터 보름 안에 남북육대세가(南北六大世家)가 철저하게 붕괴될 것이다. 그들은 본시 공격 표적이 아니나, 천하에 나의 힘을 알리기 위해 그들을 붕괴시키겠다!"남북육대세가. 중원무림에 독자적인 아성을 이룩하고 있는 세가들이다. 그들은 흑도백도에 두루 교분을 쌓고 있어, 흑도가 이기든 백도가 이기든 공격을 받지 않는 전통을 지니고 있었다. 화악검가(華嶽劍家),남천풍운가(南天風雲家), 북극밀법가(北極密法家),탄금세가(彈琴世家), 청 운무가(靑雲武家),헌원은검세가(軒轅銀劍世家), 구양통천세가(歐陽通天世家). 세칭 남북육대세가. 그들은 여섯 마리의 고슴도치로 불리고 있어, 그들을 공격한다는 것은 상당한 희생을 필요 로 하는 일이다. 한데, 초옥린은 열흘 안에 남북육대세가를 완전 붕괴시키기를 공언하는 것이다. "지금은 부정할 것이나, 곧 알게 되리라. 나의 힘과 공포를! 그리고… 굴복하게 되리라."초옥 린은 악마의 웃음을 입가에 지었다. "또한 황실의 힘조차 내게는 무력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마. 훗훗……!"초옥린은 품에서 하 나의 양피지를 꺼냈다. 그는 그것을 여불군의 발 아래 내던졌다. "봐라! 너는 지혜로운 놈이니,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이… 이것은……?" 여불군은 양피지를 보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기이한 도해(圖解)이다. 보통 사람은 그것을 보고 이해하기 힘들되, 여불군은 즉시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화룡폭관(火龍爆關)!" 여불군이 소리치자. "그렇다. 화룡폭관이다. 이십 리를 완전히 불살라 버리는 지옥화(地獄火)의 함정. 훗훗, 네가 믿는 황실무사들은 그 안에서 초토화될 것이다.""그들이 너의 함정에 유인되리라 믿느냐?" "물론." "어… 어째서……?" "함정 안에 부마도위(駙馬都尉)가 갇혀 있거늘, 어이해 구하러 나타나지 않겠느냐?""부마도 위?" "능조운이 죽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 그는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으로 소문나 있다. 훗훗, 나는 함정을 만들 것이며… 그가 그 안에 갇혀 있다고 소문낼 것이다. 그의 휘하무사들과 측근 인사들은 그를 구하기 위해 그 곳으로 들어갈 것이며, 하나같이 불 타 죽는다. 훗훗, 그것이 나의 위대한 병법이다.""악… 악마! 너는 이미 악마가 되었군?" 여불군이 치를 떨었다. "그렇다. 나는 악마다. 이제야 나를 정확히 알아보는구나. 프핫핫! 나는 능조운과 다르다. 나 는 천하제일인이 되기 위해 천만 명이라도 죽일 수 있는 패웅(覇雄)이었다. 프핫핫……!"그 의 웃음소리는 점점 고조되어 갔다. 그리고 창 밖의 대지는 번개에 의해 파랗게 물들었다. 여불군과 칠거가 갇혀 있는 곳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방이다. 그 곳은 초옥 린의 명에 의해 완전히 새롭게 꾸미어졌으며, 일대에는 나찰검대(羅刹劍隊)에 속한 여무사들 이 즐비하게 버티어 서서 주위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방 안에는 하나의 고영(孤影)이 머물러 있다. 지극히 섬세한 체격을 가진 여인. 하나, 그녀의 얼굴은 두터운 면사(面紗)에 의해 감추어진 상태였다. 면사 안에서 차가운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지금 문이 열리면서 훤칠한 미장부 하나가 붉은 전포(戰袍)자락을 펄럭이면서 안으로 접어 들고 있었다. "훗훗… 이렇게 단둘이 만나기도 오랜만이로군, 묘묘.""옥린, 왜 나는 특별 대접을 하지? 내 가 여자이기 때문이냐?"발끈해 소리치는 여인은 묘묘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고혹 적(蠱惑的)이지 않은가. 초옥린은 그녀의 목소리만으로도 이제까지의 괴로움이 모두 풀리는 듯, 밝은 표정을 지었다. "네가 여인이기 때문은 아니다. 네가…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기 때문이다.""으 음……!" "훗훗… 해어화가 아름답고 포약빙이 아름다우나… 사실, 가장 완벽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 던 여인은 바로 너다. 훗훗, 나는 천하와 더불어 묘묘를 취하겠다는 야망을 가진 지 오래이 다. 그리고 이제… 너는 나의 황후(皇后)가 되는 것이다."초옥린, 그가 진실로 사랑했던 여인 은 묘묘였던가? "황후로 만들어 주겠다고?" "그렇다." 초옥린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렸다. 그는 묘묘의 입에서 앙칼진 호통이 터져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나, 묘묘의 입술이 벌어지며 흘러 나오는 목소리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상냥했다. "고마우신 말씀이시군요, 천마후." "묘묘, 역시 그릇이 크다. 옹졸하기 이를 데 없는 여불군, 철거와는 다르리라 여겼다. 역시… 너는 나의 황후가 될 만하다.""호호… 진실로 나를 사랑하시나요?" "물론이지." "좋아요. 그럼 지금 내게 입을 맞춰 주세요. 그럼… 그대를 나의 남편으로 영원히 섬기겠습 니다.""정말이냐?" 초옥린의 낯색이 흠칫 달아올랐다. "호호… 장부(丈夫)만이 일구이언(一口二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여걸(女傑)도 한 입으로 두 마디 말은 하지 않습니다. 단, 만에 하나라도 내게 입을 맞추지 않는다면… 나를 다른 사 람들과 똑같이 다루어야 합니다.""그… 그러한 일은 없을 거야. 묘묘의 입술은… 내가 늘 그 리워했던 완전한 꿈의 아름다움이었으니까."초옥린의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천천히 묘묘 앞으로 다가섰다. 묘묘는 다소곳이 머물러 있었으며, 그의 손이 자신의 면 사를 들칠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외모로만 따진다면 천하에서 가장 아름답고 냉요(冷妖)한 미인인 묘묘. 초옥린은 양귀비(楊貴妃) 서시(西施)를 울게 하는 절세적인 용무를 눈에 그리며 면사를 들 쳤다. 면사는 검은 나비가 날아오르듯이 떨어졌으며……. "으윽!" 초옥린의 얼굴이 갑자기 시뻘개졌다. 그는 대체 무엇을 보았는지, 갑자기 구역질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보라! 면사 아래서 나타나는 썩어 문드러지고, 불에 데인 추물의 얼굴을……. "호호호호… 어서 입을 맞춰 줘요. 그대를 나의 제왕으로 삼을 테니… 호호……!"묘묘는 까 르르 웃었으며……. "저… 저리 가라! 으으윽… 다가서지 마라." 초옥린은 헛구역질을 거듭하면서, 손으로 일 장을 후려갈겼다. 폭음이 일어나며 문이 박살났다. 문 뒤쪽에 시립해 있던 네 명의 여무사들마저 훌훌 날아올 랐으며, 십 장 밖의 거석 하나가 산산이 바수어졌다. "우우……!" 초옥린은 미쳐 버리기라도 한 듯이 포효하며 천장을 뚫고 치솟아 올랐다. 그는 자신의 환상이 또다시 깨어졌다는 데 광기(狂氣)를 일으키고 만 것이다. 그가 훌쩍 날아오른 다음, 묘묘는 허공을 보며 쓸쓸히 말했다. "옥린, 너는 승리(勝利)를 훔쳤다. 그러하기에, 무림의 우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능조운이 살아오지 못해도, 그는 영원히 나의 우상으로 남으리라. 그는 승리를 훔치려 하지 않는 진정 한 영웅이기에……."묘묘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그리고 밤은 보다 깊어져 갔다. 아마도 오늘 밤처럼 깊은 밤은 절대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흑색혈마병(黑色血魔兵)들. 그들은 흑몽(黑夢)을 우두머리로 삼고 있으며, 천마십팔번주(天魔十八幡主)들이 십팔영반(十 八領班)으로 영입되었다. 지상에서 가장 강한 마도무사들. 숫자는 이만. 핏빛 천을 씌운 죽립(竹笠)을 걸치며, 검집이 아예 없는 예리한 이 척(尺) 팔 촌(寸)의 쇄룡 마검(鎖龍魔劍)을 지니고 있다. 대사막에서 열풍과 싸워 가며 마공을 익힌 자들. 그들이 바로 혈풍삼십삼야(血風三十三夜)의 진정한 주역들이었다. - 남북육대세가(南北六大世家)부터 시작한다. - 이제… 선혈(鮮血)을 마음껏 흘리는 것이 허가된다. 앞을 가로막는 자는 무조건 베어 버 려라!- 신화를 이룩해야 한다. 가장 처절한 신화를! 그래야 천하백도가 감히 덤벼들지 못할 것이다. 남북육대세가를 무너뜨린 다음, 천마맹에 복종하지 않는 무림세력들을 하나하나 초 토화시킨다. 쓰으으……! 유령(幽靈)의 떼처럼 이동해 가는 흑혈마병들. 그들은 팔만여 천마검수들 가운데에서 고르고 고른 일급무사들로서, 하나같이 일당백의 무 공을 지니고 있다. 또한 그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중원의 온갖 절기를 파해(破解)시키는 것을 연마하였는지라, 어떠한 백도세력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경천동지(驚天動地). 흑혈마병은 대황하(大黃河)를 따라가며, 중원무림계를 피비로 세척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까마귀 떼를 몰고 다녔으며, 그들이 지나가는 곳에는 시산혈해가 이루어졌다. 화악검가(華嶽劍家)에서 칠백여 명이 떼죽음을 당했으며, 그들이 상징으로 세워 둔 열두 마 리 비마석상(飛馬石像)은 모조리 바수어지고 말았다. 그 다음 날에는 남천풍운가(南天風雲家)가 피에 씻기었으며, 이틀 후에는 북극밀법가(北極密 法家)의 탄금세가(彈琴世家)가 흑혈마병에 의해 피에 씻겼다. 피의 서른세 밤이여! 대체 누가 그들의 준동을 막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대륙무림의 계보에 대해 너무나도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었으며, 백도계는 완전히 하 나로 뭉치기 전이었는지라 감히 천마맹의 특급살수들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휘리리리링-! 거대한 탑(塔)처럼 바람이 일어나고 있다. 벌써 백오십 년에 걸쳐 대선풍(大旋風)은 그 자리에 머물고 있었다. 오십여 리 방원에 달하 는 방대한 지역은 검은 모래 바람에 휘말렸으며, 그 곳은 아무도 다가서지 않는 절지가 되 고 말았다. 사사(死沙). 죽음의 모래이다. 군데군데 흐르는 류사(流沙)가 있어, 자칫 발을 잘못 디디다가는 지옥 바 닥으로 빨려들고 만다. 또한 전갈, 독오공(毒蜈蚣)을 비롯한 독충들이 모래 속에 숨어 있다가 온기(溫氣)를 지닌 물 체가 나타날 경우 무조건 물어뜯는다. 하나, 그 곳을 죽음의 모래로 만든 것은 백오십 년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멈추지 않았다는 대선풍이었다. 콰르르르릉- 쾅-! 가공할 기세로 치솟아 오르는 검은 모래바람. 대체 그 바람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일까? 지난 백오십 년 간 아무도 그 곳으로 들어가지 못하였으며, 들어가고자 했던 사람은 모조리 죽었다. 그러한 가운데, 그 곳은 기억 속에서 사라졌으며… 지금은 유목민들이라 하더라도 찾지 않 는 침묵과 고독의 절지로 화하고 말았다. 지평선(地平線)이 가물거린다. 핏빛의 광구(光球)가 이글거리는 빛을 뿌리면서 지평선으로 함몰하고 있다. 그리고 사사(死沙)가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할 때, 지평선 너머에서부터 울부짖는 소리가 아 련하게 들려 왔다. 우우우……! 환상처럼 하나의 푸른 연기가 대선풍이 치솟아 오르는 곳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지평선 너머에서 불현듯 나타나 바람처럼 빠르게 날아들고 있는 것은 거대하기 이를 데 없 는 푸른 빛깔의 이리였다. 머리에 금관(金冠)을 썼으며, 목에 청색 광채가 엄청난 보석 목걸이를 매달고 있다. 그 보석 은 밤에도 빛을 발하는 야광석(夜光石)이기에, 푸른 이리의 몸은 언제나 푸른빛에 휘어 감기 게 되는 것이다. 두 개의 눈알은 황금빛이며, 전신을 뒤덮고 있는 잡모가 하나도 없는 청색신모(靑色神毛)였 다. 우우우……! 대막청랑(大漠靑狼), 살아 있는 몽고의 전설이다. 대막청랑은 자신의 죽음을 알게 될 경우, 정해진 무덤 쪽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질풍처럼 치달리는 대막청랑의 등 위, 전신이 피에 물든 청년 하나가 축 늘어진 채 머물러 있었다. 이미 죽어 버린 것일까? 어찌나 피를 많이 흘렸는지 살색이 지극히 창백(蒼白)하다. 그러나 그는 분명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비공에서는 가늘기는 하나, 분명 숨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정녕 끈질긴 목숨이다. 심장이 파열되고, 단해(丹海)가 바수어지는 상처를 입었으며, 백 가지 독이 몸 속으로 흘러 들었다. 절세고수라 하더라도 그 정도 상처를 당한다면, 벌써 살과 뼈가 뭉그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이미 죽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살아 있었으며, 입가에는 고통스러운 표정이 아니라 미소가 머금어지기까지 했다. "나를 모욕하고 암습해도 좋았다, 옥린. 그러나… 너와 나 사이의 우정만은 배반하지 않았어 야 했다. 그리고… 나의 약빙이를, 살인 도구로 이용하지는 않았어야 했다."가는 목소리이다. 부릅떠진 눈에는 미광조차 없다. 완전히 죽어 버린 듯한 눈이다. 하나 자세히 그의 눈을 들여다본다면, 그의 눈 속에서 정녕 꺼지지 않는 생명의 불길을 발 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척추를 끊고, 심장을 찢고… 큿큿, 너는 완벽했다."바로 능조운, 그는 여전히 살아 있 었다. 초옥린은 그가 죽었다고 여기고 있으나, 그는 죽지 않았다. 그의 신혈(神血)로 인해, 그는 무수히 짓밟힌 잡초가 다시 살아나듯이 꿈틀거리며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근골은 회생력을 갖고 있었으며, 어떠한 상처라 하더라도 저절로 회복되는 신체였다. 열 번 죽을 내외상(內外傷)을 입은 능조운이었으나, 차츰차츰 기력을 되찾아가고 있는 것이 다. "너는 완벽한 놈이다, 옥린. 그러나… 한 가지를 몰랐다. 내가너의 생각을 넘어선 독종(毒種) 이라는 것을……!"대막청랑은 바람의 탑을 향해 질풍처럼 치달렸다. 이미 이 곳에 여러 번 와 본 듯, 가옥을 통째로 날려 보낸 바람이었으되 대막청랑은 거침없 이 바람의 길을 따라서 바람 속으로 접어들었다. 하늘이 시꺼매졌고, 사방에서 우레 소리가 들려 온다. 대막청랑은 대체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이 곳은 초옥린도 와 보지 못한 곳이었다. 대막청랑은 동물이되, 지혜를 갖고 있는 영물이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만수(萬壽)를 자유 롭게 다룬다. 우우우……! 대막청랑은 더욱 크게 울부짖으면서 바람의 탑 한가운데로 접어들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