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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열세 명의 백의인 비류신은 다시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그쪽을 자세히 바라본 그는 몹시 놀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 장 가량 떨어진 일곱 개의 황량한 무덤 위에도 각기 흰 옷을 입은 사람이 하나씩 서 있는 게 아닌가. 비류신은 그만 어리둥절하고 말았다. ‘이상한 일인걸. 금세 하나 뿐 이던 것이 어떻게 눈 깜짝할 사이에 저렇게 많은 사람으로 둔갑했을까? 내가 잠깐 한눈을 팔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으로 변할 것인가, 어디 한 번 또 해볼까?’ 비류신은 어린애 같은 장난기 어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이번에는 다시 두 사람이 더 늘어서 백의인은 모두 아홉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비류신은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았다. 그러자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아홉 명의 백의인 뒤에는 무덤이 네 개 있었다. 그 무덤 위에도 홀연히 네 명의 사나이가 늘어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의 한 사람이 순식간에 열세 사람이 되고 만 셈이다. 비류신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싸늘한 한기를 느껴 부지중에 몸서리를 쳤다. ‘도대체 저것들은 사람일까? 아니면 귀신이란 말인가?’ 희미한 별빛 아래에서 사 장 밖에 있는 백의인의 얼굴을 똑똑히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다만 열세 명 백의인들의 눈동자에서 푸른빛이 발산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뿐 이었다. 비류신은 한 가닥 호기심을 억제할 수 없어 용기를 내고 곧바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며 급히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는 숨을 길게 몰아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세상에는 정말 귀신이 있단 말인가? 아니면 산송장이란 말인가? 이 열세 명의 백의인은 대관절 무엇들인가? 그는 이 장 가량 다시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만 너무도 놀라서 가슴이 터질 뻔했다. 그 백의인들은 모두 사납고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으나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백의인의 얼굴은 희다 못해 푸르스름하며 머리는 풀어 헤쳐져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처참하도록 푸른빛이 돌았고 또한 움직이지 않고 멀거니 한 군데만 바라보고 있었다. 길고 가느다란 팔은 양쪽으로 축 늘어졌고, 더욱이 손톱은 세 치나 자라서 사람의 손톱 같지 않았다.그들의 온몸에는 한 가닥 음산한 귀기가 서려 있어 마치 금방 관 속에서 끄집어 낸 시체가 아니면 산송장 같았다. 비류신은 볼수록 무시무시한 공포를 느꼈다. 만약 그의 옆에서 청풍명사와 흑백사가 싸우고 있지 않았더라면, 정말 공포에 질려 기절이라도 할 만큼 음산한 광경이었다. 비류신은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그만들 싸우고 여기를 보시오. 산송장이 나타났단 말이오!” 비류신이 이렇게 고함을 치자 즉각 반응이 나타났다. 흑백사가 몸을 번쩍 날려 청풍명사의 장세를 벗어나더니 잽싸게 비류신의 곁으로 날아왔다. “당신은 왜 그렇게 고함을 지르는 거요? 귀신이라도 보았나요?” 비류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황급히 대답했다. “맞아요! 맞아! 귀신을 봤소. 열세 개… 열세 개의 귀신을 봤단 말이요… …” 흑백사는 시종 상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비류신의 당황한 태도와 겁에 질린 얼굴빛을 보자 그만 웃음을 금치 못했다. “참말로 당신은 괴상하군요. 어찌 그처럼 터무니없는 말을 해요? 정말 살아있는 귀신을 봤단 말인가요?” 그녀의 말이 채 떨어지기 전에 적막한 밤하늘에 갑자기 올빼미의 비명소리 같은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날카로운 소리는 귀청을 찢을 듯 몹시 무시무시하였다. 그것은 여지없이 귀신의 통곡소리와 흡사했으므로 듣는 이로 하여금 모골이 송연하게 하였다. 흑백사는 귀신의 절규를 듣자 즉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토록 겁을 모르는 대담한 이 여자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뒷걸음질 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아! 귀신! 진짜 귀신이다!” 청풍명사 청룡백호도 그녀의 부르짖음을 듣고 곧 무덤 위의 열셋의 백의인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그러나 그는 역시 노련한 인물이었다. 그는 나이도 비교적 많고 또한 침착한 사람이었다. 비록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으나 겉으로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침착한 태도로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그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쉬지 않고 생각을 거듭했다. ‘도대체 강호 어느 곳에 이러한 귀신이 있단 말인가?’ 찢어지는 듯 날카로운 귀신의 울부짖음은 산골짜기에 메아리치며 다시 끊임없이 들려왔다. 아무리 담이 큰 사람이라도 듣기에 매우 소름이 끼침을 금할 길이 없었다. 얼마 후 귀신의 울부짖음이 멎는가 싶더니 무덤 위의 흰 그림자가 선뜻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껑충껑충 세 사람이 뛰어나왔다. 그들 세 사람은 영락없이 산송장이었다. 그들이 움직일 때 두 무릎을 뻣뻣이 세우고 발의 탄력에만 의존해 껑충거리고 뛰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두 팔은 축 늘어뜨린 채 푸른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산 사람같이 보이지 않았다. 흑백사가 갑자기 비류신에게 눈길을 돌리고 물었다. “비류신! 당신은 귀신을 때려잡을 용기가 있소?” 그녀의 말에 비류신은 빙그레 웃으며 대꾸했다. “당신이 저 귀신들을 때려잡지 않으면 귀신이 당신을 때려잡을 것이오.” 그들이 이런 말을 주고받을 때 백의인은 이미 그들과 불과 육 척 가량 되는 곳까지 껑충거리고 다가왔다. 이때 비류신과 흑백사는 산송장의 얼굴을 똑똑히 분간할 수 있었다.그들은 징그럽고 무시무시한 백의인의 얼굴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두 사람은 급히 뒷걸음질을 쳤다. 비류신은 엉겁결에 놀란 소리를 내질렀다. “아! 이것은 지령보의… …”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들 산송장 중 하나가 잽싸게 손을 뻗쳐 비류신을 움켜잡으려고 덤볐다. 동시에 또 다른 팔은 흑백사에게 달려들더니 늘어뜨렸던 팔을 들어 번개같이 그녀의 얼굴을 할퀴려고 하였다. 흑백사는 재빨리 피하며 순간적으로 그 앙상한 손을 보았다. 찰나, 그녀는 산송장의 손가락 사이가 가지각색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녀는 놀라며 소리쳤다. “비류신! 이 귀신의 손가락에는 모두 기독이 발라져 있소!” 흑백사는 선뜻 몸을 날려 번개같이 피했다. 산송장은 그의 일격이 적중되지 않자 껑충 뛰어올랐다. 그리고 번개처럼 빠르게 두 팔을 들어 공격했다. 흑백사도 몸을 날려 피하면서 재빨리 등에 멘 장검을 빼들었다. 그리곤 서슬이 시퍼런 검날을 휘두르며 산송장의 팔을 향해 힘껏 내리갈겼다. 그러자 챙 하는 가벼운 음향이 들려왔다. 그녀의 예리한 장검이 산송장의 팔을 내려치자 곧 쇠붙이끼리 마주치는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그러나 괴상하게 생긴 산송장의 팔은 그녀의 날카로운 일격을 맞고도 조금도 다친 데가 없었다. 이것을 본 흑백사는 실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정말 귀신이라는 생각이 왈칵 들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녀의 일격을 맞으면 잘라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기의 맹렬한 공세에 끄떡도 하지 않는 눈앞의 괴물은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비류신은 진기를 끌어올려 오른손을 질풍같이 내휘둘렀다. 그는 철추격종(鐵鎚擊鍾) 의 일 초로서 족히 산과 들을 진동시킬 수 있을만한 광풍을 일으키며 송장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 산송장은 한 번 껑충하더니 비류신의 무서운 장력을 교묘하게 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껑충 뛰어올라 오른손의 날카로운 손톱을 뻗쳐 괴이한 방향에서 움켜잡으려고 달려들었다. 비류신은 약간 걸음을 옮기고 쌍장을 휘둘러 질풍같이 공격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송장도 비류신의 웅휘(雄揮)한 장력에 놀란 듯 감히 반격하지 못했다. 재빨리 옆으로 석 자 가량 뛰어나가 비류신의 강맹한 일격을 거뜬히 피했다. 이 산송장은 활동하기 좋게 몸을 굽히지 않았으나 동작은 오히려 기막히게 신속했다. 비류신은 급히 눈을 돌려 흑백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놀라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는 게 아닌가? 이때 한 송장이 번개같이 달려들어 흑백사의 가슴을 노리고 손톱을 뻗쳤다. 비류신은 이것을 보자 깜짝 놀랐다. 그는 벽력같이 소리치며 그쪽으로 덮쳐갔다.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산송장의 오른쪽 팔을 낚아채려고 했다. 그러자 흑백사가 놀라며 소리쳤다. “송장의 손목을 잡으면 안돼요!” 비류신은 그녀의 외침을 듣자 내밀었던 오른손을 재빨리 돌리고 다시 비스듬히 송장의 손목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손이 송장의 팔에 닿자 그는 대뜸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송장의 팔은 딱딱하기가 마치 무쇠 같았으며 살이라고는 조금도 붙어있지 않았다. 산송장은 팔을 잡히자 괴상한 소리를 내고 세 치나 되는 긴 손톱으로 비류신의 손을 찌르려고 안간힘을 썼다. 비류신은 흑백사의 경고를 생각하고 황급히 송장의 손을 놓고 재빨리 몇 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등 뒤에서도 한 가닥 싸늘한 장풍이 밀어닥치는 바람에 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신속하게 몸을 날려 일 장 너머까지 솟구쳤다. 한편 청풍명사 청룡백호도 역시 마찬가지로 산송장의 습격을 받았다. 그와 같이 노련한 강호 인물도 연달아 송장에게 쫓기면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고 있었다. 이때 청룡백호는 마음속으로 몹시 놀라고 있었다. ‘산송장 하나만을 상대하기도 어려운데 저쪽에선 아직도 열 개의 산송장이 호시탐탐하고 있으니… …’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는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그 역시 괴물들이 도저히 사람 같지 않았다.그렇다면 정말 이것들은 유령이란 말인가? 바로 이때-- 창공에서 또 다시 괴상하게 울부짖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사 장 밖 무덤 위에서 관전하고 있던 열 명의 산송장들이 일제히 몸을 날려 쏜살같이 이쪽으로 달려 왔다. 비류신, 흑백사, 청풍명사 세 사람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한결같이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아! 끝장났구나. 이번에야말로 저 귀신들의 손에 정말 죽는가 보다.’ 청풍명사는 갑자기 몸을 날려 비류신과 흑백사의 곁으로 다가오며 급히 말했다. “비 노제, 흑 낭자, 괴물이 많이 달려오고 있으니 우리가 힘을 합해 저항하도록 합시다.” 비류신도 지금 이때 만약 합동으로 괴물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귀신의 손에 죽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청풍명사의 말을 듣자 벽력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쌍장으로 하늘을 찌를 듯한 바람을 일으키고 괴물을 향해 덮쳐갔다. “지금 우리는 공동으로 적을 대항해야 하니 우리들의 은원 관계는 나중에 해결합시다.” 흑백사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즉각 삼각형으로 진을 형성했다. 열세 명의 산송장들은 곧 세 사람을 포위했다. 그들은 눈에 무서우리만큼 푸른빛을 번쩍이며 괴상한 소리를 나직이 내고 있었다. 그리고 기다란 손톱이 달린 스물여섯 개의 손을 일제히 내저으며 괴상하게 휘둘러댔다. 세 사람은 괴이한 광경을 보자 간담이 서늘해졌다.다행히 세 사람이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고 혼자 송장들을 만났더라면 분명 기겁을 한 채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 열세 명의 산송장들은 오랫동안 훈련을 받아온 듯 능란했다. 그들은 갑자기 세 갈래로 공격 세력을 분리했다. 그리고 다섯 명의 산송장은 비류신에게 곧바로 달려들었다. 또한 나머지 여덟 명은 네 사람씩 나누어 흑백사와 청풍명사에게 덮쳐 왔다. 그들은 모두 귀신 울음소리같이 무시무시하고, 이리같이 사납게 울부짖었다. 열세 명의 산송장은 약속이나 한듯 갑자기 날카로운 기세로 공격해 왔다. 비류신 등 세 사람은 괴물의 손톱에 무서운 독약이 묻어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세 사람은 괴물들이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웅대한 장력으로 적을 물리치고 있었다. 흑백사는 오른손에 장검을 들고 왼손은 주먹을 불끈 쥔 채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녀는 그러는 동안 몇 번이고 장력으로 산송장들을 격중시켰으며 장검으로 치기도 했다. 그러나 조금도 그들을 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다만 괴물들을 몇 걸음 뒤로 물러나게 했으나 괴물들은 굽히지 않고 다시 덤벼오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강호의 무림에서는 이와 같이 놀랍고도 괴상한 일을 당해본 일이 없었으므로 그들 세 사람은 매우 긴장했다. 이 열셋의 산송장의 공격 방식은 두 사람이 한패가 되어 번갈아 교대하며 공격해 왔다. 그러므로 세 사람은 혼자서 넷 혹은 다섯 송장과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에 그들은 응수하기에도 바빴다. 청풍명사는 싸울수록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생각했다. ‘이 모양으로 싸웠다가 마지막에 가서 우리는 모두 지쳐서 기진맥진하여 귀신 손톱에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 흑백사도 대경실색하고 있었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비류신…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이들을 몇 명이라도 죽여야 해요. 그렇지 않다면 이곳에서 죽을 사람은 바로 우리 세 사람일 거예요.” 비류신이 대꾸했다. “흑 낭자, 당신은 죽는 것이 그렇게 겁이 나오?” 흑백사는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 “그렇다면 당신은 죽는 것이 두렵지 않나요?” 청풍명사가 이 말을 듣고 껄껄 웃었다. 그는 괴물에게 연달아 삼장을 공격하며 말했다. “우리가 무슨 뚜렷한 이유도 없이 이것들 손에 죽는다는 것은 정말 가치 없는 일이오.” 비류신이 갑자기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괴물들은 아무리 보아도 사람 같지는 않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귀신이나 유령 같지도 않고…” 그의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두 명의 산송장이 그의 좌우에서 비호처럼 습격해 왔다. 비류신은 호통을 치며 쌍장을 번개같이 내뻗었다. 그의 장세가 뻗쳐지자 좌우에서 달려들었던 산송장이 갑자기 양쪽으로 싹 갈라졌다. 그리고 재빨리 그 틈을 타서 다른 세 놈이 질풍같이 덮쳐왔다. 비류신은 가슴이 싸늘했다. 그는 화를 벌컥 내며 소리쳤다. 그는 곧 몸을 약간 비스듬히 기울이고 두 손으로 맹렬한 기세로 장력을 휘둘렀다. 그리고 오른쪽 발을 들어 번개같이 걷어찼다. 덮쳐 온 세 송장은 뜻밖에 걷어차는 바람에 비류신의 발에 걷어차여 일 장 밖으로 날아갔다. 괴성을 지르며 날아간 세 송장은 곧 다시 일어났다. 흑백사가 이것을 보더니 소리쳤다. “비류신, 저 괴물들이 어째서 귀신이나 유령이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비류신은 냉랭히 웃으며 대답했다. “이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단 말이오? 나는 전에도 이런 괴물을 한 번 본 일이 있소.” 청풍명사가 다그쳐 물었다. “비 노제, 언제 어디서 이런 괴물을 봤소?” 비류신은 코웃음을 치며 암암리에 욕을 했다. ‘늙은 것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누구보고 함부로 노제라는 거야.’ 그는 내심의 불쾌감을 감추고 오히려 입으로 태연히 대답했다. “지령보에서 보았소.” 청풍명사는 놀라며 소리쳤다. “뭐라구! 지령보 안에서 보았단 말인가?” 흑백사가 돌연 소리쳤다. “이것 봐요. 비류신! 듣기에는 당신 품속에 있는 잔금섭혼신편은 금옥도 자를 수 있어 간장 (干將)의 예리한 보검에 못지않은 신편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어째서 채찍을 꺼내서 괴물들을 죽이지 않소? 저 괴물들의 강철 같은 몸이 채찍을 이겨낼 수 있는가 어디 좀 봅시다.” 비류신은 흑백사의 말에 냉소로 답했다. “나는 아직 죽기까지 되진 않았소. 그러므로 채찍을 꺼낼 필요는 없다고 보오. 이제 곧 당신네들 두 사람이 맞아 죽은 다음에 내가 당신들을 위해 복수를 해도 늦지 않을 것이오.” 비류신이 이렇게 이야기할 때 열세 명의 산송장은 갑자기 사납게 공격을 개시해 왔다. 비류신 등 세 사람은 도저히 저항할 능력이 없었다. 지옥혈녀 흑백사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개탄하듯 말했다. “비류신! 우리들이 괴물의 손에 죽는 것을 설마 그대로 방관만 하고 있을 생각은 아니겠죠?” 비류신은 싸늘하게 웃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귀신과 송장이 살인하는 광경을 나는 아직까지 본 일이 없소. 그러므로 나는 자극적이고 신선한 참극을 직접 목격하기를 원하는 바이오!” 흑백사는 가냘프게 한탄을 했다. “만약 정말로 참극이 보고 싶다면 아예 깨끗이 보여 주겠소!” 그녀는 장검으로 공격하던 것을 갑자기 멈추었다. 이것을 본 두 송장이 괴성을 지르며 몸을 튕기듯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날카롭고 기다란 손톱을 들어 우두커니 서 있는 흑백사를 할퀴려고 했다. 이 광경을 본 비류신은 날카롭게 소리쳤다. “흑 낭자, 빨리!” 그러나 흑백사는 아예 듣지 못한 체하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비류신은 조급한 나머지 벼락 치듯 기합소리를 지르며 쌍장을 내려쳤다. 그때 마침 비류신의 옆에 있던 다섯 송장도 일제히 음산하고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며 전광석화 같은 기세로 비류신의 측면을 공격했다. 비류신은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 길게 부르짖으며 오른손으로 급히 잔금섭혼신편을 꺼내들었다. 한 가닥 금빛이 번쩍 눈을 쏘았다. 비류신은 상대의 심혼을 싸늘하게 하는 사나운 소리를 내며 손에 든 신편을 번개같이 휘둘러 다섯 송장을 후려 갈겼다. 바로 이때-- 또 다시 조금 전에 들렸던 귀신의 곡소리 같기도 하고 이리의 사나운 부르짖음 같기도 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그러자 열세 명의 산송장은 마치 신호에 따르듯 급히 뛰며 일 장 가량 물러났다. 그리고 나란히 한 줄로 서더니 도깨비불같이 파랗게 빛나는 눈으로 비류신이 손에 든 잔금섭혼신편을 노려보았다. 흑백사와 청풍명사도 천천히 숨을 가다듬고 번쩍이는 눈빛으로 천하의 무림 인물들을 미치게 만드는 그 채찍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바라보았다. 비류신은 모멸에 찬 웃음을 입가에 흘렸다. “당신네들 두 사람이 만약 이 채찍을 탈취하려는 음모를 꾸민다면 나는 우선 당신네들부터 먼저 죽이고 저들을 처치하겠소!” 청풍명사 청룡백호가 채찍에 시선을 둔 채 탄식하며 말했다. “저 귀신과 유령도 채찍을 두려워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그것은 천고에 보기 드문 신기한 무기라 할 수 있군.” 비류신은 잔금섭혼신편을 가지고 한발 한발 천천히 열세 명의 산송장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산송장들은 채찍이 몹시 예리하고 신기한 무기라는 것을 아는 모양인지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흑백사와 청풍명사는 그 자리에 조용히 서서 바야흐로 비류신이 귀신을 죽이려는 일 막의 활극이 전개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첩첩이 둘러싼 무덤 속에서 흰 베로 된 도포를 입고, 키가 크고 무섭게 생긴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다. 키가 큰 괴인은 어깨에 장검을 한 자루 메고 똑바로 비류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열세 명의 산송장들은 키 큰 괴인을 보자 마치 졸개 귀신이 왕초 귀신을 대하듯 제각기 허리를 굽히고 공손히 절을 했다. 키 큰 괴인에게는 일종의 불가침의 오만스러운 기풍이 있었다. 그가 손을 약간 들자 열세 명의 산송장들은 일제히 몸을 날려 비류신 등 세 사람을 멀찌감치 포위해 버렸다. 비류신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심중으로 매우 놀랐다. ‘이 사람은 대관절 누구일까?’ 비류신이 쌀쌀하게 입을 열었다. “귀하는 왜 당당히 나타나지 못하고, 이처럼 도깨비나 귀신과 같이 하고… …” 괴인은 비류신의 말을 중도에 가로막고 기괴한 소리를 지르며 비류신을 향해 곧바로 일장을 뻗쳤다. 비류신은 냉랭히 코웃음을 치며 옆으로 몸을 돌려 그의 일장을 가볍게 피해버렸다. 괴인의 장심(掌心)에는 조금도 경력이 없었다. 그는 필시 최고의 절묘한 상승 내공을 지니고 있는 듯하였다. 비류신은 번쩍 피했다가 또 다시 다가서며 손을 들어 키 큰 괴인을 향해 맹렬히 일장을 가했다. 키 큰 괴인은 사납게 고함을 지르고 왼손을 가볍게 내저으며 억지로 비류신의 공격을 받아 넘겼다. 비류신은 한 가닥 극히 강맹한 경기에 의해 자기의 장력이 저지되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가슴이 섬뜩해서 암암리에 생각했다. ‘이 작자는 겉보기에 과히 심후한 공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데 굉장한 걸. 지령보에도 이런 고수가 있었던가?’ 괴인은 비류신의 장력을 봉쇄해 버리고 오른팔을 뻗쳐 갈고리같이 오그린 다섯 손가락으로 비류신을 움켜잡으려고 했다. 비류신은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오른손에 채찍을 높이 쳐들었다. 순간 채찍의 금빛이 흔들거리더니 공간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괴인의 손목을 맹렬히 휘감았다. 그러나 키 큰 괴인은 보통 무림의 인물과 달랐다. 그는 뻗쳐냈던 오른손을 재빨리 거두었다. 그리고 귀신같이 민첩하게, 유령처럼 번뜩이며 비류신의 왼쪽으로 덮쳐갔다. 비류신은 눈앞이 아찔하며 갑자기 팔목이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오른손의 팔목을 괴인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는 심중으로 크게 놀랐다. 강호 무림에 이 같은 절묘한 고수가 있을 줄 정말 꿈에도 몰랐다. 비류신은 재빨리 진기를 끌어 모았다. 그리고 오른팔에 힘을 주니 팔이 강철과 같아서 단단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키 큰 괴인도 가슴이 철렁했다. 상대방의 팔에서 강렬한 힘이 솟아나는 바람에 팔목을 잡고 있던 다섯 손가락을 놓칠 뻔했다. 괴인 역시 비류신의 내공이 이토록 절묘할 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지옥혈녀 흑백사는 비류신이 잔금섭혼신편을 상대방에게 뺏길까 두려워 날카로운 기합소리를 내며 측면에서 덮쳐갔다. 그녀의 손에 든 장검에서 서슬이 시퍼런 한광(寒光)이 번쩍번쩍 빛을 발했다. 키 큰 괴인은 오른손을 들어 맹렬한 기세로 흑백사의 공격을 받아넘겼다. 흑백사는 평생에 보기 드문 상대방의 웅대한 장력에 놀랐다. 그리고 괴인의 장력에 튕겨 장검을 날려버릴 뻔했으므로 황망히 초식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키 큰 괴인은 일장에 흑백사를 격퇴시킨 다음 오른손으로 비류신의 가슴을 향해 공격해 갔다. 비류신은 팔을 잽싸게 모아 기색박룡(奇索博龍)의 초식으로 상대방의 오른쪽 팔목을 꽉 잡았다. 키 큰 괴인은 돌연 벼락 치듯 큰소리로 호통 쳤다. “손을 놔라!” 이 말과 동시에 비류신의 몸이 한바탕 요동을 치더니 뒤로 비실비실 세 걸음이나 후퇴했다. 그러나 손에 든 채찍은 상대방에게 뺏기지 않았다. 키 큰 괴인도 비류신의 몹시 거대하고 기이한 잠력에 적지 않게 놀란 듯했다. 그는 이 젊은 사람의 무공이 대단히 심후하다고 생각했다. 흑백사는 괴인에게 격퇴를 당하자 몹시 불쾌했다. 그녀는 굽히지 않고 다시 장검을 겨누어 검화를 송이송이 일으키며 서서히 괴인을 향해 공격해 갔다. 괴인은 그녀의 검초(劍招)가 대단히 사나운 것을 아는 듯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흑백사는 싸늘하게 소리쳤다. “그래도 도망갈 텐가?” 그녀는 천천히 찌르려던 장검을 갑자기 번개같이 휘둘렀다. 그녀의 장검은 돌연 푸른빛을 발하더니 그림자처럼 따라가며 재빨리 찔렀다. 키 큰 괴인은 몸을 번쩍 솟구치고 더욱 뒤로 물러섰다. 흑백사는 화가 나서 안색마저 변했다. 그녀는 다시 장검으로 예리한 무지개를 그리며 전격적으로 덮쳐갔다. 흑백사가 장검으로 연달아 세 번이나 전광석화처럼 공격을 하자 괴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잽싸게 옆으로 몸을 날려 석 자 가량 밖으로 공세를 피했다. 그러나 이때-- 찍하는 소리와 함께 괴인의 반 동강이나 잘려진 오른쪽 팔이 밖으로 노출되었다. 그 팔은 깨끗하고 희였으므로 그 괴상망측하게 생긴 얼굴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흑백사는 세 번 격출한 검초가 모두 허사로 돌아가자 검세를 거두고 냉랭히 웃었다. “지금 강호의 무림 인물로서 내 이 회혼천혈의 삼 초를 능히 피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무오. 도대체 당신은 무림칠절 중의 인물이오, 아니면 지령보의… …!”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괴인은 왼쪽 소매를 갑자기 흑백사의 얼굴을 향해 펄럭펄럭 흔들었다. 흑백사는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자 입가에 냉소를 띠었다. 그리고 수중의 장검을 다시 들어 그의 너풀거리는 팔을 또 다시 자르려고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는 갑자기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듯하다고 느끼는 찰나 머리가 아찔해졌다. 쨍그랑 소리를 내며 그녀의 손에서 장검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땅에 주저앉아 버렸다. 청풍명사가 놀라며 소리쳤다. “아, 당신은? 당신은 바로 소(蘚)… …” 그의 입에서 ‘소’ 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두 송장이 쏜살같이 덮쳐 왔다. 그들은 세 치나 자란 날카로운 손톱으로 일제히 청풍명사에게 덤볐다. 청풍명사는 재빨리 땅에다 몸을 굴리며 그 습격을 피했다. 그러나 그 중 한 놈이 또 다시 번개같이 습격해오더니 손톱으로 할퀴려고 달려들었다. 청풍명사는 엉겁결에 손톱에 맹독이 묻어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맞싸우려고 손을 뻗쳤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가지각색으로 물들어 있는 손가락을 보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황급히 들었던 손을 내리고 번개같이 몸을 돌렸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찍 하는 소리와 함께 청풍명사의 오른쪽 소매가 송장의 손톱에 찢겼으며, 동시에 팔에도 가벼운 통증이 일었다. 산송장은 득의만면하여 또 다시 괴성을 지르며 두 손을 들어 할퀴려고 대들었다. 청풍명사는 급히 진기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며 맹렬한 기세로 쌍장을 뻗쳤다. 산송장은 껑충껑충 뛰며 물러났다. 이때 키 큰 괴인이 날카로운 휘파람을 불자 청풍명사에게 덤비던 두 송장은 갑자기 사나운 공세를 거두었다. 청풍명사는 오른쪽 팔이 마치 불에 덴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상처를 살펴보았다. 그러자 그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손톱에 가볍게 찔린 자리가 즉시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청풍명사는 이 독이 지독하다는 것을 아는지라 급히 심신을 가다듬고 진기를 운기하여 독기가 몸속으로 침투하지 못하게 막았다. 비류신은 괴인의 일장에 몸이 진동되어 혈기가 한바탕 들끓는 듯했다. 한참 운기조식하고 나서 옆을 보니 흑백사가 땅에 쓰러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는 몹시 놀라며 곧 손을 들어 옆으로 일 장을 밀어 냈다. 이번 장세는 처음에 얼핏 보기에 극히 담담하고 평범한 것 같았다.그러나 그는 중도에 갑자기 왼쪽으로 팔을 쭉 뻗쳤다. 그리고 잽싸게 또 다시 오른쪽으로 돌려 힘껏 괴인을 향해 장풍을 날렸다. 괴인은 비류신의 장세를 보자 갑자기 두 눈에 이상한 광채를 번뜩이더니 즉시 잔인한 살기를 띠고 오른손을 가볍게 내저었다. 쌍장이 마주치자 펑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며 맹렬한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그러자 괴인도 두 어깨가 한바탕 흔들거리더니 연달아 서너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괴인은 속으로 몹시 놀랐다. 자기가 이제 겨우 완성하여 세상을 제압하려던 음공이 처음 시험에서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그는 이런 결과를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바로 이때 비류신은 왈칵 피를 토하고 선 채로 벌렁 나자빠졌다. 그의 오른손에는 여전히 잔금섭혼신편이 꼭 쥐어져 있었다. 키 큰 괴인이 공격한 일장은 무공 중에서 가장 지독하고 높은 무상지음부골(無相地陰腐骨)이라는 초식의 음공이었다. 이 초식은 장력을 격출할 때 추호도 위세를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표독스러운 내력은 음흉한 경력을 갖고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것에 격중당하기만 하면 강대한 탄력을 일으키며 특히 사람의 오장 육부를 상해시켰다. 상대방의 내공이 심후하면 탄력에 울려 심장이 터지지는 않으나 음독의 침투로 무서운 피해를 입게 된다. 무상지음부골과 빙선일월장은 사도 중에서 가장 무서운 두 가지 절묘한 무공이었던 것이다. 키 큰 괴인은 비류신이 쓰러지는 것을 보자 내심 기쁨을 금치 못했다. 그는 천천히 다가오더니 허리를 굽히고 비류신의 품속을 뒤졌다. 그리고 잔금섭혼신편의 채찍집을 꺼냈다. 그는 득의만면하여 고개를 젖히더니 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휘파람소리를 냈다. 그리고 번개같이 몸을 돌려 첩첩이 들어선 무덤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또한 열세 명의 산송장들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그 뒤를 따라 황량한 무덤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별빛은 총총하고 밤공기는 차가웠다. 무덤 사이로 불어오는 찬바람은 사람의 마음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청풍명사는 이때 갑자기 오른쪽 반신이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전신의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여전히 비류신의 손에 든 잔금섭혼신편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채찍에 유혹되어 홀린 듯 천천히 비류신이 쓰러져 있는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왼손으로 비류신이 쥐고 있는 채찍을 집어 들고 힘껏 휘둘러보았다. 그러자 금빛 뱀이 꿈틀거리듯 채찍은 번쩍 빛났으며 동시에 사람의 간담을 싸늘하게 만드는 채찍소리가 산골에 울려 퍼졌다. 그는 갑자기 음흉하고도 살의에 가득 찬 눈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대뜸 채찍을 높이 치켜들고 비류신의 머리를 향해 내리치려고 하였다. ‘아! 지금 그 괴인은 정말로 잔인하기 그지없구나. 고의로 이 채찍을 가져가지 않은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양심을 저버리고 비류신과 흑백사를 죽인 다음 청색혈마와 황천선구가 자기를 찾아오게끔 유인하기 위한 것이리라… …’ 청풍명사는 또한 이런 생각도 했다. ‘그리고 내가 독약의 발작으로 죽어버린다면 그는 거칠 것 없이 자기 멋대로 할 것이다… …’ 그는 멍하니 채찍을 손에 든 채 생각에 잠겨 있더니 도로 채찍을 비류신의 곁에 놓았다. 바로 이때 냉소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 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청풍명사의 귀에는 벼락같이 크게 들렸다. 그는 흠칫 놀라며 급히 채찍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재빨리 뒤를 돌아다보았다. 멀지 않은 소나무 그늘에서 두건을 쓰고 장삼을 입은 매우 우아한 중년 선비가 얼굴에 미소를 짓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청풍명사는 그것을 보자 머리가 혼미해졌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멍하니 벌린 채 멀거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중년 선비는 가볍게 웃더니 입을 열었다. “청룡형! 손에 든 것은 무슨 무기 입니까?” 청풍명사는 꿈에서 깨어난 듯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소형, 조금 전에도 바로 당신이었지요?” 중년의 선비는 바로 야월광명지신도 소대호의 동생, 지신도 소대천이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청룡형, 그게 무슨 말씀이오?” 청풍명사 청룡백호는 그 말을 듣자 몹시 놀랐다. ‘방금 나왔던 그 괴인이 이치대로 따진다면 지신도 소대천이라야 한다. 왜냐하면 독수로 천하를 휩쓴 사람은 오직 소대천 한 사람 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 괴인이 소대천이라면 어떻게 이처럼 빨리 되돌아 왔을까? 그렇다면 그의 경공은 아무런 흔적도 없이 나는 경지까지 이르렀단 말인가?’ 청풍명사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소형, 우리는 평소 피차에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왜 나에게 암격을 가했소?” 지신도 소대천이 냉소를 쳤다. “청룡형, 당신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 하겠구려…? 그런데 손에 든 것은 잔금섭혼신편이요?” 청풍명사는 어이가 없었다. “소형! 그렇게 시침을 뗄 것은 없지 않소? 지금 나는 이미 독에 중독되어 이 세상에서 불과 몇 시간밖에 살 수 없는 몸이오.” 그의 말 속에는 죽음이 가까워진 사람의 비애가 스며있었다. 지신도 소대천은 이때 벌써 청풍명사 앞에 가까이 다가와서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청룡형, 손에 든 채찍을 좀 보여 줄 수 없을까요?” 청풍명사는 처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형, 이 채찍은 이미 당신의 물건이니 마음대로 하시오.” 그러자 지신도 소대천은 갑자기 오른손을 거두어들였다. “청룡형이 자꾸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채찍을 굳이 보려하지 않겠소!” 청풍명사는 힘없이 대꾸했다. “소형, 당신의 행위가 너무 사람을 약 올리는군요.” 소대천은 냉소를 머금고 말했다. “청룡형이 그처럼 저를 책망하시는 것을 보니 강호 무림에서는 당신이 제 일인자라 하겠구려.” 청풍명사는 가볍게 탄식을 하며 말했다. “자고로 교활하고 시기하는 자는 마지막에 가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법이오. 보다시피 내 일생도 이렇게 처참한 최후가 되지 않았소? 지금 내 운명은 이미 당신 손에 달려 있으니 마음대로 하시오.” 지신도 소대천은 잔잔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청룡형, 다시 말하거니와 만약 당신이 거절하지 않으신다면 내가 당신의 독상을 치료해 드리겠소.” 청풍명사는 그의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미 완전히 절망에 빠진 사람을 제외하고 사람이란 누구나 살기를 원하는 법이다. 천고의 간난(艱難)을 무릅쓰고 살아온 것은 죽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 아닐까.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