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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번째 금강경 21장
須菩提야 汝勿謂如來作是念호대
我當有所說法이라하라
莫作是念이니 何以故오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 땟목,
若人이 言호대 如來有所說法이라하면
卽爲謗佛이라 不能解我所說故니라
須菩提야 說法者는 無法可說일새 是名說法이니라
爾時에 慧命須菩提- 白佛言하사대 世尊이시여
頗有衆生이 於未來世에 聞說是法하고 生信心不이까
佛이 言하사대 須菩提야 彼非衆生이며 非不衆生이니
何以故오 須菩提야
衆生衆生者는 如來說非衆生일새 是名衆生이니라
* 낱자 공부
汝너 여, 勿말 물, 謂이를 위, 莫: 말 막, 念:생각할 염, 謗헐뜯을 방, 頗자못 파, 彼저 피,當마당할 당,
* 단어공부
說法 ~ 불교의 교의를 풀어 밝힘,
사실 설법하시는 것을 보면 상황에 따라 변주되는 것을 분명히 느낀다.
慧命 ~ ①불법(佛法)의 명맥 ②불법(佛法)을 이어 가는 비구(比丘)를 가리킴
③지혜(智慧)를 생명(生命)에 비유(比喩)하여 일컫는 말
法 ~ 넓은 뜻으로는 자연법(自然法),헌법, 관습법, 명령, 규칙, 판례까지를 포함하지만 좁은 뜻에서는 일정한 조직과 절차 밑에서 제정된 법률을 가리킨다.
법(法)은 다르마(dharma)의 번역으로서, '지키는 것'·'지지하는 것'이 원뜻이다.
① 교설(敎說)이나 성전(聖典:敎法), ② 최고의 진리(깨달음의 내용),
③ 일체의 현실존재로 하여금 현재의 상태로 존재케 하고 있는 법칙과 기준,
④ 법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는 유형·무형, 심적·물적의 일체 존재(存在:現象),
즉 의식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
* 해설
法은 진리의 흐름입니다.
진리는 생물입니다.
진리를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진리에서는 멀어질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변화하는 것을 아시고 한 순간을 말씀하시고
우리 중생들은 변화를 모르고 한 순간을 봅니다.
똑같이 본 것인데 똑같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집착이 없고 중생들은 집착을 합니다.
부처님은 온전하게 보시고 중생들은 편협하게 봅니다.
부처님은 초월하시고 중생들은 끌려 다닙니다.
法 - 규정
무리는 각자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 기준은 각각 다르다.
보고 듣고 배운 것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의 기준이 맞는 것이냐?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재단을 한다.
기준이 다르면 시비가 다르게 된다.
나의 기준과 남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해야 한다.
기준이 없으면 있는 그대로 본다.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으면 있는 그대로 본다.
중생 -
부처와 중생은 원래 하나다.
자성이 흙속에 묻혀있으면 중생이요
밖으로 드러나면 부처이다.
중생이 변하여 부처가 되고
부처가 변하여 중생이 된다.
중생은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변하는 과정이다.
중생이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원기 109년 5월 31일
경계: 딸의 선글라스
딸이 원래 있던 선글라스는 비싸기만 하고 귀가 아프다고 만만한 거 하나
장만해야겠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수업을 마치고, 내가 늘 안경을 하는 곳에 가려고 카페에서 기다리는데 곧 나타나더니 바로 앞에 있는 안경점에 가자고 한다. 그래도 두어 군데는 들러봐야 하지 않나 했더니, 그럴 시간도 없고 가격이 다 비슷하겠지 하면서 들어갔다.
가게에 들어가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물어보니 거의 30만원이란다. 며칠 전에 선글라스가 싼 건 얼마쯤 하냐고 물어보길래 아마 10만원 중반쯤 했었는데 선글라스를 한 지 몇 년이나 되어서 무심코 말했었다. 브랜드 안경점도 아니고 동네 안경점이 너무 비싸 엄마가 가는 00안경점에 가서 비교해 보고 사자 했더니 멀어서 가기 싫다며, 몇 개 써 보더니 바로 그 물건을 달라고 한다. 당장 선글라스가 없으면 못 사는 것도 아닌데 뭣이 저리 급할까 싶다.
일 이만원도 아닌 물건을 선뜻 사는 딸을 보며 내가 사 주는 것도 아닌데 화가 불쑥 올라왔다. 무언가를 선뜻 사는 딸의 모습에서 절약하지 않고 사고 싶은 것 사며 살아온 내 모습들이 보여 싫었다.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리 흥청망청 쓰는 애도 아니고 원래 있던 선글라스도 자주 쓰지 않아 거의 새것이지만 대학 다닐 때 사 준 거라 꽤 오래되었는데도 계속 쓰고 다녔구나 싶다. 젊을 때 좋은 거 해라고 기분 좋게 말해주지 않은 옹졸한 마음이 미안했다. 나이 들면 좋은 거 해도 티도 나지 않는다고 잘했다 할걸….
무언가를 결정할 때 상대의 입장에서 마음을 읽어주고 기분 좋게 말을 하도록 유무념으로 다시 한번 챙겨야겠다. 내뱉고 나면 상대나 나나 상한 마음이 얼마나 오래 가던가…. 그동안 방치했던 상시일기 유무념 조항을 잘 챙기면서, 대산종사법어 교리편 65장[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는 동시 삼학 공부로 일을 당할 때마다 멈추는 공부를 하여 일심 정력을 쌓고, 멈춘 후에는 다시 생각을 궁글려서 바른 지각을 얻고, 또 옳은 판단을 얻은 후에는 바로 취사를 해서 결단 있는 실천을 하자는 것이요]라는 법문을 다시 새겨본다.
교무의 의견
딸과 안경을 사러 가셨네요
엄마의 생각에는 여러 군데 알아보고 질은 좋으면서 가격이 낮은 것 사기를 원하였는데 딸은 한 곳에 가서 바로 안경을 사버렸네요?
엄마가 옳으냐 딸이 옳으냐 하고 묻는다면 누가 시고 누가 비일까요?
옳고 그름은 원래 없습니다. 우리의 기준이 시비를 논하는 것입니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여러 군데 다녀보아 제일 좋은 것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딸은 거기서 거기일 것이니 발품 파는 것이 중요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니 바로 사자는 것이지요
대체로 우리들은 자기의 생각을 주장하고 어떤 이는 끝까지 고집을 세우기도 합니다. 그 고집이 깊어지면 손해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자기의 주장을 꺾지 않습니다.
딸이 물건을 사는데 엄마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의견을 고집하여 다툴 필요는 없습니다. 딸의 돈으로 딸의 물건을 사는 거라면 딸의 뜻대로 하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아니하는 것은 같이 간 의미가 적을 것 같습니다. 엄마의 생각을 이야기해서 딸의 결정에 도움이 되면 좋고 안 받아들이면 그만이면 됩니다.
알고 보면 인생은 소꿉놀이입니다. 소꿉놀이는 재미있으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소꿉놀이하면서 싸운다면 소꿉놀이의 의미가 사라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언젠가는 없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 가지고 목숨을 걸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허망하게 생각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하되 집착하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읽을 때 서로 소통이 되고 하나가 됩니다. 서로가 마음을 소통하고 살면 서로 위안이 되고 의지가 될 것 같습니다. 딸의 마음을 읽자는 말씀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원기 109년 6월 4일
경계 : 남의 개에게 우리 개가 물림
남편과 전화통화를 하다 콩돌이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였다.
“당신이 많이 놀랐겠네.”라는 말을 듣자, 눈물이 난다.
눈물이 나며 떠오른 장면은 콩돌이가 숨을 크게 쉬고 심장이 펄떡거림을 느꼈던 순간이다. 그 개가 주인에게 끌려가 묶여 있게 되자, 나는 주저앉아서 콩돌이를 안아주었고, 상처를 살폈다. 콩돌이 표정과 숨소리, 심장 박동으로 느껴지는 감정이 “목줄을 그렇게 잡아당기면 나만 아프지. 쟤 좀 어떻게 하지, 그렇게 나만 당겨대면 어떡해. 휴~”였다.
말을 못 할 뿐, 자기 감정표현이 분명한 개이다. 알아차리는 건 사람 몫이다. (미안하다고 하였고, 상처를 소독할 때마다 미안하다고 어서 나으라고 말해주긴 하였다) 어찌하지 못한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아직 남아있다.
상대 개가 달려들면 때려서 떨어뜨리는 행위가 즉각적인 대처일 수 있음을 머리로는 이해하였다. 하지만 상대방의 원망을 들을 수 있는 두려움, 내가 물릴 수 있다는 두려움, 여러 두려움으로 못하겠다는 것이므로 내 안에서 갈등이 일어나서 혼란스러웠다.
그보다 더 좋은 방안이 있었다. 그 사람에게 바로 “목줄 채우시오!”라고 말로 표현하였어야 했다. 바로 목줄을 채웠다면 두 군데 상처가 한 군데였을지도 모르고 더 작은 상처가 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황하여 마음 전달을 하지 못하였다.
“우리 개는 순해요. 괜찮아요.”라는 말에 영지가 가리웠다. 속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개가 다가오는 것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내가 간과한 것은, 콩돌이가 자기보다 큰 개가 다가오면 경계하는 소리(으르르~)를 낸다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듣자, 그 개가 물기 시작했으므로. 그 중요한 행동 패턴을 내가 완전히 잊고 있었으므로 내가 나에게 속은 것이다. 본능적인 반응에 대해 기억하고 이해하고 대처해야 함을 배운다.
목줄 풀린 개를 만난다면, 주인에게 목줄 채우도록 말하고 다가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지팡이나 막대기를 들고 다니면 개가 접근하지 못한다는 말도 들었으니 들고 다녀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일기기재를 하면 분명해지고 풀리지 않던 것이 풀리는 것이구나. 이제 좀 속이 시원하다.
교무의 의견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셨네요. 산책하는 도중 목줄 풀린 개와 마주치게 되었고 그 개가 콩돌이를 물었네요. 많이 속상하셨겠습니다. 반려견은 자녀와 같다고 하는데 내 자녀가 개에게 물렸다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일어나고 개 주인에게 강력한 항의를 하고 싶기도 하고 여러 생각이 일어났을 것 같습니다.
강아지도 생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특성도 있습니다. 큰 개들은 사람에게는 순하나 개들끼리는 다릅니다. 상대 개의 주인은 사람에게 순하므로 우리 개는 순하다고 표현을 한 것이고 다른 개에게 순한지는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일부분만 알고 전부는 알지 못하면서 전부를 아는 양 말하기도 합니다.
개들은 다른 개를 보면 싸울 수 있는 대상인지 도망가야 할 상대인지 압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그 말을 했을 텐데 우리는 알아차리질 못하지요. 강아지가 두렵다고 했을 때 안아버렸으면 물리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우리 개는 순해요 라는 말을 들으면서 방심을 하고 있었는데 상대방도 일부만 아는 어리석음이요 본인도 개의 특성을 모르는 어리석음입니다. 어리석음을 하나하나 깨우쳐가는 것이 지혜로움을 얻는 길인 것 같습니다.
원기 109년 6월 4일
경계 : 어머니에게 잘 가지 않는다는 말
남편이 나한테 어머니에게 잘 가지 않는다고 돌려 말한다. 순간 직장 생활 하는 나에게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야속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본인은 집안일도 도와주지 않으면서 나한테 시댁일까지 챙기라고?’
사실 나는 일이 있을 때 그리고 일요일 법회 때 어머니를 모시고 가기 때문에 시댁에 무심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 교당 모시고 간 것은 시댁에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시댁에 가서 청소도 하고 식사를 챙겨드려야 어머니에게 신경을 쓴다고 생각을 하는 거 같다.
남편은 어쩌다 한 번씩 어머니 댁에서 식사하고 오면 뭔가가 석연치 않은지 한 번씩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 아쉬운 부분을 내가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시댁과는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외면하고 싶었다. 선을 넘으면 요구사항이 많아지고 내가 피곤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기껏해야 시간이 주말밖에 없는데 그 시간까지 시댁에 할애하기 싫었고 집안일을 잘 도와주지 않는 남편에게 원망심이 들어 나도 몸을 사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집안일에 선을 긋는 것처럼 나도 시댁에 선을 긋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일기를 기재하다 보니 남편이 집안일에 선을 긋고 있는 것이, 내 마음에도 남편과 똑같이 선을 긋고 있는 것을 발견해 냈다. 그 마음을 보니 내가 남편하고 똑같이 하고 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이번 기회에 선을 넘어봐야겠다.
교무의 의견
아들은 무심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마음을 읽고 돕는 것도 잘 못 합니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대신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아들처럼 남편도 어머니를 뵙고 올 때면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고 뭐라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났을 것입니다. 비록 그 마음은 있지만 내색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시부모와 담쌓고 사는 사람이 많은데 매주 어머니를 법회에 모시고 가시네요. 교당에 가면서 인사도 드리고 마음을 소통하니 어머니께 아주 많이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
남편이 가사를 돕는 것과 시어머니 돕는 일을 결부하여 네가 도우면 나도 돕고 네가 안 도우면 나도 안 돕는다는 생각을 하고 계시네요. 이렇게 상대심을 가지면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어서 내가 상대에게 해 주는 것은 많아 보이고 남이 나에게 해 주는 것은 작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할 일이면 하는 것이고 안 해야 할 일이면 안 하는 것이지 비교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원기 109년 6월 4일
경계 : 남편의 힘들어하는 모습
남편에게 인정받고 싶은 내 마음을 알아줘~~. 또는 말 안 한다고 내 마음을 몰라~~. 이렇게 질책하기도 하고 서운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요즘 남편의 사업이 힘들어서 스트레스로 감기도 잘 낫지도 않고 오래 가고. 여러 가지 일을 겪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난 남편의 마음을 모른척했다. 한편의 마음은 이 위기를 잘 이겨내겠지 하는 마음. 그러면서 안타까운 마음. 또 한편은 내 일이 아니니 알아서 하겠지 하는 나는 모르쇠의 마음. 또 다른 마음은 내가 말할 때 듣지 않더니 야속한 마음.
이렇게 한 가지 일에도 여러 가지 마음이 나는 것을 보면서 내가 남편이었다면 의연하게 지낼 수 있을까? (남편도 힘들지만, 가족들에게는 의연한 모습을 보인다.)
난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타박했던 나의 모습이 철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동안 남편이 몰라준 게 아니라 알면서도 그냥 믿고 바라봐 주고 있었기도 했겠구나~~. 말로 해서 알아주는 마음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마음이고, 그저 바라보고 기다려주는 것도 내 마음을 알아주고 있는 마음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남편을 바라보면서도 믿고 기다리는 마음. 응원해주고 기도하는 마음. 이런 내 마음을 또 보니 남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은 마음도 들어진다.
교무의 이견
상황에 따라 적절한 말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말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마음을 정확히 전달을 못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공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읽으면서 나의 마음을 전달하면 소통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의 어려움에 남편의 하는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가 남편의 어려움에 내가 표현하려니 어려움이 있지요. 좋은 경험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