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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왕룽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소망이 없었다. 양지쪽에 의자나 내놓고 천치 딸을 곁에 앉혀 두고 졸거나 담배를 태우면서 편안한 세월을 보내면 그것으로 족했다. 땅은 소작을 주었으니 수고를 안 들여도 돈은 저절로 들어올 것이다. 진작부터 이렇게 살 걸 그랬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만사는 그렇질 못했다. 장남은 모든 것이 무사하면 좀이 쑤셔 못 견디는 성질이기 때문이다. 장남은 아버지 앞에서 말했다. "이 집에는 아직도 모자라는 것이 많습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대갓집이라고 할 수 없어요. 이제 반 년 안으로 동생의 결혼식도 올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손님용 의자도 모자라고 찻잔이나 탁자, 방의 세간살이도 모자랍니다. 게다가 손님을 청하는데 더럽고 시끄러운 빈민들이 우글거리는 저 대문을 거치게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동생이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 저 가운데 뜰도 필요할 겁니다." 왕룽은 화려하게 차리고 서서 이야기를 하는 아들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눈을 감으면서 담배를 한번 세게 빨고 나더니 신음하듯 말했다. "그래, 그래서 어쩌겠다는 게냐." 장남은 아버지가 귀찮아 하는 것을 알면서도 도리어 언성을 높여 말했다. "바깥 채도 다 사 버리자는 겁니다. 돈도 땅도 많이 있으니까 우리에게 어울리는 생활을 하자는 말씀이에요." 왕룽은 담뱃대를 보며 말했다. "그으래...... 땅은 내 땅인데...... 너는 손도 대보지 않았을 텐데......" 이 말을 듣자 장남은 언성을 높여 소리쳤다. "저를 선비로 만든 사람은 바로 아버지였습니다. 부잣집 아들로서 남부끄럽지 않게 살려는 아들을 아버지는 기껏 머슴과 같이 대하시는군요." 그리고 큰아들은 분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는지 뜰안 소나무에다 머리를 부딪치려고 했다. 아들이 원래 신경질적인 것을 알고 있는 왕룽은 행여나 다칠까 질겁을 하고 황급히 말했다. "알았다. 네 맘대로 해라. 다만 나를 귀찮게 하지만 말아라." 이 말을 듣자 장남은 대단히 기뻤다. 그리고 아버지의 생각이 변하기 전에 얼른 그 앞을 물러 나와서 사고 싶은 것을 재빨리 사들이기로 했다. 아름다운 조각을 한 소주(蘇州)산 의자랑 탁자랑 방 입구에 드리울 비단 희장 및 크고 작은 꽃병, 벽에 걸 미인화, 족자 등등을 부지런히 사 모았다. 그리고 정원도 전날 남방에서 보고 온 것과 똑같이 화려하게 꾸몄다. 그런 일로 장남은 한동안 바빴다. 이러한 일을 하노라면 거의 매일 바깥쪽의 가운데 뜰을 하루에도 몇 차례씩 나다니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곳에 살고 있는 빈민들의 냄새가 코를 찔렀으므로 그는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코를 막고 그 앞을 지나가곤 했는데 빈민들은 그가 지나가고 나면 비웃는 투로 자기네끼리 말했다. "저놈은 제 아비 살던 집 문턱에 쌓였던 거름 냄새를 잊은 모양이야." 그런데 명절이 되면 집세가 정해지게 된다. 그해 명절 즈음에 빈민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방이며 가운데 뜰의 세가 껑충 뛰어오른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왕룽의 장남이 한 짓임을 누구나 알았다. 하기야 장남은 머리가 영리해서 아무 말도 입 밖에 내지 않고 타관에 가 있는 황씨 아들과의 편지 왕래로 그렇게 결정 지은 것이다. 그는 누구에게 빌려 주든 돈만 많이 받으면 되는 것이니까 두 말 없이 승낙했다. 이렇게 해서 바깥 채에 살고 있던 가난한 사람들은 쫓겨나고 말았다. 그 빈민들은 부자 사람의 횡포를 저주하며 어디 두고 보자고 이를 바락바락 갈면서 뿔뿔이 그곳을 흩어져 헤어졌다. 그러나 왕룽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안방에만 틀어박혀 바깥 출입을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자고 먹고 마시기만 하면서 만사를 장남에게 맡겼다. 장남은 솜씨 좋은 목수와 석공을 불러서 그 가난뱅이들이 살던 방과 뜰, 그 사이로 통하는 반월형의 가운데 문들을 수리하고 여러 곳에 연못을 파서 금붕어를 키웠다. 그런 일들이 만족할 만큼 아름답게 끝나자 이번에는 또 못에 연꽃과 수련을 심고 또 인도산의 붉은 열매가 달리는 대나무를 심는 등 그가 남방에서 본 것을 그대로 치장했다. 그리고 그의 아내가 구경하러 나올라치면 함께 뜰과 방안을 구경하고 아내가 혹 미흡하다고 말하면 그는 "참, 그렇지." 하면서 곧 그녀의 맘에 들도록 고쳤다. 마침내 왕룽의 장남이 이렇게 집을 치장하는 것이 성안 사람들의 큰 화제가 되었다. 그들은 황부잣집에 새 부자가 들어가더니 다 허물어진 그 집을 옛날의 화려했던 모양으로 다시 되살렸다고 수근거렸다. 그리고 왕룽을 왕 서방이라고 부르지 않고 왕 대인이라든가 왕 영감이라고들 높여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많은 돈이 왕룽의 손에서 언제 나갔는지도 모르게 흘러나가고 있었다. 장남은 늘 돈을 타낼 때는 이렇게 말했다. "은전 백 닢이 필요합니다." "저 문간에 돈을 들이면 새 문처럼 깨끗하게 단장되겠습니다." "저쪽에는 긴 탁자를 하나 놓아야겠어요." 그러면 왕룽은 방안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두 말 없이 필요한 돈을 꺼내 주는 것이다. 추수 때면 많은 돈이 들어오기 때문에 아낄 필요가 없었다. 얼마나 많은 돈을 장남에게 내어 주었는지 모른다. 왕룽은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둘째 아들이 아직 해가 뜨기도 전에 나와서 말했다. "아버지, 이렇게 돈을 물쓰듯 마구 쓰시면 어떻게 합니까? 집을 궁궐 같이 할 필요가 어딨어요. 그만한 돈을 2할로 빌려 주면 굉장히 큰 돈이 될 텐데...... 이까짓 연못, 열매도 달리지 않는 화초나무, 아무 쓸모 없는 수련을 심어서 무엇합니까." 왕룽은 둘째 아들과 장남이 이런 문제로 싸움이라도 나면 어떻게 할까 걱정이 돼서 둘째에게 달래듯 말했다. "좋은 일 아니냐. 다 네 혼인 잔치를 성대히 하려고 그러는 게야." 그러나 둘째 아들은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며 비웃는 투로 말했다. "잔치 비용이 신부의 열 갑절이나 든다는 건 우스운 일인데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저희들이 나누어 가질 재산이 형의 허영심으로 탕진된다는 것은 참을 수 없어요." 왕룽은 둘째의 고집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좋아, 좋아...... 더 이상 돈은 안 줄 테야. 네 말이 옳다, 옳아." 둘재는 형이 쓴 돈을 빠짐없이 적은 종이를 꺼냈다. 왕룽은 둘째가 그것을 읽으려 하자 황급히 말했다. "나는 아직 식사 전이다. 배가 고파 기운이 없구나. 그 이야기는 다른 날 하도록 하자." 왕룽은 둘째를 그곳에 둔 채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날 저녁 그는 장남을 불러서 말했다. "이 집 치장은 그만해 둬라. 이만해도 됐어. 아무튼 우리들은 촌사람이니까." 그러자 장남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성안에선 우리 집을 왕 영감님댁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체면에 어울리는 집을 만들어야 합니다. 동생이 돈밖에 모른다면 저희 내외가 이 가문을 지키겠습니다." 왕룽은 나이가 많아지면서 찻집에 드나드는 것도 뜸해지고 곡물 가게도 둘째가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나설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안에서 자기를 어떻게 평하고 있는지 몰랐던 왕룽은 한없이 그 말이 기쁘게 들렸다. "그러냐. 그러나 부잣집이라 해도 땅에서 나와 거기에 뿌리를 박고 있으니까 그걸 알아야 돼." "그러나 언제까지고 흙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가지도 뻗고 꽃이 피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왕룽은 아들이 글줄이나 좀 안다고 툭하면 아는 체하는 것이 싫었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땅속 깊이 뿌리를 박고 있어야 해." 해가 저물면 왕룽은 그의 방앞 뜰에서 황혼의 정적을 즐겼으므로 그만 아들이 제 방으로 돌아갔으면 했다. 그러나 아들은 나가지 않고 또 입을 열었다. "그것은 그렇다치고 또 드릴 말씀이 있어요." 왕룽은 들고 있던 담뱃대를 내던지며 화를 버럭 냈다. "또 귀찮게 굴 테냐?" 젊은이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제 문제가 아닙니다. 동생의 문제입니다. 그 애를 공부시키지 않고 그냥 버려둘 수 없잖아요. 공부를 시켜야 해요." 왕룽은 처음 듣는 일이라 속으로 놀랐다. 그는 오래 전부터 막내를 무엇에 쓰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는 글 많이 아는 놈 필요 없어. 둘이면 충분해. 막내놈은 내가 죽고 난 뒤에야 농사일을 맡을 테니까." "그러시니까 그 애는 밤낮 울기만 해요. 얼굴도 창백하고 저렇게 몸이 말라 있지 않습니까." 왕룽은 세 아들 중에 하나만은 농사를 시킬 작정이었다. 막내에게 의향을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지금 이렇게 장남의 말을 듣고 보니 불의에 이마를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왕룽은 땅바닥에 팽개쳤던 담뱃대를 천천히 주우면서 막내 아들에 대해 생각했다. 과연 그 아이는 다른 아들과 달랐다. 제 어미를 닮아서 언제나 말이 없고 표정도 없어 도무지 속에 무엇을 품고 사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 그 애가 공부하겠다고 하더냐?" 왕룽은 맥 없이 물었다. "직접 물어 보십시오." "그것도 그렇지만 한 녀석만은 농사를 지어야 해." "그건 왜 그렇지요? 농사를 안 지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잖아요. 체면상도 좋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욕해요. 자신은 임금 같은 생활을 하면서 자식은 농사꾼을 만든다고......" 장남은 아버지가 세상 평판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말꼬투리를 이렇게 잡았다. "가정 교사를 들여서 글을 가르치세요. 그리고 남방 학교에 보내서 훌륭히 공부 시킵시다. 집안 일은 제가 하고 장사는 둘째가 하고 있으니까 그 애는 제 생각대로 하게 합시다." 왕룽은 겨우 입을 열더니 그 애를 불러오도록 했다. 잠시 후 셋째 아들이 아버지 앞에 섰다. 지금껏 무관심했던 왕룽은 막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꼭 다문 입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닮지 않았다. 묵묵히 말이 없고 정직해 보이는 얼굴만이 자기 어머니를 닮은 것 같았다. 그러나 잘난 것으로 말하자면 시집 보낸 막내딸을 빼놓고는 그의 아들 중에 가장 뛰어난 것이다. 구태여 흠을 잡는다면 창백한 이마에 숱이 많은 눈썹이 앳된 얼굴에 비해 너무 굵은 것이 탈이었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리면 검은 두 개의 눈썹이 한데 달라붙어서 일직선이 되는 것이다. 왕룽은 물끄러미 막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는 글을 배워야 한다고 네 형이 말하는데......" 막내 아들은 거의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대답했다. "네." 왕룽은 담뱃대의 재를 털고 새 담배를 재우며 천천히 슬픈 어조를 띠며 말했다. "음, 그래. 농사일이 싫단 말이지. 지식인은 많아도 농사할 사람이 없단 말이다." 막내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름 두루마기를 입은 막내 아들은 잠자코 서 있기만 했다. 너무나 오래 말이 없자 왕룽은 신경질이 나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왜 말을 못해? 농사일이 싫단 말이냐?" 아들은 단 한마디로 "네." 하고 대답했다. 왕룽은 여러 가지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해도 자식들이 내 맘대로 안 되는군. 아이들이 늙은 아버지를 걱정만 시킨다. 이런 무거운 짐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무튼 왕룽은 자식들로부터 모욕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다시 그는 화를 버럭 내어 소리 질렀다. "네가 어떻게 되든 나는 모르겠다. 보기도 싫으니 나가 버려." 아들은 얼른 아버지 앞을 떠났다. 혼자 남게 된 왕룽은 두 딸이 아들보다 낫다고 생각되었다. 두 딸 중에 하나는 천치라서 먹을 것과 헝겊 조각만 주면 언제나 만족하고, 하나는 시집 보냈기 때문에 그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다. 이윽고 황혼이 짙어 가고 어둠이 그의 몸을 에워쌌다. 왕룽의 노여움도 어느덧 사라지고 결국 아들들이 생각한 대로 해 주기로 마음이 돌아앉았다. 그는 장남을 불러 이렇게 일렀다. "그 애에게 가정 교사를 불러 줘라. 제 마음대로 하게 해. 나에게 귀찮게만 하지 말아다오." 그리고 왕룽은 다시 둘째를 불렀다. "들일을 할 자식이 없어졌으니 소작료나 추수 때 논밭에서 들어오는 돈은 네가 관리하도록 해라. 너는 저울도 볼 줄 알고 말질도 잘 알테니 집의 관리인이 돼 다오." 둘째 아들은 몹시 기뻤다. 지금부터 모든 금전은 그의 손을 거쳐야만 유통이 가능한 것이다. 어느 정도의 수입이 들어오는가도 알 수 있고 또 집안에 쓰이는 돈이 필요 이상으로 나가게 된다면 아버지에게 보고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왕룽이 어느 아들보다도 이상히 여긴 것은 이 둘째 아들의 성격이다. 그 자신의 잔칫날이 가까와 오자 자기 자신의 일인데도 결혼 비용을 지극히 아꼈다. 음식까지 구별해서 성안 사람들에게는 좋은 음식을 내고 소작인이라든가 성 밖 사람에겐 따로 식탁을 차려 맛 없는 음식만 내놓게 했다. 성 밖 사람들은 늘 못 먹고 못 살기 때문에 조금 나은 음식이기만 해도 대단한 음식인 줄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 축하 선물 같은 것도 면밀한 계획을 세워 머슴과 종들에게는 선물을 아주 약소한 것으로 했다. 그는 뚜챈에게도 겨우 은전 두 닢을 주었을 뿐이다. 그녀는 비웃으며 많은 사람이 있는 앞에서 들으라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진짜 대갓집은 돈을 가지고 인색하지 않는 법이죠. 이 댁에서, 이 저택에서 살 만한 자격이 있다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군요." 형은 이 말을 듣자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 그 소문이 퍼질까 두려워 그녀에게 슬그머니 돈을 집어 주고 대신 동생의 처사에 분개했다. 이렇게 하여 신부가 가마 타고 문안에 들어오고 손님들이 모여드는 잔칫날도 장남과 둘째는 보이지 않게 서로 다투게 됐다. 또 장남은 동생이 인색한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또 제수가 촌 여자라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이날 잔치에 신분 있는 성안 친구들은 청하지도 않았다. 그를 경멸하며 방관만 하였다. '아버지의 지체로 생각한다면 구슬잔이 손에 들어올 것인데 동생은 기왓장을 골랐으니......' 동생 내외가 손위에 대한 예의로 그들 부부에게 큰절을 했을 때에도 그는 무뚝뚝하게 약간 머리만 끄덕였을 뿐이다. 장남의 아내도 새침맞고 건방지게 이런 경우에 형식적으로 꼭 필요한 답례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왕룽의 손자 말고는 아주 평화롭고 아무 부족이 없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왕룽 자신까지도 렌화의 방과 뜰이 잇달아 있는 자기의 큰 조각이 있는 침대에서 눈을 뜨면 때로는 그 소박하고 어둠침침한 흙벽집에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거기에서는 식은 차를 어디에 버려도 조각이 있는 세간을 더럽힐 염려가 없었고 한 발자국만 밖으로 나가면 자기의 밭인 것이다. 왕룽의 아들들은 한 사람도 마음 편한 사람이 없었다. 장남은 돈 쓰는데 인색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욕이나 먹지 않을까 봐 늘 걱정이었고 또 성안에 귀한 손님이 와 있을 때는 마을 사람이 대문을 들어서다가 창피나 당하지 않을까 마음을 졸였다. 둘째는 이와 반대로 돈을 헤프게 쓰지 않나 근심이었다. 셋째는 농가의 자식으로 허송 세월을 보냈던 시간을 되찾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다만 아무 걱정 없이 아장거리고 집안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왕룽의 손자 뿐이다. 이 어린것은 이 집 말고는 문밖을 모른다. 그놈은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자기만을 귀엽게 여긴다는 것을 알 뿐이다. 왕룽도 손자와 놀고 있을 때는 마음이 평화롭다. 손자를 바라보거나 웃거나 넘어지는 것을 붙들어 일으키고 있을라치면 세월 가는 줄 모른다. 그리고 왕룽은 그의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긴 띠로 손자를 묶어서 넘어지지 않게 하기도 했다. 손자는 연못 속에 물고기를 아주 신기한 듯이 흥미롭게 가리키기도 하며 뜰의 꽃들을 함부로 꺾기도 하고 무엇이든 제 마음 내키는 대로 했다. 이렇게 왕룽은 그의 손자에게만 위안을 얻었다. 손자는 이 아이 하나 뿐이 아니었다. 맏며느리는 꼬박꼬박 규칙적으로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아이를 낳을 때마다 유모를 구해 들였다. 해마다 손자와 유모가 늘어갔다. 누가 "큰아드님 방에 또 하나 태어났다." 하고 말하면 왕룽은 그저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응, 얼마든지 낳아라. 먹고 살 땅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둘째 며느리가 아이를 낳았을 때도 왕룽은 기뻤다. 처음은 딸이었는데 그것은 마치 맏동서에 대한 체면을 세운 것처럼 되었다. 이렇게 하여 왕룽은 5년 동안에 사내애 넷에 계집애 셋을 가지게 되었다. 뜰에는 아이들의 웃는 소리와 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시끄러웠다. 5년이란 세월은 어린애나 노인 아닌 사람들에게는 잠깐이었다. 왕룽은 이 사이에 손자 일곱을 얻고 늙은 몽상가인 삼촌 내외에게는 먹이고 입히고 아편을 달라는 대로 주기는 했지만 실은 삼촌의 일은 거의 잊고 지냈다. 왕룽의 가족이 성안으로 이사온 지 5년째 되던 겨울은 30년 이래 처음 찾아온 강추위였다. 성벽 주위의 해자가 얼어붙어서 그 위를 사람들이 걸어서 왕래할 수 있다는 것은 왕룽의 기억으론 처음이었다. 얼음과도 같은 한풍이 북동쪽에서 쉴 새 없이 휘몰아쳐 양털이며 모피 옷을 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다. 집안의 모든 방에 숯불을 피웠지만 그래도 입김이 하얗게 보일 정도로 방안은 냉기가 돌았다. 삼촌 내외는 오래 전부터 아편으로 몸이 마를대로 말라 있었다. 마치 마른 나무토막처럼 밤낮 침대 위에 누워만 있었다. 몸뚱이에 온기라곤 조금도 없었다. 왕룽은 삼촌이 두 번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으며 몸을 움직이면 피를 토한다는 말을 듣고 문병을 갔다. 삼촌은 몇 시간밖에 숨이 남아 있지 않았다. 왕룽은 그리 좋지 않은, 그러나 쓸 만한 관을 두 개 사다 삼촌 내외가 누워 있는 방안에 들여다 놓았다. 사후의 염려일랑 말고 안심하라는 표적이었다. 삼촌은 떨리는 음성으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고, 맙, 구, 나. 네가 진정 내 자식이로구나. 어디를 돌아다니는지 모르는 내 친자식보다 훨씬 나아." 그러자 숙모가 말했다. 숙모는 아직도 생기가 있어 보였다. "우리가 죽은 뒤라도 그 애가 돌아오거든 장가를 들여 다오. 그렇게 해야 우리 집의 손이 끊어지지 않아." 왕룽은 그렇게 하겠다고 삼촌 내외에개 약속했다. 그는 삼촌이 어느 시각에 운명했는지 몰랐다. 어느 날 저녁 때 하녀가 마실 것을 들고 방에 들어가 보니 이미 삼촌이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바람이 온누리에 눈을 구름처럼 흩날리게 하던 몹시도 추운 날 왕룽은 삼촌의 관을 묻었다. 가족 묘지 중에서 옆의 아버지 묘보다는 좀 낮게 자기 것으로 예정하고 있는 곳보다는 위에 묻었다. 그리고 왕룽은 그의 온 가족에게 1년 동안 상복을 입도록 명했다. 그것은 그들을 괴롭게 하던 늙은이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뜻이 아니고 체면상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삼촌이 죽고 난 뒤 왕룽은 숙모를 그대로 혼자 둘 수 없었으므로 성안의 집으로 옮기게 했다. 그는 뜰에서 멀리 떨어진 단칸 방에 숙모를 누워 있게 하고 뚜챈을 시켜 시종 한 사람이 붙어 있도록 하였다. 숙모는 극히 만족하고 밤낮 아편을 빨며 누워만 있었다. 침대 곁 그녀의 눈앞에 관이 놓여 있는 것은 그녀에게는 무한한 위안을 주었다. 왕룽은 그렇게 비대한 몸집과 혈색 좋은 살빛을 하고 큰 소리만 지르던 숙모가 무섭게만 생각되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며 지금 그 여위고 깡마른 북어처럼 고요히 누워 있는 것을 이상스러워 했다. 마치 몰락해 버린 황부잣집 마나님의 운명같이 여겨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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