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고기와 푸른 알약 “김 노인, 오늘도 기어이 그걸 시켰구먼.” 단골 대포집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종수를 보며, 주방 앞을 지키던 춘자 아지매가 혀를 끌끌 찼다. 종수의 식탁 위에 놓인 것은 보기만 해도 혈관이 비명을 지를 것 같은 자글자글한 돼지 오겹살 수육과 노란 양은주전자에 담긴 막걸리였다. 종수는 그저 허허, 웃으며 지팡이를 벽에 기대어 놓았다. 올해로 일흔여덟. 종수의 손가락 마디마디는 거칠고, 눈가에는 세월이 깊은 골을 파놓았지만, 음식 앞에서의 눈빛만큼은 청년 못지않게 빛났다. 사실 그의 주머니 속에는 아침에 병원에서 받아온 처방전이 들어있었다.
[진단 및 권고 사항] 의사는 젊고 깐깐했다. 그는 모니터의 그래프를 가리키며 “어르신, 수치가 또 올랐습니다. 이대로 가시면 수명이 줄어들어요. 싱겁게 드시고, 고기는 멀리하세요”라고 로봇처럼 말했다. 집에 오니 며느리도 똑같은 소리를 했다. “아버님, 현미밥에 브로콜리 데친 것 좀 드세요. 요즘 백 세 시대라는데 건강하셔야죠.” 종수는 싱크대 위에 놓인 무미건조한 초록색 채소들과 밍밍한 저염식 국을 바라보았다.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 서글픔이 밀려왔다. ‘백 세 시대라... 수치의 노예가 되어 백 년을 산들, 그게 무슨 재미란 말인가.’
입안에서 피어나는 진짜 인생 종수에게 먹는 즐거움은 단순한 칼로리 섭취가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감각하는 유일한 의식(儀式)이었다. 그는 잘 익은 김치 한 점에 비계가 도톰하게 붙은 수육 한 조각을 감쌌다. 그리고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입안의 감각] 고소한 지방의 풍미 ──> 아삭한 김치의 매콤함 ──> 부드러운 살코기의 식감 “키야….”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씹을 때마다 육즙이 입안 가득 퍼졌고, 매콤하고 짭짤한 양념이 혀의 모든 미뢰를 깨웠다. 뒤이어 마신 차가운 막걸리 한 모금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하루의 텁텁함을 씻어내렸다. 병원에서 들었던 “염분”, “콜레스테롤” 같은 차가운 단어들이 막걸리 한 잔에 깨끗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만약 의사의 말대로 평생 수치를 맞추기 위해 풀때기와 삶은 닭가슴살만 씹으며 연명했다면, 그의 영혼은 진작에 굶어 죽었을 것이다. 고독한 노년의 시간 속에서, 이 강렬하고 따뜻한 맛이야말로 그를 외롭지 않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친구였다.
표준이 아닌, '나'로 사는 삶 옆 테이블에서는 비슷한 또래의 노인들이 모여 앉아 서로의 당뇨 수치와 혈압 약 종류를 훈장처럼 늘어놓고 있었다. “야, 나는 이번에 당화혈색소가 6.2로 떨어졌어.” “좋겠네. 난 혈압 약을 한 알 더 늘렸어. 오래 살려면 참아야지.” 그들은 맛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치 기계를 유지보수하기 위해 기름을 치듯 의무적으로 음식을 씹고 있었다. 종수는 그들을 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의학이 정해놓은 ‘표준 수치’의 틀에 자신을 억지로 구겨 넣고, 매일 아침 저울 위에 올라가 소수점 아래의 몸무게에 일희일비하는 삶. 그것이 과연 ‘살아있는’ 삶일까, 아니면 그저 ‘죽지 못해 버티는’ 삶일까. 종수는 남은 막걸리를 잔에 가득 따랐다.
“내 남은 날들이 백 날이든, 천 날이든… 나는 살아있는 동안 진짜 맛을 보고, 진짜 행복을 느끼다 가련다.” 창밖으로 붉은 노을이 길게 지고 있었다. 해는 저물어가고 있었지만, 그 빛깔만큼은 그 어떤 낮의 태양보다 강렬하고 아름다웠다. 종수의 노년도 그랬다. 비록 몸은 쇠약해지고 수치는 붉은 경고등을 켜고 있었지만, 따뜻한 수육 한 점과 달콤한 막걸리 한 잔이 있는 한, 그의 오늘 밤은 그 누구보다 풍요롭고 찬란했다. 그는 다시 한번 젓가락을 들었다.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