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2월 13일(금) 하박국 3:1-19(1st 3:1-7) 찬송 235장
1.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3.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는도다(셀라)
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4. 그의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의 손에서 나오니 그의 권능이 그 속에 감추어졌도다
5. 역병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의 발 밑에서 나오는도다
6.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여러 나라가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엎드러지나니 그의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7. 내가 본즉 구산의 장막이 환난을 당하고 미디안 땅의 휘장이 흔들리는도다
(개역 개정)
- 심판자와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대한 하박국의 찬양 -
하나님과 하박국 선지자간의 두 번에 걸친 질의 응답을 보도하고 있는
본서 본론 전반부 1:2-2:20이 어제 말씀으로 마감되고,
이제 3장은 본서 본론 후반부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두 번에 걸친 질의 응답을 통해 신앙적 의문을 모두 해결받은
하박국 선지자의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전반부 1, 2절은 하박국 선지자의 기원적 찬양이다.
여기서 선지자는 두 차례의 질의 응답을 통해 범죄한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및 유다를 심판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놀라운 계획을 접하여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이 가득찬 상태에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진노 중에라도 자신과 선민 이스라엘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이어 중반부 3-15절은 심판주로 강림하실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다.
여기서 하박국 선지자는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강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상징적 언어를 사용하여 장엄하고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별히 이 부분은 실제로는 미래에 있을 사실을
마치 현재 일어나는 일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이처럼 미래의 일을 현재에 일어나는 일처럼 느끼게 하는 것을
소위 사실적 현재(graphic present) 용법이라 한다.
이는 미래의 일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시사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매우 긴박감을 느끼게 하는 효과를 준다.
끝으로 후반부 16-19절은 남유다의 회복에 대한 확신을 노래한다.
여기에는 남유다의 범죄로 인해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선지자의 두려움(16절)과 그러한 환란이 지난 후에 얻게 될
구원으로 인한 기쁨(17-19절)이 교차되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처음 하나님께 도전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던
하박국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즉 그는 하나님의 뜻을 모를 때에는 그 마음이 불만으로 가득 찼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신 뜻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머리 숙여 찬양을 드리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장차 얻을 생명의 면류관을 소망하면서
이 땅에서 당하는 어떠한 고난도 감수하며
그 가운데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변치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러한 하박국의 태도는 불의와 불법이 난무하고 의인이 고난을 당하고
악인이 번성하는 것이 비일비재한 구속사적 현실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원망을 갖기 쉬운 우리들에게 살아 있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이외에 본문이 주는 교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박국의 찬양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자기 인식의 결과이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호4:1; 6:6) 충만해짐에 따라
영혼으로부터 나온 진정한 신앙고백이다.
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충만하여질 때 우리도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마28:20; 눅24:15-16)
둘째,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은 전우주적인 사건으로서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그 행위대로 형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심판에 대한 성경의 모든 예언은 불신자들에게는 두려움과 경고의 메시지이지만
우리들에게는 찬양과 감사와 소망의 소식이다.(마16:27; 고후5:10; 계20:12)
2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박국 선지자는 자신이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다고 고백하면서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고 간구한다.
이러한 하박국의 간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 자가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할 바른 자세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 선지자는 즉시 ‘주의 일’
곧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기를 바란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 일’이 무엇인가?
2절은 종종 우리들이 교회의 부흥을 기원하며 애용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구절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 함부로 인용하는 이들이 많다.
여기서 선지자가 속히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구하는 바 ‘주의 일’에는
물론 선민을 멸망케 한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선민의 회복 역사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시는 일이 있다.
그것은 타락한 선민의 나라 유다를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삼아 심판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주의 일’은 선민들에게 마냥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거기에는 선민들에 대한 심판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일이 이루어질 때 선민들은 뼈를 깎는 처절한 시련의 날을 보낼 것이다.
그렇다면 선지자가 이 같은 기도를 올려 드린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가 선민들, 곧 동족들의 안위에 무관심해서인가?
아니면 선민들의 악에 대해 격노해서인가?
사실 그는 선민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죄와 불의에 대해 의분을 발하였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 하박국이 선민들 모두에 앙심을 품었다거나
그들의 안위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다.
이후 바벨론이 선민들을 멸망시키고 압제할 것이란 말씀을 들었을 때
그 같은 계획을 갖고 계신 하나님의 행사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고 토로하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이사야나 예레미야, 에스겔 등 선지자들이 선민과 자기 자신들을
동일시하여 선민들이 당하는 고난을 자기가 겪는 것처럼 아파하였듯
하박국 역시도 그와 같은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하박국은 선민이 비록 범죄하였다 해도 선민에 대한 애절한 마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같은 마음을 가진 하박국이 어째서 이처럼 하나님 앞에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라고 기도하였는가?
이는 그가 최우선시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그것의 성취였기 때문이다.
하박국 개인의 입장으로서는 선민의 나라인 유다가
하나님을 모르는 악한 이방 나라에 의해 유린당하는 것은 결코 원치 않는 일이지만
그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원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이처럼 간구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이와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 대한 합당한 자세이다.
특별히 우리의 기도는 늘 자기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마6:10)라고
간구하는 것이 기도의 바른 자세이다.
그것이 우리가 원치 않는 일, 심지어 우리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라 해도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지만 그에 이어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것처럼(마26:39) 우리 역시 그와 같이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시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