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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 요한복음 1:12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그리스도인은 자기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내가 누군지 알아야 나답게 사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지 모르면 나답게 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정체성이 있습니다. 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늘나라의 영원한 기업을 상속받은 거룩한 왕가의 자손입니다. ②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약혼한 사이로, 지금 신부 단장을 하며 재림 때 신랑과 영원한 처소에 들어갈 존재입니다. ③ 성령의 전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몸을 성전 삼아 내주하시기에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처소이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령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④ 그리스도의 대사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대표하여 복음을 전하고,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드는 거룩한 특사이자 중보자입니다. ⑤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부패한 세상에서 진리의 맛을 내고, 어두운 세상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공의를 비추는 영적 영향력의 사명자입니다.
저는 이 다섯 가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놀랍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같은 생각을 하시리라 믿습니다. 이 다섯 가지 정체성 중에 가장 기초가 되는 정체성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다니 영광입니다. 할렐루야! 영광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다루겠습니다. 크게 세 가지 주제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조건
한 위대한 왕이 길가의 거지를 왕자로 입양하여 왕궁의 모든 특권을 주었습니다. 처음에 그 아이는 땅에 떨어진 빵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며 매를 맞을까 봐 덜덜 떨었습니다. 그때 왕이 말했습니다. "너는 더 이상 거지가 아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이제는 왕자답게 누려라." 이런 자비로운 왕이 있다면 온 백성이 존경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왕보다 훨씬 더 놀라운 분이 계십니다. 바로 우리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우리에게 믿음의 선물을 주시어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로마서 5장의 말씀처럼 우리는 연약할 때, 죄인 되었을 때, 심지어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마땅히 심판받아야 할 처지였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자격을 보지 않고 은혜로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데에는 필수적인 자격이 있습니다. 그 자격은 우리의 행위나 공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일까요?
1)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워너 솔만(Warner Sallman)의 성화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라》는 요한계시록 3장 20절을 모티브로 그린 그림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이 그림에서 예수님이 들고 계신 등불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진리와 생명의 빛, 그리고 마음속 어둠을 밝히는 빛을 상징합니다. 그림의 핵심적인 영적 포인트는 문 바깥에 손잡이가 없다는 점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사람의 마음 문을 강제로 열지 않으시고, 안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어 영접해야만 들어가실 수 있음을 상징합니다.
우리 마음 중심에는 하나의 보좌(왕좌)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그 보좌에 앉아 내 뜻대로 살았습니다. 영접이란 그 보좌에서 내려와 예수님을 내 삶의 왕이자 주인으로 모셔 앉혀드리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 1:12-13)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사실을 진심으로 믿고, 그분을 내 마음에 주인으로 영접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사람의 혈통이나 뜻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영접할 때 자녀로 새로 태어나는 것, 이것이 바로 ‘거듭남’입니다.
2) 입술로 고백해야 합니다.
마음의 믿음은 입술의 고백으로 완성됩니다. 로마서 10:10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먼저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가는 참된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 다음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심을 입술로 고백해야 합니다. 고백은 마음의 확신을 표현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내 삶의 왕으로 높이는 행위입니다.
고백을 비유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하고 마음속으로 ‘이제 이 집은 내 집이야!’라고 생각만 한다고 내 집이 되지 않습니다. 대금을 치를 준비가 되었어도 계약서에 도장을 “쾅!” 찍어야 법적으로 내 소유가 됩니다. 도장을 찍지 않으면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내 집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으로 예수님의 구원을 믿은 후, 입술로 “예수님은 나의 구주이십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 고백은 계약서에 도장을 “쾅!” 찍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정식 고백을 할 때, 하늘나라의 소유권이 나에게 있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3)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요 3:5).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은 육신의 탄생이 아니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영적 사건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임하실 때 죄로 죽었던 영이 살아나고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오직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오시는 성령님의 역사는 '썩은 우물'의 비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바닥이 드러나고 썩은 물만 고인 우물은 겉을 아무리 깨끗이 청소해도 금세 다시 오염됩니다. 그러나 우물 깊은 곳에서 신선한 암반수가 강력하게 솟구쳐 나오면, 이전의 썩은 물은 저절로 밀려나 사라지고 우물 전체가 깨끗한 생수로 가득 차게 됩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썩은 물과 같은 죽은 영혼을 가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시면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죽은 영혼에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의 영혼을 살리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누리는 특권이 있습니다. 7대 특권을 정리하겠습니다.
제1특권: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특권입니다.
로마서 8장 15절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위대한 분이시지만, 자녀인 우리에게 하나님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엄격한 판사가 아니라 작은 신음에도 귀 기울이시며 뜨거운 품으로 안아주시는 가장 친밀한 "아빠"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엄중했던 냉전 시절,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은 세계의 운명을 결정짓는 장소였습니다. 국가의 장관들도, 막강한 군 장성들도 굵직한 안건을 들고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올 때면 긴장으로 손바닥이 촉촉해졌습니다. 백악관의 주인인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쥔 두려운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집무실에는 아무도 제지할 수 없는 단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대통령의 어린 아들인 '존존(John-John)'이었습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아들 이름은 존 F. 케네디 주니어(John F. Kennedy Jr.)였지만, 언론과 대중 사이에서 '존존(John-John)'이라는 애칭으로 널리 불렸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어린 아들을 다정하게 "존, 존(John, John)" 하고 연속해서 부르던 것을 백악관 취재기자가 듣고 기사에 '존, 존'으로 적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국가 비상 회의가 열리고 있던 어느 날, 어린 아들은 아빠의 집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육중한 대통령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 아빠의 다리를 간지럽히며 장난을 쳤습니다. 책상 앞에서는 장군들이 서류를 들고 쩔쩔맸지만, 대통령은 회의를 잠시 멈추고 책상 아래를 굽어보며 아들을 품에 안아 올렸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며 “존, 존”이라고 불렀고, 아들의 볼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장군들에게는 두려운 통수권자였지만, 존, 존에게는 언제든 달려가 품에 안길 수 있는 다정한 아빠였습니다.
제2특권: 기도응답의 특권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당당히 필요를 구하듯,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의 악한 부모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려 하는데, 하물며 창조주이시며 사랑이 풍성하신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마 7:11).
기도는 내 힘으로 애쓰는 외로운 간구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와의 소통이자 자녀만의 특권입니다. 마음에 염려가 생길 때 낙심하지 말고 아버지께 아뢰십시오. 자녀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기에, 우리는 언제나 담대하게 기도하며 가장 좋은 응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제3특권: 죄 사함과 구원의 확신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죄 사함과 구원의 확신이라는 놀라운 특권이 주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은혜로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죄까지 온전히 용서받았습니다.
성경은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 어떤 죄와 악한 영의 비난에서도 자유롭습니다. 죄로 인한 사망의 법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는 구원의 확신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립니다. 더 이상 죄책감이나 두려움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습니다.
제4특권: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의 특권입니다.
신자는 단순히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에만 머물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모든 풍성한 은혜와 영원한 영광을 물려받을 상속자가 됩니다. 성경은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롬 8:17)라고 선언합니다.
세상의 유업은 썩고 사라지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하늘의 기업은 영원히 쇠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받으신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과 영광이 바로 우리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의 가치에 매여 낙심하지 말고,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상속자라는 정체성을 기억하며 소망 가운데 담대히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상속 사건인 ‘옥타비아누스의 카이사르 유언장 사건’이 있습니다. BC 44년,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후 유언장이 공개되었습니다. 당시 옥타비아누스는 병약하고 지위도 없는 18세의 무명 청년에 불과했습니다. 당대 거물 정치인이나 장군들에 비하면 아무런 힘도, 배경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카이사르의 유언장에는 “옥타비아누스를 나의 양자로 삼고, 내 재산의 4분의 3과 이름, 정치적 유산을 물려준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옥타비아누스가 위대해진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카이사르의 유언장에 '수석 상속인'으로 적혀 있었다는 법적 신분 덕분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로마 제국의 첫 번째 황제가 되었습니다.
18세 무명 청년을 황제로 만든 카이사르의 유언장처럼,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언약인 성경 속에 보잘것없는 나의 이름을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똑똑히 적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이 약속하신 자녀의 신분으로 하늘의 모든 영광을 물려받을 거룩한 왕가의 후사입니다.
제5특권: 성령님의 내주와 인도하심의 특권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는 자녀의 심령 속에 친히 거하십니다. 이는 일시적인 방문이 아니라 영원히 함께하시는 내주(內住)의 역사입니다. 성령님은 삶의 모든 순간 하늘의 지혜를 공급하시고, 갈 바를 알지 못할 때 올바른 진리의 길로 친히 인도해 주십니다. 성경은 선언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우리는 홀로 인생의 광야를 걸어가는 외로운 존재가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늘 동행하시며 마음의 평안을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날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그분의 인도를 따라 담대하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복된 자녀가 되시길 바랍니다.
제6특권: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특권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어떠한 시련과 위험을 만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자녀인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때로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나 고통을 만날 때라도, 하나님 아버지는 결코 우리를 방치하거나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우리의 눈에는 실패나 아픔처럼 보이는 순간조차도 하나님께서 최고의 작품을 만드시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나를 지키시는 아버지를 신뢰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을 뛰어넘어 마침내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제7특권: 세상과 악한 영을 이기는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의 두려움과 악한 권세에 끌려다니는 패배자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어둠의 세력을 짓밟고 승리할 영적 권세와 담대함이 이미 부여되었습니다. 성경은 선언합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 4:4).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강하신 분이며, 그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환경이나 시련 앞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힘이 아닌 내 안의 주님의 권세를 의지할 때, 우리는 세상을 당당히 이기고 날마다 승리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 암행어사는 남루한 옷을 입었어도 왕의 마패를 꺼내 드는 순간 모든 비리 사또와 포졸들을 무릎 꿇렸습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내 외모나 스펙이 아닌, 내 안에 찍힌 '예수 이름의 마패'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이 분명하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값싼 청바지를 입으면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지만, 고급 명품 옷을 입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고 깔끔하게 하게 됩니다. 입은 옷이 그 사람의 태도를 바꾸듯,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이 분명해지면 자연스럽게 자녀다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은 과연 어떤 삶일까요?
1) 아버지를 닮아가는 거룩한 삶입니다.
자녀는 자연스럽게 부모의 모습과 습관을 닮아갑니다. 하나님의 자녀 역시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갑니다. 성경은 명확히 권면합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
거룩함은 단순한 도덕적 깨끗함을 넘어 하나님의 자녀의 정체성입니다. 내 힘만으로는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할 때 거룩하게 살아집니다. 날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 거룩함을 실천하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2) 사랑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입니다(요일 4:8). 하나님의 자녀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나타내게 됩니다. 사랑하는 삶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하나님 아버지와 풍성한 교제를 나누면 그 성품이 흘러나옵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하면 이기적으로 살지 않고 가정과 교회, 이웃을 향해 따뜻한 용서와 은혜, 진실한 섬김을 베풀게 됩니다.
내 힘으로 사랑하기 어려울 때 내 안에 거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풍성한 은혜를 힘입어 날마다 이웃을 품고 사랑을 실천하는 복된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사는 삶입니다.
세상은 어둡고 부패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나의 유익만을 구하지 않습니다. 따뜻한 선행과 정직함으로 삽니다. 겸손한 섬김으로 주변을 온화하게 밝힙니다. 소금이 맛을 내어 부패를 막듯, 빛이 어둠을 몰아내듯, 성도는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마 5:13,14).
우리의 착한 행실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세상이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일상의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를 통해서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4) 모든 일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5:16-18). 하나님의 자녀가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환경이나 상황이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그럴 때 우리는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날마다 기쁨과 감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5) 아버지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짧은 지혜와 판단을 앞세워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날마다 기도와 말씀으로 아버지를 찾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갈 때 안도감을 느끼듯, 하나님의 자녀도 하나님 아버지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할 때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경은 권면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18세기 영국에는 부와 명예가 약속된 20대의 젊은 국회의원, 윌리엄 윌버포스가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 사회는 비인간적인 노예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었고 세상은 이를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의 눈에 노예제도는 하나님의 형상을 짓밟는 명백한 죄악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명철과 인간적인 계산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주신 두 가지 사명인 노예무역 폐지와 사회 도덕의 정화를 위해 인생을 드리기로 결단했습니다.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온전히 순종하며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기득권과 거대 자본, 동료 정치인들의 반대는 거대했고 살해 협박과 비난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평생 그를 괴롭힌 심각한 지병까지 있었습니다. 자신의 힘과 경험만 의지했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 4:4)라는 말씀처럼, 내 뜻보다 크신 하나님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했습니다. 내 안의 주님이 세상의 거대한 권력보다 크심을 확신했기에, 그는 5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단 한 순간도 타협하지 않고 겸손히 말씀에 순종하며 정직과 거룩함으로 싸워나갔습니다. 마침내 1833년, 영국 제국 전체에서 노예제도가 완전히 폐지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윌버포스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내 힘이 아닌 내 안의 아버지를 의지하며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떻게 변혁시키시는가를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범사에 아버지를 인정하며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길을 걸어갈 때, 성도의 삶에는 세상을 이길 담대함과 참된 평안이 주어집니다.
우리 역시 날마다 내 명철을 내려놓고 내 안의 주님을 인정하며 순종의 걸음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아버지를 의지하며 살아간다면, 윌버포스처럼 인류 역사에 남는 거대한 일을 이루지 못할지라도, 우리가 호흡하는 지구촌의 작은 한 구석을 환하게 밝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삶의 현장에서 거대한 퍼즐 한 조각과 같이 세상의 부패를 막아내는 거룩한 소금으로 쓰임받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