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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 대종주 제8구간
밀재~추월산~천치재~용추봉~오정자재~510봉~산성산~광덕산~덕진봉~방축리 35.2km
뵬담양호에 잠긴 추월산, 가을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2.1(600분) 2.9(100분) 2.7(120분) 1.2(60분) 3.2(120분) 2.3(70)
밀재-----추월산-----710봉-----390.6봉-----천치재-----치재산-----용추봉
――― A △726 A △710.1 A △390.6 A ======= A △591 A △560
352(782지방도) 290(29번 국도)
1.4(180분) 1.6(60분) 7.3(330분) 7.5(210)
-----오정자재-----510봉-----산성산-----방축리
A ―――――――― A ▲510 A ▲572.7 B ======
300(792지방도) 154(24번 국도)
*산행거리표 보는 법
1. 지명 아래 표시 중 ▲는 확인한, △는 미확인 삼각점, △°는 비껴가는 봉우리, ====는 포장국도, ―――는 포장지방도, -----는 소로 또는 등산로를 뜻한다. 이번 종주에서는 단 한 군데의 삼각점도 확인하지 못했다.
2. 화살표 위의 숫자는 구간 도상거리(km)이며, ( )안에는 걸린 시간을 표기한다.
3. 화살표 아래 알파벳은 구간 등산로의 상태를 나타낸다. A는 가장 좋은 상태, C는 가장 나쁜 상태. 이 등산로의 상태 역시 계절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번 여덟번째 구간에서는 등산로 상태가 대부분 아주 좋았다. 추월산 부근과 용추봉~오정자재, 산성산 부근에는 몇 군데 가파른 암릉 구간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 또한 덕진봉을 지나 방축리까지 구간에는 가시덤불이 우거져 있다.
*산행길잡이
빛재, 멸재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밀재에서 추월산으로 오르는 길에서는 담양읍과 그 아래의 너른 벌판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경사도 급하지 않고 길도 넓어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암봉으로 이루어진 추월산 정상에는 '전북 산사랑회'에서 세운 스테인레스 표지판이 서 있다. 남쪽으로 천년고찰 보리암이 자리잡은 사자봉 절벽 아래로 담양호의 푸른 물이 조망된다.
추월산 정상에서 정맥의 마루금은 곧장 북쪽으로 진행한다. 숲이 우거졌지만 군데군데 조망이 트이는 암릉이 나타나 쉬어가기 좋다. 쉬면서 뒤를 돌아보면 지나왔던 추월산과 사자봉의 가파른 절벽이 보인다.
정상이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710.1봉의 삼각점은 찾을 수 없었다. 710.1봉을 지나 계속 북진하던 마루금은 급하게 동쪽으로 방향을 꺾으며 고도를 낮추었다가 390.6봉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천치재까지는 고압송전탑이 줄지어 서 있고, 잡목이 무성하다. 전북 순창과 전남 담양을 가르는 천치재는 포도과수원이 자리잡고 있다.
천치재에서 532봉가지는 마루금과 임도가 나란히 이어진다. 이 임도는 가마골야영장 관리사무소 바로 위쪽을 지나 순창군 복흥면 양신리로 연결된다. 이 구간의 마루금은 잡목과 가시덤불이 우거졌다. 가마골야영장과 연결된 여러 갈래의 등산로와 임도가 어지럽게 연결되며, 제1등산로, 제2등산로 등 산행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안내판이 여러 개 설치되어 있다.
이 임도를 건너 급경사를 오르면 작은 안내판이 있는 치재산이다. 마루금은 다시 동북 방향으로 슬며시 고개를 틀고 파헤져진 임도를 건너면 용추봉 아래까지 구불거리며 오르는 793번 지방도가 지척으로 보인다.
정상이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용추봉에서는 지나온 추월산은 물론 담양호와 그 너머 강천산, 산성산과 아득하게 무등산까지 조망된다. 바로 아래로는 가마골야영장 진입로와 용추사로 오르는 포장도로가 보인다.
용추봉을 깃점으로 마루금은 이제 완전히 남쪽으로 고개를 튼다. 순한 소나무 숲길을 따르다 보면 능선상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508.4봉을 지나게 되고, 길은 아기자기한 암릉으로 이어진다. 암릉을 지나 다시 숲길로 접어들면 염소목장의 철사 울타리를 따르게 된다. 이 염소목장은 오정자재까지 이어지는데 수십 마리의 흑염소가 방목되고 있다. 오정자재 직전에는 넓은 밤나무 과수원이 차지하고 있다. 오정자재 표지석은 고개 옆 풀숲에 가려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담양과 임실군 구림면을 연결하는 792번 지방도 오정자재를 건너 마루금은 다시 밤나무 과수원을 지나고 이내 둥글레 밭으로 이어진다. 이 밭 울타리에는 출입할 경우 상습절도범으로 취급하겠다는 경고문이 적혀 있다. 산죽밭과 잡목 사이를 지나다가 가풀막진 오르막을 10분 정도 오르면 삼각점이 설치된 510봉에 이른다. 발 아래를 적시는 담양호가 지척이고 그 건너에는 추월산과 사자봉이 가깝게 보인다.
5만분의 1 지형도에 광덕산으로 표기된 강천산 왕자봉(571.9m)은 마루금에서 약 200m 벗어나 있다. 이 갈림길에는 '강천호, 깃대봉, 병풍바위'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서 있다. 마루금은 강천호 방향으로 이어진다. 산길은 순탄하게 이어지지만 이 표지판이 오히려 독도에 혼란을 준다. 강천산 구간에서 마루금은 강천제2호수를 서쪽으로 휘감으며 이어진다. 여러 갈래 사잇길과 담양호와 강천제2호수로 하산하는 길이 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산성산 북문터에 이르러 마루금은 이제 금성산성의 성곽을 따라 이어진다. 삼각점이 있는 572.7봉에는 연대봉이란 표지판이 있다. 북바위 아래로 난 길을 따라 동문을 지나면 거대한 바위봉우리 시루봉이 나타난다. 길은 시루봉을 왼쪽으로돌아 이어진다. 잠시 후 10m 정도의 가파른 절벽을 설치된 로프를 이용해 내려서야 한다.
울창한 소나무숲 사이를 지나게 되며 설치된 이정표에는 광덕산을 가리킨다. 이곳부터 방축리 앞 24번 국도까지는 가시덤불과 잡목이 가득하다. 해발 370m의 덕진봉은 보는 것과는 달리 뚜렷한 정상부가 없어 쉽게 지나치고 만다. 방축리 뒤에서는 고추밭 두렁을 따라 내려서면 된다.
방축리 앞 24번 국도를 따라 담양쪽으로 조금만 가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이 나온다.
길 찾기에 주의할 곳
밀재에서 추월산을 지나710봉가지 길 잃을 염려는 거의 없다. 710봉을 지난 후 잠시 내려섰다가 다시 작은봉우리를 오르게 되는데 정상 직전에 동쪽(오른쪽)으로 급히 방향을 틀어야 한다. 이곳 역시 표지기가 많이 붙어 있지만 주의를 게을리 하면 그냥 지나칠 수 있다.
390.6봉을 지나면 고압 송전탑이 나오는데 이곳부터 천치재까지는 여러 갈래 사잇길들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 천치재에서 오정자재까지는 길도 좋고 산행 중 조망이 계속 트여 독도에 큰 어려움이 없다. 천치에서 532봉 너머 양신리로 넘는 고개까지는 마루금과 나란히 임도가 이어진다. 용추봉 정상에서는 남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되고, 오정자재 부근에서는 염소목장 울타리를 따르면 된다.
오정자재를 출발하여 강천산 왕자봉으로 가는 삼거리에서는 남서쪽(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강천산 구간에는 안내판이 여럿 있어 오히려 마루금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처음부터 이런 이정표들을 무시하고 지도를 의지하는 것이 현명하다. '강천제2호수' 라는 이정표의 방향으로 가다가 사거리에서 완만한 서쪽(오른쪽) 능선으로 가야 한다. 계속 직진하면 호수로 하산하는 길이다.
산성산에서는 성곽을 따르면 되는데 동문터를 지난 후 시루봉을 왼쪽으로 돌아간다. 이후 광덕산 정상 직전에서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튼다. 창덕리와 덕성리를 넘는 옛 고갯길 부근에서는 가시덤불과 잡목이 우거져 길 흔적인 희미하다.
야영지와 샘터
이번 여덟 번째 구간 밀재에서 방축리까지 역시 중간에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없다. 밀재와 오정자재는 인적조차 드문 고갯길이며, 포도과수원이 있는 천치재 역시 매점이나 민가는 없다. 출발지점에서 미리 충분한 식수를 준비해야 한다.
용추봉 아래 위치한 가마골야영장에서는 야영을 하거나 산막을 이용할 수 있다. 통나무집과 단체숙사, 가족야영장, 물놀이장, 취사장, 샤워장, 운동장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 입장료 어른 1000원, 주차요금 승용차 3000원, 야영장 이용료 대형텐트 6000원, 소형은 4000원. 단체숙사 이용시 1인당 6,000원. 통나무집 평일 5만원, 주말 6만원. 061-383-2180 가마골야영장.
담양과 순창이 가깝다. 취재팀은 이틀은 담양읍에서 자고, 하루는 가마골야영장에서 야영한 후 차량으로 이동해 산행했다.
교통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담양이나 순창을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 밀재까지는 순창에서 출발하는 군내버스가 복흥을 거쳐 담양까지 하루 세번 08:30, 11:30, 15:50에 다닌다. 밀재 아랫마을인 쌍태리까지는 담양읍에서 하루 8차례 군내버스가 다닌다.
천치재로 가려면 순창에서 수시로 운행하는 복흥행 군내버스를 타고 답동에서 내리면 된다.
방축리 앞 도로까지는 담양에서 순창을 오가는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이른 아침 밀재를 넘나드는 것은 오직 자욱한 안개의 무리 뿐. 아직 여름이라는 계절의 손아귀에서 채 발을 빼내지 못한 지난 9월 초, 밀재를 점령한 안개를 깨치고 추월산을 향해 오른다. 금세 기온이 오르고 후끈한 열기에 편승한 안개는 종주대의 온몸을 눅진하게 휘감으며 달려든다. 길은 넓고 순탄했지만 종주대는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어야 했고, 연방 목덜미의 땀을 훔쳐야 했다. 가끔씩 나타나는 바위 위에 올라서 그때마다 불어오는 바람이라도 쐬지 않았다면 몇 사람은 벌써 오늘 산행을 포기하고 내려갔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더웠다.
추월산을 향해 오르던 중 바위에 앉아 혼자서 아침식사를 하는 이를 만났다. 지난 2월 영취산을 출발한 이래 처음 만난 호남정맥 정주자김병춘(57세, 대구K2산악회)씨는 오늘 아침 복흥면 대방리 금방동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늘 기대하던 동지를 만나는 일은 퍽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밀재를 넘은 것이 꼭 안개만은 아니었다.
사방 수려한 조망이 펼쳐졌을 추월산 정상에도 역시 안개가 난무하다. 애당초 글러버린 조망을 포기하고는 바위 난간에 줄지어 선 채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깐다. 산 아래로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아랫도리를 거풍(擧風)하는 이 의식은 이후 쉴 때마다 당연한 것이 되고 말았다.
망치소리와 보리암의 목탁소리
추월산을 지나면서 정맥의 마루금은 곧장 북쪽을 향해 치달린다. 바로 추월산 아래 자리잡은 담양호를 휘둘러 가기 위함이다. 추월산과 내일, 모레 지나게 될 용추봉, 강천산, 산성산으로 이어지는 길쭉한 호는 담양호의 북쪽 둑을 담당하고 있다.
담양호 옆을 지나는 29번 국도의 공사현장에서 들려오는 망치소리가 꼭 목탁소리처럼 들린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추월산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다가 갑자기 담양호로 뛰어드는 사자봉의 절벽이 장관이다. 그 절벽 끝에 매달리듯 천년고찰 보리암이 자리잡고 있다하니 망치소리가 목탁소리로 들린다 해서 그리 이상할 건 없다.
보조국사 지눌이 지리산 삼정산 무주암에서 나무로 만든 매를 세 마리 날려보냈는데 한 마리는 장성 백양사에, 한 마리는 승주 송광사, 한 마리가 바로 추월산 보리암터에 앉았다고 한다.나무로 만든 매를 날려보낸 지눌의 법력이면까짓 망치소리를 목탁소리로 둔갑시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터. 목탁소리를 위안 삼아 무더위 속을 걷는다. 몇 번의 거풍의식이 더 거행되었음은 물론이다.
710봉과 391봉을 지나 천치재가 훤히 보이는 곳에서 종주대는 어이없게도 고갯마루 한참 아래 29번 국도로 내려서고 말았다. 고압송전탑과 그 공사를 위해 낸 어지러운 길 흔적과 우거진 칡넝쿨 때문이었다. 눈앞에 목적지를 두고 보면서도 엉뚱한 데로 가버렸으니 누굴 탓하랴. 도로를 따라 천치재로 올라가는 발길이 더위에 녹아 내린 엿가락처럼 자꾸만 늘어진다.
다시 이른 아침, 천치재에 섰다. 담양군 용면 용치리와 순창군 쌍치면 답동리를 연결하는 29번 국도가 지나는 천치재는 양쪽으로 포도과수원이 자리잡고 있다. 과수원 앞에 포도상자를 쌓아놓고 좌판을 벌인 아낙이 이제 산으로 접어드는 일행에게 아무 말도 없이 포도 두 송이를 건넨다.
마루금과 임도가 나란히 용추봉을 향해 이어진다. 해는 벌써 중천에 치솟아 뙤약볕을 사정없이 퍼붓고, 종주대의 얼굴은 벌겋게 익어간다. 굽이진 임도 모퉁이에서 포도 두 송이를 나누어 먹었다. 달고 시원하며 향긋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껍질과 씨도 뱉지 않은 채 포도를 먹던 김석우씨의 한 다미.
"이렇게 맛있는 포도는 처음이야! 이따 산행 마치고 거기서 포도 좀 사 가지고 갑시다!"
필경 초라한 행색에 비지땀을 흘리며 산행에 나선 우리를 안쓰럽게 생각했을 괴수원 아낙의 맘성이 더 향긋했다.
가마골야영장에서 올라온 임도가 마루금을 건너간다. 숲길로 접어들자 앞서던 일행들이 갑자기 줄달음을 친다. 풀섶에 가린 땅 속 벌집을 건드린 것. 문성욱(34세, 안산 바위를 찾는 사람들)씨는 다리 두 군데와 팔뚝 한 군데 그리고 엉덩이 두 군데를 쏘였다. 이후 문성욱씨는 나머지 종주기간 동안 엉덩이를 까는 거풍의식에 더 이상 참가하지 않았다.
영산강의 시원 용추봉 가마골
용추봉 가기 전에는 길가에 또아리를 튼 까치살모사 한 마리를 발견했다. 금방 개구리라도 잡아먹었는지 배가 볼록하다. 사람을 보고도 놀라거나 피하지 않고 오히려 세모난 머리를 치켜들고 공격하려 든다. 이후 일행들은 서로 앞서기를 꺼려했고, 줄곧 땅바닥만 보며 걸었다.
용추봉 정상은 커다란 헬기장이었다. 남쪽 가마골야영장이 있는 골짜기는 과연 50 몇 년 전 파르티잔 이름의 비극적인 산사람들이 본채로 삼기에 충분할 만큼 깊고도 깊었다. 영산강의 시원이 되기도 하는 이 용추봉 가마골은 이제 여름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들끓으니 산사람들의 본거지는 이제 도시사람들의 휴양지가 되었다.
용추봉에서 다시 남진하는 마루금은 점점 고개를 수그린다. 월정리 마을 뒷산 암릉을 지날 때에는 그동안 거풍 의식에 가장 열성이던 정종원 기자가 벌에 쏘였다. 나머지 구간에서 더 이상 거풍의식은 거행되지 못했다. 정 기자가 벌에 쏘이기도 했지만 강천산과 산성산 구간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있었고, 운행거리도 길어 여유있게 쉴 짬도 없었다.
오정자재 부근의 흑염소목장을 지나다가 새기를 낳는 염소 한 마리를 목격했다. 이미 한 마리를 낳았고 다시 한 마리를 출산하는 산고를 겪다가 종주대를 발견하고는 잔뜩 경계의 눈초리를 번뜩인다. 미안한 마음에 못 본 척 후다닥 오정자재까지 내달렸다. 새까만 새끼염소의 귀여운 모습이 아른거렸지만 꾹 참았다.
찌는 듯한 무더위는 오늘도 여전하다. 또다시 가시덤불을 헤치고 길을 나선다. 밤나무과수원과 둥굴레 재배단지라는 표지판과 더불어 '출입금지, 적발시 상습절도범 취급' 이란 위협을 가볍게 무시했다. '독립군에게 군자금을 전하는 심정으로' 이 길을 가고 있는 우리에게 이런 위협은 가당치도 않다. 불끈 주먹을 쥐고 비장한 심정으로 비지땀을 흘리며 오르고 보니 '강천산 왕자봉 571.9m'¹ 이란 표지판이 나온다.
아차차! 너무 비장했다. 호남정맥 마루금은 5만분의 1 지형도에 광덕산이라 표기된 삼각점을 지나지 않는다. 200m 전 삼거리에서 서쪽 능선을 따라야 했는데 너무 비장한 심정에 지나치고 만 것이다. 강천산 남쪽 능선을 따르다가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데 우리는 또 한번 길을 잘못 들어 강천제2호수로 내려서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이 그 가당치 않은 상습절도범 위협으로 생긴 비장함 때문이다. 그러나 더위에 지친 일행은 운 좋게 만난 계곡에서 세수를 하고 빈 수통을 채우느라 법석이다. 잘못 내려온 길을 되짚어 오르는 길은 몇 배나 힘이 든다. 엿가락처럼 늘어진 다리가 아예 쩍쩍 달라붙는다.
강천제2호수를 서쪽으로 빙 둘러 산성산 북문터²에 도착한다. 이제 마루금은 금성산성의 성곽을 따라 동남쪽을 향해 이어진다. 푸르른 담양읍의 들판이 펼쳐지고 흰 뱀처럼 성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은 그 들판으로 서서히 잦아든다.
은근한 그러나 끈질긴 호남정맥
산성산을 지나 광덕산이라 부르는 560봉을 향한다. 길가에는 '가랑이 소나무, 순창군' 이란 명찰을 단 가랑이 소나무가 가랑이를 벌린 채 줄줄이 서 있다. 가랑이를 벌린 소나무 아래 바위에 앉아 금성군 금성리 마을을 바라본다. 늦여름 늦은 오후 고즈넉한 마을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끊일 듯 말 듯 끈질기게 이어지는 호남정맥의 산줄기처럼 그곳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 역시 은근한 인정으로 끊기지 않는 생명력을 이어왔다. 가랑이 소나무 아래에서 어제 포도를 건네던 천치재 포도밭 아낙을 다시 떠올린다.
마루금은 이제 전 구간에서 가장 낮은 높이로 흐른다. 560봉을 돌아 바라본 덕진봉은 제법 봉긋하더니 실제로는 정상이 어디인지 제대로 구분하기조차 어려운 동네 뒷산이었다. 방축리 뒤 고추밭 두렁에 서면 마루금은 거의 평지를 지난다. 그러나 물을 가르는 그 역할을 조금도 소홀히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확연하게 보여준다.
방축리 앞 24번 국도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사이로 늦여름 시뻘건 노을이 쏟아진다.
-(주)-
주1.국립지리원 발행 5만분의 1 지형도에서 '광덕산(571.9m)'이라 표시된 봉우리를 실제 이 지역에서는 '강천산 왕자봉'으로 부른다. 산성산을 지나 전망대와 능선으로 이어지는 560m의 무명봉을 '광덕산' 이라 부르고 있다.
주2. 산성산에서는 삼각점이 있는 572.7봉을 연대봉, 북바위가 있는 603m봉을 운대봉이라 부른다.
참고: 월간<사람과산> 200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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