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바우 장
오 덕 렬
‘저쪽으로 가자!’ 말바우 장은 저만큼에 있지……. 전남대학교 후문 쪽에서 찾아간다. 처음 보는 것 같은 아파트의 뒤 꼭지와 넓은 이면 도로가 낯설다. 고샅이 이어지더니, 어느새 비릿한 냄새가‘장터 입구요’ 하는 것 같다.
이런 골목을 입구라 친다면 입구가 한 스무 개도 넘을 성부른 것을 알게 된 것은 한 시간여 이 골목 저 골목을 뒤지고 다닌 뒤였다. 장터에 진열된 물건들을 구경한다. 생선가게에서 생선들을 바라보면 생선들도 나를 쳐다보고, 골목에 가면 봄나물들도 나를 쳐다보고, 이불집을 지날 때는 이불들이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게 아닌가. 참 신기하다.
이제 이 골목을 끝까지 가 볼까. ‘좌판들 즐비한 저잣거리’다. 장꾼들로 붐빈다. 봄날 풀린 날씨가 장꾼들을 불러들였나? 심심하지 않다.
“어허, 사람이 참 많이 모였습니다.”
냉이, 애쑥, 봄동 등을 좌판도 없이 바닥에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께 말을 붙인다.
“야, 큰 장이라 그라지라우.”
‘큰 장’은 시골 재래시장인 5일장과 도시 매일시장이 혼합된 형태. 이곳 말바우 장날은 2·4·7·9일에 선다는 것. 그러니 하루를 건너 서는 장이 있고, 이틀을 건너 서는 장이 있다. 큰 장은 이틀을 건너 3일만에 서는 장을 일컫는 말이다.
꼭 대목장 같이 오가는 사람과 장꾼이 한데 어울렸다. 아무리 바쁜 사람이라도 빨리 걸을 수도 없다. 바쁜 사람은 애가 터지는 길이요, 오늘 나 같은 장꾼은 장터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 되었다. 한참을 밀려가듯 걸어도 내 위치를 가늠할 수 없다. 눈에는 익은 거린데 당최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아는 것 같은 길, 그러나 지금 위치를 짐작할 수 없는 안타까움. 낯선 풍경이다.
평소에는 없던 좌판이 길 양쪽에 빽빽이 들어서고 대형 파라솔도 서 있고, FTA 발효인가, 오렌지가 싸다고 외치고, 완도에서 막 올라온 물미역이‘한 보따리에 천원, 천원!’ 목청을 돋우고, 공터 튀밥 튀기는 소리까지 합쳐져서 그런가. 얼마쯤 더 걸으니, 무등도서관이 알은체를 하니 생소하던 분위기가 일시에 사라지고 만다.
도서관 앞 근린공원의 정자(亭子) 마루에 걸터앉아 쉬기로 한다. 한숨 돌려 머리를 든다. 앞의 큰길을 건너면 두암동(斗岩洞). 밤실을 지나 무진고 성지(武珍古城址)의 잣고개를 넘으면 무등산 자락의 정자들이 춘경을 다투어 자랑하는 광주호 주변이다. 아, 벌써 호숫가 버들개지 부푸는 소리에 귀를 종그는 식영정(息影亭)은 성산별곡을 읊조린다.
“엇던 디날 손이 성산(星山)의 머믈며서, 서하당 식영정 쥬인(主人)아, 내 말 듯소.”
나는 ‘어떤 지나는 손’이 되어 보는 것이다. 봄기운 실눈 속에 아지랑이 아롱거린다. 장자(莊子)는 아지랑이를 야마(野馬)라 했던가. 이제 나는 붕새는 아니더라도 한 마리 텃새처럼 남도‘5일 장터’를 찾아 나설 것이다.
벌써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다. 놀란 듯 일어서서 국밥집 골목을 찾아,‘자라봉 국밥집’으로 들어선다. 뭔가 쫄깃쫄깃한 얘기가 한없이 풀려날 것만 같은 장터 국밥집이다. 버글버글 끓는 것은 가마솥의 국물뿐이 아니다. 방이나 바깥이나 가득 찬 손님도 끓기는 매한가지다.
“정년하면 5일 장터 돌면서 장터국밥 먹으며 시장사람 냄새를 맡아 보겠다”고 한 지가 벌써 3년이 지나고, 또 1년이 흘렀단 말인가!
국밥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있다. 발걸음 따라 들어선 국밥집도 하나의 선택. 순간순간 일어나는 하찮은 일의 처리도 하나의 결단이 되는 것이다. 봄나물 바구니 앞에서 말을 거는 것도, 어물전을 구경하며 알키한 홍어 냄새를 공짜로 맡는 것도, 마른대추만을 앞에 놓고 마냥 흥겨운 하루를 보내는 어눌한 할아버지를 사진에 담는 일도, 모두 하나의 결단인 것……. 내가 말바우 장을 5일 장터 탐방의 시발점으로 잡은 것은 큰 결단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랬을까? 이름에 끌리고, 그냥 마음에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뿐이긴 하지만 말이다.
중·고등학교 다니던 때만 해도 서방천이 흐르고 논밭이었다. 밭귀에는 큰 바위도 많았던 이곳, 이제는 집들로 꽉 찼다. ‘개발’의 바람은 바윗덩이도 날려버렸다. ‘말바우’유래를 말해주는 그 바위는 찾을 길이 없다. 대체, 그 바위는 어디쯤 있었을까?
‘말바우’에서‘바우’는 ‘바위’의 전라방언. 그렇다면‘말’은 무엇인가? ‘말 두(斗)’인가 ‘말 마(馬)’인가?
큰 바위에 한 말(斗)들이 구멍을 파서 거기에 들어가는 곡식의 양을 기준으로‘이것은 한 말이요, 이것은 한 말이 넘소.’하며 판관 노릇을 했던 바위가 말바우〔斗岩〕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도량형의 기준 하나를 바위에 만들어 분쟁의 소지를 없앴던 그 바위 이름이‘말바우’로 불렸고 뒷날 두암(斗岩)이라 했을 것. 바로 옆에‘되바우’나‘홉바우’도 있을 법한데 그런 바위를 보았다는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어찌 보면 다행이다. 또 다른 전설들이 주렁주렁,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쏟아낼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들은 설화 같은 이야기는 이렇다. 무등산에서 김덕령 장군이 타던 말(馬)과 누이의 활 솜씨를 겨루게 된다. 말이 목표 지점인 너럭바위에 도착하자, 화살이 말의 목을 관통하게 된다. 이렇게 되어 이긴 말은 가고 발굽은 바위에 남아 말바우 전설이 된 것이다.
말바우 장,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장터! 장날이면 삶의 이야기들이 골목마다 꾸역꾸역 모여든다. 그래서 장터에는 없는 것 없이 다 있다. 모든 물건, 모든 냄새, 모든 인정……, 장터의 질서도 없는 듯 있다. 골목 한 뼘 자리도 다 정해져, 1천에 가까운 상인들이 잡음 없이 지내고 있다. 삶의 애환이 도랑물 되어 흐르는 곳이 장터 풍경이 아닌가.
동지죽 골목이다. 아주머니 두 분이 입맛을 다시면서 나온다.
“죽 맛있습디여?”
일면식도 없는 분들의 대답이 곱다.
“예, 맛있습디다.”
“얼맙디여”
“이천오백원이라우.”
싸고 풍성한 것이 장터 아니던가. 또 옆 골목에선 젓갈 삭는 냄새가 풍겨온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와 젊은 주인댁. 아저씨는 젓갈을 맛보고 주인댁은 까만 비닐봉지에다 젓갈통에서 둬 번 떠 담고는 덤으로 한 번 더 넣더니, 저울에 얹는다. 구경하던 나는 또 괜히 거들어 쌓는다.
“맛있것소.”
“가남으로 담아서, 뜨니까 딱 맞아분갑소.”
손님에게도 주인에게도 한 마디씩 건넨다. 그러다 보니 나도 스스로 놀라 한 마디 하고 말았다.
“오메! 젓이란 젓은 다 모타부렀네이-잉.”
‘갈치창젓, 게알젓, 고록젓, 굴젓, 꼴뚜기젓, 낙지젓, 또라젓, 돔배젓, 멸젓, 새우젓, 속젓, 잡젓, 전어밤젓, 창란젓, 황석어젓…….’
또 몇 발짝 옮기니 박물장수도 보인다.
“요것 얼마요”
잊고 있던 검정 고무줄이다.
“천 원이라우.”
내가 장을 본 검정 고무줄 두 개를 이으면 3m도 넘는다.
초등학교 시절, 여학생들이 운동장 한쪽을 차지하고 고무줄넘기를 하던 일이 스쳐간다. 곱슬머리 수복이가 제일 잘했던가. 꼬마 기남이는 아닐 테고, 키 큰 덕례와 일순이, 한동네 판순이 누나, 사납쟁이 행순이, 제 나이에 입학한 영례와 재남이……. 지금은 그때 그 애티가 어디 한군데나 박혀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무찌르자 오랑캐 몇 백만이냐, 대한 남아 가는 데 초개로구나, 나아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몇 차례 돌면 끝날까 하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기도 하며 끝이 없었다. 편을 갈라섰지만 합창을 하며 몇 바퀴를 돌고도 지칠 줄 모르던 그 가시네들, 뺨은 발개졌고, 땀은 송알송알 아늠에 솟았다. 높이 뛰어 한 발에 고무줄을 걸고 좌우로 감고 돌며, 앞으로 뒤로 오고가는가 하면 제자리에 서서 뛰고, 또 그것을 반복하기를 몇 번. 그럴 때마다 양쪽에서 잡은 고무줄은 무릎에서부터 머리 위 한두 뼘 높이까지 올라갔다. 가장 높이 올린 고무줄은 제 키보다 높게 마련인데 뛰어올라 그 고무줄로 재주를 부리던 같은 반 그미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이런 저런 장 구경에 재미를 붙였지만 어릴 적과 너무 다른 것이 하나 있다. 할머니 손잡고 온 손주를 만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린애를 동반한 엄마도 보이지 않는다. 응! 근데 저기 옷 가게 앞에서 등에 아이를 업고 있질 않는가. 포단을 받쳐 띠를 둘러서 업은 품이 옛날 그대로다. 참 신기하기까지 하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점포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따라간다. 아이를 업은 엄마와 아기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어서다. 그런데 나는 ‘아!’ 소리를 지를 뻔하다가, 걸음을 멈췄다. 등에 업은 것은 옷을 곱게 입힌 애완견이 아닌가. 한참을 보고 또 보고……. 지금도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는 그 견모(犬母)?
평소에는 말바우 장! 하면 ‘말바우 4거리’가 기준이었다. 장꾼이 되어 뒷길로 장터에 오니 할 말도 쓸 말도 많아진다. 오늘은 큰 장날이니 낼 모레 작은 장에 또 와서 맛있다는 팥죽 한 그릇 먹어야겠다. (2012.3)
첫댓글 사투리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 참 친근한 느낌이다.
어느 장날인지 어렸을때 엄니와 같이 온양온천 장날 장터에서 국밥을 맛있게 먹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