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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생명 말씀(2013.5.5) 주기도문특강 5 말씀/ 마태복음 6: 9-13, 눅11:1-4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오늘은 주기도문의 마지막 기도입니다. 세 가지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세 가지 우리를 위한 기도 중에서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소원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 기도 제목도 정말 중요하지만 이어 드리는 마지막 이 기도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항상 깨어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기도제목입니다. 그러면 이 '시험과 악으로부터의 구원'을 위한 기도가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먼저 시험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시험'이라는 단어를 두 가지 의미에서 사용합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을 강하게 하시기 위하여 주시는 일종의 훈련으로써의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신앙인이 어려움을 만날 때 더욱 믿음을 강하게 하고 하나님을 열심히 믿게 하는 시험입니다. 로마서5장3,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믿는 사람들에게도 환난이 따릅니다. 어려움과 가난, 때로는 질병과 사고도 생깁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가?” 반문도 하고 원망도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미워해서가 아닙니다. 성경은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28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힘들고 어렵기는 하지만 그런 시련을 통해서 우리들의 인격이 변화되어 인내를 배우게 되고, 신앙의 진보를 이루어 성숙한 인격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러한 시험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사랑과 축복이 내포된 시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시험을 통과하게 되면 반드시 인격의 성장과 함께 하나님이 주시는 갑절의 축복을 받게 되는 시험입니다. 그런 시험은 우리의 신앙을 측정하고 성숙케 하는 일종의 'Test'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의 '시험'은 마귀가 우리를 신앙적으로 넘어뜨리기 위하여 주는 유혹으로써의 시험(Temptation)입니다. 오늘 우리가 실제로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아 보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이 감사와 찬양으로 견디어가는 감격의 시험이라면 이 시험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시험입니다. 이런 시험이 들면 우리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게 되고, 마음에 품어서는 안 되는 미움과 증오를 품게 되고, 절망으로 넘어지게 됩니다. 또는 안일과 나태에 빠지게 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약점을 알고 그 약점을 통해서 시험합니다. 또 우리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통하여 시험합니다. 물질을 많이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물질문제로 시험하고, 몸을 유난히 아끼는 사람에게서는 건강 질병 문제로 시험하고, 친한 친구를 통해서 시험하기도 합니다. 그 시험의 목적은 마침내는 죄에 빠지거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넘어져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포기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본성이 그런 존재입니다. 태초에 에덴 동산에서 암담과 이브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 먹게 하였고 인류에 죽음의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메시아로 오셔서 광야의 시험을 받으실 때도 명예와 권세, 떡 문제로, 시험을 하였습니다. 물론 아담은 시험에 빠져 죄를 지었지만 예수님은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마귀의 속성은 요한복음 8:44절에서 살인자 거짓말 쟁이라 하였습니다.
“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마귀는 우리를 좋게 하는 것처럼 유혹하지만 결국은 죽이고 파괴하는 일을 합니다. 우리가 욕심을 품으면 그것이 죄를 짓는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고, 죄를 짓는 행동을 하면 반드시 사망의 보응이 따르게 되는데 사단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가끔 유명 연예인들이 마약 도박으로 하루아침에 쌓은 명성을 무너트리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탤런트 박시후의 성폭력 공방, 개그맨 김용만의 10억대 도박사건, 연기자 이승연 박시연 장미해의 프로포폴 상습투약사건 등 각종 탈법 행위가 꼬리를 물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럴려고 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손을 댔다가 못 빠져 나온 결과입니다. 죄라는 것이 처음에는 달콤하지만 끝내는 이제까지 쌓아놓은 공든 탑을 무너지게 하고, 개인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망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안 좋은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이런 마귀의 시험(Temptation)에 끌리나요? 그것은 우리 안에도 마귀의 편에 서게 하는 죄의 소욕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14,15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러므로 육신을 지신 사람들은 욕심, 자만, 시기와 질투의 마음을 조심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사단이 세상 영광을 다 줄테니 나에게 절하라고 할 때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 떠나 세상 영광을 얻은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또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하면서 경제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때 속지 마십시오. 사람은 영혼의 존재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이런 유혹이 오면 “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외치고 속히 빠져 나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음에 보면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렇게 기도로 이어지고 있는데, 실제 원어 성경에는 '악한 자'에게서 구하여 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시험하는 자도 악할뿐 아니라 그 시험의 결과도 악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의 시험은 선하지만 사단이 주는 유혹의 시험은 결과가 악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든 깨어서 상황 판단을 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상처 주고 아프게 하고 마침내는 죽이는 것이 사단의 시험입니다. 좀 더 유익을 얻기 위해서 거짓말하고 싶은 유혹, 내가 잘 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은 궁지에 빠지는 것을 못 본체하려는 유혹 등 이런 것들은 잘 이겨내야 합니다. 또 하나님 앞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사사로운 일들도 잘 이겨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문제가 생깁니다. 성경공부를 해야 하는데 친구가 만나자고 합니다.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갑자기 알바자리가 생깁니다. 몸이 좀 안 좋습니다. 배도 아픕니다. 그런 일로 성경공부도 못하고 예배도 빠지고 이런 일이 계속 반복 되다보면 우리는 교회에 나갈 수 없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못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아니지만 실제로 그런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완벽하지 않습니다. 다 잘 할 수 없습니다. 실수도 합니다. 그럴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주저 안거나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기도 하고 빨리 나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살아가는 신앙인인 우리의 신앙적인 발목을 잡기 위하여 마귀가 끊임없이 시험한다는 것을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과 실수를 용서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믿음으로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아멘!
물론 인간의 눈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과 사단이 주는 시험을 판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원래가 사탄은 광명의 천사로까지 분장하고 나타나서 나를 위하는 것처럼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것 처럼 확신시켜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인은 늘 분별력을 주시도록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기도제목을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인간은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를 잘 지킬 수 있다면 뭐하러 기도하겠습니까? 사단은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과 원수입니다. 그리고 아주 강합니다. 벧전 5:8을 보면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
그래서 강한 자의 시험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배와 부친과 그물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의 용기는 대단하였습니다. 실제로 열심히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는 재자들 중에서도 수제자였습니다. 죽는데 까지 따르겠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마음은 원하나 육신이 약하다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계집종 앞에서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후회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에 제일 먼저 물고기 잡으로 도망갔습니다. 이 베드로의 예는 무엇을 말해줍니까? 신앙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길은 우리의 의지와 결단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실과 헌신과 희생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단은 오히려 위대한 결단을 통해서 시험하고, 희생과 헌신을 통해서도 시험하고, 오히려 잘 한 것을 통해서도 시험하는데 이런 시험에서 많은 사람들이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통해서도 오는 시험은 아는데 잘 된 일이나 성공을 통해서도 오는 시험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보면 믿음이 굳건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운 광야생활을 하면서 “마실 물이 없고, 고기가 없다. 힘들다. 옛날 옛적이 더 좋았다” 하며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출애굽의 역사, 하늘의 만나를 먹과 반석에서 물이 나는 기적을 체험하였지만 여전히 시험에 들었습니다. 시험은 기적과도 별개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아네 딸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 시험에 들었습니다. 가나안는 광야와 달리 모든 것이 풍성하였습니다. 가나안의 문화를 피부로 느끼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오히려 우리가 다 했다 생각을 하고, 이방 문화를 본받으며 이들의 죄악을 연모하였습니다. 이들은 부요함 속에서도 시험에 들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가나안 족속들에게 당하며 연단을 받아야 했습니다. 시험은 가난하고 힘들어도 오고 부요하고 풍부해도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사람들이 부요할 때 넘어지는 이유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힘들 때 사람들은 힘들어서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힘들지 않으면 원망하거나 불평은 없지만 기도를 안 합니다. 기도를 안 하면 영적인 힘이 없습니다. 여러 가지 사단의 미혹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다윗에 그랬습니다. 아람과의 전쟁에 승리하고, 평안을 누릴 때 그는 태평성대를 누리며 음란 죄에 빠졌습니다. 솔로몬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천번제를 드리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 지혜를 얻고 부를 얻었지만 잘되었을 때 오히려 이방여인을 취하여 이방 우상 문화를 따르다가 나라가 풍지박산이 났습니다. 힘든 광야 시대에만 시험에 드는 것이 아닙니다. 부요할 때 오히려 더 큰 큰 시험에 들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지 않고,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이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악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우리가 기도 하게 되면 어떻게 이런 시험에 이길 수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2장 15절을 말씀합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신령한 자란 곧 마음에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가 기도하게 되면 우리 안에 성령의 하나님이 임하십니다. 우리는 그 분과 교제하는 신앙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저절로 모든 것을 옳게 판단하게 되어집니다. 마치 경계경보나 공습경보가 울리듯이 우리 신앙의 위기와 유혹이 닥쳐온 것을 놀랍게도 성령님이 예감하여 주셔서 미리 대비하고 준비하게 하시는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시험에서 이기는 비결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 성령께서 양심을 통하여 들려주시는 신앙적인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능히 모든 마귀의 시험을 물리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말씀처럼 먼저 기도해야 하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엡베소서 6: 10-18은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사단을 대적해야 하는가를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3)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요지는 이렇습니다. 마귀는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굳게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자세히 모든 것을 살필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진리의 말씀으로 허리띠를 띠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으로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 합니다. 머리에는 구원의 투구를 쓰고, 모든 기도와 간구로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왜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해야 합니까? 아무리 잘하였어도 결국에 시험에 들게 되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모든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결국은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저와 여러분들은 기도해야 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끝까지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최후까지 승리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해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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