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수도권 사람들은 이천을 한 번쯤 지나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곳이 중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도는 수려선 폐선 - 경강선 개통 전까지 40년 이상 존재하지 않은 탓에,
이천은 도로교통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어 자연스레 버스의 발달을 야기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이천터미널은 오래전부터 교통 거점지로 기능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교통의 요지로 거듭난 1980년대의 인프라를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이용이 불편하다는 의견이 자주 제기된다.
교통의 요지이자 발전 중인 도시이면서도 과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
이천터미널과 오랜만의 만남을 가져보려 한다.
곤지암에서 열차를 이용하여 이천에 오게 되었다.
역에서 터미널로 가면서는 그동안 없었던 초고층 아파트와 주상복합을 짓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천에 온건 7년 만이었는데, 그전에는 없었던 시설들을 통해 발전상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도심으로 들어오자 7년 전과 같은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천의 만남의 광장이라는 시계탑을 비롯하여,
낮은 건물 + 좁은 도로 + 얽히고설킨 전신주가 오래된 냄새를 솔솔 풍기고 있었다.
이곳은 이천 최대 번화가인 분수대오거리 바로 옆에 있다.
분수대오거리는 과거 수려선 이천역이 있었던 자리로,
일제강점기부터 형성된 매우 오래된 시가지이자 도심지이다.
그래서 이곳 또한 무척 오래전부터 개발되어 읍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만약 수려선이 폐선 되지 않고 그대로 남았더라면,
이천터미널과 이천역은 불과 300m 거리를 두고 붙어있었을 것이다.
이천 주민 및 방문객 입장에서는 상당히 아쉬운 사실이겠으나,
사실상 지금도 이천시 시외교통은 이천터미널이 독점하기 때문에
역-터미널 환승의 불편함이 큰 장애물이 되지는 않는다.
이천터미널은 원래 관고동에 있었으나 1984년 1월 28일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당시에는 이천나들목과 가장 가까운 외곽으로 옮겨온 것이지만,
이천이 시로 승격되고 도시가 점점 커지면서 현재는 구도심 한복판이 되어버렸다.
건물 자체도 35년이 지난 탓에 옛날 터미널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부분이 많다.
출입구만 해도 건물 정중앙이 아닌, 상가 사이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다.
이천터미널은 개인적으로 세 번째 방문인데, 여기에 올 때마다 신기했던 점이 몇 가지 있었다.
하나는 같은 건물에 시외버스 / 고속버스 대합실을 철저히 구분해 놓는다는 점이다.
여기는 시외버스 대합실과 매표소가 있는 곳으로, 강남으로 가려면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
굳이 같은 버스터미널에서 철저하게 매표 공간까지 분리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또 하나는 항상 사람이 많다는 점으로, 이날도 어김없이 온갖 사람들로 가득했다.
실제로 이천터미널은 하루 3,000여 명이 이용을 하는데,
이는 오산, 평택, 의정부, 고양(!) 등등 훨씬 큰 도시들보다도 숫자가 높다.
경기도 도시들 중에서는 이웃 여주와 함께 가장 버스터미널 이용률이 높다고 볼 수 있다.
매표소가 있는 위치에서 들어왔던 입구를 바라본 모습이다.
10년 전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는 그럭저럭 평범한 시설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굉장히 낡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닐 테다.
리모델링을 하여 깔끔해지긴 했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좁은 대합실에는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뿌려놓은 향수 내음이 좁은 공간을 채운다.
그 냄새가 체취일 수도 있고, 화장품일 수도 있고, 혹은 진짜 향수일 수도 있다.
확실한 사실이 있다면 매일같이 찾는 3천 명의 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가,
세월의 한 마디마다 소품처럼 가지런히 쌓여있다는 점일 것이다.
시선을 잠깐 돌려 시간표를 살펴보니 역시나 세월의 때가 여전하다.
삐뚤빼뚤 배치된 행선지와 땜질 가득한 시간표는 7년 전의 것에서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다만 시간표는 오랜 세월 동안 바뀐 점이 많았다.
지금은 바뀐 점을 살펴보려 한다.
가장 수요가 많은 동서울행의 경우 15~20분에서 20~30분으로 배차가 다소 벌어졌는데,
정확한 시간이 표기되지 않아 횟수가 얼마나 줄었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그다음으로 자주 다니는 수원행은 10년 전과 동일하게 30분 간격이다.
이곳도 주 52시간 영향을 피해 가지는 못했는지 전반적으로 노선이 감소했다.
장호원(41 → 25), 원주(21 → 18)회, 대전(18 → 16), 여주(30 → 14),
충주(14 → 12), 부천(14 → 11), 성남(31 → 10), 안양(14 → 10),
천안(9 → 8), 구미 - 북대구(12 → 6), 음성(12 → 7), 의정부(6 → 4), 고양(6 → 2) 행 등
수많은 노선의 횟수가 줄은 것을 알 수가 있다.
특히 3번 국도 완행 노선 및 경강선 연선 지역은 절반 혹은 그 이상으로 대폭 감소했다.
반면에 횟수가 10년 전과 똑같이 유지되는 노선들도 많다.
인천 16회, 청주 13회, 전주 7회, 광주 6회, 제천 6회, 용인 4회, 익산-군산 3회, 점촌 3회, 울산 1회 등등
유지되는 노선의 숫자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심지어 강릉(7 → 9회), 안산(8 → 9회)행처럼 횟수가 증가한 곳들도 있으며,
경주-포항, 창원-마산처럼 신설된 노선도 몇 군데 있다.
종합해보면 10년간 다소간의 시간표 변동이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선방 중이다.
경강선 연선 및 국도 노선의 타격을 제외하면 큰 차이가 없다.
원래도 인구에 비해 이용객이 많은 편이지만, 안정적으로 추세가 유지되기 때문에
경강선 개통 이후로도 큰 타격 없이 잘 굴러가고 있다.
그래서 이천터미널 상가는 무척 낡고 좁고 비효율적인 공간 배치가 되어있음에도,
빈 곳이 거의 없이 꽉꽉 무언가로 메워져 있다.
시외버스와 고속버스 대합실을 연결해주는 승차장도 늘 한결같아 보인다.
심지어 리모델링을 하면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음에도 그렇다.
워낙 오래된 구조이다 보니 리모델링으로도 노후화는 막을 수가 없나 보다.
매번 이용하는 주민들은 불편한 점이 상당히 많겠지만,
어쩌다 한번 찾는 여행객 입장에선 이런 모습이 좋다.
이제는 찾기 힘들어진 과거의 정겹던 건물 구조가,
이곳에선 정감 있는 모습 그대로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추운 날씨 때문에 대합실에 비하면 승차장에는 사람이 적었으나,
그래도 바람 잘 새 없이 수시로 사람이 지나치고 있었다.
차량도 마찬가지이다. KD의 본거지임에도 경남여객을 비롯한 타 회사 차량이 심심찮게 보이고,
분 단위로 차가 끊임없이 치고 빠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좁고 긴 승차장 복도를 따라 걷다 보니 고속버스 전용 승차장이 조그맣게 나타났다.
순간 왜 이런 모습이 나올까 하는 궁금증이 먼저 들었고,
뒤늦게 여기는 원래 이런 구조였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이곳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졌다는 뜻일 테다.
매표소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조그마한 갈림길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곧바로 대합실과 함께 이러한 모습이 펼쳐진다.
여기는 아무리 봐도 적응이 잘되지 않는다.
시외버스 쪽과 달리 이쪽은 철저하게 원형을 고수하고 있어서 이질감이 든다.
분명히 이천터미널은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를 같이 취급하는 종합버스터미널임에도,
30년 넘게 시외와 고속이 서로 합쳐지지 못하고 각방 생활을 계속한다.
대다수의 이천 사람들은 물론이고 외국인까지도 이런 구조에 적응한 듯 하나,
정작 이곳을 찾는 나에겐 여전히 익숙지 않은 풍경이다.
대전 같은 케이스처럼 이용객과 노선이 많다면 이해가 가겠으나,
이천터미널 고속버스는 서울(강남)행이 전부이다.
그나마도 거리가 짧아 지금은 시외면허가 된 전환시외 노선이다.
이 노선의 특징은 월~목 / 금 / 토~일별로 시간이 각각 다르다는 데에 있다.
대체로 평균 20분 간격을 유지하는 와중에 최소 15분, 최대 30분까지 벌어진다.
동서울행 시외버스와 비슷한 수준의 배차 간격이 유지되고 있는데,
강남까지 직통으로 가는 메리트가 생각보다 큰 모양인지
이곳 시간표는 경강선 개통 후에도 거의 영향을 받은 것 같지 않다.
이곳의 놀라운 점은 시간표 패턴이 지방행 노선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대체로 서울과 가까운 지역일수록 주말보다 주중 배차가 많은 게 보통인데,
여기는 주말(52회)이 주중(44회)보다 배차간격이 촘촘하다.
이를 보면 수도권 속의 지방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한창 시간표를 찍던 와중에 복고의 끝판왕을 발견했다.
매표소 옆에 있던 이름 모를 식당에 마치 영화에나 나올 법한 메뉴판이 문에 붙어있었다.
문 자체도 굉장히 오래된 구조의 여닫이문으로 되어있었고,
손수 만든 빛바랜 스티커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대로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러한 모습들 때문에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가득한 곳이라고 한다.
시설의 노후화가 심각하고 대합실 시설이 너무 비좁은 데다,
주변 정체가 심각해 교통 흐름을 막는 주범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천역 옆으로 터미널을 옮긴다는 소문이 도는 등,
여러모로 개선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을 생활이 아닌 여가로 만난 필자에게는 좋은 기억을 많이 남겼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사람들에게서 뒤섞인 은은한 향취와 함께,
지난날의 추억을 다시금 되새기게 만들어준 향수를 느끼게 했다.
향수에 취하고, 향수로 물들게 만든 이천터미널과의 세 번째 만남은,
헤어짐의 아쉬움을 안겨줌과 동시에 또 다른 만남에 대한 기대감을 선물해주었다.
첫댓글 이천터미널 정말 오랜만에 봅니다. 친구 녀석이 이황리에 있던 군단본부에서 군생활을 해서 면회 갔다오는 길에 강남행 차를 타려고 10여년 전에 갔던 적이 있는데 차량과 최신형 프랜차이즈 업소의 간판 정도를 제외하면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주요 노선들도 거의 변함이 없고요. 예전에는 경남여객 3번 시내버스가 터미널 안에 들어와 있던 걸로 기억나는데 여전히 그 노선도 터미널 내부에서 승차가 가능한지도 궁금해지네요. 경강선이 현재 판교까지만 운행하는 덕에 서울 방면 노선들이 거의 타격을 입지 않은 모양입니다. 하이닉스를 비롯해 자체 경제활동이 되는 것도 노선이 유지되는데 한몫 하는 것 같고요.
지금도 터미널 안에서 경남여객 3번 시내버스를 타실 수 있습니다.
아직 터미널 내부에서 3번 시내버스를 타실 수 있습니다. 이천역이 시내와 너무 멀리 떨어진 탓에 당초 예상보다는 서울행 수요의 타격이 다소 적었으나, 시외버스 시간표 중 유독 경강선 연선 배차가 급감한 것을 보면 영향이 없었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천터미널에 다양한 노선이 유지되는 이유는 하이닉스 근로자 + 군인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네요~
@장호원버스센터장 답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전히 잘 다니고 있군요.
@Maximum 상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경강선 연선은 역시 영향을 피해가지 못했군요. 중부내륙철도로 충주, 문경까지 이어질 계획이라고 들은 적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먼길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도 20살때 군생활을 이황리에있는 군단에서 했기에 이천터미널을 자주왓었죠
군제대후에는 올일이 없기에 궁금했는데 많이변하면서도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모습이군요
내용중에 "수도권속의 지방" 적절한 표현이네요. 제가 봐도 애매하거든요. 어렴풋이 기억나는게 시내버스가 1990년대 초반에는 터미널 안(지금의 장호원 직행 홈)에 들어왔었죠. 그러다가 시외버스 노선이 늘어나니까 2000년대 초반까지 지금의 택시승차장 자리에서 승객들을 태우다가 지금은 터미널 건너편,터미널 앞으로 뿔뿔이 흩어졌죠.
주변 지역에 비해 이천은 유독 시내버스가 적게 들어오는데 순차적으로 쫒겨난 것이었군요. 부지가 좁아서 그런 것이겠지만 조금은 아쉽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평택, 안성, 이천, 여주 등등 다른 도 접경지역은 수도권 느낌이 덜한 것 같더군요.
한번쯤 정착해서 살아보고 싶은 느낌이 드는 이천은, 예전부터 활기가 넘치는 도농복합도시죠. 교통여건이 점점 좋아지니 버스노선 감편이 아쉬워 집니다.
충주도 지금 내륙전철 공사가 한참 진행중이라 앞으로의 변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득일지 실일지 모르겠지만 산중턱으로 선로공사(살미면)를 하는걸 보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어느순간 개통이 되고나면 분명 지방소도시에 많은 변화가 불어 올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예전에 지어졌어야 할 철도가 이제서야 삽을 뜬것이지만, 버스노선의 타격은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역이 상당히 외곽에 있어서 이용이 불편한데도 타격이 있는 걸 보면 철도의 유무가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걸 실감하게 하네요.
@Maximum 철도가신설되면서 버스가 영향을 받는것은 어쩔수없는 현상이구요, 그나마 최소한으로 승객감소를 줄이는방안은
인구가 늘어냐하는데...우리나라현실로보면 참 힘든건어쩔수없나봐요.
@서울버스공사 이천은 그래도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는 지역이라 승객 감소를 방어할만한 여지가 있습니다만,
양평같은 사례를 보면 인구가 늘어난다고 해서 꼭 도움이 되는건 아닌 것 같습니다.
@Maximum 갑자기 끼어들게 되어 죄송하지만 이천과 양평의 인구 증가는 성격이 다르게 볼 여지가 크다 생각합니다. 양평의 인구가 늘어난 것은 이른바 전원 생활을 위해 이주한 사람들의 영향이 크지요.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고 양평 내에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좀더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고자 이주를 해 오면서 양평 인구가 늘어난 측면이 크지만, 이천은 이천 내에서 생계와 경제활동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인구가 증가한 측면이 크지요. 자연스레 이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확률이 더 높기도 하고요. 그런 면에서 이천은 원체 버스의 영향이 컸고 버스를 이용할만한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어서 양평보다는 조금 낫지 않나 싶습니다
@왕십리 정확히 제가 하고싶던 말씀을 해주셨네요. ^^ 이 얘기는 추후 양평터미널 게시물을 올릴때 쓰려고 아껴두고 있었습니다. 가까운 동네지만 성격이 완전히 다르니 흥미로운 부분이 많네요.
북대구↔이천, 여주노선은 감편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노선 양분화로 인한 대응"이라 봐야할 듯 싶습니다. 북대구↔이천행은 하루 6회, 여주행은 하루 4회이죠. '구미' 경유라는 전재가 있지만, 서울(강남)행 고속버스를 제외하고는 시외버스가 나눠지는 경우가 잘 없으니깐요.
맞는 말씀입니다. 노선 양분화가 되면 자연히 횟수가 감소할 수밖에 없겠죠.
여주터미널도 고속버스 타는곳이 맨끝에 따로 있습니다..
승차장은 따로 있지만 매표소/대합실은 통합이 되었더군요. 여주도 예전에는 이천과 비슷했죠. ㅎㅎ
@Maximum 이천은 고속버스 매표소가 따로 있나요?
@[경남] 네, 이천터미널은 같은 건물을 쓸뿐 매표소+대기실이 따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Maximum님이 말씀하신 이천 관고동 터미널 입니다(출처:네이버)
관고동 시절의 자료가 남아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귀중한 자료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